벗어야 사는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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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파격적인 장면이 또 있을까? 뮤비 속에는 슈퍼 사이즈 엉덩이의 향연이 난무하고, SNS 세상에서는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전략적인 가슴 노출을 감행한다. 한때 비하와 금기의 대상이었던 커다란 엉덩이와 유두는 어떻게 뜨거운 숭배의 대상으로 떠올랐을까?

‘그녀는 두 가지 언어로 노래한다. 다름 아닌 영어와 몸!’ 시인 안셀 엘킨스는 노골적인 성적 표현을 서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1930년대 페미니스트이자 섹스 심벌이었던 메이 웨스트(Mae West)를 두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최근 문화계 역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페미니즘과 함께 보디랭귀지에 능한 현대판 메이 웨스트들이 점령했다. 2015년 버전의 메이 웨스트들은 개미처럼 가는 허리 덕분에 더 커다랗게 보이는 탄탄한 엉덩이와 가슴을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비주얼을 통해 드러내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특히 여성의 가슴 노출 제재를 반대하고 자유로운 상의 탈의 권리를 주장하는 ‘프리 더 니플(Free the Nipple)’ 운동은 마일리 사이러스와 리한나, 카라 델레바인 같은 슈퍼 스타들의 비호 아래 인디 필름을 넘어서 하나의 인터넷 현상이 되었는데, 이는 2015 F/W 시즌 런웨이를 강타한 키워드가 되었다. 알렉산더 왕(핏을 보여줘야 할 청바지 광고에서 모델 안나 이버스의 벗은 몸을 내세운 것으로 화제가 됐다!)과 마크 제이콥스를 시작으로 구찌, 자크뮈스, 아크네 스튜디오 등 수많은 쇼에서 가슴이 드러나는 오간자 톱과 드레스를 메인 아이템으로 내세웠고, 생로랑 쇼에 는 한쪽 가슴을 그대로 드러낸 원숄더 드레스(생로 랑 하우스에서는 이 드레스를 ‘모노 붑(Mono- Boob)’ 드레스로 부른다)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하이 브랜드로 흡수되며 대중적으로 더욱 강력한 힘을 갖게 될 프리 더 니플 룩을 보고 리한나, 마일리 사이러스처럼 상의 노출을 즐기는 팝스타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터다.

흥미롭게도 여성의 몸매 가운데 특별히 각광받는 부위는 시대별로 달랐다. 지금 그 초점은 가슴에서 엉덩이로 옮겨온 상태. 물론 사람들은 여전히 C컵을 선호하지만 풍선기구처럼 빵빵하게 부풀어오른 실리콘 가슴의 시대는 한풀 꺾이고, 여권 해방을 내세운 선정적이지만 정당한 가슴 노출과 볼륨 넘치는 육감적인 뒤태가 그 자릴 대신하고 있다. 킴 카다시안의 전라 노출에서 가슴 누드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는 여성의 몸에서 엉덩이의 비율이 클수록 시선을 압도한다는 얘기와 같다. 니키 미나즈는 최근 조회수 4억을 돌파 한 ‘아나콘다(Anaconda)’ 뮤직비디오 속에서 4분 49초 내내 커다란 엉덩이를 예찬하며 자극적인 트워킹(허리와 상체를 가만히 고정한 상태에서 엉덩이를 위아래로 흔들어 추는 춤) 향연을 펼쳤는데, 아나콘다 발매 한 달 후엔 제니퍼 로페즈가 더욱 강력하고 쇼킹한 뮤직비디오를 내놓으며 도전장을 던졌다. 제목마저 엉덩이(Booty)를 지칭하는 선정적인 뮤비 속엔 ‘1조원 엉덩이’라는 그녀의 별명에 걸맞게 화끈하고 아찔한 엉덩이 진동이 난무한다. 그런가 하면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19금 퍼포먼스와 작정하고 저지르는 전라 노출로 연일 가십지를 도배하는 마일리 사이러스의 공연에서 그녀는 얼굴보다 엉덩이를 보이는 횟수가 더 많을 정도. 게다가 지난해 ‘인터넷을 부숴버리자’ 는 콘셉트로 기획된 <페이퍼> 매거진 커버를 장식한 킴 카다시안의 오일 바른 엉덩이 누드와 집채만 한 엉덩이를 부각시킨 <러브> 매거진의 전라 노출 화보는 이런 흐름에 정점을 찍었다.

좌우로 리드미컬하게 흔들리는 완벽한 구 모양의 관능적인 뒤태를 앞세운 파격 노출은 우리의 시각적 자극 속에서 이미 중심이 되었다. 나르시시스트 들의 장(場)이 되어버린 인스타그램에선 엉덩이 셀카를 일컫는 이른바 ‘벨피(Belfies)’ 열풍이 몰아치 고 있다. 지구 상에서 가장 유명한 엉덩이를 가진 카다시안 자매는 말할 것도 없고, 켈리 브룩(Kelly Brook)이나 셰릴 페르난데즈 버시니(Cheryl Fernandez Versini)는 허리를 최대한 휘어뜨려 과 장된 뒤태를 카메라 앞으로 들이밀었고, 보다 볼륨감 넘치고 탱탱한 엉덩이를 갖기 위한 지방 흡입과 이식(복부의 지방을 흡입해 힙에 이식하는 일종의 재활용 성형술이라 할 수 있다) 등의 뒤태 성형술도 트렌드로 떠올랐다. 리타 오라와 이리나 샤크 같은 글래머 아이콘은 물론 귀네스 팰트로와 앤 해서웨이 같은 우아하고 패셔너블한 셀렙들이 아주 우아한 행사에서 노팬티 차림의 힙을 당당하고도 적나 라하게 노출하면서, 옆 엉덩이를 드러내는 테일러링 신조어, ‘사이드 버트(Side Butt)’라는 단어까지 생겨났을 정도! 이는 비단 외국에만 해당되는 이슈 가 아니다. 최근 발표한 가수 박진영의 신곡 ‘어머님 이 누구니’에서도 커다란 힙에 대한 찬양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 

여성의 엉덩이와 뒤태는 종종 예술로도 묘사되어 왔지만, 대개 커다란 엉덩이는 젊음과 다산 그리고 풍만함의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역사상 여성의 엉덩이와 관련되어 가장 뜨거운 논쟁을 일으킨 예는 사르키 바트만 (Saartjie Baartman)이다. 남아프리카 코이코이족 흑인 여성인 바트만은 커다란 가슴과 불룩 튀어나온 엉덩이 때문에 19세기 유럽 인종주의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녀는 ‘호텐토트의 비너스(Hottentot Venus)’라 불리면서 여러 도시에서 인종 전시를 당했는데, 흑인 여성에 대한 착취 및 학대의 대명사가 된 바트만의 비극은 26세의 나이로 사망한 후에도 결코 끝나지 않았다. 넬슨 만델라가 인종차별의 표상인 그녀의 유해를 본국으로 송환해오기까지, 바트만의 시신은 해부학자에 양도 되어 186년간 파리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호텐토트의 비너스’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킴 카다시안과 니키 미나즈의 과장된 엉덩이 노출이 수시로 뜨거운 쟁점이 되며 도마 위에 오르는 이유도 바로 그래서일 것이다. 

유례없는 파격 노출이 패션계 화두에 오르며 디자이너들 역시 여성의 체형에 대한 신선한 탐구에 돌입한 모양이다. 리한나, 비욘세, 킴 카다시안처럼 가십지나 투어 티켓 판매를 위해 카메라에 최적화 된 몸 외에도, 보다 현실적인 노출을 위한 디자인도 쏟아져 나왔다(발렌시아가, 지방시, 발맹, 베르사 체의 2015 S/S 컬렉션에는 마이크로 스커트와 투명 한 시스루 팬츠, PVC 펜슬 스커트 등이 출현했다). 발맹의 올리비에 루스테잉은 광고 캠페인의 얼굴로 킴 카다시안과 리한나를 택했지만 “팝스타의 옷차림 역시 새로운 리얼리티 룩의 출발이에요. 패션은 그저 특정한 여성이나 엘리트형 체형에만 맞추는 것이 아니니까요”라고 이야기한다. 모스키노의 제레미 스콧은 시퀸 핫 팬츠나 금색 가죽 바지를 더 돋 보이게 만들기 위해 볼륨이 강한 모델을 선택했다. 페이지 데님(Paige Denim)의 디자이너 페이지 겔러는 최근 하이라이즈 플레어 스타일 덕분에 매출이 증가했다고 말한다. “하이라이즈는 허리를 잘록해 보이게 만들고 힙을 또렷하게 강조하죠. 포켓의 위치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는데, 그 위치와 모양에 따라 힙의 굴곡이 살아나 섹시한 핀업걸 이미지가 연출됩니다.” 그가 말하는 팁 한 가지, “포켓이 작을 수록 힙은 더 커 보여요. 여기서 볼륨을 강조하고 싶다면 약간 둥근 포켓이 살짝 높이 달린 걸 택하면 효과적이지요.”

시각적인 자극 속에선 시선을 강탈하는 XXL 사이즈의 엉덩이가 트렌드이긴 하지만 진실은 이렇다. ‘여전히 마른 것을 숭배하는 수많은 여성에게 카다시안은 일종의 카툰!’이다. 대부분의 여성이 어느날 갑자기 엄청난 크기의 엉덩이를 갖기 원하는 것 은 아니다. 늘 그래왔듯 여자들은 마른 몸매를 위해 굶기를 반복하고 있다. 풍만한 뒤태는 관능적이고 매혹적이긴 하지만 아직까진 일시적인 트렌드이고 잠깐 스쳐갈 뿐인 유혹일 수도 있다. 뒤태와 관련해서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2006년 영화 <이디오 크러시(Idiocracy)>를 예로 들고 있다. 인류 전체의 지능이 바닥을 친 미래, 풍자적인 이 코미디물 속에 선 90분간 사람의 엉덩이만 비춰주는 영화가 오스카상 8개 부문을 수상한다. ‘여기에 사로잡힌 인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암 울한 디스토피아’ 혹은 ‘NG!’라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여성의 적나라한 노출과 관련된 페미니즘 논쟁이 끊이지 않더라도, 우리의 시각적 자극 속에는 늘 여 성의 몸이 부각되어왔다. 이런 의미에서 살펴본다 면, 화두로 떠오른 엉덩이와 유두를 드러낸 가슴은 단순히 최근 들어 경쟁력이 치열해진 부위는 아니다. 우리의 신체 일부이자 시대에 따른 문화적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복합적인 상징물인 셈이다. 이제 동시대 여성들은 보여주는 것과 보여지는 것에 스스로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킴 카다시안의 빵빵한 엉덩이나 가슴을 드러내는 마일리 사이러스의 대담 함을 이야기하며 성적 자본이나 페미니즘 같은 단 어를 떠올리는 것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 비하와 금기의 대상이었던 여성의 신체 일부가 숭배의 대상으로 떠올랐기 때문! 변하지 않는 단 한 가지 사실은 여성의 몸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것이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정진아
artwork by
PYO KI 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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