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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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근은 캔버스 위에 물감을 바르고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수차례 반복해 풍경화 같은 추상을 완성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한 과정이자 결과라고 설명한다.

학창 시절에는 동양화를 전공했다. 그런데 캔버스 와 오일 물감을 사용하는 지금의 작업은 서양화에 가까워 보인다.

난 동양화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한국적 풍경화의 요소가 작품 안에 담겨 있기도 하고. 유화를 택한 까닭은 시간이 오래 소요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내게 그림은 대인 관계에서 의 상처나 불신 같은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이다.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려 그 위에 또 그리는 과정을 몇 번씩 반복하는데, 그 기다림 안에서 과거를 서서히 극복한다. 

추상화지만 멀리서 본 풍경 같은 구상화의 느낌도 있다.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진 않는다. 동양화를 전공한 배경이 영향을 미쳤을 테고, 한국의 풍경에 익숙한 본성도 자연스레 드러났다고 본다. 만약 일부러 배제했다면 그게 오히려 아이덴티티를 저버리는 일이 되지 않겠나? 일부러 끄집어내려 했다기보다는 이미 있는 것을 무시하지 않은 쪽에 가깝다.

하지만 현대 도시를 사는 한국인에게 산수화 같은 풍경은 빌딩 숲보다도 낯선 이미지가 아닐까?

나도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다. 그래도 다들 내면에 공유하고 있는 심상이 있는 듯하다. 치유의 실마리를 거기서 찾는다.

손가락을 사용해 물감을 캔버스 위에 여러 번 덧칠해가며 그림을 그린다. 이런 방법 에 정착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지금의 스타일이 어느 정도 정리된 건 5~6년 전부 터다. 그런데 기법과 재료가 다르긴 했지만 그전에도 담고자 하는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손가락을 많이 쓰는 건 캔버스와 가장 빠르게 호흡할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집중해 있는 동안 생각을 신속하게 화폭에 옮기기 위해 손을 사용할 뿐이다. 손이냐 붓이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권혁근의 개인전 <바람이 손을 놓으면>은 이유진갤러리에서 7월 9일까지 열린다. 

권혁근의 개인전 <바람이 손을 놓으면>은 이유진갤러리에서 79일까지 열린다. 

작업 기간이 긴 편이라고 했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데 보통 어느 정도의 시간 을 투자하나?

평균 6개월 정도. 큰 작품은 1년까지도 걸린다.

가만 보면 대부분이 대형 작품이다.

나는 내 그림을 볼 때 떨림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몸 이 다 들어갈 만큼 큰 작품이 좋다. 그 앞에 서면 스스로를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그렇다 보니 사실은 작은 그림을 그릴 때 몰입이 더 어렵다. 프랑스의 작지만 덕망 높은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게 됐는데, 공간에 잘 맞을 것 같아서 최근 2~3호 정도의 작은 작품을 완성하긴 했다. 쉽지 않더라.

자유로운 표현으로 짐작하건대 계획보다는 우연에 기대는 작업이 아닐까 한다.

우연에 기대지는 않는다. 캔버스를 짜는 것부터가 계획이니까. 물론 화폭 안에 채워넣는 순간에는 모든 걸 내려 놓지만 그전에 구상을 당연히 세워둔다. 사실은 그리기에 앞서 글부터 쓰는 편이다. 캔버스에 내용을 적은 뒤 그림으로 덮어버리는 거다.

텍스트는 관람객에게 보여주지는 않는 건가?

그것까지 있으면 설명이 너무 많아진다. 보는 사람에게 제약을 줘서 오히려 방해가 될 거다.

전시 타이틀이 <바람이 손을 놓으면(If The Wind Let Go)>이다. 설명을 덧붙여준다면?

바람은 욕망이다. 바람이 놓는 건지 내가 놓는 건지, 잡을 수 있는 욕망인지 없는 욕망인지, 생각하고 혼란스러워하며 살아간다.

2년 전에도 같은 시리즈로 개인전을 열었다. 지금과 예전 작업 을 견줄 때 달라진 내용이 있나?

거의 없다. 나는 그냥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다. 방향을 좁혀가면서 어떤 결론에 다가가는 건 좀 더 나이 먹은 뒤에나 가능할 듯하다. 아직은 경험이 부족하고 공부도 덜됐다.

욕심을 버리고 바람을 따르듯 자신을 내맡기며 작업했지만 완성 된 그림에는 결국 욕심이 담겨 있었다고 작가 노트에 적었다. 끝내 버리지 못한 욕심은 무엇이었을까?

화가라는 것. 그림을 버리지 못했고 그래서 직업으로 택했다. 가장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욕심이 부정적이기만 한 건 아니지 않나?

욕심이 왜 부정적인가? 나는 욕심 있는 사람만 좋아한다.

그런데 왜 버리려고 하나?

욕심보다는 매이는 걸 버리려는 거다. 버리고 말고는 내가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 나는 단지 모든 걸 내려놓은 채 그림을 그리려고 애쓸 뿐이다.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정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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