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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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뉴 숲 인근에 있는 자유롭고 유쾌한 아파트. 그곳에 파리지엔 시크에 영국식 유머를 담는 끌로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클레어 웨이트 켈러(Clare Waight Keller)의 낭만적인 공간에 자리한다.

거실의 마르코 자누소 체어에 앉은 웨이트 켈러. 

거실의 마르코 자누소 체어에 앉은 웨이트 켈러. 

생애 최고의 순간 

10년마다 최고의 순간이 있었어요.” 지난 4년간 끌로에를 지휘해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말이다. “1990년대에 캘빈 클라인에 합류했을 즈음은 케이트 모스와 마키 마크가 광고 캠페인에 사인한 직후였어요. 그런 다음에는 랄프 로렌의 퍼플 라벨 남성복을 시작했고요. 사실, 1990년대의 뉴욕은 가공되지 않은 원초적 면모가 두드러진 모습이었죠. 당시엔 꽤 위태로운 동네였던 헬스 키친에 살았어요.” 1999년 그녀는 건축가인 필립 켈러와 결혼하고 구찌에서 일하기 위해 본토인 영국으로 다시 넘어갔다. “정말 즐거운 시기였어요. 톰 포드는 여전히 적극적이었고 그만이 할 수 있는 패션 세상을 만들고 있었으니까요.” 이제 쌍둥이 샬롯과 아멜리아(12살) 그리고 해리슨(3살)까지 더 많은 가족을 거느리게 된 웨이트 켈러는 불로뉴 숲 인근의 우아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녀는 ‘풍경이 바뀌면서 자신이 바라보는 비전도 변화했다’고 털어놓는다. “프랑스 사람들은 개인마다 스타일을 지니고 있고, 그걸 고수하길 원해요. 덕분에 저 역시 더욱 확고하고 개성 있는 스타일을 갖게 되었죠.” 이제 끌로에 걸은 단지 영국식 유머와 여유로움 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보이프렌드 팬츠에 티셔츠 그리고 환상적인 코트, 혹은 스니커즈에 롱스커트를 매치시켰어요.” 프렌치 스타일에 영국풍 자수나 볼륨감 넘치는 실루엣을 더하는 등 웨이트 켈러는 전에 없이 다양한 미학을 접목시키고 있다. “적당히 자유롭게 헝클어진 헤어에 노메이크업, 이른바 프랑스식 아름다움에 더 가까이 다가선 것이죠.”

 1. 올드 뱅크 구역에서 찾아낸 무라노 조명. 2. 펜들턴 담요로 커버링한 미드센트리 소파와 조너선 애들러 쿠션들. 3. 2015 S/S 끌로에 컬렉션 룩. 4. 쌍둥이 딸 아멜리아와 샬롯이 그린 그림. 

1. 올드 뱅크 구역에서 찾아낸 무라노 조명. 

2. 펜들턴 담요로 커버링한 미드센트리 소파와 조너선 애들러 쿠션들.

3. 2015 S/S 끌로에 컬렉션 룩.

4. 쌍둥이 딸 아멜리아와 샬롯이 그린 그림. 

인생의 원동력, 가족 

긴 포니테일에 정갈한 학교 유니폼을 입은 웨이트 켈러의 쌍둥 이 딸들은 엄마의 미니 버전이다. 스튜디오와 집 사이에서 확실 한 선을 긋고 있는 그녀는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에 전력 을 다해 일한다. 일 년에 여덟 차례 열리는 여성복 컬렉션뿐만 아니라 아이웨어에서 액세서리, 아동복까지 모든 걸 총괄하고 있지만 ‘집에 오는 순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일은 사 라져요’라고 말한다. “아주 급박한 일이 아니라면, 이곳에서 일 은 내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아요. 가족과 함께할 때엔 일을 떠 나 온전히 그 관계에 집중해요. 내 삶의 원동력이니까요.” 매주 토요일마다 그녀는 아이들과 파리 서쪽 끝에 위치한 아름다운 불로뉴 숲으로 향하며, 이 공원의 호숫가에서 테니스를 즐기곤 한다. “내가 하는 유일한 운동이에요. 아침에 정말 상쾌한 기분 을 느낄 수가 있어요.” 그렇다면 공원에서의 그녀는 어떤 차림 일까? “낡은 스웨터 차림요. 아마 우연히 패션 관계자를 만난다 면 죽음일 거예요!”

벨기에 조각가 보렉 시펙이 디자인한 체어 앞에서 웨이트 켈러와 해리슨, 사진 작품은 라이언 맥긴리의 ‘마모셋’(2012년). 

벨기에 조각가 보렉 시펙이 디자인한 체어 앞에서 웨이트 켈러와 해리슨, 사진 작품은 라이언 맥긴리의 ‘마모셋’(2012년). 

빈티지 보물창고 

웨이트 켈러의 집은 빈티지 물품의 보물창고다. 팜스프링스에 서 찾아낸 1960년대 벨베틴 체어, 클리낭쿠르 벼룩시장에서 발견해 하운즈투스 천으로 커버링한 독특한 곡선의 암체어, 고 야드 노트북이 놓인 낡은 우드 데스크에 이르기까지! “뭔가를 찾아내는 걸 정말 좋아해요. 적어도 몇 달에 한 번씩은 브뤼셀 의 벼룩시장에 다녀오죠.” 가장 최근에 구입한 커피테이블은 거 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고, 거실 벽면에는 무릎을 굽힌 나체의 여인과 마모셋을 촬영한 포토그래퍼 라이언 맥긴리의 독특한 작품이 걸려 있다. “그의 작품에는 살짝 기이하면서도 초현실적 인 특성이 있어요. 특히 야경 사진을 좋아해요. 자연을 이처럼 시적인 방식으로 활용하는 점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침실 벽 난로 옆에는 슈즈가 가득하고 그 위에는 여러 선글라스가 놓여 있다. 게다가 소파 뒤의 옷장 속에는 그녀의 본업을 고스란히 반영해주는 코트들이 잔뜩 감춰져 있다. “난 코트에 사로잡혀 있어요. 코럴 코트는 60년대 초반 기라로쉬 디자인이고 이건 70년대 밍크 코트죠. 70년대 섀기 니트 블루종도 있고, 이 크 림 코트는 올 시즌 끌로에 아이템이에요.” 옷장 속에 감춰진 코 트만도 40벌이 넘지만, 그녀는 일일이 코트들을 짚어가며 친 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필립은 조만간 레일이 부서져버릴 거라 생각하고 있지만요!”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정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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