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엉덩이를 찬양하는 노래가 인기 차트를 점령하기 한참 전부터, 페티시는 작사가들에게 요긴한 자극을 주는 소재였다. 몸에 대한 욕망과 집착은 그간 어떻게 흘러왔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부위별로 살펴봤다.

사춘기 소년처럼 섹스를 부르짖는 노래가 인기 차트에 이미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컴백을 준비하던 박진영이 떠올린 차별화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너의 몸은 원더랜드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핫 이슈라며 두루뭉술한 찬사를 보내는 대신, 특정 신체 부위에 대한 집착과 욕망을 구체적으로 짚어 가사로 옮긴 것이다. 그러니까 익히 알다시피 ‘어머님이 누구니’는 큰 엉덩이에 바치는 요란한 찬가다. “허리는 너무 가는데 힙이 커서 맞는 바지를 찾기 너무 힘든’ 여자. 노래의 화자가 털어놓는 이상형의 조건이다. 뮤직비디오에서 직접 연기를 한 박진영은 트레드밀 위를 달리는 누군가의 꽁무니에 붙어 이렇게 묻는다. “어머님이 누구니? 도대체 어떻게 너를 이렇게 키우셨니?” ‘너의 뒤에서’ 같은 발라드를 부를 때 보다 표정이 한결 애틋한 것 같기도 하다.

 

직설적인 화법의 가사와 그에 못지않게 아슬아슬한 뮤직비디오 덕분에 특히 화제가 되긴 했지만 이 곡이 페티시즘을 공략한 최초의 가요는 아니다. 돌이켜보면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을 골고루 옮겨 다니며 훑고 노리고 만지작거렸던 노래들이 하나둘씩 떠오를 것이다. 박진영의 ‘어머님이 누구니’처럼 노골적인 예뿐만 아니라, 섹슈얼한 시선을 일루미타니의 상징처럼 알 듯 말 듯하게 감춰놓은 경우까지 추리면 목록은 꽤 길어진다. 물론 과거의 노랫말들은 아무래도 후자에 가까운 편이다. 음란마귀와 나란히 앉아 플레이어의 재생 버튼을 누르면 조용필의 ‘창 밖의 여자’ 같은 노래도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창가에 서면 눈물처럼 떠오르는 그대의 흰 손 / 차라리 그대의 흰 손으로 나를 잠들게 하라’ 어떤 면에서는 이렇듯 상상력을 부추기는 문장이 거침없는 설명보다 더 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흰 손으로 날 어떻게 잠재워달라는 뜻인 걸까? 자장자장을 해달라는 것도 아닐 테고.

 

그로부터 35년 후에 만들어진 십센치의 ‘쓰담쓰담’은 남녀의 밤을 좀 더 선명하게 묘사한다. 오늘따라 집에 안 가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상대에게 화자는 이런유혹의 멘트를 건넨다. ‘투박한 내 두 손에 온몸을 맡겨줘요. 할 게 있어요 / 쓰담쓰담쓰담쓰담 해볼까요. 토다닥디 다리디독 해드릴까요.’ 그러면서 외로워 미칠 때마다 불러달라는, 대출 상담 스팸 문자만큼이나 살뜰한 당부를 곁들이는 것이다. ‘쓰담쓰담’이니 ‘도타닥디다리디독’이니 하는 의성어들은 수위 조절을 위한 모자이크 처리쯤 되겠다. 1970년대의 페티시즘이 12세 관람가였다면 그래도 요즘은 케이블TV의 19세 관람가 영화 수준까지는 다다른 셈
이다.

고깃집에서 메뉴 고르는 소리 같긴 한데 노랫말의 소재로 인기가 높은 ‘특수 부위’도 대략 정해져 있는 눈치다. 한국 가요에
서야 ‘어머님이 누구니’가 튀는 사례지만 팝까지 범위를 넓혀보면 엉덩이 타령은 상당히 흔해진다.
그 전통도 꽤나 유구해서 퀸은 일찍이 ‘Fat Bottomed Girl’이란 명곡을 남긴 바 있다. 프레디 머큐리의 호사스러운 보컬로 “큰 엉덩이를 가진 당신이 날 커다란 남자로 만들었어, 이제 그걸 가져봐” 따위의 음담패설을 듣는 경험은 은근히 야릇하다. “난 큰 엉덩이를 좋아해.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어. 다른 녀석들도 부정 하진 못할걸.” 이런 랩부터 뱉고 시작하는 서 믹스어랏의 ‘Baby Got Back’ 역시 이 분야에서 이미 클래식 대접을 받고 있다.

언급한 두 곡만 봐도 알 수 있듯 예전에는 여성의 엉덩이에 대해 남성이 떠드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이 분위기가 좀 바뀌었다. 여자 뮤지션들이 먼저 자신들의 무기를 격렬하게 흔들고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래퍼 니키 미나즈다. 2014년의 히트곡인 ‘Anaconda’에서 그녀는 “이건 풍만한 엉덩이를 지닌 채 클럽에 모인 내 친구들을 위한 노래”라고 외친다. 서 믹스어랏의 끈적한 시선을 맞받아치는 공격적인 화답에 가깝다고 할까(실제로 ‘Anaconda’는 ‘Baby Got Back’을 샘플링하기도 했다). 엉덩이 춤인 트월킹 (Twerking)을 기관총처럼 연사하는 뮤직비디오만 봐도 만만하게 에로틱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같은 엉덩이에 대한 이야기라 해도 묘사의 수위뿐만 아니라 표현의 방식, 혹은 다루는 시점 등이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국내 메이저 음악 신의 경우, 아직까지는 이렇다 하게 도발적이거나 신선한 시도가 부족하다. 선호하는 부위는 다리 정도인데, 특히 걸그룹의 곡에서 자주 언급된다. 달샤벳의 ‘내 다리를 봐’는 짧은 치마를 입고 왔으니 눈 말고 다리를 좀 보라며 칭얼대는 내용이다. 한편 AOA의 ‘짧은 치마’는 떠나간 연인의 마음을 섹시한 옷차림으로 되찾으려 하는 가련한 노력을 그렸다. ‘치마를 추스르고 옷깃을 여미어봐도 당최 가라앉지 않는 농밀한 오르가즘, 그대의 스타킹’이라며 노래했던 십센치의 ‘Kingstar’와 비교하면 태도의 차이가 확실히 느껴진다. 여성의 욕망이나 섹슈얼리티는 소극적이고 안전한 방식으로 묘사될 때가 많다.

섹스는 대중문화 시장에서 유독 바쁘게 불려 다니는 호객꾼이다. 앞으로도 가사로 몸 구석구석을 훑는 음악은 꾸준히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의외의 접근이 없다면 아무리 자극적인 단어를 나열한다 한들 지루할 테고, 결국 성감대를 건드리는 데는 실패하고 말 거다. 그래서 말인데 꿀꺽 소리와 함께 크게 움직이는 목울대와 팔뚝에 굵게 돋은 힘줄에 대해 노래할 여자 아이돌은 과연 없을까? 스타킹 대신 셔츠 찢는 가요도 이제 하나쯤 나올 법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