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없는 우리 사이, 그렇고 그런 사이, 아트와 패션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들여다보았다.

꼼데가르송 남자

 

14세기 중엽 유러피언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쇼를 선보인 꼼데가르송 맨즈 컬렉션. 특히 이번 시즌은 그들이 창조한 신발에 주목해야 한다. 14세기에 그림에서 볼 수 있 듯 그 당시 권력과 부를 거머쥔 남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던 앞코가 뾰족한 신발, 크래코를 컬렉션에 접목시켰다. 사탄의 발톱이라 불린 이 신발은 그 시절 남근의 상징으로 통용되었다고. 귀족들은 경쟁적으로 신발 끝을 더 길고, 더 두껍게 만들었는데,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크래코의 길이를 법으로 정해, 귀족은 60cm, 신사는 30cm, 일반인은 15cm로 제한을 두기도 했다. 꼼데가르송 컬렉션에선 그 옛날 상류층의 의미 없고, 비생산적이고 천박한 경쟁을 비꼬듯 하늘로 치솟은 바이킹 신발을 만든 것.

장 미셸 바스키아와 도나 카란

 

이번 시즌 도나 카란의 엘레강스한 룩들은 한 피스 한 피스가 모두 소울감 넘치는 캔버스였다. 우아한 캔버스에 그려진 무늬는 다름 아닌 1970년대 거리 문화의 표상, 장 미셸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의 낙서 아트에서 영감 받은 추상 페인팅. 여체의 미가 드러나는 머메이드 스커트, 풍성하고 육감적인 풀 스커트, 몸을 조이는 펜슬 스커트에는 인간의 복잡미묘한 내면 세계를 표현한 바스키아풍 페인팅으로 가득 차 있다. 바스키아의 벽화처럼 이번 시즌 뉴욕을 아티스틱하게 물들일 아름다운 패션 아트 피스인 것.

마크 by 마크제이콥스와 마조리 캐머런

 

이번 시즌 케이티 힐러와 루엘라 바틀리 듀오의 마크 by 마크제이콥스를 1990년대 레이브 문화와 런던 스트리트 패션의 합작품이라 보기에는 조금 아쉽다. 그들이 컬렉션 곳곳에 숨겨놓은 아티스틱한 단서를 살펴보니, 1950년대 아티스트이자 시인, 배우였던 마조리 캐머런(Majori Cameron)이라는 미스터리한 여인이 출연한 커티스 해링턴의 단편 필름 에서 영감을 얻은 것. 영상 초반 나오는 별 모양의 미스터리한 암호는 마크 by 마크제이콥스의 프린트로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유돈초이와 조지아 오키프

 

멋진 여자는 늘 누군가에게 영감의 대상이 되곤 한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한국 디자이너 최유돈은 미국의 여류 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에게 영감 받은 컬렉션을 선보였다. 그가 특별했던 건 단순히 아티스트의 작품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방식을 선택하지 않고, 한 여인을 깊이 오래 탐구해 컬렉션을 완성했다는 점이다. 그녀의 추상적인 꽃 작품을 재현한 서정적인 드레스는 물론, 매니시한 외모, 남성적이고 간결했던 그녀의 평소 스타일까지 반영한, 마치 오키프에게 바치는 연가 같은 컬렉션을 선보였다.

모택동과 캘빈 클라인

 

캘빈 클라인의 프랜시스코 코스타는 이번 시즌 키 컬러를 앤디 워홀이 그린 모택동의 검붉은 인민복에서 가져왔다. 인민복과 캘빈 클라인이라, 기이한 조합으로 보이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앤디 워홀이 그린 의상을 살펴보면 놀랍게도 군더더기 하나 없는 간결한 아름다움에 빠져들 것(얼핏 질 샌더의 스리버튼 재킷 같기도 하다). 앤디 워홀이 창조한 활력 넘치는 붉은 색감이 어찌 프랜시스코 코스타의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었을까?

로샤스와 리처드 고먼

 

패션쇼를 보며 즐거운 것 중 하나는 디자이너가 영감 노트에 늘어놓은 단서를 가지고 그들이 받았을 영감의 고리를 캐치하고 것이 공감을 일으킬 때다. 런던의 로맨티스트 시몬 로샤가 이번 시즌 영감 받은 것들은 피나 바우시, 리처드 고먼, 홍콩, 슬픔.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아티스트 리처드 고먼(Richard Gorman)의 페인팅에서 영감 받은 크고 둥근 실루엣이었다. 둥글고 납작한 작가의 섬세한 페인팅을 의상의 힙라인 실루엣에 절묘하게 연결시킨 그녀. 천재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릭 오웬스와 니진스키

 

남자의 몸에 염소 다리와 뿔이 달린 모습의 ‘파우누스’. 릭 오웬스는 자신의 맨즈 웨어를 러시아 모던 발레의 초석을 다진 바츨라프 니진스키(Vaslav Nizinski)의 작품 <파우누스의 오후>에서 영감 받아 완성했다. 1912년 초연 때 그 당시로는 매우 파격적인 키스 퍼포먼스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공연처럼 릭 오웬스 쇼 역시 파격 그 자체. 반인반수의 묘한 분위기와 남성적인 욕망의 표현은 아슬아슬하게 중요 부위를 가린 의상과 온몸을 하얗게 뒤덮은 보디 페인팅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니진스키의 아름다운 발레 쇼와 함께 감상하면 릭 오웬스가 그냥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을 것. 분명 감동은 배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