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 해주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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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에 사로잡힌 눈으로 타투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타투라고 하면 무조건 목욕탕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 덩치 큰 남성을 떠올리거나 미성숙한 일탈의 징표쯤으로 생각하는 건 고리타분하다 못해 억지스러운 시선이 된 지 오래다. 그리고 변해가는 흐름의 중심에는 다름 아닌 젊은 여자 타투이스트들이 존재한다. 타투를 받고 싶어 하는 여자도 타투를 해주는 여자도 많아지기 시작 한 2015년 봄날, 여섯 명의 여자 타투이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카메라 앞에서 타투를 드러낸 그들은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고양이의 눈을 닮은 디자인의 흰색 시계는 지라드 페리고, 자수정과 다이아몬드가 장식된 반지는 불가리 제품.

고양이의 눈을 닮은 디자인의 흰색 시계는 지라드 페리고, 자수정과 다이아몬드가 장식된 반지는 불가리 제품.

지란 of PANTHER

나는 올드스쿨 타투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림체는 귀여운 편이고 동물 그리는 걸 좋아한다. 타투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팬서라고 불리는 흑표범을 가장 사랑해서 숍 이름도 팬서라고 지었다.
처음 타투이스트 일을 시작한 건 3년 전이다. 내 몸에 첫 번째 타투를 새기던 날, 타투 숍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매혹되어버렸다. 이후에 아는 사람을 통해 무작정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 몸에 있는 타투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반려묘 혁이 타투다. 내 몸에 총 다섯 마리가 있는데 모두 다른 타투이스트한테
받았기 때문에 똑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건 팔에 새긴 혁이다.

내가 타투를 사랑하는 이유는 타투를 통해 나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혁이를 몸에 새김으로써 혁이를 더 깊이 기억할 수 있게 됐다. 단, 커플 타투는 안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주얼 장식의 부채 모양 디자인 팔찌와 반지, 다이아몬드가 파베 세팅된 골드 팔찌, 화이트 골드 반지는 모두 불가리 제품.

주얼 장식의 부채 모양 디자인 팔찌와 반지, 다이아몬드가 파베 세팅된 골드 팔찌, 화이트 골드 반지는 모두 불가리 제품.

니니 of CARPET BOMBING INK

열아홉 살 때 만난 남자친구를 통해 타투에 눈을 떴다.
그때부터 스승이자 연인인 그에게 타투를 배우기 시작했고 1년 전부터 본격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요즘은 단순한 라인 작업을 즐겨 한다.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사람은 남자친구다.
그는 나의 부족한 점을 알고 고쳐주려 하는 스승이기도 하다. 그가 없었다면 내가 타투이스트로서 이만큼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가장 고마운 존재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타투를 새겼다.

남자친구가 가슴 위에 꽃 모양을 새겨줬다. 처음으로 받은 타투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가장 의미 있는 타투로 남을 것 같다.

나를 찾아오는 손님은 대부분 20대 여성들이다.
요즘 여자들이 내가 그리는 여성스럽고 단순한 그림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열심히 홍보를 하고 있는데 실제로 손님들 대부분이 인스타그램을 보고 온 사람들이다.

할머니 얼굴을 새긴 손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할머니의 모습을 타투로 담고 싶다고 말했었다. 요즘은 그렇게 가족이나 연인 또는 반려견, 반려묘를 새기는 사람이 종종 눈에 띈다. 커플 타투를 새기는 것을 두고 말이 많은데 난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것 또한 그저 소중한 추억일 뿐이다.

원뿔 형태의 주얼리가 장식된 금색의 더블 링은 펜디 제품.

원뿔 형태의 주얼리가 장식된 금색의 더블 링은 펜디 제품.

나우 of CARPET BOMBING INK

미대에 입학하면서 타투에 관심이 생겼다.
간직하고 싶은 기억을 평생 내 몸에 남길 수 있다는 점에 빠져들었다.

처음 새긴 타투는 오른쪽 팔뚝에 있는 아테나 여신이다.

아테나 여신처럼 강인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담은 타투다.

가장 좋아하는 타투는 쇄골 아래쪽에 있는 공룡 타투다.

정확히는 스테고사우르스인데 워낙 몸집이 거대한 동물을 좋아해서 이걸 선택했다.

예전에 비해 타투를 받고 싶어 하는 여자들과 타투를 해주는 여자들이 확실히 많아졌다.

타투를 패션이나 예술의 일부분으로 여기는 여자들은 대부분 남자 타투이스트보다 여자 타투이스트를 선호한다. 아무래도 같은 여자한테 자신의 몸을 맡기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타투이스트에게도 창작의 고통은 끝이 없다.
손님이 만족하는 도안을 완성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원하는 방향을 말해주면 내가 그에 맞춰서 도안을 만드는데, 이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어야만 서로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

화려한 주얼 장식의 목걸이와 발목에 찬 팔찌, 크리스털 장식의 드롭형 귀고리는 모두 프라다 제품.

화려한 주얼 장식의 목걸이와 발목에 찬 팔찌, 크리스털 장식의 드롭형 귀고리는 모두 프라다 제품.

미래 of OPIUM TATTOO

나의 첫 타투는 내가 내 발에 직접 그린 미니 타투다.

5분이면 충분히 다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인데 아파서 죽는 줄 알았다. 처음에는 자기 몸에 타투가 없는 타투이스트가 오히려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려다 보니 타투를 받는 느낌을 알아야 나도 더 프로다운 타투이스트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내 몸에도 타투를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최근에는 무릎에 거미 그림 타투를 새겼다.

원래도 거미나 뱀, 나방 같은 모양의 타투를 좋아하는데, 이렇게 무릎 쪽에 받으면 다리가 더 길어 보일 것 같았다.

60대 할머니 손님이 가장 인상 깊었다.

최근에 살사를 배우기 시작한 어른이신데 댄스복을 입을 때 드러나는 어깨에 타투를 새기고 싶다고 하셨다. 다이아몬드랑
장미를 그려드렸는데 정말 잘 어울렸다. 할아버지에 관한 추억을 새겨달라는 손님도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쓰신 글씨를 가져와서 부탁했다.

나한테 타투를 받는 사람이 아픈 티를 냈으면 좋겠다.

손님이 아파하지 않으면 재미가 떨어진다. 물론 지나치게 고통스러워하면 나도 마음이 아프지만 아무것도 못 느끼는 듯이 있는 것도 싫다. 한번은 타투를 받다가 아예 잠이 든 손님이 있어서 충격을 받았다. 작업 하는 동안에는 손님과 내가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다.

타투를 통해 앞으로 더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다.

지금 타투 작업뿐만 아니라 일러스트 작업도 틈틈이 하고 있는데, 이런 것을 아우르는 전시를 꾸준히 열 계획이다. 나중에는 타투 잡지도 만들어보고 싶다. 조금 더 공개된 공간에서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으면 타투에 대한 인식이 개선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다이아몬드가 파베 세팅된 화이트 골드 펜던트 목걸이는 불가리, 두 개의 링이 이어진 너클링과 벨트 디자인의 팔찌는 에르메스 제품.

다이아몬드가 파베 세팅된 화이트 골드 펜던트 목걸이는 불가리, 두 개의 링이 이어진 너클링과 벨트 디자인의 팔찌는 에르메스 제품.

석류화 of BIBLICAL RAWMANS TATTOO PARLOUR

주로 성서에 나오는 어두운 그림을 그린다.

예를 들면 악마와 관련된 상징 같은 걸 좋아한다. 타투를 오래 간직하고 싶다면 알록달록한 색깔이 들어간 것보다는 어두운 걸 추천한다.

19살 때 처음 타투를 받았다.

고등학생 때 따돌림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나를 괴롭히던 여자애의 몸에 큰 타투가 하나 있었는데 왠지 그게 멋있어 보였다. 원래도 타투 문화에 조금 관심이 있던 터여서, 따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한 번에 꽤 많은 타투를 받았는데 지금은 커버업을 해서 잘 안 보인다.

이 업계에는 나에 대한 오해가 많다.

타투가 워낙 많아서 무섭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남성 편력이 있다는 소문까지 있다. 지금은 친해진 친구들도 나를 처음 봤을 때는 무섭고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잘못 알려진 이미지 때문에 손님들이 나를 쉽게 못 찾아오는 것 같다.

타투를 볼 때마다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다.

지금 내 몸에 있는 타투는 대부분 내가 사귀던 사람들한테 받은 것들이다. 예전에 사귀던 남자친구 얼굴도 있고 함께 키우던 강아지 모양도 있다. 커플 타투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아니다. 이것도 추억이니까 굳이 덮거나 없앨 필요는 없다. 비록 과거이지만 내가 진심으로 좋아했던 마음을 담아 새긴 거니까 후회하지 않는다.

조약돌을 연상시키는 볼륨감이 강조된 빨간색 가죽 스트랩 시계는 까르띠에, 여러 개의 링이 체인처럼 연결된 목걸이와 귀고리는 디올 제품.

조약돌을 연상시키는 볼륨감이 강조된 빨간색 가죽 스트랩 시계는 까르띠에, 여러 개의 링이 체인처럼 연결된 목걸이와 귀고리는 디올 제품.

그림 of GREEM TATTOO

원래는 동양화를 전공했다.

미술을 하면 할수록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쳤다. 그림을 그리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다가 타투를 알게 됐다. 처음 타투를 시작할 때만 해도 타투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는데 조금 공부를 해보니 나랑 가장 잘 맞는 게 올드 스쿨 타투였다. 귀여운 요소를 더해서 표현할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손님을 상대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원래 그림만 그리던 사람이라 작업보다 사람을 대하는 게 더 어렵게 느껴졌다. 타투 작업은 긴 상담을 통해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최종적으로 이끌어내야 할 수 있는데, 추상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이 많아서 힘들 때가 있다. 타투 스티커 같은 결과물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10년 후에도 타투이스트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면 마흔에 가까운 나이가 될 테니까 솔직히 걱정은 된다. 지금 한국에는 나이 많은 여자 타투이스트가 거의 없다. 오랫동안 일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람들이 나이 많은 여자 타투이스트를 찾아올지는 잘 모르겠다. 10년 뒤에 여성 타투이스트나 타투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조금은 개선되어 있길 바랄 뿐이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정환욱, 피처 에디터 / 이채린
포토그래퍼
김영준
헤어
김귀애
메이크업
원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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