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현대미술은 과연 그것을 미리 보여줄 수 있을까? 반년간 이어질 56회 행사를 막 시작한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는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이 아니라 조심스러운 질문을 여러 방식으로 던지고 있다. <모든 세계의 미래>라는 주제로 펼쳐진 올해의 전시부터 베니스의 한국 작가들까지,더블유가 직접 가서 만났다.

1. 오쿠이 엔 위저2,3. 오쿠이 엔위저가 큐레이팅 한 본전시는 하나의 강력한 내러티브를 갖기보다는 다양한 국가와 매체의 작업을 모아 각기 와글대는 목소리를 내게 했다.

1. 오쿠이 엔 위저

2,3. 오쿠이 엔위저가 큐레이팅 한 본전시는 하나의 강력한 내러티브를 갖기보다는 다양한 국가와 매체의 작업을 모아 각기 와글대는 목소리를 내게 했다.

 

 

모든 세계가 그의 무대

 

나이지리아 출신 큐레이터로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오쿠이 엔위저는 정치성을 강조하는 색깔로 널리 알려졌지만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게 복잡하고 다면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마치미 술 그 자체가 그러하듯.

 

“항상 말해왔지만 단 하나의 예술 세계란 없습니다. ”

하우스 데어 쿤스트 디렉터인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 오쿠이 엔위저가 강조한다. “훌륭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 별로거나 다듬어지지 못한 작품을 구분하는 기준이 뭐죠? 그런 엄격한 시선을 거두고 여러 예술 세계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51세인 오쿠이 엔위저는 늘 주어진 현실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려고 노력했고, 아프리카 아티스트와 제3세계 아티스트들에게 길을 열어주면서 이 시대에 가장 혁신적인 큐레이터임을 증명해 보였다. 처음부터 엔위저의 야망은 세계의 미술 지도를 다시 그리고 아트를 사회가 지향해야 할 시대의 지표로 삼는 것이었다. “이 공원에서 많은 국가의 역사와 운명을 한눈에 보게 될 것입니다. ” 그가 무질서의 정원이라는 비전을 그리고 있는 자르디니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가나 태생 영국 건축가인 데이비드 아자예가 설계한 이탈리아 국가관에서는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아이작 줄리언 감독이 기획한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낭독 퍼포먼스가 펼쳐질 예정이다.

 

엔위저가 비엔날레의 총감독이 되기까지의 여정도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열여덟 살에 나이지리아에서 뉴욕 브롱크스로 이주해 뉴저지에 있는 저지 시티 스테이트 칼리지를 졸업하고 시인으로 활동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브루클린에서 아프리카 아트 잡지를 창간하고 미술관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큐레이터로서 이름을 알린 결정적 계기는 1996년에 열린 전시 로 뉴욕 구겐하임에서 30명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면서다. 이 전시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독립 이후 현대 아프리카 예술을 전면적으로 내세운 최초의 그룹전 중 하나였다. 그는 여러 대규모 기획전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평론의 찬사를 받았으며, 2002년 독일 카셀 도큐멘타 11 수석 큐레이터, 2008년 광주 비엔날레 총감독, 2012년 팔레 드 도쿄에서의 <트리에날레 아트 컨템퍼러리안 오브 파리>의 총감독을 역임했다. 빛나는 경력도 화제지만 엔위저는 자신만의 패션 선언으로도 주목을 받는다. 그는 동료들이 자주 입는 모던하고 날렵한 블랙 수트 대신 새빌로의 유명한 맞춤 양복점 킬고어(Kilgour)에서 맞춘, 큰 사각형 포켓이 달린 더블브레스트 수트만 입으며 목에는 항상 크라바트를 맨다. 친구 아자예는 그의 패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패셔니스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옷이 주는 힘과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이 되는 법을 잘 파악하고 있어요.” 엔위저에게 스타일의 기준이 된 어머니는 옷 입는 방식을 통해 북아프리카와 나이지리아의 문화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어머니의 옷장이 정말 근사했습니다. 어머니만을 위해 제작된 원단도 있었죠. 나이지리아 패션은 굉장히 개인적입니다. 각자 자기만의 고유한 스타일이 있어요. 머리 두건 하나도 절대 남과 똑같이 묶으면 안 되죠.” 마일스 데이비스 또한 스타일 아이콘으로서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뮤지션으로서뿐만 아니라 그의 반항적인 정신, 확고한 거부의 자세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 

 

비엔날레 기간 동안 엔위저는 낮에는 생로랑 스웨이드 구두나 나이키 스니커즈를 신고 저녁에는 샤넬이 인수한 슈즈 공방 마사로의 구두를 신을 예정이다. “사실 짐이 정말 많긴 합니다. ” 엔위저는 살짝 부끄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신발을 너무 많이 가져왔거든요,.”

 

글 | Diane Solway

 

1. 듀오 아티스트 문경원, 전준호.2. 배우 임수정이 가진 모호하고 중성적인 오라가 크게 기여했다고 작가들은 말한다.3. 외부에서도 전시를 볼 수 있는 한국관 전경. 

1. 듀오 아티스트 문경원, 전준호.

2. 배우 임수정이 가진 모호하고 중성적인 오라가 크게 기여했다고 작가들은 말한다.

3. 외부에서도 전시를 볼 수 있는 한국관 전경.

 

 

 

세상의 끝과 지금 여기

 

한국관 문경원, 전준호 작가는 지구가 물에 잠겨버린 미래의 어느 날, 혼자 남은 생존자의 하루를 영상으로 찍었다. 공간을 접고 중력을 뛰어넘는다는 전시 타이틀, ‘축지법과 비행술’처럼 영상 속의 과거와 미래는 전시장의 시공간, 현재로 다시 돌아온다.

 

 

 전시 첫날을 치른 소감이 어떤가. 여러 국가관 가운데서도 관람객이 많은 편이었다. 

전준호 첫날 하루만 4천5백 명이 다녀갔다. 한정된 공간에 인원이 많이 들어오다 보니 비디오 관람의 시야 확보가 어려운 문제가 있어 오늘부터는 인원을 통제하고 있다.

문경원 동선에 따라 스피커마다 다른 소리가 나오게 사운드 디자인을 세심하게 했는데 좀 여유 있게 봐야 이를 감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작인 ‘세상의 저편’과 일맥상통하는 디스토피아적 설정이다. 

전준호 사이파이 (Sci-Fi)라는 게 미래의 이야기를 통해서 현재를 보는 일종의 우화니까. 현재 우리가 옳은 가치관 위에 긍정적 상황에 처해 있다고 바라볼 수는 없을 거다. 그런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우리는 누구인가,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싶었다.

 

영화 아닌 미술 작품인데 서사가 강한 편이다. 

문경원 시놉시스나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는 내러티브가 중요하다. 그러나 그걸 보여주는 방식에서 영화는 대사를 통해 정확한 표현을 한다면 우리는 이미지 언어가 가진 힘을 통해 상징적, 함축적으로 보여준다는 게 다르다. 배우 역시 자신이 해석한 표정이나 몸짓을 통해 비언어적으로 일종의 퍼포먼스를 한다.

 

남양주에 한국관과 똑같은 세트를 지어놓고 촬영했다고 들었다. 

전준호 10분 정도의 분량인데 7개 채널에서 다른 영상이 나오기 때문에 각각을 더하면 전체 70분이 넘는다. 웬만한 장편 분량인 셈이다. 시나리오가 정교해야 했고 콘티나 이런 것들에서 싱크가 맞아 연결되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왜 같은 장면을 반복해야 하는지 영화 찍는 팀에게 이해시키고 충분히 설득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임수정이라는 배우 덕분에 주인공의 성별이나 나이가 모호해지는 느낌이다. 

문경원 바로 그런 점들 때문에 임수정 씨를 캐스팅하려고 노력했다. 주인공은 시나리오 상에서 그도 아니고 그녀도 아닌 ‘it’ 이었다. 그런 어떤 특징을 잘 담아낼 수 있는 배우를 원해서 ‘세상의 저편’ 때부터 같이 작업했다. 다행히 배우가 아트에 대한 관심과 이해, 애정도 많아서, 중요한 협업자 가운데 한 명으로 참여해줬다. 의상 디자이너 정구호 씨도 마찬가지고.

 

두 작가 사이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전준호 체계적으로 나눠지지 않고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에 맞게 한다. 작업의 준비 과정에 있어서 시나리오를 쓰거나 세트 디자인을 하고, 레퍼런스를 찾아서 어떤 룩이나 컬러 분위기를 결정할 때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하고 협의를 한다. 누구 한 사람의 의견으로 귀결되고 그러진 않는다.

 

오쿠이 엔위저가 선정한 ‘모든 세계의 미래’라는 주제와 상당히 밀착된 내용의 전시를 보여줬다.

전준호 우리는 2년 전부터 이 전시를 준비했고, ‘모든 세계의 미래’라는 주제는 전시하기 두어 달 전에 알게 됐다. 참여한 다른 작가들도 다 주제에 대해서는 모르고 준비했다고 보면 된다.

 

지난해 건축 비엔날레에서 조민석 소장이 커미셔너를 맡은 한국관이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의식되지는 않았나? 

문경원 상보다는 우리가 의도한 대로 전시가 잘 구현되기를 더 바랐다. 전준호 (웃음)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상이라는 건 그때그때의 상황과 조건이 합쳐진 결과일 뿐이다. 가변적이고 정치적인 것이다.

 

1. 박서보 ‘묘법 No. 89-79-82-83’ 1983. 마대에 연필.2,3. 이우환의 작업은 70년대 회화부터 장소특정성을 살려 새로 작업한 설치까지 포함되었다.

1. 박서보 ‘묘법 No. 89-79-82-83’ 1983. 마대에 연필.

2,3. 이우환의 작업은 70년대 회화부터 장소특정성을 살려 새로 작업한 설치까지 포함되었다.

 

 

베니스의 단색화

 

지금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뜨거운 키워드 가운데 하나가 베니스 비엔날레로 갔다. 시장에서 커지는 영향력을 확인하는 동시에 세계 미술계의 시선으로 다시 한번 안을 들여다보게 된, 바로 단색화 얘기다.

“저 단어를 어떻게 발음하면 되죠? ” 팔라초 콘타리니-폴리냑에 전시를 보러 온 외국인 관람객들에게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전시의 제목인 ‘단색화(Dansaekhwa)’의 우리말 발음을 궁금해하는 것이다. “한국어로 한 색깔 그림이라는 뜻이에요. 사실 완전히 한 컬러만 쓰진 않은 그림도 있지만, 1970년대부터 흐름을 이룬 단순한 추상화죠.” 비엔날레 기간 동안 베니스에는 본전시와 국가관 전시 외에 도시 곳곳에서 다양한 병행전이 열리는데, 단색화 전시도 이 가운데 하나다. 열심히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그들이 박서보의 푸른색 회화를 이브 클랭과는 어떻게 다르게 받아들일지 내심 궁금했다. 서구 모노크롬이 회화 영역을 갈 데까지 탐색한 이후 더 이상은 없다는 선언이었다면, 70년대 한국 추상미술의 경향인 단색화는 절제된 색 속에 반복적인 리듬, 풍부한 질감을 담고 있는 일련의 회화를 일컫는, 조금 다른 세계다. 동시대와 직후에는 ‘한국 미니멀리즘’ 또는 ‘코리안 모노크롬 페인팅’ 등의 용어로 불리다가 ‘단색화’라는 고유명사로 이름을 정리한 것은 2000년대 미술 비평계가 한 일이다. 뒤늦게 정리된 이 명명 자체를, 한국 미술이 미학적으로 스스로의 역사를 돌아보고 따로 서게 된 의미로도 볼 수 있겠다.

대운하를 면한 15세기 저택인 팔라초 콘타리니- 폴리냑의 공간은 단색화 작가들의 페인팅 작품뿐 아니라 단색화의 태동 시기 및 배경에 대한 역사적 배경 이해를 돕는 자료와 서적, 작가들의 토론이 담긴 영상물에 고루 할애되었다. 이번 베니스 단색화 전시에서 소개하는 작가들은 고 김환기, 권영우부터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 정창섭, 하종현 등 한국의 주요 중견 작가들을 아우른다. 2층에는 단색화의 전성기인 70~80년대 회화 작품들, 그리고 3층에는 비교적 최근작을 걸어둔 배치는 단색화라는 테두리 안에서 시간차를 두고 표현과 조형의 진화 과정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한편 건물을 외부의 길, 그리고 운하와 연결하는 지층의 마당 공간에는 흰 벽으로 공간을 구획하고 이우환 작가의 ‘다이얼로그’, ‘관계 항’ 시리즈를 들여놓았다. 장소특정적인 설치 작업을 하는 이우환은 베니스의 오래된 벽과 낡은 바닥에 돌을 놓고, 그림자를 칠하고, 여백을 만들고, 또 면을 채웠다. 올해 비엔날레는 페인팅이 거의 증발해버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미디어들로 가득했다. 한국관의 문경원, 전준호 작가도 HD 영상 인스톨레이션을 선보였으며 은사자상을 받은 임흥순 역시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설치, 영상, 사운드 아트, 퍼포먼스가 주류를 이룬 베니스에서 전통 회화, 그것도 70 년대 회화를 만나는 단색화 전시의 기획은 관람객들에게 같은 도시 안에서 확연한 시차를 느끼게 하는 경험이자 자연스럽게 반사적인 신선함을 느끼게도 했다.

이 전시의 기획자이자 베니스 비엔날레 심사위원이기도 한 큐레이터 이용우는 국내 미술계에서 다시 큰 화두로 부상하고 있는 단색화 전시를 특별히 2015년의 베니스라는 장소에서 세계에 내놓는 의미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세계의 모든 미래’라는 주제로 펼쳐지는 올해 비엔날레는 ‘미술’이라는 단어가 좁게 느껴질 정도로 다양한 시각 문화 현상을 포괄하고 있어요. 혼성 미디어, 첨단의 설치, 퍼포먼스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 장르가 벌어지는 이 복합적인 현대미술의 현장에 단색화가 함께 존재함으로써 한결 힘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겉으로 보기에 표현의 결과로서는 한없이 고요하지만 그 안에 인고의 역사, 저항의 에너지가 끓어 넘치는 게 단색화니까요. ”

이우환 작가는 서구 모노크롬이라는 큰 틀 안에서 회화의 가능성을 다시 제시한 것이 단색화라 보는 반면 박서보 작가는 비교를 아예 거부한다. 오히려 그에게 단색화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한 아티스트의 내적 수행의 의미가 강하다. 간결하고 단정한 단색화 캔버스를 마주하고 있으면 발견하게 되는 규칙성의 리듬, 고요함 가운데 숨은 격렬한 에너지 뒤에는 바로 이런 작가의 행위가 내재할 것이다. 어떤 정의가 옳고 그르다기보다 단색화가 지닌 다양한 얼굴 가운데 각기 다른 면을 작가들마다 자신의 관점으로 주목하고 있는 셈이다. 5월 7일 밤, 비엔날레 공식 개막을 이틀 앞둔 저녁의 베니스는 곳곳에서 전시 오프닝과 작가나 갤러리 주최의 파티가 열렸다. 팔라초 콘타리니-폴리냑 앞의 승선장에서도 부지런히 보트가 오가며 해외 큐레이터와 컬렉터 등 VIP들을 실어 날랐으며, 김환기와 이우환, 하종현과 박서보의 그림이 걸린 전시장 안에는 테이블과 의자, 꽃과 촛대가 줄줄이 들어와 갈라디너를 준비했다. 대담하고 반복적으로선을 그어 이은 박서보의 작품, 거친 마대 사이로 두툼하게 물감이 밀어져 나온 하종현의 그림 표면의 촉감이 낮은 조도의 촛불 뒤로 생생하게 살아났다. 의자 뒤로 안은미의 퍼포먼스가 지나가며 파티의 흥이 절정을 향해 갈 때 또 한번 질문을 받았다“. 그래서 저 단어의 한국 발음은 어떻게 되죠?” 파티의 호스트였던 국제갤러리 이현숙 회장의 딸인 뉴욕 티나킴 갤러리의 티나킴 대표가 갈라 중간에 잔을 들고 건배 제안을 위해 걸어 나왔다. 마지막 두 마디를 예상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색화를 위하여.”

박서보

“동시대에 서로 다른 도시들에서 벌어진 한국 단색화를 돌아보고 그 테두리를 설정해본다면 기본은 행위의 무목적성, 그리고 반복성이라고 봐요.그러면서 작가의 몸이 하는 행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재료의 물성과 정신의 합일을 도출하는 거죠.” 불교 철학의 영향이 느껴지는 해석을 내리는 박서보 작가에게 캔버스는 수신의 도구이자 수행의 장이다. 또한 단색화는 과거완료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지금 각광받는다 해서 7, 80년대로 회귀하는 건 작가 자신이나 한국 미술이나 경계해야 할 일이예요.멈춰 있으면 망하는 거예요. 섣불리 변하려 해도 망하지만, 언제나 적당한 속도로 변화하고 있어야 하는 거죠.”

 

이우환

이우환에게 단색은 하늘의 푸른색, 땅의 주황색, 돌의 빛깔처럼 자연에서 온 뉴트럴한 것이다. 이우환이 캔버스에 찍는 무수한 점과 여백 사이의 긴장과 겨룸, 관계는 그의 회화를 열린 명상의 장으로 만든다. 일본으로 일찍 건너간 그는 60년대 모노하 운동의 이론과 실천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아티스트지만 한국의 단색화를 해외 사조의 모방이라 보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으며 현대사 속의 맥락과 저항정신을 언급한다. “꽁꽁 얼어붙은 군사독재의 시대, 표현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된 상황에서 작가들이 할 수 있는 시도란 표현 아닌 표현이 되었어요. 서구 미술의 역사 속에서는 해체되는 과정, 크게는 모노크롬이라는 틀 안에서 다시 회화가 가진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데 단색화의 중요성이 있다고 봐요.”

 

하종현

결핍은 아티스트에게 때로 한계가 되기보다 창의성을 촉발한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하던 70년대 청년 작가 시대에 대한 하종현의 회고 역시 그렇다. 캔버스가 부족해 미군의 보급 식량을 담은 마대를 쓰고, 그나마도 모자라 폭이 넓은 작품은 제작하지 못했다. 철사로 엮어낸 하종현의 작품에는 억눌린 에너지가 도사리고 있다.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는 작가는 이번 베니스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싶다고도 했다. “ 한국 젊은이들의 작품들이 베니스를 비롯한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단색화를 통해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나라의 뿌리에 대해 이해하고 평가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