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서른아홉의 나이에 데뷔 앨범 <Water>를 발표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 그레고리 포터는 약 5년 만에 재즈 보컬의 미래로 일컬어지는 아티스트가 됐다. 1년 내내 가을일 것 같은 낮고 깊은 목소리로 서울재즈페스티벌의 관객을 집중시킬 뮤지션이 음악을 위한 고집과 어머니에 관한 추억, 그리고 늘 쓰고 다니는 검은색 모자에 대해 털어놓았다.

W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뮤지션으로 냇 킹 콜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처음 그의 노래를 들었을 때, 어떤 점이 그토록 특별하게 느껴졌나?

그레고리 포터 어린 시절 어머니의 냇 킹 콜 LP에 종종 실수로 흠집을 내곤 했다. 그의 목소리를 통해 처음으로 음악의 힘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당시 나는 6살이었는데 형제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만큼 여러 차례 냇 킹 콜의 앨범을 반복해서 듣곤 했다. 멜로디부터 가사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당시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W  냇 킹 콜이 당신이 갖고 있던 유일한 레코드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즐겨 들은 아티스트로는 또 누가 있나?

마빈 게이, 리온 토마스 등 장르와 상관없이 소울풀한 표현에 능한 뮤지션의 팬이었다. 킹 플레저와 에디 제퍼슨, 카르멘 맥레이,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재즈 가수인 애비 링컨도 빠뜨릴 수 없다. 음악에 대한 그녀의 진정성과 내밀한 접근에 큰 감동을 받았다. 또한 재즈 뮤지션은 아니지만 도니 해서웨이가 들려주는 가스펠풍의 보컬도 무척 사랑한다. 루이 암스트롱, 조 윌리엄스 등이 미친 영향 역시 무시하기 어렵다.

W 재즈 보컬리스트로 소개되곤 하지만 음악을 들어보면 재즈적 요소뿐만 아니라 가스펠, 팝, 솔, 리듬 앤 블루스 등 다양한 장르가 녹아 있다. 만약 당신의 음악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서 그레고리 포터는 어떤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나?

가스펠이다. 나는 나만의 뿌리를 가지고 음악을 하는데, 거기서 블루스나 전통적인 가스펠의 영향을 분명히 읽을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난 유기적인 접근을 즐기는 편이다. 내 안에 잠재된 여러 음악이 자연스럽게 뒤섞이고 스미도록 하는 게 맞는
듯하다. 일부러 장르를 계획하거나 의도하는 경우는 드물다. 밴드와 함께 연주할 때도 마찬가지다. 방향을 미리 정해두는 대신적절한 방향으로 그저 흘러갈 뿐이다.

 

W 자신의 곡 대부분을 직접 쓰는 송라이터이기도 하다. 주로 어떤 이야기와 감정을 노래로 표현하게 되나?

물론 각 앨범이 저마다의 색채를 띠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결국에는 모두 내게서 비롯된 음악이다 보니 전체를 관통하는 공통된 본질이 있다. 내면을 바라보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변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것 역시 나의 개성
으로 볼 수 있다. 나 자신과 가족, 친구들을 관찰하면서 얻은 깨달음이 곡에 녹아든다. 보컬이 빠져도 내 음악임을 알수 있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가사에 대한 아이디어를 적기 위해 늘 노트를 갖고 다니고 때로는 스마트폰에 이런저런 생각을 급히 메모하기도 한다. 물론 과거의 경험과 그때의 강렬한 감정으로 노래를 만들 때도 있다. 이런 표현은 한때 뮤지컬을 하면서 많이 배웠다. 내가 겪은 감동을 똑똑한 방식으로 어떻게 전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한다.

W 그래미 베스트 재즈 보컬 앨범 수상작이기도 한 에는 ‘Musical Genocide’라는 곡이 수록되어 있다. 음악적 개성이나 색깔이 종종 묵살되는 음악 산업에 대한 비판이 담긴 가사다. 실제로 이와 같은 고민과 갈등을 겪고 있나?

음악 시장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블루스나 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음악에 대한 헌신은 평가절하되고, 더 새롭고 자극적인 것만 각광받는 현실을 보면서 떠올린 생각이다. 점점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여러 장르를 재고해보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W 탁월한 목소리의 보컬리스트로 평가받는 뮤지션이다. 노력의 결과라기보다는 타고난 재능에 가까운 강점이다. 자신의 음악적 가능성을 처음 인지한 건 언제쯤이었나?

어릴 때는 일요일마다 서너 곳의 교회를 순례하며 여러 성가대의 노래를 듣곤 했다. 그때부터 이미 음악을 사랑하고 있었고, 막연하게 노래를 하고 싶다는 꿈을 품은 듯하다. 대학 시절 부상 때문에 운동을 포기해야 했던 내게 어머니는 음악에
대한 애정만은 절대 놓치지 마라며 용기를 북돋아주셨다. 그때 잊고 있었던 열정이 다시 살아났다. 재능을 깨닫고 내가 음악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음악이 날 선택했다는 말이 적절하다.

W 언급했듯 대학 시절에 풋볼 선수로 활약하다가 어깨 부상을 당하면서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게 됐다. 그전까지는 뮤지션으로의 삶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나?

어깨 부상을 당했을 당시에는 크게 절망했다. 가장 먼저 떠올린 대안은 도시공학을 공부하는 것이었다. 암으로 투병 중인

어머니께 최선을 다해서 뭐든 해내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노래
라면서 그 재능을 방치하지 마라고 하시는 거다. 음악을 하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이 결정적 계기 전까지 나는 그저 운
동선수였다. 선수로서의 생활에 만족했고 굳이 다른 가능 성은 고민해보질 않았다.

 

W 데뷔 앨범을 발표했을 당시 이미 삼십대 후반이었다. 좀 더 일찍 음악을 시작하지 않은 게 아쉽게 느껴질 때는 없나?
솔직히 말하자면 그전에도 앨범을 낼 기회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왕 할 거라면 제대로 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 불필요한 통제 없이 내가 갖고 있는 아이디어를 충분히 펼칠 수 있기를 바랐다. 어떤 노래를 부를지에 대한 결정도 물론 직접 내리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시간이 걸린 편이다. 게다가 좋은 곡을 만들기 위한 감정적인 성숙 과정도 필요했다. 25살 무렵부터 난 이미 충분히 괜찮은 가수였다고 생각한다. 노래를 부를 기회는 꾸준히 주어졌지만 죄다 내가 원하는 바와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모든 일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차분히 경험을 쌓아온 게 결국에는 더 좋은 기회를 만들어줬다.

 

W 늘 같은 모양의 검은색 모자를 착용한다. 다른 디자인을 시도해볼 생각은 없나? 늘 한 가지 스타일만 고수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냥 내 스타일이다. 난 이걸 ‘재즈 캡(Jazz Cap)’이라고 부른다. 특정 종류의 담배만 피운다거나, 정해진 스타일의 옷만 입는다거나 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나. 마찬가지라고 보면 된다. 음악을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이 모자를 쓰고 다녔다.

 

W 올해 서울재즈페스티벌을 통해 한국의 관객들과 처음으로 만날 예정이다. 공연을 보러 올 팬들에게 미리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

의 수록곡들 위주로 레퍼토리를 구성하려고 한다. ‘Liquid Spirit’ ‘No Love Dying’등 팬들이 좋아하는 곡은 모두 노래할 생각이다. 또한 라이브 무대다 보니 즉흥 연주의 비중이 높아질 것이다. 매번의 공연은 관객과의 친밀감이나 현장의 분위기에 따라 전혀 새로운 경험이 되곤 한다. 한국은 첫 방문이기 때문에 밴드 멤버들 모두 기대가 크다. 오래 기억될 만큼 멋진 무대를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