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부블레나 제이미 컬럼같이 매력적인 남성 재즈 보컬이 왜 한국에 없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그건 주윤하가
재즈를 시작하기 전까지의 이야기였다고.

‘4월이 오면 이별을 하자’ 하고 시작되는 주윤하의 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혼란을 기억한다. 친숙한 얼굴이 전혀 새로운 스타일로 옷을 입고 나타난 것처럼, 내가 아는 목소리가 아주 다른 음악 속에 들어가 있었다. 게다가 몹시 잘 어울렸다. 지난해 가을 <Jazz Painters>라는 제목으로 내놓은 앨범에서 그는 기름기를 걷어내고 우리말로 노래하는 마이클 부블레인 양, 스탠더드 재즈를 근사하게 소화했다. 한 뮤지션이 걸어가는 길을 멀리에서 지켜본다 치면, 주윤하는 성큼성큼 넓은 보폭으로, 그리고 여러 방향으로 움직여온 사람이다. 록 밴드 보드카레인의 리더로 곡을 쓰며 베이스를 연주했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혼자 훨씬 서정적인 앨범을 냈으며, 주윤하 × Merry Dancers라는 일렉트로니카 프로젝트로는 신스팝 계열의 음악도 선보였다. 이렇게 음악 안에서 전방위로 움직이지만, 지금 집중하고 있는 건 보컬리스트로서의 자신을 재즈 형식 속에서 최대한 보여주는 일이라고 말한다. 5월 23일 토요일 서울재즈페스티벌 수변무대에 마련되는 공연은 그에게 그 최대치를 끌어내는 기회가, 그리고 관객에게는 꽤 로맨틱한 시간이 될 것이다. 

대중음악을 해오던 사람인데 어떻게 본격적인 재즈 앨범을 내게 됐나? 

 

어떤 음악을 해야겠다는 계획이나 전략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시도였다. 원래 베이스 연주로 음악을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이 재즈 였다. 베이스의 역할이 큰 음악이다 보니 퓨전이나 스탠더드 재즈를 먼저 듣다가, 팝, 모던록 등 다양한 장르로 취향이 넓어졌다. 유년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음악의 영향이 오래 남아 있는 것 같다.

 

이전 공연에서도 재즈 넘버를 즐겨 불렀다고 들었다. 

쳇 베이커를 워낙 좋아해서 2012년 첫 단독 공연 때 부터 ‘Like Someone In Love’ 같은 곡을 자주 불렀다. 처음 베이스로 유학을 가려고 했을 때는 베이스 위주로 음악을 들었다. 그러다 점점 보컬의 음색, 그리고 그 보컬과 멜로디가 어우러져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감성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됐다. 쳇 베이커의 경우 아무리 화창한 날도 비 오는 날로 곧바로 옮겨주는 듯한 음성과 감성이 놀랍다.

 

보드카레인에서는 베이시스트였는데, 솔로로 음악을 하면서부터 노래를 시작했다.

내가 좀 고지식하고 둔한 면이 있다. 보드카레인은 보컬이 따로 있는 밴드고 나는 베이스니까, 노래를 불러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번도 안 했다. 솔로 앨범을 낸 것도 보컬인 안승준 씨가 유학을 가면서 내게 생긴 잉여의 시간을 활용한 것이다. 내가 만든 노래 중에 내 목소리로도 어느 정도 잘 표현할 수 있는 곡이 있으니 그걸로 앨범을 내보자는 생각이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기에 이후 밴드가 완전히 해체되면서 뒤돌아보지 말고 솔로 아티스트로 뭔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재즈 페인터스>라는 앨범이 나에게는 처음으로 보컬로서의 자각을 시작한 시기와 맞물린다.

 

그전의 솔로 앨범은 보컬이라는 자각 없이 노래했나?

노래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던 것 같다. 뮤지션인데 노래도 직접 부른다는 개념 정도로. 내 음악을 하는 데 목소리가 필요하니까 그렇다면 내가 하지 뭐, 이런 식이었다. 보컬에 집중하기 위해 일부러라도 재즈 공연에서는 악기를 연주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처음에는 그게 너무 힘들더라. 음악 인생의 90% 이상을 베이스를 들고 있었고, 나머지 5%는 피아노나 나일론 기타를 치면서 했으니까.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것 같다. 조금씩 얼굴이 두꺼워지고 있다(웃음).

 

앨범 제목이자 프로젝트 명인 <재즈 페인터스>에 대해 설명해준다면.

내 음악 인생 전체로 봤을 때 꾸준히 이어갈 프로젝트다. 재즈 앨범을 낼 때는 언제나 ‘주윤하의 재즈 페인터스’라는 타이틀이 될 거다. 1인 프로젝트지만 밴드 구성으로, 내 솔로와는 차별성을 두게 되고. 처음 베이스만 치고 작곡을 했을 때는 음악을 단면적, 일차원적으로 바라본 것 같은데 노래를 하면서 음악이 이야기라는 것, 세상 모든 것과 맞닿아 있다는 걸 절실하게 느끼게 됐다. 여러 음악의 색깔을 칠한다면 이번에는 재즈라는 붓, 색감을 갖고 이런 음악을 그려보겠다는 생각으로 지었다.

 

연주자들은 바뀔 수 있는 건가?

그렇다. 이번 앨범의 경우 최고의 재즈 연주자들이 함께해줬다. 매니지먼트를 맡아준 에반스에서 피아니스트 유승호 씨를 연결해줬다. 공동 프로듀싱하면서 곡 편곡이나 구성에도 도움을 얻고, 연주자도 소개받았다.

 

대중음악을 하던 사람이 재즈를 하는 데 대한 재즈계의 텃세 같은 건 없었나?

충분히 예상했다. 특히나 평단에서 내 음반을 리뷰할 때 ‘우려’ ‘재즈를 왜?’ 이런 키워드들이 있더라(웃음). 다행히 거의 좋은 이야기로 끝맺긴 했지만. 팝 뮤지션이 재즈를 하는 데 대한 선입견이 평단 뿐 아니라 연주자나 듣는 사람에게까지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어떤 장르의 결과물이든 내 안에서 음악이라는 언어를 통해 나오는 거니까, 부정적인 선입견은 신경 쓰지 않으며 열심히 활동하고 창작 하려 한다. 그러면 장기적으로 사람들도 이해하고 공감해주지 않을까. 무엇보다 트럼펫 하는 배선용 씨를 비롯해 내가 좋아하고, 우리나라 재즈 신에서도 최고인 연주자들과 함께하며 인정받는 경험이 즐겁다.

 

재즈 보컬을 따로 트레이닝 받았나?

스스로도 너무 테크니컬한 재즈 보컬은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따로 트레이닝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풍부한 성량에 풍성한 바이브레이션이나 화려한 스캣 같은 것들… 너무 죽기 살기로 열심히 노래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보컬에서는 감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어떤 창법을 잘못 배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편곡 면에서는 내가 모던록이나 팝에 익숙한 터라 변화가 필요했다. 화성이나 구성에 있어 재즈를 하는 공동 프로듀서의 도움을 얻었다.

 

재즈 앨범을 만들면서 들어갈 커버곡들을 고른다고 하면 선택의 여지가 무한했을 텐데, 어떤 기준으로 골랐나?

리사 오노 버전의 ‘I Wish You Love’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노래를 통틀어서 가장 좋아하는 10 곡 중 하나다. 리사 오노의 모든 내한 공연에 표를 사서 갔다(웃음). 한 뮤지션을 의리 있게 계속 바라본다는 즐거움, 기쁨을 많이 느꼈다. 연주의 완성도가 높은 곡은 아니지만 뭐라 표현할 수 없이 편안한 호흡으로 노래하는 그 느낌이 좋다. 

 

<재즈 페인터스> 앨범을 내고 공연을 하면서 얻는 반응은 어떤가?

‘재즈라면 어려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재즈는 사실 어려운 음악이 맞다. 재즈 뮤지션들이 사석에서 “왜 우리는 대중성이 없을까?” 서로 자문하는데, 이유는 단순하다. 대중성이 없는 음악을 하기 때문에(웃음). 그래서 가사가 붙어야 되고, 대중이 적당히 편하게 이해할 수 있는 구조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내 음악의 장점이 있지 않을까 한다. 

 

서울재즈페스티벌 무대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부를 수 있는 최고의 연주자들을 다 모았다. 브라스, 트럼펫… 정말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만 잘 준비해서 할 생각이다. 재즈페스티벌은 처음인데, 처음 하는 의욕이 앞서 평상시 안 하는 편곡과 구성으로 뭘 하면 대부분 망하더라(웃음). 관객들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구성과 무대를 충실하게 보여줄 거다. 관객들에게 공연 영업의 코멘트를 할 수 있는 지면을 드리겠다. 서재페에는 해외에서 쟁쟁한 뮤지션들이 많이 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봄날의 수변무대, 그 풍경과 공기와 바람의 온도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공연을 토요일 그 시간대에는 내가 하고 있을 것이다. 어두컴컴한 데 들어가지 마시고, 오붓한 호숫가로 오시기 바란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