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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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박람회인 살로네 델 모빌레와 장외 전시인 퓨오리 살로네가 함께 치러지는 디자인 위크 기간이 돌아올 때마다 밀라노는 눈이 즐거워지는 도시가 된다. 올해 행사에서 패션 브랜드들이 선보인 프로젝트를 한데 모아봤다.

마르니의 과일가게

팔로케마오는 콜롬비아 보고타 지역의 대표적인 농산물 시장이다. 열대과일과 야채, 각종 향료와 꽃이 원색의 태피스트리처럼 요란하게 뒤섞이는 이곳의 풍경을 마르니는 2015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 전시의 테마로 삼았다. 열대과일의 모양을 본뜬 산뜻한 색감의 구조물은 컨테이너 혹은 장식품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 가능하다. 색색의 PVC를 엮어 완성한 스툴 역시 공간의 표정을 완전히 바꾸어놓을 만큼 유쾌하게 이국적이다. 전시 기간 중 선보인 이 한정판 콜렉션은 모두 콜롬비아에서 수작업으로 제작되었으며 판매 수익금은 자선 단체에 기부될 예정.

벽을 타는 발렉스트라

마리티노 갬퍼는 다양한 빈티지 의자를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하는 프로젝트였던 <100일간 100개의 의자를 100가지 방식으로(100 Chairs in 100 Days in 100 Ways)>로 잘 알려진 디자이너다. 2015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 동안 발렉스트라는 그와 협업해 완성한 캡슐 컬렉션을 공개했다. 갬퍼는 간결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백을 진열대에 가지런히 올려두는 대신 매장 벽면에 냉장고 자석처럼 들쭉날쭉 붙여뒀는데 그 자체로 유쾌한 설치 작업 같다.

에르메스의 정글

에르메스는 지난 2013년에 처음 선보였던 홈 컬렉션인 ‘레 네세쎄어 데르메스(Les Necessaires d’Hermes)’의 새로운 시리즈들을 발표했다. 가죽이나 다양한 패턴의 천으로 커버를 갈아 끼울 수 있는 스툴인 까레 다시즈, 대리석 혹은 오닉스로 상판을 만든 커피 테이블 사뜰리뜨, 그리고 정글의 동식물을 패턴화한 벽지 등은 우아하고 고급스럽지만 결코 지루하지는 않다. 에르메스의 공방을 거치면 야생의 풍경마저도 이렇게 호사스러워진다.

베르사체의 파티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봤더라도 도나텔라 베르사체의 디자인임을 단번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리스 풍의 고전적인 문양, 화려한 황금색 디테일, 섹시한 실루엣 등은 베르사체라는 브랜드의 고유한 특징이니까. 이 의자의 이름은 ‘La Coupe des Dieux’, 즉 ‘신의 술잔’이다(아마도 등받이의 프린트를 언급하고 있는 듯하다). 샴페인을 따는 파티든 소주를 기울이는 자리든, 그 공간을 휘황하게 할만한 오브제다.

건축가의 가방, 토즈

디자인 스튜디오 넨도를 이끄는 사토 오오키는 요즘 유수의 브랜드들로부터 특히 뜨거운 프로포즈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올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에 그는 토즈와 함께 남성용 가방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른 바 ‘건축가의 가방’이다. 넓게 펼쳤을 때는 A3 사이즈의 드로잉을, 그리고 반으로 접으면 A4 사이즈의 서류를 수납할 수 있으며 손잡이나 어깨 끈 역시 필요에 따라 정리할 수 있다. 단순하면서 실용적이고 다용도로 활용이 가능한 영리한 디자인이다.

에트로와의 휴식

에스닉과 럭셔리는 에트로의 컬렉션을 효과적으로 요약해줄 키워드다. 올해 디자인 위크 기간에 새롭게 선보인 메종의 제품들은 컬러와 패턴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지만 전혀 요란하거나 번잡스럽지는 않다. 그리스 산 벨벳으로 감싼 긴 소파는 당장이라도 드러누워 낮잠을 청하고 싶을 만큼 편안해 보인다.

뱀의 유혹, 불가리

위험하면서도 유혹적인 뱀을 형상화한 ‘세르펜티(Serpenti)’는 불가리를 대표하는 주얼리 컬렉션 중 하나다(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착용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5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새로운 시리즈를 선보이며 브랜드 측은 건축가 자하 하디드에게 전시를 위한 구조물 설계를 의뢰했다. 뱀의 형태를 기하학적으로 재해석한 SF 풍의 설치물 안에 정교하게 세공된 주얼리들이 자리를 잡았다.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정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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