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주객은 전도된 지 오래.
시즌을 관통하는 굵직한 트렌드는 이제 액세서리 없이는 완성되기 힘들 정도다.
2015년 봄/여름을 지배하는 키워드를 한눈에 읽을 수 있는 장치 역시 액세서리에서 출발한다.

THAT 70’S SHOW

 

 

패션의 시곗바늘은 잘도 돈다. 돌고 돌아 또 예전 그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패션의 속성이라지만, 이번 시즌 가장 강력한 메가 트렌드가 1970년대로 맞춰졌다는 것은 좀 남다른 의미가 있다. 먼저, 모든 브랜드가 푹 빠져 도무지 헤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던 90년대에서 드디어 벗어났다는 점을 들 수 있고, 다음으로는 현재 패션 필드의 패권이 완전히 1970년대 이후 태어난 디자이너들에게로 넘어갔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관습에 의문을 품는 저항 정신, 눈치 보지 않는 자유로움, 평화에의 갈망이 공존했던 70년대를 런웨이에 재현함으로써 불황의 우울을 떨쳐버리려 한 것은 대부분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들. 최근 패션계가 탐한 경박한 거리 문화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도 일맥상통하는 경향이다. 에트로는 특유의 페이즐리 문양을 구슬로 엮어 패턴을 표현하고 프린지 장식을 더하거나 통가죽을 그대로 커팅하는 방식의 스트랩 가방으로 시선을 끌었고, 알베르타 페레티는 레트로 스타일의 니팅 방식을 가미한 스웨이드 소재의 백과 프린지 슈즈를 선보였다. 7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통가죽’ 가방도 여러 런웨이에서 목격되었는데, 특히 하우스의 옛 아카이브를 참고한 구찌의 악어가죽 백의 럭셔리함은 놀라울 정도다. 슈즈의 경우 돌아온 히피 무드의 최대 수혜 아이템은 바로 가죽을 엮어 만든 글래디에이터 슈즈! 발렌티노와 끌로에, 알렉산더 매퀸처럼 무릎까지 올라오는 부츠도 많고, 에밀리오 푸치나 펜디처럼 스트랩의 느낌만 가져오고 디자인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도 눈길을 끈다.

ACCE-SSORIZE BAGS

 

쇼핑을 최종 목적어로 삼는 트렌드 게임에서, 적어도 가방만큼은 기억해야 할 법칙이 ‘없다’는 것이 이번 시즌의 법칙이다. 그만큼 가방은 트렌드에 좌우되기보다는 각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거나, 혹은 이를 발전시킨 변형판이거나, 의상과 조화를 이루어 룩 자체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로 강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이번 시즌의 메가 트렌드가 70년대이기에, 히피의 상징인 프린지 백과 에스닉한 위빙 백(어깨에 둘러 골반 즈음에 오게 크로스로 걸친다)이 큰 축을 차지하고 있지만 실제 판매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터. 굳이 트렌드로 따지자면 지난 시즌 반짝 등장한, 양동이를 닮은 모양새의 버킷백이 여전히 인기다. 로에베, 마르니, 3.1 필립 림, 토리 버치 등에서 이국적인 정서를 담은 버킷백을 내놓아 여자들의 봄나들이 로망에 불을 지폈다. 사이즈로 보면 빅 백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스몰에서 미니에 이르는 끈 달린 스트랩 백이 인기. 한편 루이 비통의 쁘띠뜨 말과 트위스트, 펜디의 피카부, 프로엔자 스쿨러의 유백과 같은 베스트셀러 역시 컬렉션 룩에 맞게 모습을 재단장하고 새롭게 출격했다. 마지막으로 모스키노의 가죽 재킷 백이나 샤넬의 ‘5X5’ 백, 돌체&가바나의 바비인형 백처럼 위트로 무장한 가방은 이번 시즌을 기억하는 마일스톤으로서의 의미로 남을 것이다.

EXTRA ACME

 

혹한의 터널을 지나 드디어 노출의 계절이 돌아왔다. 돌아온 계절은 드러난 팔과 목덜미, 손목과 귓불까지 가만히 내버려두지를 않는다. 여백의 미보다는 무엇이라도 빼곡히 채워서 장식할 것, 그리고 의상에 맞게 한 구역을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장식할 것. 그것이 이번 시즌 코스튬 주얼리 선택의 법칙이다. 특히 목걸이는 원래부터 의상의 네크라인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디자인적으로 의상과의 합일도가 높으며, 장식적이고 대담한 것이 눈에 띈다. 쇠사슬을 그대로 목에 건 듯한 느낌의 아크네, 진주와 금속으로 기하학 무늬를 구성한 랑방, 체인을 플라스틱으로 볼드하게 변형한 스텔라 매카트니 등에선 자칫 고고하게만 느껴지는 하이엔드 의상에 럭셔리한 재치를 더하는 역할을 한다. 지난 시즌에 이어 눈에 띄는 귀고리(스테이트먼트 이어링)의 활약 역시 대단하다. 여러 번 구부러진 로에베의 금속 귀고리, 둥그런 플레이트로 이루어진 루이 비통의 귀고리, 원과 직선이 절묘한 균형을 이룬 질 샌더의 귀고리 등은 단순한 주얼리 이상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여기에 펜디, 셀린, 발렌시아가 등에서 선보인 반묶음용 헤어 액세서리 또한 룩에 완성도를 더하는 마지막 무기로 새겨두어야 할 것이다.

HIGH & LOW

 

올라갈 것인가, 내려올 것인가. 이번 시즌 여자들은 존재론적 고민이 아닌 높이론적 고민 부터 하게 될 것이다. 이번 시즌에 한해서라면 옷이나 가방, 장신구보다 먼저 선택해야 할것이 바로 슈즈다. 슈즈가 실루엣을 바꿔버리는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벽돌 하나 위에 올라선 듯 아찔한 느낌을 주는 플랫폼 슈즈가 돌아왔다. 특유의 투박함 탓으로 선호도가 극명하게 갈리는 아이템이지만 올라섰을 때의 짜릿함, 그리고 발목이 꺾이지 않고도 걸을 수 있다는 인체공학적 편안함은 킬힐에 비할 바가 아니다. 플랫폼도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먼저 생로랑의 에디 슬리먼과 톰 포드는 70년대 쇼걸 무드를 닮은 로커빌리 스타일의 플랫폼 하이힐로 슈즈계를 강타했고, 프라다에서는 예술적인 프린트로 장식한 나무 플랫폼을 선보였으며, 캘빈 클라인에서는 비슷하지만 좀 더 얌전한 디자인을 찾을 수 있다. 앞굽과 뒷굽의 경계가 없어 착용감이 좋은 웨지 스타일의 플랫폼은 존 갈리아노, 미우미우, 살바토레 페라가모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납작한 플랫 슈즈로 여성에게 자유를 허하도록 애쓴 디자이너들의 노고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겐조, 셀린, 발렌시아가에서는 뒤꿈치가 거의 바닥에 붙은 슈즈가 유효함을 보여주었고, 여기에 스텔라 매카트니, 마크 제이콥스, 코치에서는 ‘슬리퍼’까지 등장하여 한층 가볍고 경쾌한 컬렉션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