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사람들은 끝없이 음식을 만들거나 먹거나 맛집을 찾아 다닌다. 구강기로 퇴행한 듯 먹을 것에 집착하는 2015년 한국.

길에서 츄러스
한두 해 전 경리단길 초입에 ‘스트리트 츄러스’가 생겨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만 해도, 스키장에서, 캐리비안 베이에서 입술 파랗게 질리도록 놀다가 허기지고 혈당 떨어질 때 급속도로 당을 충전해주는 간식이었다. 인근 교통을 마비시킬 정도로 줄을 서서 먹는 이 가게의 인기에 힘입은 츄러스의 대대적인 유행은 백화점 식품 매장의 팝업스토어에 이어 ‘츄럿’ ‘통밀콘’ 같은 공산품 과자까지 등장시켰으며 부근 카페에는 설탕을 잔뜩 떨어뜨리며 먹는 손님들 때문에 츄러스 주의보가 내렸다.

 

그러나 혹여나 이 아이템으로 창업을 꿈꾸는 자영업자들은 이미 레드오션임을 알아야 한다. 경리단길 츄러스 가게 바로 앞에 있던 빙수 가게는 두 시즌을 못 버티고 문을 닫았고, 벌집 얹은 소프트 아이스크림 가게들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머니사정이 가벼워지는 어린 세대 사이에 싸고 만만한 길거리 음식의 유행은 필연적인 건지, 노점이 유독 발달한 동남아의 모습이 겹쳐진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에서처럼 푸드트럭으로 성공한 셰프가 자기 레스토랑을 차리는 일은 서울에서 가능할까? 아마 비싼 부동산 권리금 때문에 쉽지 않을 듯.

 

먹방 또는 쿡방
<삼시세끼> <오늘 뭐 먹지?> <수요 미식회> <테이스티 로드> <냉장고를 부탁해> <올리브 쇼>…. 맛있는 식당을 소개하고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던 ‘먹방’류 프로그램은 한 발 나아가 재료를 마련하고 요리 과정을 공개하는 ‘쿡방’으로 진화했다. 요리는 이제 성별을 떠나 갖추어야 할 생존의 기술이자, 한 개인이 노래나 춤 같은 개인기만큼이나 매력적으로 자기를 어필하는 방식이 되었다. 하지만 TV를 틀면 먹는 방송이 절반, 그렇게 먹어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몸매를 미의 기준으로 우러르는 방송이 나머지 반. 힘든 세상이다.

 

#먹스타그램
‘너는 이미 찍고 있다’. 얼마 전 뷔페 식당 세븐스프링스에서는 떠서 덜어먹는 짙은 색상의 케이크 메뉴를 내놓으면서 이름을 ‘맛있땅 흙흙’이라고 지었다. 지렁이 모양 젤리까지 데커레이션해놓은 옆에는 이 메뉴의 개발 의도를 간파한 듯한 이 한마디가 적혀 있었다. 힙한 레스토랑 방문, 유행하는 음식을 먹어보는 경험의 힘찬 동력은 그것을 즐기고자 하는 욕망만큼이나 ‘인증’에 대한 욕구다. 음식은 누구나 쉽게 공감하거나 참견할 수 있는 분야고,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에서 가장 직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좋아요’를 얻을 수 있는 소재니까. 질소 아이스크림이나 눈꽃 빙수같이 시각적으로 화려한 메뉴는 이런 인증의 시대에 점점 더 각광받는다. 사진발을 잘 받기 때문이다. 유행이 유행을 낳고 유명이 유명을 낳는 법칙은 #먹스타그램 인증 샷을 타고 퍼져나간다.

 

백종원이라는 미다스의 손
한신포차, 새마을식당, 홍콩반점0410, 해물떡찜0410, 역전우동0410, 백종원의 원조 쌈밥집, 본가… 프랜차이즈 ‘더 본 코리아’ 대표인 백종원이 상표등록을 한 브랜드는 모두 33개이며, 최근에는 ‘백다방’이라는 이름으로 커피 전문점에까지 진출했다. 합리적인 가격 대비 성능을 바탕으로 지점마다 균일화된 맛과 서비스를 유지하는 백종원의 식당들은 대중의 취향을 예리하게 꿰뚫으며 성공해왔다. 한식과 중식, 소고기와 돼지고기, 주점과 커피까지 섭렵한 그의 다음 행보는 어떤 아이템일까.

 

지방 빵가게 습격 사건
튀김 소보루의 대전 성심당, 단팥빵과 부추빵의 군산 이성당, 초코파이의 전주 풍년제과, 학원전의 부산 OPS 같은 빵집은 서울에 알려지면서 백화점 팝업스토어의 타겟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지역의 작은 빵집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일은 맛집 블로거들의 새로운 카테고리다. 목포 코롬방 제과, 광주 궁전 제과, 안동 맘모스 제과 등. 복고적인 추억에 젖어서 먹지만 실력이 과대평가 되었다는 얘기도 많다.

 

별다방 옥고감, 콩다방 삶은 달걀
스타벅스에서 3천800원에 판매하는 ‘찐옥수수 반 개, 고구마, 감자 1개씩’으로 이루어진 세트 메뉴. 가격이 비싸다는 논란에 대해 스타벅스 측에서는 국내 농가에 대한 지원을 위해 시세보다2 0~30% 높은 가격에 구매한다고 설명했다. 카페에서 구황작물까지 판매하는 데 대해 그만큼 경기가 나쁜 위기 상황의 반영이라는 의견과 함께 일부 다이어터들 사이에는 “케이크나 빵보다 낫다”는 반응도 있다. 아마 커피 한 잔만 시켜놓고 몇 시간씩 과제와 스터디를 하는 고객들의 허기도 달래면서 매출도 올리는 수요와 공급의 접점으로 보인다. 스타벅스 옥고감에 대응해 커피빈에서는 삶은 달걀을 판다는 얘기는 농담 같지만 사실이었다. 레트로가 유행하니 쌍화차에 계란노른자 띄워 먹던 복고풍이 돌아오나? 이대로 가다가는 앤젤리너스나 카페베네에서 군밤이나 뻥튀기가 등장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