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기를 거쳐 완성형을 향해 달려가는
패션필름의 지금.

#Karlywood 
포스터도 내가 황제

파리 패션위크 기간 중에 들려온 가장 따끈한 소식. 패션 황제 칼 라거펠트가 할리우드의 기념비적 영화의 포스터 주인공이 되었다. 포스터 제목 또한 위트가 넘친다. 먼저 할리우드가 아니라 ‘칼리우드 (Karlywood)’, <킬 빌>이 아니라 <칼 빌(Karl Bill)>, <가십 걸>이 아니라 <가십 칼(Gossip Karl)>, <나 혼자 집에(Home Alone)> 이 아니라 <칼 혼자 집에(Karl Alone)> 등이다. 패션위크 중 인스타그램을 순식간에 도배해버린 이 일러스트 포스터를 보고 이것이 실제 영화 포스터인지, 정말 칼 라거펠트가 등장하는 패러디 버전의 영화가 개봉하는 것인지 궁금해했을 사람도 많을 듯. 이 일러스트들은 칼 라거펠트의 고양이 슈페트와 칼 라거펠트의 그림으로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 티파니 쿠퍼(Tiffany Cooper)의 작품으로, 이번 파리 패션위크 기간 중 생제르맹에 위치한 칼 라거펠트의 부티크에서 열린 전시회, <칼리우드>에 선보인 작품들이다.

4월에는 쿠퍼와 라거펠트의 협업 라인이 나올 예정이며, 오는 9월에는 라거펠트를 주인공으로 한 170페이지 분량의 만화책도 발간할 예정이라고. 패션, 영화가 직접적으로 얽힌 것은 아니지만 인스타그램을 강타한 소식이 된 것을 보니 그 키워드에서 착안한 프로젝트로는 매우 성공적이었던 셈.

 

#Kingsmansuits #Iconoclast
<킹스맨>의 히로인이 연출한 프라다 영화

대작들 사이에서 의외의 틈새를 노리고 한국에서 ‘알음알음’ 입소문으로 성공한 영화 <킹스맨>의 흥행 요인 중 하나는 콜린 퍼스를 비롯한 (옷걸이 좋은) 미중년들이 날렵한 영국식 수트 룩을 쫙쫙 빼입고 나오는 것. 이 영화의 전체적인 톤&매너에 맞추어 의상 스타일 역시 리얼리즘에 기반한 실사 영화라기보다는 카툰 애니메이션처럼 양식적인 부분이 있어, 킹스맨 무리는 영화 내내 똑 떨어지는 수트에 옛 톰 포드 스타일의 안경을 끼고 다닌다.

제작 수트와 함께 턴불&아서 셔츠, 드레이크 넥타이, 조지 클레버리 구두 등 여러 고급 브랜드의 제품이 집결했다. 이 영화에 나온 옷과 액세서리, 심지어 킹스맨의 마크가 새겨진 포켓스퀘어와 노트를 온라인 쇼핑몰 ‘Mrporter.com’에서 살 수 있다.

이 영화의 의상을 디자인하고 판매할 계획까지 세운 영리한 인물은 영화 <싱글맨> <헤드윅> 등의 의상 담당이자 마돈나의 무대 의상을 디자인하기도 했던 아리안느 필립스(Arianne Phillips)다. 필립스는 패션위크 기간에 프라다의 ‘아이코노클라스트’ 프로젝트에 참여해 영국 런던의 매장 하나를 통으로 변신시켜 화제를 모았다. “나에게 패션은 영화와 같이 스토리가 있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다”라는 필립스는, 이번 아이코노클라스트를 위해 <파사주(Passage)>라는 제목의 짧은 패션필름도 제작했다. 황량한 풍경과 낡은 라일락빛 톤 위에 몽환적이고 초현실적 느낌이 흐르는 필립스의 영화는 그대로 한 편의 CF로 충분할 만큼 아름답고 독특하다.

 

 

#DiorandI #RafSimons
진짜 패션 이야기

사람들은 패션에 ‘환상’을 원한다. 멋지고 대단한 무언가를 패션의 영역이 대신해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패션도 결국엔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기에, ‘만듦새’ 자체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만드는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얘기다. 관객이나 고객들에게는 평균적으로 일 년에 두 번꼴로 열리는 패션쇼가 공기처럼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디자이너도 사람이기에 감정이 있고, 두려움도 있고, 압박도 느낀다.

<디올과 나(Dior And I)>는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가 디올 하우스에 들어가서 일하는 과정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로 감독 프레데릭 쳉의 최신 영화다. 잘 알려진 대로 라프 시몬스가 꽤 소극적인 성격이라 촬영 섭외에 애를 먹었고, 결국 끈질기게 편지를 써서 마음을 살짝 돌린 후, 일주일 정도 테스트 촬영을 거쳐 정식 촬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250시간의 분량 중 고르고 골라 편집한 최종 결과물을 보면, 라프 시몬스 같은 거대 하우스의 위대한 디자이너 역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점이 진하게 다가온다. 이런 ‘인간시대’ 풍의 다큐멘터리는 패션 이전에 역시 인물이 흥미로워야 하는데, 소심쟁이인 줄 알았던 라프 시몬스를 지켜보는 재미, 인간성에 대한 감동이 생각보다 쏠쏠하다. 디자이너로서의 위대함이야 말할 것도 없고!

 

<디올과 나(Dior And I)> 공식 트레일러

 

#15SS #miumiu 

여자 이야기, 우먼스 테일

지루하거나, 천박한 상업성으로 가득하거나. 그간 패션필름을 둘러싼 절하된 평가는 생각보다 거셌다. 제아무리 대단한 감독도 ‘제품이 잘 보여야 한다’는 의무를 접하고는 작품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애매한 타협을 해댔다. 말하자면 패션필름은 잘나가는 감독으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골고다의 언덕’쯤 되는 듯 느껴진 것이 사실. 여기서 조금 시선을 돌리면 영화에 대한 지원을 꾸준히 아끼지 않고 그 결과물을 쌓아 아카이브화시키는 브랜드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매 시즌 여성 감독의 시선으로 풀어낸 패션필름을 선보이는 미우미우‘우먼스 테일’ 프로젝트가 벌써 9회를 맞았다. 이번 시즌에는 <더 원더스(The Wonders)>로 칸 그랑프리를 수상한 앨리스 로르와처 감독이 연출한 <드 드레스(De Djess)>라는 작품을 내놓았다. 난파선의 생존자들처럼 드레스들이 해변에 모습을 드러내는 첫 장면부터 인상적인, 드레스를 의인화한 독특한 이 영화는 유튜브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드 드레스(De Dj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