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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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깊은 감정을 느리게, 그리고 낱낱이 파고든다. 그의 전시는 세상의 속도와 멀어져 자신의 솔직한 내면과 맞닥뜨리는 여행에 가깝다.

국제갤러리 3관에 설치된 대형 비디오 작업인 ‘Inverted Birth’ 앞에 선 빌 비올라.

국제갤러리 3관에 설치된 대형 비디오 작업인 ‘Inverted Birth’ 앞에 선 빌 비올라.

빌 비올라의 기자 회견은 <패션(The Passions)> 연작 가운데 하나인 ‘경악한 사람들의 5중주(The Quintet of The Astonished)’ 상영으로 시작됐다. 정지 이미지인가 싶었던 사람들이 폭발하듯 격하게 동요하는 장면을 익스트림 슬로 모션으로 기록한 영상이다. 비록 이번 국제갤러리 전시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특징을 요약적으로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라서 준비했다는 게 작가 측의 설명이었다. 한국에서는 ‘백남준의 어시스턴트 출신’이라는 이력으로 더 익숙한 게 사실이지만, 스승의 후광을 걷어내더라도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가 이룬 성취는 충분히 압도적이다. 느릿한 속도로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고, 인간의 극적인 감정과 대면하게 하는 그의 작업은 세상의 틈으로 떠나는 고요한 여행이자 영적인 체험에 가깝다.

“삶에는 고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구원도 있어야 하겠지만요. 많은 일을 겪으면서 내면이 점점 확장되어가는 걸 느낍니다. 아마 앞으로도 성장은 계속될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전 숨을 거두기 직전의 마지막 순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날이 비올라와의 첫 만남은 아니었다. 이미 하루 앞서, 우리는 스태프들의 마지막 점검이 한창이던 전시관에서 머뭇머뭇 악수를 나눴다. 높이가 5미터에 달하는 대형 작품인 ‘도치된 탄생(Inverted Birth)’ 앞에서였고 곁에는 배우자인 키라 페로프가 동행한 상태였다. 그녀는 총괄 프로듀서부터 아키비스트까지, 다양한 역할을 이상적으로 수행하며 작가를 보조해온 예술적 동료이기도 하다. 질문을 던지면 부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이좋게 답변했는데 비올라가 선문답처럼 추상적인 이야기로 흐르기 일쑤라면 페로프는 기술적인 문제나 제작 과정의 뒷이야기 같은 구체적인 호기심을 짚어주는 쪽이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더욱 이상적인 팀처럼 보이는 두 사람은 유쾌한 비밀이라도 공유하고 있는 아이들처럼 종종 흐뭇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시공간 너머의 심연까지 파고드는 듯한 작품들만 봐서는 짐작하기 어려울 아티스트의 또다른 모습이었다. 마침내 사진 촬영을 할 때가 되자 부부는 이런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스타일리스트는 어디 있죠? 이건 더블유 촬영이잖아요!”

1. Water Martyr, 2014비디오/사운드 설치 Color High-Definition video on flat panel display mounted vertically on wall 107.6 x 62.1 x 6.8 cm 7분 10초 제작 책임자: Kira Perov 배우: John Hay2. Night Vigil, 2005/2009 비디오/사운드 설치Color rear-projection video diptych, two large screens mounted on wall in dark room Overall projected image size 2.01 x 5.28 m ; room dimension variable 18분 6초 배우: Jeff Mills, Lisa Rhoden3. 영국 작가 리처드 롱에 대한 오마주인 ‘ Inner Passage’.

1. Water Martyr, 2014
비디오/사운드 설치 Color High-Definition video on flat panel display mounted vertically on wall 107.6 x 62.1 x 6.8 cm 7분 10초 제작 책임자: Kira Perov 배우: John Hay
2. Night Vigil, 2005/2009 비디오/사운드 설치
Color rear-projection video diptych, two large screens mounted on wall in dark room Overall projected image size 2.01 x 5.28 m ; room dimension variable 18분 6초 배우: Jeff Mills, Lisa Rhoden

3. 영국 작가 리처드 롱에 대한 오마주인 ‘ Inner Passage’.

여러 전시작 가운데서도 5미터 높이의 대형 스크린에 영사되는 ‘도치된 탄생’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한 남자가 검고 붉고 또 흰 액체를 뒤집어쓰는 광경을 역재생으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탄생, 혹은 환생의 순간에 대한 은유처럼 보인다. 탄생과 죽음, 그리고 환생은 당신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빌 비올라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6살 즈음에 가족과 함께 호숫가로 여행을 갔다가 물에 빠진 적이 있다. 수영을 못했던 나는 이내 바닥까지 가라앉았는데 거기서 올라다 본 광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내가 천국에 도착했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 다음에 벌어질 일을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한 삼촌이 날 끄집어내려고 하셨지만 오히려 손을 뿌리쳤던 게 기억난다. 그곳에 더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다. 뭍으로 끌려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울음을 터뜨렸다. 조금 더 시간이 지체됐더라면 아마 살아서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다. 한동안은 당시의 경험을 잊고 지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새삼 꿈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로 그 짧은 순간이 내 작업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잠시나마 또 다른 세상을 엿본 것 같았다.

키라 페로프 환생이라는 개념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 같다. 죽음 이후에도 또 다른 형태의 삶이 계속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꼭 불교 신자만 갖고 있는 게 아니다. 존재의 미스터리 라고 할까? 살아가면서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는 건 중요하다. 아티스트들의 작업 역시 이런 질문의 한 형태가 아닐까 싶다.

명상적이며 종교적인 작품 세계를 지닌 아티스트로 종종 소개되곤 한다. 하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작업에 대한 해석이 관습 적으로 흐르는 걸 경계하지 않을까 싶다.

빌 비올라 물론이다. 나 역시 특정 영역이나 한계 안에서만 사고를 하고 싶지는 않다. 예술가는 아주 작은 틈부터 거대한 우주까지 자유롭게 탐험 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영혼의 공간이다. 이를 이해함으로써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고, 경계를 뛰어넘을 힘을 얻기도 한다.

그런데 작년에는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을 위한 신작을 공개하기도 했다. 4개의 비디오로 구성된 ‘순교자(Martyrs)’ 시리즈 중 ‘물의 순교자’를 이번 국제갤러리 전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종교 단체는 특별하다면 특별한 클라이언트일 텐데, 작업 과정에서 의견을 조율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빌 비올라 전혀 없었다. 세인트 폴 대성당은 가톨릭이 아니라 영국 국교회 성당인데, 작가의 입장을 유연하게 이해하고 배려해줬다. 무엇보다도 예술을 존중하는 클라이언트였기 때문에 작업 과정은 수월했다.

키라 페로프 성당에 설치되긴 했지만 이 작품이 이야기하는 건 기독교적 의미의 순교가 아니다. 좀 더 일반적인 의미의 희생으로 이해해줬으면 한다. ‘마터(Martyr)’의 그리스 어원은 ‘증인’ 이라는 단어다. 현대의 매스미디어는 대중을 타인의 고통을 지켜보기만 하는 증인으로 만든다. 고통과 죽음까지 무릅쓰며 지켜야 할 의지와 희생, 인내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실 애초에는 ‘순교자’라는 제목을 붙일 생각도 아니었다. 뭐, 괜찮다. 매년 2백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세인트 폴 대성당을 찾지만 그중 크리스천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특별한 기운이 서린 역사적인 공간에서 사람들이 선입견 없이 흥미로운 작품을 감상하고, 솔직하게 느꼈으면 한다. 그게 우리의 바람이다.

인터뷰 자리이다 보니 자꾸만 구체적인 해설을 요구하게 된다. 그런데 두 사람은 완벽하게 설명적인 작업을 하거나, 작품에 주석을 덧붙이는 걸 그리 내켜 하지 않는 눈치다. 

빌 비올라 아무래도 그렇다. 작업을 할 때는 모든 아티스트가 완벽을 기하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절대 완벽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 미스터리의 상자가 닫혀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되 마지막 순간에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이 생각할 여지를 얻고, 영감을 찾을 수 있다. 어쩌면 영향을 받은 이들이 우리보다 더 훌륭한 무언가를 내놓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도록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 삶은 그런 것이다.

키라 페로프 작품 안에서 우리는 어떤 질문에도 답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대신 질문을 많이 던진다. 그리고 감상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준다. 국제갤러리 K2 전시장의 1층에 설치된 작품들은 멀리서부터 걸어오는 사람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보여준다. 일생에 대한 은유인 셈이다. 묵묵히 지켜보던 관람객들은 그 광경을 개인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다. 작년에 파리의 그랑팔레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가졌는데 1인당 평균 관람 시간이 2시간 30분 정도였다. 모두가 속도를 늦춘 채 어두운 실내에서 여행을 하듯 몇십 점의 작품을 순례했다. 문 밖의 세상과는 구별된 또 다른 공간이었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영화를 볼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하지만 할리우드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접근법을 취한다. 불이 꺼진 뒤에도 테러리즘, 폭력 등 똑같이 나쁜 세상이 스크린 위에서 다시 펼쳐진다. 반영과 성찰이 비집고 들어가기가 어렵다.

<노예 12년>의 스티브 매퀸처럼 비디오 아티스트로 출발해 극영화 감독으로까지 영역을 넓힌 예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당신들은 영화적 내러티브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관객으로서도 극영화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편인가?

빌 비올라 물론 우리도 가끔 휴식 삼아 극장에 갈 때는 있다.

키라 페로프 갖고 있는 비디오도 꽤 된다. 베르너 헤어조크도 있고… 특히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은 우리에게 의미가 크다. 고전 문학처럼 큰 영감을 주는 것 같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다.

미술 작가 출신의 감독들, 그러니까 스티브 매퀸이나 샘 테일러 존슨의 영화를 본 적도 있나?

키라 페로프 솔직히 못 봤다. 매퀸의 작품이 무척 훌륭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기는 했지만. 늘 바쁘기 때문에 사실 영화는 비행기에서 많이 보게 된다. 극장에서 관람한 마지막 작품은 <이미테이션 게임>이다.

빌 비올라 좋은 영화였지.

키라 페로프 우리가 영화적 표현 방식에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창작자로서 큰 흥미를 느끼지는 못하는 듯하다.

‘Ancestors’ 앞에서 나란히 포즈를 취한 빌 비올라와 키라 페로프. 열기를 뚫고 사막을 건너는 모자를 20여 분에 걸쳐 보여주는 비디오 설치 작품이다.

‘Ancestors’ 앞에서 나란히 포즈를 취한 빌 비올라와 키라 페로프. 열기를 뚫고 사막을 건너는 모자를 20여 분에 걸쳐 보여주는 비디오 설치 작품이다.

흙, 공기, 불, 물의 네 가지 테마를 다룬 ‘순교자’ 시리즈는 거의 곡예처럼 아슬아슬한 장면을 담고 있다. 혹시 이런 작업들의 경우, 컴퓨터그래픽을 동원하기도 하나? 언뜻 봐서는 별도의 디지털 특수 효과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장면을 기록한 듯하다. 만약 그렇다면 컴퓨터그래픽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건지 묻고 싶다. 꼭 할리우드가 아니더라도 오늘날의 영상 작업에서 CG는 조명이나 세트처럼 당연한 요소로 느껴지곤 한다.

빌 비올라 답은 ‘네’, 그리고 ‘아니오’다. 자연스러운 걸 선호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컴퓨터그래픽을 배제하지만 드물게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

키라 페로프 ‘불의 순교자’를 위해 사람까지 태워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웃음).

빌 비올라 그건 다음에 해보려고 한다. 하하.

키라 페로프 거꾸로 매달린 채 물을 맞고, 흙더미에 파묻힌 건 다 실제다. 사람에게 불만 안 붙였던 거다. ‘불의 순교자’는 빛을 쏴서 촬영을 한 뒤, 후반 작업 때 불꽃을 CG로 더해서 완성했다. 게다가 그건 상징적인 불이기 때문에 실제로 누군가를 태워서도 안 됐다. 여러모로 컴퓨터그래픽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다른 ‘순교자’들에 비해 그 배우는 물리적인 고생을 덜한 셈이다. 몇 분 정도 의자에 앉아 있기만 했으니까.

다른 장르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비디오 아트만의 가능성으로는 어떤 게 있다고 생각하나?

빌 비올라 지적인 반응이 아닌 솔직하고 깊은 감정을 이끌어낸다. 그러면서 삶의 정수를 경험하는 것이다. 표면은 시작일 뿐이다. 결국 영혼에 가 닿아야 하는데, 이게 드물게도 예술을 통해 가능하다고 믿는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깊은 감정을 내면 어딘가에 품고 있다.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은 무척 소중한 체험이다.
키라 페로프 영화 연출자들은 어쩌면 우리를 질투할지도 모른다. 매체를 훨씬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으니까. 심지어는 화면을 돌려서 가로세로를 바꾸어놓기까지 하고.

시간과 사운드, 그리고 움직임은 비디오 아트를 다른 장르와 구별 지어주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그 가운데서 특히 흥미롭게 느껴지는 하나를 꼽을 수 있을까?
빌 비올라 시간이다. 실제로는 멈출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시간을 작업 안에서는 명백한 물질로서 경험한다.

얼마 전에는 미국판 의 제안으로 배우 제이크 질렌할과 마고 로비를 연작에 참여시키기도 했다. 다른이들과 마찬가지로 두 사람도 커다란 물탱크 안에 들어가 몸을 누인 채 촬영에 임했다. 하지만 이건 대단히 이례적인 경우였다. 유명인이 작품에 등장하는 걸 꺼리는 편인지 묻고 싶다. 

키라 페로프 사실 유명인과의 작업은 처음이었다. 의 아트 이슈를 위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진행하기로 결정한 거다. 제이크는 큰 관심을 보였고, 마고 역시 잔뜩 흥분한 눈치였다. 이들이 워낙 열정적이었기 때문에 이렇듯 쉽지 않은 촬영을 제안하게 됐다. 그러니까, 사람을 거의 익사시키는 작업이었다.

빌 비올라 이런 거나 마찬가지다. ‘안녕하세요, 실례지만 한번 물에 빠져 죽어보실래요?”

키라 페로프 마고는 수영을 무척 잘했기 때문에 수월했다. 자긴 몇 번이고 더 할 수 있다고 씩씩하게 말하더라. 하지만 제이크는 어려움을 겪은 편이다. 복싱 영화(<사우스포>)를 마친 직후였기 때문에 가슴이 발달하고 폐활량이 커진 상태였지만 물 속에서 버티는 건 힘들어했다. 결국에는 해냈지만 말이다. 그런데 아마 또 다른 유명인과 작업을 하진 않을 것 같다. 잘 알려진 얼굴이 오히려 핵심을 가리고 주의를 흐트러뜨릴 수 있다.

빌 비올라 사실 다른 작품의 출연자도 대부분 극단 소속의 전문 배우이긴 하다. 예를 들면 ‘도치된 탄생’에 참여한 연기자(노먼 스콧)처럼. 결과물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키라 페로프 영상을 역으로 돌리는 작품인데, 그걸 감안해 연기를 했다. 보디 컨트롤이 탁월한 사람이라 모든 움직임을 철저히 계산했다. 무척 어려운 일을 해냈다.

배우들은 오디션을 통해 선발하나?

빌 비올라 그렇다. 상당히 많은 자료를 검토해야 한다.

오디션에서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용이 있다면?

키라 페로프 일단은 작품에 맞는 외모나 이미지를 검토한다. 그리고 눈빛에서 뭔가가 읽히는 사람을 고른다. 늘 성공적이지는 않아서 힘들게 뽑아놓고 후회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에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사람도 종종 만나게 된다.

빌 비올라 오디션 등의 세부 사항은 키라가 맡아서 진행한다. 나는 비전을 찾고 키라가 그걸 실현해주는 셈이다.

키라 페로프 배우들에게는 우리와의 작업이 연기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을 써먹을 기회가 되기도 한다. 시리얼이나 우유 광고를 위해 연기를 배우지는 않을 테니까. 우리는 배우들로 하여금 내면의 깊은 곳까지 걸어 들어가 감정의 중심에 닿도록 요구한다. 처음에는 관습적인 표현을 보여주던 사람도 의견을 나누다보면 점점 진실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건 매번 놀라운 경험이다.

두 사람은 배우자인 동시에 예술적인 동지이기도 하다. 둘의 협업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 혹시 작업을 진행하다가 의견이 갈리는 때도 종종 있나?

키라 페로프 나는 사진 아카이빙, 작품 프로듀싱, 각종 기획 및 프로젝트 조율을 담당한다. 그리고 이 작품이 과연 실현될 수 있을 타이밍인지 사전에 검토 한다. ‘순교자’ 같은 프로젝트가 충분히 가능하겠다 판단이 서면 구체적인 계획을 준비하는 식이다. 사실 빌은 현장에서도 뒤로 물러서서 자신의 아이디어에 빠져 있을 때가 많다. 아티스트의 관점에서 작업을 점검하고 발전시키는 거다. 하지만 카메라 감독과 의논하며 정확한 디렉션을 줄 사람도 필요하고, 그건 내 몫이 된다. 역할이 정확히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큰 갈등은 없다. 일종의 협업인 셈이다.

빌 비올라 물론 가끔은 견해가 어긋날 때도 있지만 이내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게 된다. 키라와 함께 일할 수 있다니 나는 무척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빌 비올라의 개인전은 국제갤러리에서 5월 3일까지 계속된다.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정준화
포토그래퍼
조영수
COURTEYS
KIRA PEROV, 국제갤러리(‘Water Martyr’, ‘Night Vigil’ 작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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