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공동체

W

멀찍이 서서 역사와 문명, 공동체를 조망하다가 성큼 걸어 들어가
지금 여기의 개인을 줌인하는 시선과 발걸음.
미술가 양혜규가 서울에 돌아왔다.

'상자에 가둔 발레' 앞에 선 양혜규 작가. 4 면의 벽 안에 인물들을 가뒀던 이전의 전시와는 달리 리움의 블랙박스에서는 마치 암막이 드리운 무대에 선 듯 하다. 나선을 그리는 바닥의 궤도는 맞은 편에 전시된 '성채' 로 이어진다.

‘상자에 가둔 발레’ 앞에 선 양혜규 작가. 4 면의 벽 안에 인물들을 가뒀던 이전의 전시와는 달리 리움의 블랙박스에서는 마치 암막이 드리운 무대에 선 듯 하다. 나선을 그리는 바닥의 궤도는 맞은 편에 전시된 ‘성채’ 로 이어진다.

“인터뷰는 그럼 ‘VIP 학생회’에 가서 할까요?”

누가 들으면 미술관 카페테리아 작명이 독특하다 여길 수도 있지만,

‘VIP 학생회’는 양혜규의 이번 리움 개인전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베를린 아트 포럼 페어로부터 의뢰받은 라운지 디자인 커미션이었던 이 작업은 작가의 구상에 따라 미술관이 섭외한 인물들로부터 대여한 의자와 테이블로 구성된다. 도시를 옮겨다니며 매번 실행될 때마다 그때그때 탈바꿈해온 이 아이디어를 양혜규는 ‘뱀파이어’라고 말한다.“몸을 바꿔 영원히 사는 셈이니까요.” (작가는 아르코미술관 김현진 디렉터가 내놓은 의자에 앉았고, 그 주변으로는 미술가 박찬경, 건축가 황두진,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빅뱅의 T.O.P 등의 인물이 서울 전시를 위해 빌려준 의자가 배치되어 있다). <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는 2001년 작인 이 작업, 그리고 보관할 곳 없어 난감하던 작품을 포장한 상태 그대로 새로운 작업으로 재탄생시킨 ‘창고 피스’ 같은 초기작부터 의류 행어 위에 전구와 일상적인 사물을 매달아 만든 ‘서울 근성’ 시리즈,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블라인드 작품의 최대 규모인 성‘ 채’ , 그리고 인공 짚풀로 엮은 구조물인 ‘중간 유형’ 시리즈까지, 연대를 아우르고 오감을 건드리는 양혜규의 작품을 모았다. 리움에서 개인전을 여는 한국 작가로는 서도호에 이어 두 번째다.

“개인전이라는 포맷 자체가 ‘너 할 줄 아는 거 다 해봐!’ 이런 느낌이 있어요.”

독일 유학 이후 20년 동안 베를린을 비롯한 여러 도시를 오가며 지내온 작가는 지난 1년 동안 서울에 머무르며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 타이틀은 인상적이지만, 이 전시장에서 코끼리와 시각적으로 닿아 있는 무언가는 입구의 코끼리 象 글자뿐이다. 문학과 철학이 던지는 화두를 넓고 깊게 파고드는 강점을 지닌 양혜규는, 조지 오웰의 수필 <코끼리를 쏘다> 그리고 로맹 가리의 소설 <하늘의 뿌리>에서 코끼리에 대한 개념을 착안했다. 제국주의 시대 상아 무역을 상징하는 이 동물은 파괴된 자연과 무너진 인간의 존엄을 상징하는 한편으로 동아시아에서는 서식하지 않지만 영험하고 고귀하게 여겨지는 상상의 존재다. 그리고 관람객들에게 ‘코끼리’는 일종의 맥거핀일 수도, 이 전시를 흥미롭게 이끌어주는 가이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시장 한가운데, 그것도 작품에 앉아서 진행된 인터뷰는 사방을 둘러 작품 사이를 오가면서 찬찬히 거니는 작가와의 산책 같았다.

'VIP 학생회'는 전시가 열리는 도시의 인물들에게 빌린 가구로 구성되는 작품이자 일종의 라운지다. 바뀌는 몸을 빌려 영원히 살아남는 아이디어다.

‘VIP 학생회’는 전시가 열리는 도시의 인물들에게 빌린 가구로 구성되는 작품이자 일종의 라운지다.

바뀌는 몸을 빌려 영원히 살아남는 아이디어다.

W Korea 리움 공간에 설치되면서 구작은 다른 뉘앙스를 얻고, 신작은 장소를 염두에 두고 제작한 것 같다. 

양혜규 리움의 블랙박스는 보통 미술관의 화이트 큐브와는 반대다. 다른 전시 때도 기존의 건축, 공간을 크게 변형하지 않고 살려서 작업하는 편이다. 이전 아니쉬 카푸어 전시를 봤는데 거의 하얗게 공간을 막고 둘러서 사용했더라. 나는 공간을 가리던 요소를 다 뜯어내고 비정형적인 부분을 그대로 드러내서 사용했다. 그라운드 플로어는 콘크리트 벽부터 접근을 시작했다. 마치 수직적으로 솟아 있는 바위산의 커다란 암벽같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많은 바람이나 기원을 새기는.

그럼 저 커다랗고 컬러풀한 형체가 사자인가(콘크리트 벽에는 콜라주 연작 액자와 배경으로 구성된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자춤- 신용양호자 #’가 배치되어 있다)? 

사자일 수도, 유령일 수도 있다. 그 안에서 어떻게 보면 눈코입도 볼 수 있고… 아 내가 얘기하면 재미없고 뭔가 남겨놔야 하는데(웃음). 관객들이 와서 찾겠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건 ‘코끼리 어디 있어?’일 거 같다.

제목에 넣기도 한 코끼리 象 자는 모양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지만, 사실 한자 문화권은 코끼리 서식지가 아니다. 보지 않고 어느 정도 상상하면서 리컨스트럭트 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자도 마찬가지인데, 중국, 한국, 일본, 인도 등 사자가 서식하지 않는 곳에 사자춤이라는 민속춤이 존재한다. 우리가 민족이나 토속이라고믿는 것들의 편재성, 그리고 그것들이 상상 속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거라는 점, 토착화 과정을 거쳐 받아들인 것들 속의 타자성을 거의 인지하지 못한다는 데 주목하게 됐다. 짚풀도 마찬가지고.

짚풀로 만들어놓은 커다란 구조물인 ‘중간 유형’ 시리즈가 이것과 연결되는 작업인 것 같다.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사원, 러시아의 이슬람 사원인 라라 튤립, 아스텍 피라미드 등은 대부분 그 땅에 있지만 현재 사용되지 않는 유산이다. 엄연히 거기 있지만 유령처럼 있는 요소 들을 생각했다. 그곳만의 고유한 문화로 여겨지는 편재성을 파고들다 보니 대표성과 연결짓게 되었다.

왼쪽부터, 작가의 신작인 '정지井址' 는 뿌리 공예에 바둑판을 결합했으며 '삼중 석회질 기하학'은 매듭 공예를 이용한 설치물이다.작가는 이처럼 고상하다고는 여겨지지 못하던 취향의 문화사를 연구하고 추적한다.

왼쪽부터, 작가의 신작인 ‘정지井址’ 는 뿌리 공예에 바둑판을 결합했으며

‘삼중 석회질 기하학’은 매듭 공예를 이용한 설치물이다.

작가는 이처럼 고상하다고는 여겨지지 못하던 취향의 문화사를 연구하고 추적한다.

전시장 한가운데에 앉아서 인터뷰를 하니 작품을 바로 볼 수 있어 좋다. 

구작과 신작, 옛날과 지금을 같이 보여주고 있는데 개인전이라는 포맷 자체가 어떤가 하면 ‘너 할 줄 아는 거 다 해봐’ 하는 느낌이다. 이런 작업은 거기서 판만 짜주고 남의 힘을 빌리는 셈이다. 행위를 만드는 사람과 그걸 짜는 사람의 입장을 바꾸는 재미가 있어서 개인전에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미술이나 조각 이런 걸 생각하다 보면 모양과 형태로 귀결되는 조형성에 집착하게 되는데 이 작업은 사실 풍경에 가깝고, 형태나 이런 것들로 함몰되는 얘기를 풀어볼 수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아이디어는 동일하지만 전시하는 도시마다 아주 다른 결과물이 나오겠다. 

가구라는 게 인체와 닮아 있기 때문에 여러 개 모이면 독사진이 아니라 그룹 사진이 된다. 그 도시의 사람들에게서 빌려온 가구이니 이것은 일종의 도시의 초상인 셈이다. 전시장에 온 관람객은 나름의 기준으로 의자를 고르고 앉는 순간 본인이 이 풍경의 일부가 될 거다. 아마 어린아이들은 이렇게 물어볼 거 같다. “이것도 미술이야?” 나이브하지만 필요한 질문이다. 다른 건 ‘아티(Arty)’해 보이는데 덜 아티한 작업이니까.

가구 대여자들의 섭외는 어떻게 했나? 미술가, 건축가부터 빅뱅의 T.O.P까지 다양하던데. 

모든 작품에는 표면으로 불거지는 양각이 있다면, 드러나지 않지만 베이스를 이루는 음각이 있다. 인물을 리스트업하고 문의하고 여러 이유로 거절당해 여기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가 이 작업을 이루는 음각이라고 생각한다. 연락했지만 허락을
받지 못했거나 기대했던 의자가 오지 않은 것도 옳은 표현이다. 내가 일종의 저자라면 저자의 역할이 극소화된 상태에서 타자들끼리 만나는 장이다. 각 도시에 대한 미술관의 지식과 사회적 위치가 반영된다는 점에서 조형성보다 사회성이 강한 작업이기도 하다. 미술 작품의 사회성에 대해서 우리는 종종 잊는다.

미술관에 들어오면 공간이 갖는 권력 구조나 오라 때문에 모든 것이 미학적인 경험으로 축소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 안에도 많은 사회성이 있다. 좋은 예가 초기작을 포장된 상태로 쌓아놓은 ‘창고 피스’일 거다. 저게 정말 창고에 있으면 너무 자연스럽겠지만 전시 공간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공주였던 애가 거지가 되고 거지가 공주 되는 역할 바꾸기, 개념적인 시프팅이 일어났다. 그러면서 예술 작품이 뭐냐 하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작품이 디스플레이된 상태만 보기 때문에 포장되어서 운송되고 저장되고 하는, 이런 생태계에 대해서는 잊고 있다.

그 생태계는 작가의 삶이나 활동과 유관하다. 특히 물리적으로 뭔가를 생산하는 미술 작가의 경우에 자신도 좌지우지되는 거다. 얘네가 계속 창고에 오래 있으면 스트레스 레벨이 올라가면서 책임감을 느끼니까(웃음). 작품이 관객과 만나고 소개되는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도 내 역할의 일부인 거고. 심지어 저장되지 못하고 버려진다면… 그 순간에 물신 숭배적인 믿음, 작업의 물리적 존재에 목매달아야 하는 부분이 건드려진다. 작업의 오브제성, 그리고 작업은 아이디어이며 정신이고 개념이라는 생각 가운데서 시계추처럼 오간다.

작가조차도 그런가? 

작가를 포함해 미술사적으로도 그랬다고 본다. 많은 개념적인 작품이 수집되었고, 원래 의도와는 다른 방식으로 숭배된다. 작가는 아무리 위대해도 개인이다. 특히 그 개인은 구조 안에서 초기에는 전형적인 모순을 경험한다. 활동이 많을수록 가난해지는 상태가 된다. 전시는 많이 들어오고 전시를 위한 장소는 있지만, 전시 끝난 작업을 둘 장소나 혹은 내 몸 누일 공간도 없을 때가 있다. 당장 다음 달 방세 낼 돈이 없는데 몇백만원 몇천만원짜리 예산을 이야기하는, 아이러니하고 초현실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작품에는 어시스턴트가 제공돼도 살림은 다 내 몫으로 떨어지면서 삶의 한쪽 면이 심하게 낙후되기도 하고. 열심히 하면 할수록 그 갭이 커지는 특정한 시기가 있다. 외국도 서른다섯 이후에는 지원 프로그램이 다 끊기기 때문에, 그때부터 마흔까지가 제일 힘든 것 같다. 그전에 속된 말로 ‘쇼부를 봐야’ 한다(웃음). 한국 개인전에 저 작업이 들어가 있다는 것 자체도 중첩된 의미가 있다. 소장품을 빌리고 포장해서 이 먼 여기까지 가져온 것도 능력이니까. 탄생 시 상황을 생각하면 역설적이다. 그때 누가 감히 얘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저 초라한 몰골을 하고 어떤 의미를 생산해내면서 혹은 의미를 증명하는 존재로서 삶을 살지… 그건 내가 만들어낼 수 없는 일이다. 좀 의인화하자면 쟤는 쟤의 삶을 살고 있다, 씩씩하게. 왜곡되거나 오해되는 순간도 있겠지만.

작품을 보관할 공간이 부족하던 작가는 초기작들을 상자에 담은 상태로 '창고 피스' 라고 명명했다.보여질 기회를 얻지 못하고 창고를 전전하던 이 작업은, 아이러니하게 새 삶을 얻어 미술관에 들어왔다.

작품을 보관할 공간이 부족하던 작가는 초기작들을 상자에 담은 상태로 ‘창고 피스’ 라고 명명했다.

보여질 기회를 얻지 못하고 창고를 전전하던 이 작업은, 아이러니하게 새 삶을 얻어 미술관에 들어왔다.

‘창고 피스’를 위한 내레이션은 누가 한 것인가? 

버마에서 망명해 한국에 살고 계신 분이다. 연설문의 낭독자를 써서 목소리를 사용할 경우, 어빌리티와 퍼스낼리티 두개를 다 전방위적으로 빌려온다. 이분은 나와 비슷한 나이로 나와 비슷한 기간인 20년가량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아왔다. 노동자였고 지금도 체류증을 가지고 살면서 활동가로 일하고, 밴드도 하고 사업도 하시고. ‘창고피스’ 연설문에 필요했던 어떤 타자성을 대표해주었다.

한편 ‘성채’ 안에서 상영하는 영상인 ‘쌍과 반쪽- 이름 없는 이웃들과의 사건들’은 3호선 버터플라이의 보컬 남상아의 목소리를 빌렸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출품한 작품이다. 처음부터 그 한국 내레이션은 상아 씨 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유일무이한 섭외 대상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상아 씨는 얘기 끝나니 알겠다고 가라고 하더라, 혼자 하겠다고. 내가 인격을 빌려왔다고 할 때 기대한 그 퍼스낼리티 그대로였던 거 같다. 내가 알짱거리면서 지적하고 고치고 할 필요가 없는 거였다, 그분한테는.

시각을 넘어서 청각, 촉각, 관객의 후각까지 이용하게 만드는 전시다. 그런데 미각은 빠져 있는 것 같다.

미각도 있다. 관객에게 뭔가를 먹게 하진 않지만(웃음). 주차장에 ‘바람에는 팔이 없다’라는 옥외 설치작이 있는데 동치미, 장류 같은 저장 식품, 그리고 세제를 사용했다. 우리가 ‘일’이라고 하는 사회적 활동 이면의 씻고 닦고 먹는 살림 영역이다. 전쟁이나 질병 같은 급박한 상황일 때 인간의 삶에서 일은 사라지고 살림으로만 축소되고, 그 안에 존재하는 생명력이 있다. 이런 급박함의 요소가 통조림인데, 통조림이 나에게는 일종의 타임캡슐이다. 오랜 시간 저장할 수 있다는 건,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해지는 급박함을 상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일상이 지속되는 속에도 있는 이런 급
박함, 전시라는 하나의 일이 완결된 이면의 음지 같은 걸 보여주는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옥외 설치작이 부엌의 공간이라면 바둑판에 뿌리 공예를 결합한 ‘정지’는 80년대 한국 거실의 오브제 같다.

한국 아저씨들이 좋아하는 사물이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도 흔하고, 서구에도 60년대에 저런 경향이 있었다. 기존의 메인스트림 미학이나 경향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사그라들 뿐 아니라 사사롭고 취향이 좋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던, 그런 걸 보듬어보는 것들을 많이 했던 일련의 작업 중 하나다. 수석이나 매듭, 분재의 세계도 마찬가지고. 그런 걸 연구해보고 추적해나가는 게 나에게는 유용했다. 카테고리적으로는 이 전시에, ‘정지’를 중심에 두면 다른 작업을 이해하기가 쉬울 거다.

편재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한국을 떠나 살고 있다가 들어와서 보면 한국 사회에만 편재한 문제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나.

너무 잘 보여서 탈이다. 나는 거의 내놓은 불평분자다. 독일에서도 유럽의 대부분 일이 마음에 안들고, 그렇다고 북미에 있으면 편하냐 그렇지도 않고. 그런 걸 제외하고 한국의 특수성이라면 상대적으로 아직 전문가들이 대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든다. 천재적인 성공 사례는 있는데, 이곳의 양분을 받아들여서가 아니라 개천에서 용 난 격이다. 이런 경우에 대해 환호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더라.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의식이 없으면 다음 세대도 달라질 거 같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 활동하는 데 큰 메리트는 없다. 특히 나같은 활동 패턴을 가진 사람에게는. 나를 유치하려는 노력이 없었다고 할까, 하지만 거꾸로, 내가 기업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술가기 때문에, 사회가 해준 게 없으니까 독립적으로 자부심을 갖고 뭔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불평은 계속 할 거다. 나뿐 아니라 내가 좋아하 는 작가들은 다 불평분자다.

한국에는 언제까지 있을 건가? 대답 안 하는 질문이다(웃음).

에디터
황선우
포토그래퍼
서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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