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훌렁 빠지는 줄 알았지, 이렇게 서서히 일어날 줄은 몰랐다. 어느새 약소해진 머리숱, 눈에 띄게 많아진 새치, 윤기를 잃은 머리카락까지. 전과 같지 않은 모발 때문에 툴툴거렸다면, 샴푸부터 바꿔야 한다.

OMG! 예견된 일이지만, 충격은 컸다. 꾸준히 대비해왔고, 주변 사람들의 경험담도 귀 기울여 충분히 새겼지만 이건 실제 상황. 늘 그렇듯 현실은 훨씬 더 매정하고 차갑다. 흰머리. 서른 중반을 넘기기 무섭게 내게서도 결국 ‘새치’가 발견되었다. 뽑아버리면 그만, 이라고 가볍게 말해버릴 문제가 아니었다. 발각된 한 마리 뒤로 셀 수 없이 많은 바퀴벌레 집단이 존재한다는 속설처럼 새치 한 올은 금세 두 올이 되고, 두 올 세 올 조금씩 늘어나다 어느새 백발이 되어버릴지 모를 일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머리카락이 빠지는 양도 늘어난 것 같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정신을 가다듬고, 보다 본격적이고 확실한 케어에 들어가야만 했다. 나는 가지고 있는 정보망을 총동원하여 ‘젊은 모발 사수’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가장 흥미를 끈 건 노푸(No Poo)다. ‘노 샴푸(No Shampoo)’의 준말인 노푸는 탈모나 가려움증 같은 여러 가지 모발&두피 트러블이 샴푸에 함유된 독성 물질로부터 기인한다는 데에서 착안, 말 그대로 샴푸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최근 텃밭 농사를 시작했을 만큼 친환경 라이프에 푹 빠진 나는 어쩐지 귀가 솔깃했다. 확인된 바는 없지만 할리우드의 대표 친환경주의자인 귀네스 팰트로와 조니 뎁도 몇 년째 노푸 중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더했다. 당장이라도 욕실의 샴푸를 내다버릴 만큼의 각오가 생기자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일단 ‘노푸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는 우츠기 류이치 의학박사의 저서, <물로만 머리 감기 놀라운 기적>부터 주문했다. 그는 처음부터 샴푸를 완전히 끊을 것이 아니라 출근하지 않는 주말 이틀만 물로 머리를 감다가 주 3일, 주 4일로 점차 횟수를 늘려가거나 샴푸의 양을 조금씩 줄여갈 것을 권했다. 온라인상에서 만난 노푸 선배들은 하나같이 베이킹소다를 필수품으로 꼽았다. <캐리비안의 해적>에 등장한 조니 뎁처럼 가닥가닥 ‘떡진’머리를 원하는 게 아니라면 자연스레 생기는 피지를 제거할 무언가가 필요한데, 베이킹소다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취향이나 모발 타입에 따라서는 마지막 헹굼물에 천연 식초를 타서 컨디셔너를 대신하기도 한다. 방법이 어려운 건 아니지만, 노푸에 성공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일단 노푸에는 씻는 맛을 만끽하게 해주는 거품도 없고, 향기도 없다. 처음 얼마간은(짧게는 2~3일부터 길게는 한 달가량) 소위 ‘개기름’이나 ‘떡짐’ 현상을 동반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성패가 좌우되는데, 이때를 잘 넘기고 노푸에 성공(혹은 적응)한 사람들의 찬사는 거의 간증에 가깝다. 실제로 우츠기 류이치 원장은 물로만 머리를 감은 뒤 두피가 두꺼워져 머리숱이 풍성해지고 머리카락 자체에도 생기와 탄력이 되살아남은 물론, (무려) 피부와 눈도 맑아졌다고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다. 오죽하면 포털사이트에서 ‘노푸’를 검색할 때 ‘노푸 부작용’이 동시에 뜰까. “특히 지성 두피라면 물이나 베이킹소다만으로 피지를 깨끗이 제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로 인해 자칫 각종 염증이나 탈모를 유발할 수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죠.” 더클래식 성형/피부 클리닉의 김범석 원장은 샴푸를 무조건 피하기보다는 노푸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샴푸의 독성 물질을 피하는 것’이 건강한 두피와 모발을 위한 최선책이라 설명했다. 그런데 대체 그 독성 물질이 뭔데?

가장 문제되는 건 바로 파라벤과 같은 강력한 방부제다. 병원에서 상처 소독에 사용하는 소독약조차 뚜껑을 열어둔 채 수주일 내버려두면 잡균이 들어가 하얗게 흐려지곤 한다는데, 샴푸와 린스는 고온 다습한 욕실에 수개월 이상 방치해도 변형이 전혀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이는 헤어 제품에 사용되는 방부제의 살균력이 소독약보다 훨씬 강력하기 때문인데, 덕분에 두피의 상재균(常在菌)마저 쇠약하게 만들고 결국 죽게 한다. 상재균이 줄어든 두피는 곰팡이나 여러 가지 잡균이 쉽게 달라붙어 두피와 모공을 손상시키고 모발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하여 결국 탈모의 원인이 된다. 계면활성제도 문제다. “대표적인 것이 소듐라우릴설페이트(SLS)와 소듐라우레스설페이트(SLES) 등의 음이온 계면활성제입니다. 이들 성분은 세정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풍성한 거품을 만들어 샴푸의 원료로 자주 사용되는데, 두 가지 모두 강한 알칼리성을 띠죠. 하지만 사람의 피부 보호막은 약산성으로 이루어져 이들 합성 계면활성제가 잘 헹궈지지 않으면 두피의 각질층을 무너뜨리고 내부로 침입해 모모세포를 공격하게 됩니다.” 모아름 모발이식센터의 이규호 원장은 필요 이상의 세정은 피부 보호막까지 파괴, 두피를 예민하고 약하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클래식 성형/피부 클리닉의 김범석 원장은 “좋은 샴푸인지 아닌지는 어떤 계면활성제가 사용되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덧붙였다.

암모늄라우릴설페이트는 비교적 위험도가 낮은 합성 계면활성제지만, 역시 코코넛 오일과 계란노른자에서 추출한 레시틴으로 대표되는 천연 계면활성제 쪽이 안정성 면에서는 한 수 위다. 마지막으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각종 실리콘 성분이다. 실리콘은 규석이라는 광물을 원료로 한 화합물로 식기의 재료로 사용할 만큼 비교적 안전한 물질. 샴푸에는 주로 디메치콘, 사이클로메치콘, 트리메치콘, 시클로펜타실록산 등의 성분이 사용된다. 하지만 이규호 원장은 실리콘 역시 장기간 노출될 경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실리콘은 조금만 써도 두피와 모발에 막을 씌워 모발을 부드럽게 만들고 모발끼리 서로 엉키지 않게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영양분과 산소가 흡수되지 못하는 장벽이 생긴다는 뜻이기도 하죠. 독소와 노폐물 배출이 어려워짐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최근 들어 무실리콘 처방의 샴푸가 주목받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다. 시중에서 무방부제, 무합성 계면 활성제, 무실리콘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온전히 ‘착한’ 샴푸를 찾는 것은 ‘잘생기고 능력 있고 착하기까지 한 남자’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제아무리 순하다는 제품도 전 성분표를 확인하면 최소 15~20개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보며 일일이 시클로펜타실록산이니 소듐라우릴설페이트이니 하는 성분을 구분하고 있자니 차라리 노푸가 쉽게 여겨질 정도다. 한 가지 팁을 주자면, 성분 표시표는 짧고 간략할수록, 그리고 앞서 언급한 유해 성분들이 아예 발견되지 않거나 있다 하더라도 비교적 뒤쪽에 자리할수록 포뮬러가 순하다. 무엇보다도 시중에서 정상적인 경로로 판매되고 있는 제품이라면 이미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심의기준을 통과한 것. 인체에 무해할 만큼의 미량은 충분히, 그리고 꼼꼼히 씻어내기만 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론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도 최소 반년 이상 꾸준히 사용해야 그 진가를 경험할 수 있는데, 이는 머리카락이 빠지고 새로 나는 데 평균 6개월이 소요되기 때문. 끝으로 모범 답안만을 콕콕 집어 주는 족집게 과외 선생님마냥 쉽고 친절한 추천 리스트도 준비했으니 참고한다.

노푸를 대신할 비교적 순한 샴푸 베스트 10

 

1. Dr. Bronner’s 그린티 퓨어 캐스틸 솝
정제수 포함 10개 이하의 성분으로 이루어졌을 만큼 심플하다. 올리브 오일과 코코넛 오일을 계면활성제로 사용했으며, 제주산 녹차 향을 더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용할 수 있는 멀티 클렌저. 238ml, 1만2천5백원.
2. Aveeno 액티브 내추럴 퓨어 리뉴얼 샴푸

설페이트류 대신 코코넛과 감자 전분 등 식물에서 뽑은 고가의 천연 계면활성제를 사용. 보습 성분이 비교적 풍부하며, 풍성한 거품이 난다. 311ml, 1만9백원.
3. Aromatica 아임 트루 내추럴 샴푸
설페이트, 파라벤, 합성 향 무 첨가. 인증받은 유기농 사탕무 뿌리에서 추출한 천연 보습 인자를 듬뿍 넣어 샴푸 후에도 모발이 건조해지지 않는다. 은은한 꽃향. 500ml, 1만5천원.

 

4. Ducray 샴푸엥 엑스트라 두 

저자극 수분 샴푸. 코코넛에서 추출한 천연 계면활성제와 화학 계면활성제를 적당히 믹스해서 사용, 방부제로는 비교적 안전한 소듐벤조에이트를 사용했다. 무실리콘 처방. 300ml, 1만8천원.

5. A24 프리미엄 호호바 티트리 샴푸

정제수 대신 알로에베라 잎 추출물과 편백수를 사용했다. 파라벤, 미네랄 오일, 설페이트류의 첨가를 엄격하게 배제, 다양한 유기농 천연 오일을 함유해 영양감을 더했다. 500ml, 3만2천원.

6. Melvita 엑스퍼트 리페어링 샴푸 

에코서트와 코스메비오의 인증을 받은 유기농 샴푸. 카멜리아 오일과 로즈힙 오일 등을 보습 성분으로 사용, 건조하고 손상된 모발용으로 적합하다. 설페이트 프리 처방. 200ml, 2만3천원.

7. Burt’s Bees 베리 볼류마이징 샴푸
화학적 계면활성제를 배제한 처방. 구성 성분 가운데 99.6%가 자연 유래 성분으로 이루어졌다. 석류 씨앗 오일을 비롯한 보습 성분이 풍부하다. 295ml, 2만7천원.
8. CNP 더마-스칼프 샴푸

피부와 흡사한 약산성 처방이 눈에 띈다. 화학적 계면활성제와 식물성 천연 계면활성제를 고루 사용했으며, 페퍼민트, 티트리 오일 등을 더해 진정 효과를 꾀했다. 무실리콘 처방. 250g, 2만3천원.
9. Lea Journo by Belport 하이드라-리치 하이드레이팅 샴푸
코코넛 오일에서 유래한 음이온 계면활성제를 주로 사용한 리아 주르노 보습 샴푸. 파라벤계 방부제가 발견되지 않는다. 냉압착 방식으로 추출된 최고 등급의 플럼 오일을 보습제로 사용했다. 300ml, 4만5천원.
10. Dewytree 7무 피토 에너지 샴푸
pH6.5 이하의 약산성, 저자극 듀이트리 샴푸. 파라벤, 설페이트, 실리콘, 미네랄 오일, 트리에탄올아민, 합성 색소와 합성 향을 첨가하지 않았다. 거품도 풍부한 편. 480ml, 3만8천원.

 

Q. 샴푸의 강한 세정력으로 인해 각질층이 파괴되면 화학 성분이 피부에 쉽게 침투되어 혈액으로 바로 흡수된다?

A. Yes. 샴푸의 주성분인 계면활성제는 노폐물을 제거하는 동시에 두피의 지방막을 녹이고, 세포 내의 단백질을 변성시킬 수 있다. 강력한 계면활성제로 인해 방어막(지방막)이 허물어진 상태에서 충분히 헹궈내지 않으면 머리를 감은 뒤에도 샴푸의 다양한 화학 물질이 두피에 남아 모공을 통해서 계속 흡수될 수 있다. – 이규호 (모아름 모발이식센터 대표원장)

Q. 모근을 통해 독성 물질이 흡수되어 심장, 간, 폐, 뇌까지 전달 되면 암을 유발할 수 있다?

A.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거품 생성 용제로 사용되는 다이옥신의 경우 독성이 매우 강해 인체에 장시간 노출 시 농도에 따라 기침, 두통, 현기증, 구토, 설사를 일으킬 수 있으며, 다량 노출 시 신장 및 신경계 손상을 초래한다. 점도 증진제나 발포제 등의 용도로 쓰이는 코카마이드 디에탄올아민 또한 발암 물질로 규정되었으며, 방부제로 쓰이는 포름알데히드와 파라벤류의 합성 방부제 성분은 에스트로겐을 모방하는 물질로 유방암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남성의 경우 정자수의 감소의 영향을 주는 등 생식계 기형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 김범석 (더클래식 성형/피부 클리닉 원장)

Q. 샴푸에 흔히 사용되는 계면활성제에는 어떤 것이 있나?

A. 음이온 계면활성제인 소듐라우릴설페이트(SLS)와 소듐라우레스설페이트(SLES)가 대표적. 기포력과 세정력이 강하고 비교적 단단한 거품을 만들어 자주 사용된다. SLS는 가공 과정에서 에톡실화를 거치며 해로운 부산물인 다이옥산을 생성한다. SLES에는 다이옥신뿐만 아니라 에틸렌옥사이드도 함유되어 있는데, 이 역시 발암 물질에 해당한다. 샴푸에는 보통 100g당 17g이 함유되어 있다. 그 밖에 암모늄라우릴설페이트(ALS), 암모늄라우레스설페이트(ALES) 등이 있다. – 이규호 (모아름 모발이식센터 대표원장)

 

Q. 샴푸에는 ‘충분히 헹구지 않을 시 탈모나 염증 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라는 주의사항이 있다. 샴푸의 어떤 성분 때문인가?

A. 샴푸의 주요 성분인 합성 계면활성제(10~20% 함유)는 두피를 건조하게 만들고 각질층을 파괴시키는데, 이것이 지속되어 모낭이 손상될 경우 탈모로 이어질 수 있다. 모발 유연제로 사용되는 디메치콘을 비롯한 실리콘 성분 등도 모공을 막아 탈모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김범석 (더클래식 성형/피부 클리닉 원장)

 

Q. 달걀흰자에 샴푸를 떨어뜨려 희석했을 때 달걀흰자의 색이 변하면 화학계 계면활성제가 섞인 것이다?

A. 천연 계면활성제의 경우 합성 계면활성제에 비해 분자가 크고 기포력이 좋지 않아 단백질을 파괴시키지 않고 노폐물만 제거하는 반면, 합성 계면활성제는 유화, 용해 작용으로 피부의 지방막을 녹이며 세포 내의 단백질을 변성시킨다. 따라서 단백질을 주성분으로 하는 달걀흰자를 통한 천연 샴푸 구별법은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 이규호 (모아름 모발이식센터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