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시도를 사랑해온 더블유는 지난 10년간 그랬듯, 창간 10주년 역시 좀 남다른 방식으로 기념하자고 마음먹었다. 젊고 재능 넘치는 영화감독들, 그리고 빛나는 배우들을 모아 세 편의 단편영화를 찍었다. Mag. & Movie 프로젝트 두 번째, <내 노래를 들어줘>

<W Korea> 창간 10주년 기념 단편영화 프로젝트 <여자, 남자>는 

3월10일부터 4주간 KT&G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상영됩니다.
관람 방법은 3월 2일, 더블유 홈페이지 www.wkorea.com 과 

SNS 채널에서 트레일러와 함께 확인하세요!

 

골드 자수 장식의 네이비 색상 브라스밴드 재킷과 블라우스, 와이드 데님 팬츠는 모두 구찌, 심플한 디자인의 로즈 골드 소재 티파니 T 와이어 브레이슬릿과 링은 티파니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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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 신연식

주연 | 크리스탈, 서준영

 

방학 기간인데다 비가 내리는 일요일이었다. 당연한 일일 텐데, 대학 캠퍼스는 오전부터 한밤처럼 한산했다. 하지만 본관 지하에 마련된 실용음악과 스튜디오만큼은 예외였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정해진 스케줄을 좇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 이곳에서는 신연식 감독의 단편 <내 노래를 들어줘>의 촬영이 진행 중이다. 주연을 맡은 크리스탈이 마이크 앞에 앉아 귀에 선 노래를 흥얼거린다. “점점 일하기 싫어져 / 처음 정산 받을 때의 그 감동, 그때 그 감동 잊지 못해. 오늘도~” 아무래도 f(x)의 곡은 아닌 것 같다. 낙서 수준의 가사는 물론이고 오락가락하는 멜로디도 난처한 수준이다. 게다가 가만히 들어보면 배우가 일부러 음정을 망가뜨리고 있는 눈치다. 본명을 공유하고 있긴 하지만 영화 속 캐릭터는 크리스탈과 아예 별개의 인물이다. 인기 절정의 배우인 ‘정수정’은 자작곡 ‘첫 정산 받은 날’로 가수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음악적 재능이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 사실을 스스로가 모른다는 거다.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꼬박 3개월 동안 진심을 담아 쓴 가사라는 설명에, 앨범 제작을 돕고 있는 뮤지션이 그만 울컥하고 만다.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해야지 가사는 왜 써?” <내 노래를 들어줘>의 음악감독이기도 한 김신일의 연기가 썩 능청스럽다.

 

서준영이 입은 화려한 앰블럼 장식의 네이비색 니트 스웨터는 구찌 제품.

서준영이 입은 화려한 앰블럼 장식의 네이비색 니트 스웨터는 구찌 제품. 

 

 

묘사에 과장이 심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신연식 감독은 수정이 무척 사실적인 캐릭터라고 말한다. “제가 아는 실제 사례들에서 설정을 빌려왔으니까요.” 가장 감동적인 기억이 첫 정산이라는 고백도, 굳이 레코딩 스튜디오를 빌려 3개월 동안 가사만 쓰고 왔다는 경험도 전부 누군가의 실화라는 것. 물론 그 ‘누군가’들의 이름은 끝내 밝히지 않았지만 말이다. 연출자는 수정이라는 인물(그리고 수정이라는 인물을 그리는 데 힌트를 준 사람들)을 놀리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고 했다. “귀엽잖아요. 알고 보면 굉장히 순수한 애인 거예요.” 가수로 뿐만 아니라 연기자로서도 착실히 경력을 쌓아가고 있는 크리스탈은 더 나은 대안을 떠올리기가 어려운 캐스팅이었다.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톱스타 캐릭터에 이 배우는 도도한 고양이 같은 매력을 보탰다.

이야기가 새로운 진전을 맞는 건 밴드 멤버 중 한 명인 지소가 나서면서부터다. 이 역할은 영화 <파수꾼>과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 <비밀의 문> 등으로 알려진 서준영에게 돌아갔다. 그는 수정의 조악한 가사를 번역 수준으로 다듬고 적절한 멜로디를 붙여 그럴듯한 노래를 완성해낸다. 그런데 감독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서준영은 사실 더 욕심이 난 캐릭터가 따로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바로 배우 김준형이 맡은 수정의 매니저였다. 굳이 따지자면 조연이지만, 입체적이고 표현할 여지도 많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오히려 그에 비하면 시나리오상으로는 지소가 심심한 것 같아요. 내내 멋있는 말만 하고요.” 솔직하면서도 날카로운 의견이다. 의논 끝에 연기자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제가 양동근 선배를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그 느낌을 빌려와보면 어떨까요? 수줍게 머뭇거리고 말도 살짝 어눌하게 하고.” 며칠 후 현장에서 수정과 지소가 된 크리스탈과 서준영의 모습을 확인했다. 무뚝뚝한 듯하지만 은근히 무른 부분을 감추고 있는 여자와 소극적인 듯하나 의외로 사람을 움직일 줄 아는 남자가 보기 좋은 앙상블을 이루고 있었다.

 

크리스탈이 착용한 로즈 골드 소재의 티파니 T 와이어 브레이슬릿은 티파니, 아이보리 색상의 실크 블라우스는 구찌 제품.

크리스탈이 착용한 로즈 골드 소재의 티파니 T 와이어 브레이슬릿은 티파니, 아이보리 색상의 실크 블라우스는 구찌 제품. 

 

 

“어, 지금 좋다.” 신연식 감독이 흡족하다는 듯 추임새를 넣는다. 지소가 건반 앞에 나란히 앉은 수정에게 조심스러운 설명을 이어가는 장면이었다. 대사를 마친 서준영의 얼굴에 뿌듯한 표정이 스치려는 찰나, 연출자가 한마디 덧붙인다. “아니, 준영이 말고 크리스탈….” 지금 크리스탈은 그냥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넘겼을 뿐이다. “와, 다음에는 나도 여자 배우로 태어날 거야!” 남자 주인공의 투정에 촬영장 분위기는 좀 더 즐거워진다. 이 광경을 지켜본 제삼자의 의견을 묻는다면? 그러니까… 감독이 여자 주인공을 좀 편애한 건 사실이다. 미모 때문이 아니라(그 이유도 아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애초의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준 까닭이다. “예상보다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어요.” 서준영의 재능이야 신연식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크리스탈은 발견의 즐거움을 안겨준 경우다. 물론 여기에는 서준영의 배려도 크게 한몫을 했다. 그는 혼자 도드라지려고 애쓰기보다는 전체의 그림을 먼저 생각하며 상대역과의 호흡을 조율한다. 말투부터 스타일링까지, 자신의 캐릭터가 너무 멋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배우는 확실히 드물다. 그런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문득 흘린 말은 또 지나칠 정도로 멋졌다. “편안하게 연기를 하려고 해요. 그렇게 편해지기 위해서 늘 긴장하고요.”

신연식은 현장 진행의 속도가 남다른 감독이다. 차가 식기 전 적장의 목을 베어오겠다던 관우처럼 저녁 식사 전에 주연 배우들의 촬영을 끝낼 계획이라고 하더니, 실제로 자신의 말을 지켰다. “다 끝난 거예요?” 오히려 크리스탈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을 정도다. 주섬주섬 철수를 하는데 문득 한 가지가 궁금해졌다. 지소의 도움으로 완성된 수정의 노래는 과연 어떤 느낌일까? 아직 레코딩이 이루어지기 전이인지라 확인 가능한 건 가사뿐이었다. ‘정말 자신 있나요. 내일, 오늘과 같을지 / 서로 자신 없다면 우리 아무런 말 마요 / 나도 정말 자신 없어요.’ 영화가 완성되고 나면 이 문장들에 어떤 멜로디가 붙었는지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