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움은 우연히 얻어지기보다 개척하고 쟁취하는 사람이 누리는 가치다. 가수와 배우를 넘나들고, 나이에 얽매이지 않는 엄정화의 지금을 보면 분명 그렇다.

스티치 장식의 가죽 재킷은 Prada, 자수 장식이 돋보이는 드레스는 Christopher Kane by 10 Corso Como, 레이스 장식 스틸레토 힐은 Brideandyou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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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녹색의 퍼 재킷은 Lanvin, 록적인 체인 반지는 H.R. 제품. 핫 핑크색 보디수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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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이 커서 신기했어요. 난 항상 여기 있었는데… ”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기획이 이렇게까지 큰 반향을 일으킬 줄은 제작진도 시청자도, 그리고 출연한 엄정화도 몰랐던 일이다. 엄정화는 자신의 말처럼 ‘항상 여기’ 있었다. 최근작부터 떠오르는 것만 짚어봐도 <관능의 법칙> <댄싱 퀸> <베스트셀러> <인사동 스캔들> 같은 영화들을 한두 해마다 꾸준히, 또래 여배우 누구보다 근면하게 찍어오며 계속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하지만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춤추며 노래하는 그녀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고, 우리는 1월의 첫 토요일 저녁에 다시 한번 익숙하던 ‘가수 엄정화’를 만날 수 있었다. 지누션의 곡에 피처링한 ‘말해줘’의 친숙한 멜로디가 시작될 때, 90년대의 추억은 고스란히 소환되었다. 그리고 어떤 기사에도 악성 댓글이 달리기 때문에 잘 읽지 않는다는 엄정화는 ‘토토가’에 대해서만은 훈훈한 반응들을 접하고 약간 어리둥절해 있었다. “좋았다, 멋있었다, 고맙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는데 아마 보는 분들이 그 음악과 함께했던 시절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어서였던 것 같아요.”

90년대 음악이 지금의 30, 40대들에게 ‘좋은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줬다면, 그건 엄정화에게도 마찬가지다. 3집 ‘배반의 장미’, 4집 ‘포이즌’과 ‘초대’, 5집 ‘몰라’ ‘페스티벌’ 때까지 90년대 후반에 대중적 인기의 정점을 누렸으니까. 윤일상, 김창환, 주영훈 같은 작곡가들이 만든 댄스 뮤직의 전성기였다. 그리고 엄정화의 21세기는 가수로서의 디스코그래피보다 배우로서의 필모그래피를 빼곡하게 채워가는 시간이었다. 2004년의 8집 앨범과 2006년의 9집 앨범은 정재형, 히치하이커, 방시혁 같은 작곡가들과 새로 손잡고 실험적인 변화를 시도해 긍정적 평가를 얻었지만 그녀의 메가 히트곡만으로 노래방 1시간은 거뜬히 보낼 수 있을 90년대의 전성기는 분명 지난 다음이었다. 하지만 2009년, YG에서 프로듀스하고 빅뱅의 T.O.P이 랩 피처링을 한 는 다시 한번 엄정화의 저력을 보여줬다. 아마 토토가의 많은 노래 중 그녀의 ‘포이즌’이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한 데도 엄정화의 무대가 가진 흡인력, 사람들이 느끼던 갈증이 작용했을 것이다. 올해 마흔일곱인 엄정화는 마흔을 넘긴 순간부터 늘 마지노선에 서 있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난 시간을 지나왔으니까요. 어떤 뜨거운 시간에도 분명 끝이 있다는 걸 겪었어요.” 하지만 스물일곱이나 서른일곱 살에게도 흔치 않을 근사한 팔 근육을 가진 그녀는, 그 선을 매번 조금씩 넘어간다. 그리고 불쑥 다시 여왕 같은 모습으로 무대로 돌아와 춤을 출 거다. 나이야 어쨌건 간에, 우리가 아는 엄정화는 지난 20년 동안 늘 그랬으니까.

‘토토가’ 방송이 꼭 1주일 전이었다. 한 주를 어떻게 보냈나?

상상 외로 반응이 커서 신기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기분이붕 뜨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말이다. 무대에 선 지는 오래됐지만 난 항상 여기 있었는데 갑자기 다시 관심을 받으니까…(웃음) 30, 40대들이 한창 즐겁게 추억하는 그 시기에 밀착되어 있던 노래들을 모았기 때문에 그런 감성들이 부딪쳐서 반응이 컸던 것 같다. 녹화 4~5일 전에 결정돼서 급하게 준비했는데 하길 정말 잘했다. 새해를 기분 좋게 열었다.

처음에는 출연하지 못할 상황이었다고 들었다.

영화 촬영 중이라 스케줄도 빠듯하고, 집중해야 하는 시기라 아쉬워하며 거절을 했다. 그런데 지누션의 션에게 연락이 왔다. 무대에 꼭 함께 서자고. 션은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나 스스로도 ‘포이즌’이나 ‘초대’를 방송으로 보여주는 건 마지막이 될 것 같았다. 나에게도 그 시기가 젊고 인기가 좋을 때였으니까 그 무대를 재연한다는 게 큰 의미가 있었다.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미련이 남더라.

거의 매년 당신의 영화를 봐왔지만, 오랜만에 노래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무대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반응들이 기뻤다. 정말 오랜만의 무대였지만 너무 많이 불렀던 노래, 많이 섰던 무대를 몸이 다 기억해내더라. 그래 이건데, 이거야 하는 느낌이 다시 들고. 에너지를 받은 느낌이었다. 나 뿐 아니라 그날 가수들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표현할 수 없지만 다들 그 뜨거움을 경험한 것 같다.

‘포이즌’이 다시 음원 차트 1위에 올랐더라. 1998년 곡이 2015년에 1 등을 한 거다. 기분이 어땠나.

평소에는 기사가 나갔을때 댓글을 안 보려고 한다. 보통 좋은 말이 없으니까. 그런데 ‘토토가’에 관련된 기사에는 나쁜 댓글이 하나도 없어서 신기했다. 좋았다, 멋있었다, 고맙다는 반응들이었는데 보는 분들이 자신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어서였던 것 같다. 90년대에는 한 번 히트한 노래는 서너 달은 들을 수 있었다. 어떤 시절을 떠올렸을 때 그래서 대표되는 곡들이 있는 것 같다. 건모 오빠나 내 노래 같은… 요즘은 유행의 사이클이 굉장히 빠르고, 가사들도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져서 어린 세대들에게 나중에 어떤 추억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으르렁’이나 ‘빨개요’ 같은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며 젊은 날을 떠올리며 뭉클해질 수도 있을 거다(웃음).

당시의 ‘프렌즈’ 댄스 팀을 다시 모아서 함께 공연을 했다. “프렌즈 없는 나의 무대는 의미 없다”라는 코멘트를 했는데 의리

와 결속이 대단한 것 같다.

진짜 좋을 때 그 한 시절을 같이 보낸 사람들이다. ‘포이즌’부터 ‘다가라’까지였으니까 97년부터 2004~5년까지 함께했다. 정말 핫할 때 핫한 사람들을 다 모은 팀이었기 때문에 다른 여가수들이 많이 빼가기도 했다(웃음). 동철(스킨헤드 스타일의 멤버 서동철)은 너무 상징적인 사람이라 이정현 씨 무대에 가끔 올라간 것 외에 거의 다른 가수 무대에 서진 않았지만. ‘초대’나 ‘포이즌’을 하면서 이들 없이는 불가능했다. 촉박한 일정으로 결정하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흔쾌히 수락해줬다. 그들도 그들 인생에 아주 큰 부분이었으니까. “정화 씨랑 무대 올라가는 일은 우리 인생에 이제 다시 없을 줄 알았는데 너무 반갑다”라고… “근데 춤은 돼?” 하니까 구를 수도 있다고 하더라(웃음).

본업들이 따로 있을 텐데, ‘프렌즈’ 팀원들은 요즘 어떤 일을 하며 지내나?

다들 성공했다. 클럽이나 바 같은 자기 사업을 잘 꾸리고 있다. “정화 씨 덕분에 이렇게 성공한 거야”라고 얘기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정말 기쁘다. 가끔 안부 주고받으며 지냈는데, 2007, 8년 즈음 한창 영화 일만 하고 있을 때는 내가 술 마시고 전화해서 울 때도 있었다. 이 친구들이랑 같이 하던 때가 그리워서(웃음).

디스코그래피를 쭉 살펴보면, 90년대 후반에 대중적 인기의 정점을 누린 뒤 2000년대 들어서 음악적으로 달라지려는 시도를 했다. 2004년의 8집, 2006년에 내놓은 9집은 지금 들어도 세련됐다.

정성 들여서 만들었고 나도 애착이 가는 앨범들이다. 변화를 줘야겠다는 생각에 내가 하고 싶은 걸 시도했는데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진 못했지만 그렇게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성취감도 느꼈고 즐거웠다. 소수지만 좋은 시도라는 평가도 얻었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대중이 지금 좋아해주는 것을 충족시키면서 얼마만큼 달라질것인지가 배우건 가수건 늘 고민하는 부분 같다.

나 역시 아티스트의 어떤 부분을 사랑하다가, 그게 변했을 때 오는 생경한 느낌이 싫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달라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 머물러 있다면 그것대로 곤란한 일이니까. 그 접점을 잘 만나야 한다. 그런데 연기는 오히려 해오던 배역이나 스타일을 의식하지 않고 확확 바꾸는 게 좋다. 노래는 대중적인바탕 안에서 실험도 해보고, 색깔을 입히며 변화를 주는 게 맞는 것 같고.

9집은 정재형이나 히치하이커, 방시혁, 페퍼톤스 등의 작곡가와 일했고, 가장 최근의 앨범은 YG가 처음으로 프로듀스한 외부 가수의 앨범이었다.

나 혼자서는 생각 못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여러 사람 만나서 아이디어도 얻고 상의도 하고 그러면서 답을 찾거나 명확해지는 문제들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든든한 뮤지션들과 고민을 나누고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게 복인 것 같다. 진심으로 조언을 해주는 주변 동료들에게 늘 귀를 열어놓고 있다.
탑이 래퍼로 피처링한 ‘D.I.S.C.O’는 아이돌과 누나뻘 여가수의 첫 콜라보였다. 그 후로 이효리와 탑의 MKMF 무대, 백지영과 옥택연의 ‘내 귀에 캔디’가 등장해 트렌드를 만들었다.

뭘 하면 항상 처음이다(웃음). 나도 그런 걸 즐긴다. 탑이어서 참 좋았다. 테디랑 함께 일하는 것도 재밌었고 지드래곤이 작곡한 곡도 내가 참 좋아한다. 앞으로도 주변의 재능 있는 뮤지션들이랑 함께할 수 있는 재미있는 작업이 무궁무진할 거 같다.
가수로서 더 보여주고 싶은 게 여전히 많은가.

지난해 가을부터 음반을 준비하고 있다. 시기가 딱 중요한 건 아니니까 차근차근 준비해서 보여주려고 한다.
배우일 때와 가수일 때 다른 자아가 발현되나 어떤가?

의식적으로 다른 스위치를 끄려고 하거나 켜려고 하지 않는데 자연스럽게 전환이 되는 것 같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배우로서 촬영 현장에 가면 난 배우고, 무대에 설 때는 또 느낌이 굉장히 다르다. 노래도 연기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 깨우치면서 체득한 부분이다.

 

조형적인 스트랩이 시선을 끄는 저지 소재 드레스는 Mugler by Mue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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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지치지 않고 일해왔다. 그러면서도 평판이 좋다. 당신과 함께 일한 사람들은 다들 좋은 이야기를 한다.

나도 한창 어리고 바쁠 때는 짜증이 많았다. 원하는 만큼 무대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 많았으니까. 언젠가 새 앨범으로 컴백하고 첫 무대였는데 새로운 콘셉트의 의상 촬영에 너무 많은 요청을 받은 일이 있다. 거기에서 폭발해서 촬영을 일체 거절했는데, 스케줄 끝내고 오면서 그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 하질 못하겠더라. 그분들은 자기 일에 충실한 거고, 나는 내 일을 하면서 주목받아서 좋은 건데 인간 대 인간으로서 잘못된 태도였다 싶어서 마음이 안 좋았다. 가능하면 내 일을 즐기면서 사람들하고도 잘 지내면서 살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고, 다행히 일의 피로감에서 빨리 헤어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운이 좋기도 했고, 내가 이 일을 진짜 좋아하기도 하고.



여자 연예인이 까다롭게 굴면 주변은 힘들지만 자기는 편해지는 그런 게 분명 있는데.

그냥 그게 내 성격인 것 같다. 까다롭게 굴어서 사람들이 위해주는 식은 불편하다. 좋게 좋게 대해주면 사람을 쉽게 생각하는 부분은 안타깝다. 신경질 낼 줄 몰라서가 아니라 존중해주는 건데, 그걸 못 받는 사람은 그냥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구나, 한다.



그런 ‘좋게 좋게’ 하는 성격이라 <슈퍼스타K> 심사위원 같은 건 안 맞았을 것 같다.

갑상선 수술을 하고 갑작스럽게 출연했다. 목이 채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프로그램에 나가니까 스스로 당황스러웠다. 소중한 음성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거였나를 절실하게 깨달을 때였다. 내 자신이 그런 시기이다 보니 도전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절박함이 더 많이 보이더라. 방송에서 재밌게 여길 만한 날카로운 심사평을 할 마음이 아니었다. 제작진도 이런 캐릭터로 가달라는 억지스러운 요청을 하진 않았고, 칭찬하고 격려하고 할 수 있다고 북돋워주는 게 나에게도 남에게도 좋다. 네거티브한 소리를 들으면 움츠러들거나 내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니까. 그래서 내 식대로 격려하는 심사평을 주로 했고, 앞으로 아마 어디든 다시 심사위원으로 출연하는 일은 없을 거다(웃음).

수술 이후 건강 관리는 더 하게 된 거 같다. 방송에서도 팔 근육을 보고 놀랐다는 사람이 많다.

예전에 비해 근육량이 늘었다. 원래 운동해서 근육 있는 몸을 좋아하는데 요즘 찍는 영화에서 킥복싱하는 장면도 있고 해서 틈틈이 운동을 했다. 웨이트 트레이닝, 부트캠프, 요가도 했고 요즘은 정재형이 서핑을 해서 같이 시작하게 됐다. 원래 관심이 많았는데 친한 친구와 같이 배울 수 있어 즐겁다. 이제 더 나이 들면 힘들겠지, 싶어서 뭐든 바로바로 해보려고 한다.



나이에 대해 자주 의식하나?

내 주위 친한 친구들은 거의 음악하는 사람들이다. 재형이, 동률이 다 결혼도 안 했고 다들 철부지라… 그런 거에 대해서 전혀 조바심을 느끼지 않고 지냈던 것 같다. 우리끼리 만나면 나이 얘기 안 하니까(웃음). 그런데 기사가 나가면 이름 옆에 항상 나이가 실려서 낭패다. 이제 나이 먹는 건 어쩔 수 없으니 즐기면서 멋있게 가야 하는 거 같다.



앞에서 멋있게 가주면, 뒤에 따라가는 사람들이 편해지는 것도 있다.

그 힘이 얼마나 큰데. 나도 한두 살이라도 많은 분 중에 멋있게 자기 길 가는 분들을 보면 기분이 좋다. 최화정 언니의 변함없는 좋은 피부와 사랑스러움을 보면서도 힘을 얻는다.



나이에 대한 편견은 모두에게 지워지는 짐 같은 건데 이상하게 공고하다.

시간은 공평한 거고, 언젠가는 다 그 나이가 된다. 어릴 땐 그 시간이 자기에게만 안 올 것처럼 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나이에 많이 얽매이는 것 같다. 나도 30대 중반 넘으면 배우 더 이상 못할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지 않나. 다행히

그 순간순간 잘 헤쳐나가고 있는 것 같다.

 

요즘은 40대 후반에도 근사한 모습인 여배우가 많다.

내 또래들이 편견이 많은 나이를 지나면서 하나씩 하나씩, 깨고 격파하면서 넘기는 것 같다. ‘여기서 멈추지 않아도 돼, 이렇게만 할 필요는 없어, 이보다 더 할 수 있어, 그래 해지네’ 하면서. 

 

가벼운 프로젝트나 본인 분량이 많지 않은 영화도 가리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얘기가 있고, 시나리오가 재밌으면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여태까지 일을 쉬지 않고 다양하게 할 수 있었

던 것도 이미지나 이런 것에 너무 신경 쓰고 고르지 않아서 가능했을 거다. 처음부터 가수랑 병행해서인지 내가 재밌게 읽은 시나리오라면 역할에 대한 불안감은 갖지 않는 편이다.



새해에 어떤 기대를 갖고 있나?

우선 지금 찍고 있는 영화 <멋진 악몽>이 잘됐으면 좋겠다. 솔직히 예전에는 ‘이 영화가 안돼도 다른 작품 들어오겠지’ 이런 생각을 했다. 나름 관객들이 그렇게 싫어하지 않는 배우고, 개봉했을 때 성적도 나쁘지 않으니까(웃음). 그런데 마흔을 넘기면서 영화 작품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하고 시사회 한 번에 마음을 다하게 되더라. 어떤 마지노선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다음 영화가 없을 수도 있다는. 이제 마흔다섯도 넘었는데 앞으로 어떤 역할이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소중하고, 감사하고,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슬프지는 않나?

오히려 그 반대다. 난 시간을 지나왔으니까. 뜨거운 시간을 경험했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어떤핫한 시간에도 분명 끝이 있다는 걸 겪었다. 뭐든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자유롭다. 더 최선을 다하게 되고 하나하나 소중해졌다. 역시나 변하지 않는 건 내가 즐기는 거다. 언젠가 작품이 오지 않을 때도 스트레스 받지 않으며 그 시간을 내가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