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으로 간 셜록 홈스는 제임스 본드가 될 수 있을까? 4년 전 제작진이 다시 모여 선보이는 <조선명탐정 : 사라진 놉의 딸>은 한국 영화계에서 드문 시리즈물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이연희가 입은 비즈와 레이스 장식의 네이비 색상 이브닝 드레스는 J Mendell, 바 형태의 귀고리는 Suel, 큐브 형태의 금빛 반지는 Chloe 제품. 오달수가 입은 도트 프린트의 화려한 이브닝 재킷은 Ordinary People, 클래식한 턱시도 셔츠와 보타이는 Caruso 제품. 김명민이 입은 벨벳 소재의 이브닝 재킷은 Sling Stone, 블랙 턱시도 팬츠는 Jay Baek Couture, 핀턱 장식 화이트 셔츠는 Kimseoryong, 금빛 보타이는 Lussoso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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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과 그 곁을 지키는 조력자라는 캐릭터 설명에서 일단 연상되는 건 아무래도 홈스와 왓슨이다. 그런데 <조선명탐 정 : 사라진 놉의 딸>의 제작진이 품고 있는 밑그림은 어쩌면 코난 도일보다 이언 플레밍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지난 2011년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 개봉 당시 김석윤 감독은 “한 번만 하고 끝내기에는 아까운 이야기”라며 작품에 대한 애착을 넌지시 드러냈다. 청년필름의 김조광수 대표는 아예 한국의 007 시리즈가 됐으면 한다는 포부를 흘리기도 했다. 씨처럼 뿌려진 말에서 싹이 돋고 열매가 맺히기까지는 약 4년의 시간이 걸렸다. 2월 개봉을 앞둔 <조선명탐정 : 사라진 놉의 딸>(이하 <조선명탐정>)은 감독뿐만 아니라 주연인 김명민오달수, 그리고 주요 스태프들이 고스란히 다시 뭉친 속편이다. 그런 만큼 전편의 주요한 동력이었던 부지런한 개그와 속도감 넘치는 전개를 기대할 만하다. 물론 분위기를 환기시킬 새로운 얼굴도 있다. 1편에서 색다른 변신을 시도했던 한지민의 배턴을 이어받아 이번에는 이연희가 화사하면서도 위험한 매력을 과시할 예정이다. <투캅스>나 <우뢰매>, 혹은 <애마부인> 정도를 그나마 예로 들 수 있을까? 본격적인 시리즈물을 찾아보기 힘든 한국 영화계에서 탐정 김민이 제임스 본드 수준의 지구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장담이 어렵다. 그래도 일단 두 번째 걸음까지는 믿음직한 힘과 안정적인 보폭이 느껴진다. 2015라는 숫자에 익숙해지기 위해 한참 애를 쓰고 있던 1월 초였다. 떠들썩한 모험을 함께한 세 배우가 청담동의 한 스튜디오에 모여들었다.

 

4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될 김민(김명민)은 다소 딱한 처지에 놓인 듯하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왕의 눈 밖에나 유배 중인 그를 찾는 이라고는 동료 서필(오달수)과 사라진 동생을 찾아달라며 끈질기게 떼를 쓰는 계집 아이뿐이다. 이야기에 발동이 걸리는 건 두 사람이 조선 전역에 불량 은괴가 유통되고 있다는 정황을 포착하면서부터다. 결국 김민과 서필은 사건의 내막을 밝히고 실종된 아이의 행방을 추적하기 위해 유배지를 이탈하는데, 아름다운 게이샤 히사코(이연희)가 계속해서 이들의 앞을 막아 선다. “<조선명탐정> 팀은 이제 식구 같아요. 고향으로 돌아온 느낌, 죽마고우를 다시 만난 느낌으로 즐겁게 촬영했기 때문인지 개봉을 앞둔 지금도 긴장이나 염려가 딱히 없어요. 다른 작품을 마쳤을 때와는 뭔가가 다른 느낌이에요.” <간첩> 이후 2년 5개 월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김명민은 이런 말로 대화를 열었다. 두 사람의 출연작을 합치면 거의 1백 편에 가까울 만큼 성실하게 활동해온 배우들이지만 공교롭게도 그와 오달수 모두에게 이번 영화는 첫 번째 ‘속편’이다. 이미 선보인 캐릭터와 재회하는 건 연기자에게 어떤 경험이었을까? “편하더라고요. 이미 만들어놓은 게 있으니까 거저 먹는 기분이고.” 농담이 섞인 유쾌한 대답이 곧바로 돌아온다.

 

“제 경우, 서필처럼 코믹한 역할을 이전에도 꽤 했던 편이에요. 하지만 김명민 씨가 이렇게 제대로 망가진 모습을 보여준 경우는 드물지 않나 싶습니다. 게다가 소위 ‘허당’ 연기를 너무 잘해요. 전편 때부터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여러 번 놀랐습니다.” 오달수는 자신의 파트너에 대해 이런 평을 들려준다. 그간 여러 편의 코미디에 출연하긴 했지만 확실히 김민은 김명민의 필모 그래피 중에서도 이례적이라 할 만큼 경쾌하고, 심지어는 경박하기까지 한 캐릭터다. “감독님께서 잘 끌어 내주신 거죠.” 배우는 겸손하게 뒷걸음질부터 쳤다. “센 캐릭터를 종종 맡다 보니 실제 성격도 그런 줄 아시는 분이 많더라고요. 말 붙이기도 어려워하시고. 그런 데 굳이 따지자면 원래 모습은 이쪽에 가까울걸요? 그래서 어색하기보다는 오히려 편해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벼운 인물이라고 해서 준비 과정까지 가벼웠던 건 아니다. 애초에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김명민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어떻게 보면 괜찮은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또 너무 ‘날아가는’ 거예요.” 1편은 초등학생들의 말장난 같은 유치한 개그까지 천연덕스럽게 구사하곤 했다. 뜬금 없는 상황에서 주인공이 ‘찌찌뽕’을 외치는 신을 시나리오에서 처음 읽었을 때는 배우도 혼란에 빠졌다. 그래서 일단 연출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첫 만남 때 감독님께서 약간 당황하신 눈치였어요. 눈동자가 자꾸 허공 어딘가로 굴러가더라고요. 가볍게 몇 마디 나눌 생각으로 오셨는데 제가 시나리오를 너무 들이판 채로 간 거죠. ‘이 설정은 왜 필요한 거죠? 그리고 저건 또…’ 이렇게 질문을 잔뜩 쏟아냈습니다. 그런데 언짢은 기색 없이 제 의문을 친절하고 명쾌하게 풀어주시더라고요. 그때 신뢰가 생겼어요. 그냥 믿고 따르면 되겠구나, 했습니다.”

 

김명민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개그를 소화하면서도 드라마의 힘을 놓치지 않는 게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아예 웃음기를 지운채 감정적으로 확실한 울림을 줘야 할 대목에 대해서는 미리 신중하게 계획을 했다. 그래서 촬영장 자체는 즐거웠지만 그 전날 밤에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흥겨운 분위기에 저까지 휩쓸리기만 해서는 안되니까요. 전체적인 맥락을 확실히 파악해서 완급을 조절해야 하는 캐릭터죠.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시나리오를 굉장히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어요. 어디에서 절제를 하고, 어디에서 풀어져야 할지 미리 정리해야 했습니다. 촬영 현장은 바쁘고 혼란스러워요. 거기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대비를 해야죠. 그리고 그건 배우가 당연히 해야 할 몫입니다.” 직관과 본능에 몸을 맡기는 연기자가 있는가 하면 분석과 해석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하는 연기자도 있다. 김명민은 50% 준비된 채로 카메라 앞에서는 쪽 이다. “직관만으로는 그냥 ‘김명민’밖에 보여줄 수 없을 테니까요. 물론 제 직관을 믿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 하다고 생각합니다.”

 

4년 만에 또다시 앙상블을 이루게 된 오달수를 김명민은 “집 나갔다 돌아온 아내”에 비유했다. 그만큼 반갑고 편하게 의지가 되는 사이였다는 뜻이다. “옆에 있을 때는 그러려니 하다가도 가끔 혼자 촬영을 하는 날이면 허전하고 또 보고 싶더라고요.” 어쩌면 관객들에게도 오달수는 비슷한 존재감의 연기자일지 모르겠다. 숱한 화제작에서 그는 늘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맡겨진 몫을 해냈다. 얼마 전에는 이 배우의 출연작이 누적 관객 1억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보도되기도 했다. 얼마나 다양한 현장이 그를 필요로 하고 있는지 짐작하게 해주는 하나의 단서인 셈이다. “부끄럽죠. 대단한 것처럼 말씀을 하시니까 민망하기도 해요. 그냥 감사하고 있습니다.” ‘1억 배우’라는 새로운 별명에 대한 생각을 묻자 오달수는 다소 곤란해했다. 그런데 2015년에도 그는 상당히 많은 관객과 만나게 될 눈치다. 1000만 관객을 향해 순항 중인 윤제균의 <국제시장>에 이어 <조선명탐정>이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그 뒤로도 류승완의 <베테랑>, 최동훈의 <암살> 같은 기대 작이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많은 연출자가 그 와의 작업을 원하는 이유를 스스로는 어떻게 짐작할지 궁금했다. “글쎄요, 시나리오가 왜 들어올까에 대해서 는 별로 생각을 안 합니다. 대신 나중에 안 들어오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은 가끔 하는데 정말 끔찍하죠.”

 

오달수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아무래도 시나리오다. 일단 공포물은 아예 고려 밖의 대상이다. 무서운 걸 싫어해서 출연은 물론이고 관람조차 피하기 때문이 다. “언젠가는 아무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책을 받아 3 페이지 정도를 넘겼는데 천장에 애기 귀신이 붙어 있는 묘사가 나오는 거예요. 바로 덮어버렸습니다.” 그는 손에서 놓지 않고 단숨에 읽게 되는 이야기를 주로 택한다고 했다. “경험상 그런 시나리오가 결국에는 좋은 영화가 되더라고요.” 물론 <조선명탐정> 역시 이러한 판단과 고려 끝에 결정한 프로젝트다. 처녀 귀신이 우물에게 기어 나오는 신이 있었다면 아마도 사정이 달라졌겠지만.

 

<조선명탐정>은 오달수에게도 무척 원활한 현장이었다. 긴 설명을 하지 않고도 의사 소통이 수월했으며 배우들 간의 호흡 또한 만족스러웠다. 그는 여러 작품을 함께한 송강호, 황정민 등과 더불어, 특히 합이 잘 맞았던 파트너로 김명민을 꼽았다. 그런데 매번 노련하게 앙상블을 이끌어내는 연기자가 실생활에서는 과묵하고 숫기가 없는 성격이라는 사실은 꽤나 흥미롭다. 배우 오달수와 인간 오달수는 많은 면에서 갈린다는 게 본인의 설명이다. “연기할 때는 많이 뻔뻔해져요. 평소에는 그러지 못하거든요. 영화 속 모습과는 달리 염치도 있는 편이고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게 염치 없는 사람입니다.”

 

알려졌다시피 그의 출발점은 영화가 아닌 연극이었다. 1990년대를 통째로 무대 위에서 보냈으며, 현재 극단 ‘신기루만화경’을 이끌고 있는 오달수는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이 연극 배우에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데뷔는 극작가이자 연출자인 이윤택의 대표작 <오구>였다. 우연이 겹쳐 갑작스럽게 ‘문상객 1’로 투입됐는데 덕분에 한 달 내내 마당에 앉아 화투만 쳤다. 대사는 ‘고’ ‘스톱’ 아니면 ‘쓰리고’ 정도가 고작이었다. “괜히 낯 뜨겁더라고요. 이것만 끝나면 연기는 절대 안 하겠다고 다짐했죠.” 하지만 이 작품이 국내외에서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세계 곳곳을 돌며 공연을 했고 결국에는 그걸 당연한 삶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그는 <오구>가 자신에게는 스승과도 같은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멈추지 않는 법, 계속해서 버티는 법을 그때 배웠기 때문이다.

 

오달수가 알렉 기네스 같은, 그러니까 외투를 갈아입 듯 작품마다 캐릭터를 전환하는 배우는 아닐 것이다. 지금껏 외모며 말투에서 극적인 변신을 시도한 적도 드물다. 하지만 그 익숙한 얼굴 한 구석에는 다음 순간 을 짐작하기 어렵게 만드는 모호함이 있다. 그래서 1분 뒤에 몸 개그를 하든 품에서 칼을 꺼내든, 그가 하면 다 말이 되는 느낌이다. 오달수는 이 이야기가 최고의 찬사처럼 들린다고 했다. “연기가 예측 가능해서는 안 되 니까요. 죄다 들키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관객은 자신들의 예상이 빗나갈 때 즐거워하는 법이죠. 과찬은 과찬인데 제가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렇게 되려고 노력을 하는 중이겠죠.”

 

물론 <조선명탐정>의 서필은 모호함과는 거리가 먼, 먹으로 그은 선처럼 분명하고 유쾌한 인물이다. 속을 알 수 없는 쪽은 오히려 이연희가 연기하는 히사코일 것이다. 극의 미스터리를 고조시키며 관객의 주의를 붙드는 팜므 파탈이라고 할까? 화사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 또한 이 캐릭터의 중요한 몫이다. 영화를 위해 오랜 전통을 지닌 장인의 기모노가 일본 현지에서 공수됐을 정도다. 값을 따질 수 없을 만큼 귀한 의상이었기 때문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보험까지 가입해야 했다. “준비하느라 스태프들의 고생이 많으셨어요. 그 만큼 좋은 장면이 만들어진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직접 입어본 느낌이 정말 특별했어요. 제대로 된 의상을 갖추는 것만으로도 캐릭터에 몰입이 되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는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여자로서도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김명민은 다음과 같은 농담 섞인 진담을 덧붙이기도 했다. “히사코의 미모에 반 한 김민이 다리에 힘을 잃고 쓰러지는 장면이 있어요. 바로 감정 이입이 되더군요. 연희씨가 워낙 예쁘니까. 맡은 캐릭터를 십분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지난해 초 방영된 <미스코리아>는 사람들로 하여금 연기자 이연희의 가능성을 재고하게 만든 드라마다. 청순하기만 한 첫사랑도, 흔한 신데렐라도 아니었던 오지영에 그는 설득력 있는 생기를 더했다. 배우가 놀라운 성장을 보여줬으니 다음 걸음이 궁금해지는 건 당 연했다. “TV 드라마에 연달아 출연한 뒤였기 때문에 차기작은 영화가 됐으면 했어요. 그런데 제작 중인 프로젝트 자체가 많지 않았고, 제 나이에 할 수 있는 작품은 그 가운데서도 한정적이더라고요. 고민을 하던 차에 <조선명탐정> 이야기를 들었어요. 1편을 무척 재미있게 봤거든요. 제가 맡은 히사코도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다양한 이미지를 선보일 수 있는 매력적인 인물 같았고요.” 김석윤 감독은 장쯔이가 <게이샤의 추억>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미묘하고 신비한 모습을 주문했다고 한다. “딱히 여성스럽거나 섹시한 연기를 시도한 적이 아직까지는 없었어요. 나이도 어느덧 20대 후 반이 됐으니 이 역할이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죠.”

 

이연희는 서로에 대한 파악을 이미 마친 공고한 팀워크를 홀로 비집고 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적응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던 건 당연하다. “그런 만큼 모든 스태프께서 저를 많이 배려하셨어요. 여주인공이라고 신경을 써주시고 조명도 많이 켜주시고(웃음).” 사실 굳이 영화를 선택한 데는 드라마에 비해 캐릭터에 몰입하고 준비할 여유를 좀 더 얻을 수 있는 현장이라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TV 시트콤에서부터 경력을 시작한 김석윤은 알고 보니 진행 속도가 남다른 연출자였다. “많아 봤자 세 테이크 이상을 찍은 신이 드물어요. 좀 더 했으면 싶은데 마음에 드신다면서 자꾸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시더라고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제 몫을 하려고 스스로를 다잡았죠. 그래서 완성된 영화가 많이 궁금해요.” 연출자를 충분히 신뢰하면서도 배우로서의 욕심이 고개를 기웃거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김명민이 자신도 4년 전에 겪었던 고민이라면서 이야기를 거들었다. “천재라고 생각해요. 편집 포인트가 정확하셔서 0.001초도 벗어나는 걸 싫어하시고요. 연기가 중간에 끊기는 느낌이라 처음에는 익숙해지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감독님을 믿기 때문에 오케이라고 하시면 그런가보다 합니다. 그냥 더 찍을 필요를 못 느끼시는 거예요.”

 

공교롭게도 인터뷰 당일은 이연희의 생일이었다. 하지만 공식 스케줄 외에 특별한 계획은 없다고 했다. “성격이 좀 무뚝뚝해요. 어렸을 때부터 기념일 같은 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편이었어요.” 그래도 영화 촬영 중 맞은 생일은 기억에 남는다. 이명세 감독과 홍경표 촬영 감독이 지미집(무인 카메라 크레인)에 케이크를 매달아 내려주는 이벤트를 준비했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생일을 거의 일하면서 보냈어요. 그래서 이런 날 일부러 계획을 세우는 데 더욱 무심해진 것 같고요.” 어린 나이에 데뷔한 대부분의 연기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연희 역시 성장 과정에서 크고 작은 혼란을 겪었다. “어디서나 인간 관계가 가장 어려워요. 연예계 밖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편하지만은 않은 시선을 종종 느껴요.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촬영장에 가면 아이가 아닌 한 명의 프로로서 사람들의 기대치를 채워야 했고요. 스스로의 위치가 늘 애매모호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그걸 찾는 길을 걸어온 것 같아요.” 그래도 이제는 많은 생각이 정리된 상태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고는 30대가 되면 진한 멜로를 해보고 싶다는 바람도 슬며시 꺼냈다. “순수한 첫사랑, 풋풋한 짝사랑, 이런 것보다 지지고 볶는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가요. <너는 내 운명>처럼 다른 세상에 속한 두 사람이 만나 사랑하고 충돌하는 작품도 흥미롭고요.”

 

물론 필모그래피가 더 쌓인다고 해도 배우의 욕심은 늘 그 높이를 뛰어넘을 게 분명하다. 김명민은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도 만족시킬 수 있는 연기를 언제쯤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했다. “아마 없겠죠. 그렇기 때문에 제 만족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른 채 계속 가는 걸 테고요. 부족하니까 조금만 더 채우겠다는 심정으로.” 이미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밝혔듯 한때 그는 배우라는 직업을 포기할 결심을 했다. 그때 가까스로 붙들어준 작품이 바로 <불멸의 이순신>이었다. 만약 캐스팅이 불발됐다면? 결국에는 다른 계기로 카메라 앞에 돌아왔을까? “장담하기는 어려워요. 제가 결심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데, 한번 마음먹으면 누구 말도 듣지 않는 타입이거든요. 아예 다른 삶을 살게 됐을 가능성도 있어요.” 그런데 김명민이 다음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계속 연기자의 길을 걷기로 했던 자신의 결정을 새삼 다행스러워할 것 같기도 하다. 오달수는 담담하게, 하지만 확신을 담아서 이렇게 말했다. “왜 연기를 하느냐는 질문을 이제는 스스로가 멈춰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한테 가장 잘 맞는 직업이고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일이 배우 같거든요. 그건 해봐야 알아요. 안 해보면 몰라.” 그 즐거움이란 울타리 밖에서는 아무리 곁눈질을 해도 밝혀낼 수 없는 비밀인 듯했다. 세 명은 그렇게 분명한 대답 대신 커다란 궁금증만 남겨놓은 채 스튜디오를 차례로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