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튼의 최신작 <빅 아이즈>는 기묘한 큰 눈을 가진 소녀들의 그림과, 그 소녀들을 탄생시켰지만 알려지지 못했던 화가에 대한 이야기다.

팀 버튼은 60년대 말 캘리포니아 주 버뱅크에서 자라며 어디에서나 ‘빅 아이즈’를 보았다. 그는 월터 킨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인기가 아주 많았던, 빨려들 듯 큰 눈을 가진 소녀들의 그림을 가리켜 “그 그림들이 나를 따라다니는 줄 알았어요”라고 말한다. 버튼은 맨해튼 다운타운에 소재한, 가구가 거의 없는 자기 아파트 부엌에 앉아 있다. 늘 입는 검은 진과 헐렁한 붉은 티셔츠를 걸친 차림이다. 양말은 신었지만 신발은 신지 않았고,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곱슬머리는 오늘 따라 더욱 감전된 것 같이 뻗쳐 있다. 헬레나 본햄 카터와 함께 지낸지 10년이 넘었고 아이도 둘 있지만, 56세의 버튼은 지금도 혼자서 즐겁게 보낸 시간이 아주 많은 조숙한 십대 같은 태도를 간직하고 있다. 아파트의 데커레이션은 옛날 기숙사 방 같다고 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주방 카운터에는 실물 크기 엘비스 프레슬리 흉상이 있고, 50년대 SF 영화 <킬러 스류스>의 거대한 포스터의 액자가 벽에 기대 세워져 있다. (“저 영화는 무엇보다 포스터가 최고죠.” 버튼의 말이다.) “난 어렸을 때 킨의 그림을 끊임없이 봤어요. 내가 다니던 병원의 의사 사무실에는 푸들을 데리고 있는 눈이 큰 여자아이 그림이 있었어요. 치과에는 고양이를 데리고 있는 아이들 그림 시리즈가 있었죠. 시장에 가면 킨 발레리나, 킨이 그린 비쩍 마른 사람, 킨 카우보이 등등의 그림이 들어간 카드가 있었고요. 난 그들의 거대하고 슬픈, 빅 브라더 같은 눈에 매료되었죠. 나는 그 괴상한 아이들이 늘 나를 지켜보는 것 같다는 게 참 좋았어요. 기괴하고 마음을 사로잡는 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거든요.” 1월에 국내 개봉할 버튼의 최신작 <빅 아이즈>는 그 그림들을 실제로 그린 화가인 마거릿 킨의 이야기이자 대중 예술의 본질에 대한 명상이다. 버튼의 영화에서는 시각적 극치가 이야기의 짜릿한 배경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분노에 가득 찬 슈퍼 히어로의 이야기이기도 했고(<배트맨>, <배트맨 리턴즈>), 호감 가는 부적응자일 때도 있었고(<가위손>, <찰리와 초콜릿 공장>), 어린아이 같은 괴짜도 있었다(<피위의 대모험>, <다크 섀도우>). 새 영화 <빅 아이즈>는 좀 다르다. 카리스마 있지만 과대망상증 환자인 남편의 그림자로 살았던 여자에 대한 조용한 영화다. 수십 년간 월터 킨은 자신이 빅 아이즈 아트워크를 창조했다고 공언했다. 60년대에 빅 아이즈 그림은 미국을 뒤덮었고 월터 킨은 부자가 되었지만, 사실 그 그림들은 전부 그의 아내가 그린 것이었다. “나는 그 그림들을 그린 이가 마거릿이었다는 사실은 몰랐어요. 다른 사람들이 전부 그랬듯이, 나는 킨이라면 월터 킨밖에 없는 줄로 알았죠.” 버튼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마거릿을 실제로 만나보고 영화를 만들고 난 지금도, 나는 월터가 그렇게 사기를 치고도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요. 내게 있어서 그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하나였는데! 진실을 알고 나니 킨의 그림들 전부에 어두운 그림이 감돌아요. 그 그림들은 순수함을 잃어버렸어요.”

마거릿 호킨스는 1955년 봄에 샌프란시스코 피셔맨즈 워프 근처의 전시회에서 월터 킨을 처음 만났다. 충격적일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월터 킨의 1983년의 자서전 <더 월드 오브 킨>에 따르면 그녀는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신은 내가 본 가장 위대한 예술가예요. 가장 잘생긴 사람이기도 하고요.” (월터에 따르면 후에 마거릿 뿐 아니라 책에 언급된 다른 여성 수십 명도 월터에게 “당신은 세계 최고의 연인이야”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잔인하게도 월터는 마거릿이 ‘뻐드렁니가 있었고 턱이 없었다’고 묘사하며, 그녀가 자신의 제자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고 회고했다. “비쩍 마른 그녀는 캔버스와도 같았다. 나는 내가 그녀에게 색칠을 해 완전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지 궁금했다”고 월터는 자서전에 적었다.

 

월터가 자신에게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창의력이 넘친다고 굳게 믿은 건 사실이지만, 위의 서술은 거의 다 날조된 내용이다. 마거릿이 월터를 만났을 때 그녀는 이미 뛰어난 화가였다. 그리고 크고 둥글고 슬픈 눈에 거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매료되어 있었다. “나는 눈에 끝없는 흥미를 품고 있어요.” 이제 87세인 마거릿이 지금도 매일 그림을 그리는 나파 밸리의 자기 집에서 나와 통화했을 때 한 말이다. “난 그 눈들이 내 내면의 감정을 드러낸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언제나 눈을 아주 크게 그렸죠. 월터는 그걸 좋아했어요. 흥미롭다고 생각했죠. ‘여기엔 뭔가가 있어’라고 했어요.”

내슈빌 출신인 마거릿은 어린 나이에 결혼했지만 첫 남편과 헤어지고 싱글맘으로 딸을 키우며 생계를 책임지느라 애쓰던 시절에 월터를 처음 만났다. 그녀는 월터에게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캔버스 다섯 개를 놓고 동시에 작업할 정도로 왕성하게 작품을 만들어내는 화가였던 그녀의 집엔 눈이 큰 아이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마거릿은 생활비를 위해 남자 넥타이와 가구에 그림을 그리는 일도 했다.

 

프로 작가라고 주장하던 월터 역시 자신의 그림이 있기는 했다. 풍경화, 자화상, 거리 모습, 누드 등이었는데, 그는 자기가 파리에 살 때 그린 것들이라고 했다. 그는 셀레브리티들이 드나들던 나이트클럽 ‘헝그리 아이’에서 자신의 그림과 마거릿의 그림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바들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월터를 알았어요.” 마거릿의 말이다. 집에서 일을 하거나 딸을 돌보던 마거릿은 밤에 남편과 함께 외출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어느 날 저녁 칵테일 드레스를 입고 헝그리 아이에 갔다.

 

마거릿은 “악몽이었다”고 그때 일을 회상한다. 그녀는 남편이 1년 넘게 자신의 그림을 가져다 자기 것이라며 팔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눈이 큰 아이들 그림에는 그저 ‘킨 Keane’이라고만 서명이 되어 있어, 월터의 그림으로 사람들을 믿게 하기는 쉬웠다. “우린 그가 저지른 일을 놓고 이야기를 하고 또 했어요.” 수십 년이 지난 일이지만 마거릿의 목소리엔 아직도 감정이 묻어났다. “그는 나를 협박했어요. 내가 진실을 말하면 그림을 산 사람들이 사기죄로 우리를 고소할 거라고 계속 말했어요. 그중에는 유명한 사람들도 있다고 했죠. 내가 그린 그림이라는 말을 그 누구에게라도 하면 날 다치게 할 거라고 했어요. 심지어 내 딸한테도 말을 못했어요. 딸을 위험하게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월터는 사기와 거짓 말고도 또 하나의 대단한 재주가 있었다. 영리한 사업가였던 것이다. 그는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미술품 시장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눈치챘다(앤디 워홀이 킨의 그림에 대해 ‘훌륭하다’고 칭찬한 것은 유명하다). 1959년경에 킨은 샌프란시스코에 킨 아트 갤러리를 열어 빅 아이즈 그림과 포스터를 파는 사업을 시작했다. “월터는 내게 이렇게 말했어요. ‘고양이가 잘 팔리니까 고양이 그림을 더 그려.’ 그리면 그릴수록 월터는 더 많은 그림을 원했죠. 그래서 나는 엄청나게 그려댔어요.”

 

마거릿은 진실을 밝히지 않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좌절감 때문에 다른 스타일의 그림도 그리기 시작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에게 영감을 받은 스타일리시한 젊은 여자들의 그림이었다. 몸은 길었고 눈은 덜 두드러졌다. 그녀는 월터의 허락을 받고 그 그림에 MDH 킨이라고 서명했다. ‘스몰 아이’ 그림은 빅 아이즈보다는 덜 키치적이었지만,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다른 스타일을 키우기란 어려웠어요. 그리고 나는 팔리는 작품을 만들어야 했고요. 내가 그린 그림을 가지고 있을 여유조차 없었어요. 당시 우리는 상당히 호화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했기 때문에 그림을 팔아서 그 돈을 써야 했죠. 월터는 근사한 것들을 좋아했거든요.”

 

1964년에 마거릿은 마침내 월터를 떠났지만, 그를 위해 그림 그리는 일은 계속했다. 그는 빅 아이즈 아트워크를 전부 자기 이름으로 저작권 등록을 해두었고, 마거릿은 자신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느꼈다. “그런 일이 일어나게 했다는 건 내 잘못이니까요. 난 부끄러웠어요.”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 1960년에 발간된 ‘내일의 거장’시리즈 월터 킨 편. 그는 여기 실린 빅아이즈 그림을 자신이 그렸다고 주장했으나 실은 아내 마거릿의 작품이었다. 1964년 마거릿이 스타일을 바꿨던 ‘스몰 아이’시기의 그림. 팀 버튼의 영화에서 에이미 애덤스가 연기한 마거릿은 실제 다섯 개의 캔버스를 놓고 동시에 작업할 정도로 왕성한 창작열을 지닌 화가였다.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 1960년에 발간된 ‘내일의 거장’시리즈 월터 킨 편. 그는 여기 실린 빅아이즈 그림을 자신이 그렸다고 주장했으나 실은 아내 마거릿의 작품이었다. 1964년 마거릿이 스타일을 바꿨던 ‘스몰 아이’시기의 그림. 팀 버튼의 영화에서 에이미 애덤스가 연기한 마거릿은 실제 다섯 개의 캔버스를 놓고 동시에 작업할 정도로 왕성한 창작열을 지닌 화가였다.

 

 

그녀는 여성 예술가들이 남자들만큼 성공을 거두는 일은 거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 었다. 그녀의 ‘스몰 아이’ 그림들은 빅 아이즈처럼 잘 팔리지 않았다. “그림들이 유명해 질수록 내 처지는 더 안 좋아졌죠.” 한편 월터는 광적으로 거창한 일을 벌였다. 홍보를 위한 정교한 계획을 세워서, 존슨 메이어스라는 출판사를 차린 다음 ‘내일의 거장’ 시리즈의 일부로 자기 자신에 대한 책을 펴냈다. 책에서 그는 자기 자신을 다빈치, 고갱,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루벤스, 르누아르와 비교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독일에서 본 고아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빅 아이즈 아이들을 그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월터가 지어낸 것이다. 그들이 겪는 고통을 보고 마음이 크게 움직여 그들의 이미지를 이 세상 과 함께 나누게 된 것이라고 우겼다.

 

결국 1986년 즈음에 마거릿은 용기를 내어 그를 고소했다. 법정에서(스포일러 주의!) 이들의 말싸움에 지친 판사는 이젤 두 개를 세워놓고 그들에게 그림을 그려보라고 주 문했다. 월터는 어깨가 아프다는 핑계를 댔지만, 마거릿은 묵묵히 눈이 큰 아이를 그 렸다. 월터의 캔버스는 백지 그대로였다. “재판 후에도 그는 고래고래 악을 써댔죠. 하지만 그는 신뢰성을 잃었어요. 내가 마침내 그를 제지한 거죠.”

 

버튼이 1995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화성침공>을 찍을 때, 그는 마거릿 킨에 대해 수소문했다. 여러 해에 걸쳐 그는 킨의 그림을 몇 점 샀고, 월터의 엄청난 사기극 이야기도 알고 있었다. 노던 캘리포니아의 작은 도시 세바스토폴에 살고 있던 마거릿과 연이 닿은 버튼은 그녀에게 당시의 여자친구, 그리고 그녀와 함께 키우던 눈이 큰 치와와 파피의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난 기꺼이 그려주었죠. 팀을 만나자마자 그를 좋아하게 됐어요. 우린 친구가 됐어요. 나중에 헬레나와 그들의 아들 빌리도 그려줬어요. 팀은 골목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모습으로 그렸죠. 팀답지요!”

 

버튼은 평생 자기 나름의 눈이 큰 캐릭터들을 그려왔다. 킨의 그림은 과장된 귀여움과 극단적인 멜랑콜리가 섞여 있는 반면, 팀의 그림은 사랑스러운 동시에 엽기적이다. 그가 그리는 깡마른 아이들은 바늘이 잔뜩 꽂힌 바늘꽂이 같은 머리를 하고 있다. 그가 그리는 관능적인 여자들은 섬세한 목에 피투성이 상처가 나있다. 사랑스러운 개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실로 꿰매져 재생된 동물이다. 한 가지 일관된 것은 무척이나 큰,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눈이다.

 

“난 늘 눈이 큰 사람을 좋아했어요. 조니 뎁, 위노나 라이더, 헬레나. 다들 눈이 크고 둥글죠. 그래서 나는 마거릿에게 빚을 진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녀의 작품은 내게 큰 영향을 주었고, 만나보니 우리 할머니가 생각났어요. 아주 조용하고 사랑스러운 분이셨죠.”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버튼은 12살 때부터 할머니와 살았다. 80년대 말 <배트맨>을 런던에서 찍은 이후 버튼은 런던에서 살고 있다. 뉴욕에서 나와 만난 지 몇 주 뒤, 그는 런던에서 전화로 말했다. “할머니 댁은 내겐 보호구역 같은 느낌이었어요. 나는 <배트맨>을 찍으러 런던에 왔는데 오자마자 이 도시에 매혹됐어요. 거의 유체이탈을 한 것 같은 정도로 친근했지요. 날씨가 마음에 들었어요. 화창한 날은 별로 없고 거의 언제나 회색빛이죠.”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야기했다. “할머니는 날 편하게 놀게 해주셨어요.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려도 됐고, 토요일 아침엔 영화를 볼 수 있었죠. 60년대 SF 호러인 <브레인 댓 우든트 다이>, 에드 우드가 감독한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 같은 것들도 마음껏 보게 해주셨어요.”

 

박스 오피스를 뒤흔든 히트작을 줄줄이 만든 후, 1994년에 버튼은 디즈니를 설득해 아마 사상 최악의 감독이었을 우드의 전기 영화 <에드 우드>를 만드는데 성공한다. 그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던 래리 카라스제우스키와 스콧 알렉산더가 월터와 마거릿 킨에 대한 이번 영화의 시나리오도 썼다. 그 들은 킨에 대한 영화를 직접 감독하고 싶어했지만 제작비를 조달할 수가 없었다. 버튼이 여배우 에이미 애덤스와 우연히 마주친 2013년에야 이 프로젝트가 실현되었다.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자들의 오찬 모임에서 어쩌다 그녀 옆에 서 있게 됐어요. 난 <프랑켄위니>로, 그녀는 <마스터>로 거기 와 있었죠. 우린 수다를 떨었고, 다음 날 에이미가 나한테 전화해서 <빅 아이즈> 시나리오를 읽었다고 했어요. 마거릿 역을 하고 싶다더군요.”

 

여주인공이 결정되면서 갑자기 펀딩이 이루어졌다. 프로덕션을 시작하기 전에 애덤스는 나파 밸리에 가서 마거릿을 만났다. 그녀는 마거릿이 그림 그리는 모습, 붓을 쥐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작업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마거릿은 애덤스의 눈을 그렸다. “한쪽 눈만 그렸어요. 특별한 그림을 그려주고 싶었거든요.” 마거릿의 말이다. 그 둘은 친해졌다. 남성들이 지배하는 업계에서 일하는 여성으로서, 애덤스는 마거릿의 상황에 쉽게 공감했다. “난 늘 내 자신을 지키려고 싸워왔어요. 하지만 그 일이 항상 순조로웠던 건 아니에요. 그리고 마거릿은 성차별이 더 심했던 시대 사람이잖아요.”

 

버튼은 월터와 마거릿의 분쟁을 더 보편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관계의 고전적인 사례예요.” 그는 아주 즐거워하는 목소리다. “그리고 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들에 늘 매료되거든요. 내 생각엔 우리 모두 그런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킨 부부의 이야기는 실화이지만(그래서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관계가 더욱 가슴 아프다) 버튼의 모든 영화는 비밀을 지닌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마이클 케인이 우울하고 힘들어 하는 망토 두른 투사를 연기했던 <배트맨>, 맛있는 식인이 라는 비밀이 숨겨진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방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포를 선사하는 것이 즐거움인 애니메이션 <크리스마스 악몽>, 이 중 무엇을 보더라도 버튼은 대혼란과 관습을 거스르는 행동을 좋아한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킨의 그림을 그렇게 좋아하는 건지도 몰라요. 그 그림들이 나왔을 때 진지한 ‘예술’이 아니라고 조롱받았고, 인기가 아주 많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어요. 하지만 그림 뒤에 숨은 이야기를 알고 나면 아주 어둡고 상당히 감정적으로 보이죠.” 버튼은 마거릿 킨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어쩌면 동시에 자신의 초기 영화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중엔 개봉했을 때는 부정적인 리뷰를 받았지만 지금은 고전으로 간주되는 작품이 많다. “이젠 마거릿의 그림들이 달리 보일 거예요. <빅 아이즈>는 팀 버튼 식의 해피 엔딩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