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 라 팔레즈 가문의 여자들은 무려 한 세기 동안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 사진가, 예술가를 매혹시켰다. 그리고 드 라 팔레즈가의 패셔너블한 유전자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무슈 생 로랑(가운데)과 그의 또 다른 뮤즈 베티 카트루(왼쪽)와 함께 본드 스트리트에 새롭게 오픈한 부티크 앞에 선 룰루 드 라 팔레즈(1969).

무슈 생 로랑(가운데)과 그의 또 다른 뮤즈 베티 카트루(왼쪽)와 함께 본드 스트리트에 새롭게 오픈한 부티크 앞에 선 룰루 드 라 팔레즈(1969).

 

 

‘유행은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이브 생 로랑의 명언을 기억하는지. 이는 전설로 남은 그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그와 가깝게 지냈던 드 라 팔레즈가의 여자들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베르트랑 보넬로 감독의 영화 <생 로랑>에서 레아 세이두가 연기한 무슈 생 로랑의 뮤즈 룰루와 다재다능한 그녀의 모친 막심, 그리고 룰루의 조카이자 90년대를 풍미한 슈퍼모델 루시까지. 놀랍게도 이들은 모두 한 핏줄이다.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들은 모델, 스타일리스트부터 주얼리·패션·가구 디자이너, 아티스트, 장식가, 요리사, 정원사까지 다양한 수식어를 지녔다. 몇 세대를 거쳐도 희석되지 않는 그녀들의 만능 엔터테이너적 성향과 유머러스한 성격, 파티에 대한 열정을 보면 이 모든 것들이 드 라 팔레즈가 여자들의 유전자에 응집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이들은 무려 한 세기 동안 엘자 스키아파렐리, 위베르 드 지방시, 스티븐 마이젤, 앤디 워홀 등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와 사진가, 아티스트들에게 황홀감을 선사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무슈 생 로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물론 천 쪼가리조차 쿠튀르 의상으로 승화시키는 타고난 외모가 한몫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색에 대한 이해가 뛰어났고, 독특하고 묘한 매력으로 패션과 예술계의 명사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었다. 나타샤 프레이저-카바소니는 최근 아티스트 아리엘 드 라베널과 함께 룰루의 인생을 그린 책 <룰루 드 라 팔레즈>를 출간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국에 있을 때 그녀는 프랑스인 같았어요. 반면에 프랑스에 있을 때 그녀는 영국인 같았죠. 그러니까 룰루는 단 한순간도 이국적이지 않은 때가 없었던 거예요.” 사실 드 라 팔레즈라는 화려한 프랑스 느낌의 성은 영국 출신인 룰루의 모친 막심이 프랑스 출신 백작과의 결혼을 통해 얻은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를 오가는 룰루의 묘한 매력은 바로 이러한 가족 내력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왔다.

 

어느 상쾌한 날의 아침, 찬란했던 드 라 팔레즈 가문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런던 리젠트 스트리트에서 루시를 만났다. 그녀의 고모인 룰루는 2011년 63세의 나이로 세상에 작별을 고했다. 오랜 시간 투병을 해온 룰루의 이른 죽음에 당시 패션계는 큰 슬픔에 잠겼다. <룰루 드 라 팔레즈>의 출간에 앞서 출판사로부터 직접 얻어온 복사본을 보여주니 루시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책장을 넘기며 한 장 한 장 세세하게 읽던 그녀는 어빙 펜이 촬영한 사진에서 멈췄다. 그녀 자신과 막심, 룰루, 그리고 당시 아주 어렸던 룰루의 딸 안나의 가족 사진이었다. “세상에, 정말 추억 그 자체군요! 가슴이 조금 뭉클하네요.” 고모 룰루의 큰 입을 똑 닮은 루시는 책을 보는 내내 미소를 지었다.

 

카페 로열 호텔 W1의 오스카 와일드 바에서 포즈를 취한 엘라 리처드와 모친 루시 드 라 팔레즈. 커다란 붉은색 꽃무늬가 돋보이는 드레스와 도트무늬 슈즈는 모두 Dolce & Gabbana 제품.

카페 로열 호텔 W1의 오스카 와일드 바에서 포즈를 취한 엘라 리처드와 모친 루시 드 라 팔레즈. 커다란 붉은색 꽃무늬가 돋보이는 드레스와 도트무늬 슈즈는 모두 Dolce & Gabbana 제품.

 

 

23세에 아이를 갖게 되기 전까지 루시는 90년대를 대표하는 슈퍼모델이었다. 그리고 화려한 과거를 모두 뒤로한 채, 그녀는 현재 엘라가 모델로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도록 전격 지원하고 있다. “제 어머니도 제게 그렇게 해주셨거든요.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잘 알고 있어요.” 모델 일을 하다 보면 가슴을 찍으려는 사진가가 꼭 한 번쯤은 있다며 모델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루시 덕분인지, 엘라는 현재 모델로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엘라는 태어난 지 겨우 몇 주 지났을 무렵, 미국판 <보그>에 실린 마리오 테스티노의 사진을 통해 세상에 얼굴을 알렸다. 모친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매력적인 소녀로 성장한 그녀는 2013년, 캘빈 클라인 봄/여름 컬렉션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최근에는 톰 포드, 타미 힐피거 등 굵직한 디자이너들의 런웨이를 종횡무진 활보하며 모델로서의 재능과 끼를 마음껏 펼치고 있다.

 

조용하고 예의 바른 엘라는 대부분의 시간을 서섹스 부근의 바닷가에서 보낸다. 이런 소박함은 3대를 거슬러 올라가 막심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막심을 알고 지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가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엘사 스키아파렐리와 클로에, 제라르 피파르에서 디자인을 하고 디올에서 모델을 한 그녀는 사진작가이자 디자이너였던 세실 비튼으로부터 ‘흉측한 옷마저 시크하게 소화해내는 유일한 영국 여자’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또, 패션지에 게재한 레시피 칼럼이 후에 책으로 출판되는 등 음식 분야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앤디 워홀과 친구가 된 후 그녀는 팩토리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차렸으며, 캔디 달링, 브리짓 베를린과 함께 워홀의 비디오 프로젝트에 출연하기도 했다. 또, 화가인 오스왈드의 딸답게 그림에도 소질을 보였는데, 가구와 램프의 갓 등 캔버스를 제외한 모든 곳에 그림을 그릴 정도로 창의적이었다고 한다.

 

룰루는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막심의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리고 누구보다 강인한 성격을 지녔다. 아일랜드 귀족 출신의 데스몬드 피츠제럴드와 이혼한 후 뉴욕으로 가 “21세 이혼녀보다 더 매력적인 사람이 있나요?”라고 당당하게 외칠 정도였으니. 그리고 뉴욕은 정말 룰루에게 완전히 매혹된 듯했다. 그녀 는 슈퍼모델 베르슈카와 함께 화려한 파티를 즐겼고, 할스톤의 패브릭 디자이너로 고용되기도 했다. 또, 다이애나 브릴랜드는 미국 <보그> 패션 스토리의 모델로 그녀를 캐스팅해 스타 사진가인 리처드 애버던이 그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룰루는 이렇게 뉴욕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룰루와 두 번째 남편 테디 클로소프스키 드 롤라(1984).

룰루와 두 번째 남편 테디 클로소프스키 드 롤라(1984).

 

 

룰루의 조카 루시 드 라 팔레즈와 그녀의 어린 딸 엘라(1998).

룰루의 조카 루시 드 라 팔레즈와 그녀의 어린 딸 엘라(1998).

 

 

룰루는 그녀의 인생을 논할 때 빠져서는 안 될 한 사람, 바로 무슈 생 로랑과 전설적인 만남을 가지게 된다. 이들은 1968년, 어느 티 파티에서 스페인 디자이너 페르난도 산체스의 소개를 통해 처음 만난다. 당시 오시 클라크의 튜닉을 입고 화려한 뱅글들을 차고 있던 룰루는 생 로랑을 완전히 매혹시켜버렸다. 그리고 1972년, 룰루는 이브 생 로랑 기성복 라인의 모자와 주얼리 디자인을 맡으며 그의 밑에서 일을 하게 된다(그녀는 당시 1년에 약 2천 개를 디자인했다). 조카 루시는 백스테이지에서의 룰루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 “모델에게 이것저것 입혀보고 귀고리나 슈즈를 바꿔 착용하도록 한 고모의 모습이 생각나요.” 늘 열정적이었던 룰루는 잠을 줄여가며 아틀리에에서 일에 몰두했다.

 

당시 센세이션이었던 ‘르 스모킹’ 룩을 만든 생 로랑은 알려진 대로 아주 수줍고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반면에 룰루는 외향적이고 그의 이런 소심한 면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했다. 놀랍게도 생 로랑은 룰루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둘은 아틀리에에 있을 때 대부분 암호로 대화를 나누었으며, 룰루는 다리를 꼬거나 머리를 가볍게 넘기는 등 사인을 보내며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브는 룰루를 정말 사랑하고 아꼈어요. 신선한 아이디어와 유머로 가득한 열정적인 보헤미안이었니까요.” 막심은 룰루에 대한 생 로랑의 애정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1960년대 스윙 런던 시대를 보낸 룰루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그에게 분명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특유의 톡톡 튀는 발랄함으로 딱딱한 파리 쿠튀르 세계의 숨통을 트이게 했다.

 

루시는 생 로랑을 처음 만났을 때 아주 어렸다고 한다. 그녀는 부친 알렉시스와 함께 고모 룰루를 보기 위해 샹젤리제에 위치한 생 로랑의 아틀리에를 찾곤 했다. 연필꽂이와 재떨이, 눈부신 실크 뭉치로 가득 찬 아틀리에에서 그는 루시의 첫 드레스인 요정 의상을 만들어주었다. “정말 멋진 일 아닌가요?” 그때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루시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딸 엘라만큼 화려하게 패션계에 데뷔했다. 16세에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하우스&가든>의 커버를 장식하고, 존 갈리아노의 쇼를 통해 신고식을 치르며 패션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 이브 생 로랑 향수의 새 얼굴로 발탁된 루시는 생 로랑과 팔짱을 낀 채 런웨이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등 고모만큼이나 그와 각별한 관계를 맺게 된다. 루시는 그와 함께 피날레에 서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이브는 심할 정도로 부끄러움을 많이 탔어요. 쇼 전에는 기절하기 일보직전이었고, 런웨이에 함께 섰을 때 손을 심하게 떨기도 했죠. 1990년 3월에는 그가 아예 인사를 하러 나오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저 혼자 런웨이에 서야만 했죠. 마치 호스트 없이 파티를 하는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1994년, 그는 말론 리처드와의 결3혼식을 앞둔 루시를 위해 웨딩드레스를 손수 제작했다. 이브 생 로랑 쇼에 신부로 여러 번 섰던 그녀는 자신의 결혼식에서는 전혀 다른 의상을 입었다. 바로 뷔스티에와 주머니가 달린 면 소재 집시 스커트였다. “이브는 제가 런웨이에서 입었던 구조적이고 격식 있는 웨딩드레스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옷을 만들었어요. 전 실제 결혼식에서 모델로서가 아니라 ‘정말 내 결혼식을 하고 있구나’라고 느끼고 싶었거든요. 룰루는 이런 제 마음을 이해했고, 우리는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을 놓고 상의했어요. 그리고 룰루는 이를 이브에게 전달해줬죠.”

 

고모 룰루의 뒤를 이어 생 로랑과 특별한 인연을 이어온 루시는 패션계에 그녀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사실 급변하는 패션계에서 4대에 걸쳐 이름을 알리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계속해서 신선함을 좇는 이곳에서 주목받고 살아남으려면 독특하고 강력한 무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패셔너블한 가문 중 하나인 드 라 팔레즈가의 여자들은 우월한 유전자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진화시키며 한 세기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고혹적인 만능 엔터테이너 막심과 두 세대에 걸쳐 생 로랑의 무한한 영감이 되어준 룰루와 루시, 그리고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차세대 모델 엘라까지. 이들은 패션계에 드 라 팔레즈라는 뿌리를 깊숙이 내린 채 계속해서 다른 형태의 꽃을 피우고 있다. 타고난 외모에 안주하지 않고 디자인, 요리 등 다양한 영역으로의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녀들.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모든 이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선사한 이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뮤즈가 아닐까.

 

 

잔느 파퀸의 드레스를 입은 막심 드 라 팔레즈. 사진작가이자 친구 세실 비튼이 찍은 이 사진은 1950년 영국 <보그> 1월호에 실렸다.

잔느 파퀸의 드레스를 입은 막심 드 라 팔레즈. 사진작가이자 친구 세실 비튼이 찍은 이 사진은 1950년 영국 <보그> 1월호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