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최고의 패션=명품’의 공식은 통하지 않는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매일 입고 싶게 만드는 패션이다. 빠르게 몸집을 키워가며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브랜드들!

소통의 장

막 주목받기 시작한 브랜드가 궁금하다면, 이곳에 접속할 것.

MACHINE A

고급스러운 스트리트 무드의 아이템을 선별하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스타브로 스카렐리스가 운영하는 런던의 편집숍 머신A. 라프 시몬스와 미국 아티스트 스털링 루비의 협업 캡슐 컬렉션, 잔더 주와 나시르 마자르의 스포티한 아이템이 2014 F/W 시즌의 주력 제품이다.

V-FILES

오픈된 플랫폼을 지향하는 브이파일즈 사이트. 디자이너들이 직접 업로드한 자료를 기준으로 선별한 3~4개의 신진 브랜드의 런 웨이를 열어주는 걸로 유명하다. 이미 2015 F/W 패션위크를 위한 모집이 한창이다.

 

우리 지금 만나

올해 새로운 쇼핑 리스트 상위권에 올리면 좋을, 진화 중인 브랜드들.

HOOD BY AIR

힙합 뮤지션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후드 바이 에어의 2015 S/S 런웨이와 2014 F/W 아이템.

MARQUES ALMEIDA

우아한 무드를 거친 소재와 정리되지 않은 끝단 처리 방식으로 날것처럼 풀어내는 마르퀴스 알메이다의 2015 S/S 컬렉션 백스테이지.

PUBLIC SCHOOL

날렵하게 재단된 캐주얼 아이템들로 남성에 이어 여성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퍼블릭 스쿨의 2014 F/W 아이템.

VETEMENTS

각각의 포인트를 가진 간결한 아이템들로 ‘파리지엔 시크’를 새롭게 정의 중인 베트먼츠의 감각적인 룩.

 

패션이 환상과 맞닿아 있던 시절도 있었다. 런웨이 위를 넘실거리는 장식적인 룩이 추앙받고, 예술적일수록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던 시절. 하지만 그런 시대는 2000년대 초반에 끝났다. 누군가는 이를 ‘재미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고, 또 어떤 이는 ‘안 그러면 그게 무슨 앞선 패션이냐’고 툴툴댈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2014년, 가장 기억에 남는 패션 키워드만 떠올 려봐도 답은 분명하다. 한 해를 뜨겁게 달군 ‘놈코어’. 결국 동시대성과 실용성, 이 두 가지가 현재 가장 세련된 패션을 가늠하는 잣대인 셈이다. 미국의 유명 패션 저널리스트 사라 모어는 이러한 흐름을 짚은 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패션계는 변하고 있다. 이젠 런웨이와 레드 카펫보다 거리 위의 모습이 우선이다. 캐주얼하고 현실적인 것이야말로 새로운 기준이다”라고. 그 이유에 대해선 이렇게 분석했다. “이와 같은 세계적 추세는 모든 것을 다르게 바라보는 새로운 세대의 성향에 기 인한다.”

 

이런 흐름을 방증하는 가장 큰 변화는 성향이 닮은 친구들끼리 의기투합해 시작한 작은 브랜드와 거리의 문화를 바탕으로 자연스레 생긴 소규모 스트리트 브랜드들의 놀라운 성장이다. 마치 또래 집단 문화처럼 옷을 넘어 문화를 공유하는 이러한 브랜드와 디자이너는 웬만한 패션 하우스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못지않게 열광적인 인기를 얻고, 쿨하게 여겨진다. 그들이 매일 입기 좋은 옷을 좋은 품질로, 세련되게 선보여 물욕을 자극하기 때문. 재미 있는 사실은 한편으론 이러한 인기가 ‘취향’을 표출하고, 나누고 싶은 요즘 세대의 욕망과도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아는 이들끼리만 알아보고 이어지는 ‘우와! 너 00 입었어? 너도 그 브랜드 좋아해?’ 같은 물음에서 얻는 으쓱한 동질감, 또 그 브랜드 옷을 걸침으로써 남들은 잘 모르는 문화까지 향유하는 듯 느끼는 일종의 우월감이 이러한 인기의 기반에 자리 잡고 있는 것.

 

소규모 브랜드로 시작해 하나의 상징적인 문화를 만들어간 원조 브랜드는 1987년 시작된 디자이너 장 투이투의 프랑스 브랜드 A.P.C.다. 과장된 패션에 일침을 가하며 뚝심 있게 세심한 재단, 좋은 소재로 기본에 충실한 세련된 옷을 만든 그는 지금의 흐름을 28년 전부터 실행해온 장본인. 스웨덴 브랜드 아크네 스튜디오도 빼놓을 수 없다. 소규모 캐주얼 브랜드의 하이패션화의 전범이라 할 만한 이 브랜드의 시작점은 광고 프로덕션이었다. 그러다 1997년 디자이너 조니 요한슨이 시험적으로 만든 간결한 데님 팬츠 100벌을 친구들에게 주고 입게 한 것이 화제가 되며 전환점을 맞이한 것. 이후 18년간 동시대적이고 담백한 아이덴티티를 옷과 2005년 창간한 잡지 <아크네 페이퍼>를 통해 발전, 확장시켜온 이 브랜드는 이제 파리 패션위크의 메인 쇼를 선보이는 패션 하우스로 발돋움했다.

 

그렇다면 이 두 선구자를 이어받아 최근 몰라보게 몸집이 커지고 있는 브랜드로는 어떤 게 있을까? 뉴욕 거리의 작은 힙합 브랜드로 시작해 2014 S/S 시즌부터 뉴욕 패션위크까지 접수한 올리버 셰인의 후드 바이 에어, 밑단이 해진 데님 아이 템으로 스타덤에 오른 마르타 마르퀴스와 파울로 알메이다의 마르퀴스 알메이다(급격히 인기가 상승한 이들은 2014 F/W 시즌 톱숍과 협업 라인까지 선보였다), “시작점은 팔린 뒤 꼭 입혀지는 옷을 만들자는 거였죠” 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출신의 디자이너 7명(마르지엘라 후예답게 아직 아무도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이 만드는 파리 브랜드 베트먼츠, 남성복으로 시작해 이번 시즌 첫 여성복을 선보이며 승승장구 중인 다오이 초우와 맥스웰 오스본의 퍼블릭 스쿨, 열아홉부터 ‘친구들을 위한 옷’을 만들던게 계기가 되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미남 디자이너 시몬 포르테 자크뮈의 자크뮈가 바로 그 주인공. 이 다섯 브랜드라면, 올해 의심 없이 지갑을 열어도 좋을 것이다.

 

물론 이런 흐름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일단 디자인에 있어 진입 장벽이 낮아진 만큼 소재와 핏에 관한 고민 없이 만든 아이템을 화려한 인맥 등 외적인 요소로 그럴 싸하게 포장한 디자이너가 주목받기 쉬운 상황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 그러다 보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빠른 시간 내에 사라지는 고객이 많아질 것이고, 결국 많은 브랜드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급격히 사라지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 있어 새로운 신진 브랜드 발굴에 적극적이고, 끊임없이 검증하고, 키워가는 오프닝 세레모니, 런던의 머신A와 같은 젊은 편집숍들은 이 시대의 필수적인 존재다. 그뿐 아니라 이러한 조류에 발맞춘 웹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플랫폼도 눈에 띈다. 대표적인 곳은 전직 <V> 매거진 에디터 줄리 앤이 만든 ‘브이파일즈 (vfiles.com)’ 사이트. 이곳은 기존 브랜드 아이템들로 구성된 온라인 편집숍을 운영하는 동시에, 신진 디자이너들이 직접 올린 룩북과 영상을 엄격하게 심사한 뒤 3~4팀을 뽑아 뉴욕 패션위크 기간 중 런웨이를 열어주는 ‘VFiles Made Fashion’ 프로젝트를 세 시즌째 진행하고 있다. 그야말로 오픈된 소통의 장을 통해 제대로 된 새 브랜드 발굴에 힘쓰고 있는 것. 루이 비통으로 돌아온 니콜라 제스키에르조차 새 컬렉션을 선보이며 “New Normal!”을 외치는 2015년의 패션 시대. 일상적인 패션이 최상위의 중요도를 갖게 된 지금, 자신의 옷장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브랜드, 또 가장 많이 채우고 싶은 브랜드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