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화가 씨엔블루의 리더라는 책임감을 잠시 내려놓고 첫 번째 솔로 무대를 준비 중이다. 홀가분해진 만큼 자신의 가능성을 더 멀리까지 탐색할 수 있게 됐다.

질감 처리가 독특한 검정 니트 재킷은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제품, 헨리 네크라인의 흰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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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해는 정용화에게 기억할 만한 시간이었다. 거의 모든 트랙을 자작곡으로 채운 씨엔블루의 미니 앨범 <can’t stop=””>은 5년 차 밴드의 성공적인 변신이라는 평을 얻으며 인기 차트의 꼭대기에 안착했다. 첫 사극 출연이 된 드라마 <삼총사> 역시 그에게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 배우로서의 활동 반경을 넓힐 수 있었던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그런데 2015년은 그보다 더 중요한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몇 주 뒤 스물일곱이 될 뮤지션은 첫 번째 솔로 앨범 작업으로 한창 분주한 상태였다. 씨엔블루의 음악이 다른 멤버들의 취향과 팬들의 기대, 그리고 스스로의 만족감을 공평하게 중재한 결과라면, 이번 음반은 정용화의 목소리를 좀 더 솔직하게 드러내려는 시도라고 했다. “씨엔블루보다 더 섬세하거나 아니면 아예 더 세요. 팀 안에서야 중도라는 게 필요했지만 이번만큼은 내키는 대로 해려보고요.” 경상도 억양이 옅게 남아 있는 목소리에서 가지 않은 길 앞에 선 사람 특유의 긴장과 기대가 읽힌다. “솔로 프로젝트는 말하자면 ‘독박’이잖아요. 잘 돼도 제 탓, 안 돼도 제 탓이니까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요.” 자신이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는 뮤지션인지 지금까지는 그도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곧 완성될 솔로 음반은 정용화에게나 팬들에게나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여행이다.

 

며칠 전 막을 내린 씨엔블루의 일본 아레나 투어가 총 10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큰 성공을 거뒀다고 들었다. 준비 규모나 투자되는 시간이 만만치 않을 투어는 단발성 공연과는 마칠 때의 느낌이 다르지 않을까 싶다.

정용화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드라마 마무리할 때와 비슷하다. 한 달이 넘게 공연이 이어지다 보니 스태프들과 정이 많이 들고, 빠져나오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이후 몇 주 정도는 여운에 젖어 보내는 것 같다.

 

이번 투어를 돌아볼 때 특히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360도 회전하는 원형의 센터 스테이지에서 공연을 했다. 일본에서 메이저 데뷔하기 전 딱 한 번 서보긴 했는데, 이걸로 투어 전체를 소화하는 경험은 확실히 다르더라. 관객과의 거리가 가깝다 보니 반응이 더 빠르고 크게 와 닿았다.

 

씨엔블루는 한국 활동에 돌입하기 전, 일본 인디 신에 서 먼저 데뷔한 팀이다. 부도칸을 가득 채우는 밴드가 된 지금, 당시를 돌아보면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지는 않나?

작은 공연장에서 출발해 점점 더 큰 무대로 옮겨왔다. 아레나 투어 같은 건 데뷔 무렵에는 막연한 꿈에 가까웠다. 잠깐이나마 지금 누리고 있는 걸 당연하게 여긴 적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요즘에 부쩍 한다.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데뷔 무렵의 정용화는 어땠나?

어떤 면에서는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것도 몰랐고 잃을 것도 없었다. 그래서 뭐든 가볍게 도전해볼 수 있었다. 용기든 무모함이든 마구 넘쳤으니까. 그런데 활동이 이어지면서 점점 부담감이 늘었다.

 

어떤 종류의 부담일까?

데뷔 때나 지금이나 바쁜 건 마찬가지다. 다만 전에는 모든 변화가 낯설다보니 그냥 적응하기에만 바빴다. 익숙해지고 나를 돌아볼 여유가 생기면서 생각이 많아지니까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용기를 좀 잃기도 했다. 한참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지만 지금은 많이 편해진 상태다.

 

뮤지션이라는 직업은 자신에게 잘 맞는 자리인 것 같나?

가수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직업을 택하겠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상상이 안 된다. 나한테는 이게 천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즐겁다.

 

이 일이 특히 즐겁게 느껴질 때가 있나?

무대에 설 때, 그리고 곡을 쓸 때 그렇다. 2시간 반씩 공연하다 보면 힘든 게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관객들로부터 받는 기운이 엄청나다. 작곡이나 작사도 나한테는 그냥 재미있어서 하는 일이다. 내가 다른 직업을 가졌다면 이 정도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까 종종 생각한다.

 

많은 뮤지션이 무대 위에서 겪는 짜릿함의 중독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게 강렬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직업은 극히 드물 거다.

맞다. 가수를 꿈의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 일을 내가 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문득 신기하게 느껴지곤 한다.

 

회색 테일러드 코트는 N 헐리우드 by 에크루, 흰 셔츠는 언더커버 by 에크루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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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첫 번째 솔로 앨범을 준비 중이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게 된 계기가 있었나?

씨엔블루의 음악만 만들다 보니 언제부턴가 매너리즘이 느껴졌다. 솔로 활동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소하는 것도 괜찮겠 구나 싶었다. 그렇게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노력이 밴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고 본다.

 

정용화의 솔로 프로젝트는 씨엔블루의 음악과 어떻게 다를까? 힌트를 줄 수 있나?

개인적인 음악 취향도 계속해서 바뀐다. 예전 같았으면 하드한 사운드 위주가 됐을 텐데 지금은 아니다. 씨엔블루의 앨범을 기준으로 본다면 오히려 더 섬세하거나, 아니면 더 세거나다. 밴드 안에서는 중도를 지켰지만 이번에는 가고 싶은 방향 끝까지 솔직하게 가보려고 한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음악이 들어가게 될 것 같다.

 

씨엔블루의 곡을 쓸 때는 밴드의 색깔에 스스로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편인가 보다.

어쩔 수 없다. 내 마음 대로 한다면 그건 이미 밴드가 아니니까. 다른 멤버들의 취향도 염두에 두어야 하고 씨엔블루에 대한 팬들의 기대치도 있다. 전부 다 고려하게 된다. 몇 년쯤 활동하다 보니 어떤 기준이 생기게 된 것 같다.

 

솔로 프로젝트라서 할 수 있었던 흥미로운 시도의 예를 하나 들어준다면?

컬래버레이션을 다양하게 시도해봤다. 나 혼자 만든다면 씨엔블루와 다르긴 하더라도, 아주 다를 수는 없을 거다. 지금껏 다른 아티스트와의 교류가 드물었는데 이번 작업을 계기로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다양한 스타일을 경험하고 영향을 받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가 더 확실해진 느낌이다.

 

씨엔블루의 디스코그래피를 훑어보면 정용화의 자작곡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직접 곡을 쓰는 일에 욕심이 큰 듯하다.

물론 모든 뮤지션이 싱어송라이터 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곡을 받아서 부른다고 그 가수를 폄하하는 것도 옳지 않다. 욕심이라기보다… 그냥 곡 쓰는 걸 워낙 재미있어 한다. 나한테 잘 맞는 게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그 ‘무엇’을 직접 표현하지 못한다면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겠지만, 스스로는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한다. 음악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처음 곡을 만든 건 몇 살 때였나? 

중 3 때다. 음악을 직업으로 삼겠다는 거창한 목표보다는 막연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곡은 어떻게 만드나 싶어서 데모 만드는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설치하고 가사도 써봤다. 싸구려 마이크를 얻어와서 녹음도 했다. 아직도 부산에 있는 집 컴퓨터에 그 파일이 저장되어 있다. 어쩌다 들어보기도 하는데, 나쁘지 않다(웃음). 곡을 잘 쓰고 못 쓰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의 아마추어 같은 느낌에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하나씩 새로운 걸 알아가면서 아무 것도 모를 때의 음악은 잃어간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지금이 무조건 나은 것도 아니고 그때가 그저 부족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많이 아는 건 좋은 일이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느낌대로 갈 필요가 있다.

 

중 3 때 썼다는 노래 가사는 어떤 내용인가?

제목이 ‘Easy Love’다(웃음). 쉬운 사랑이라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걸 썼는지 모르겠다. 가사도 아예 말이 안 되고 그냥 웃긴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느낌이 있다.

 

어떤 느낌인가?

글쎄, 방구석에서 만든 느낌…?

 

새 앨범보다 그 노래가 더 궁금해졌다. 사실 이번 솔로 프로젝트가 첫 개별 활동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배우로서의 데뷔가 먼저였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음악과 연기를 병행하고 있다.

드라마 하나하나의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커리어를 쌓는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 게다가 한 가지만 하면 오히려 금방 지치겠다는 생각도 한다. 다른 분야로 떠나 있는 동안 기존에 하던 일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배우는 가수와 달라서 재미있다. 하나의 작품을 끝냈을 때의 성취감이 남다르고 정용화라는 사람이 아닌 하나의 캐릭터로 받아들여지는 기분도 흥미롭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보는 건 특별한 즐거움이다.

 

드라마에서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멋있는 캐릭터를 자주 맡았다.

그래서 나를 그런 사람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실제의 정용화는 어떤가?

드라마보다 더 매력이 넘치는 것 같다. 으하하!

 

올해 방영된 <삼총사>의 박달향은 기존에 맡았던 것과는 확실히 다른 인물이었고, 심지어 사극이었다. 본인에게도 색다른 경험이었을 듯하다.

처음 해보는 사극에서 액션까지 소화했다. 해냈다는 자체에 뿌듯함을 느낀다. 쉽지는 않았다. 촬영이 끝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결국 끝은 오더라. 그러고 나니 힘든 것도 다 잊고 아쉽기까지 했다.

 

사극 특유의 말투에는 쉽게 적응을 했나?

처음엔 어색했는데 점점 편해졌다. 나중에는 다른 작업을 하며 내레이션을 하는데 사극 ‘쪼’가 튀어나왔을 정도다.

 

부산 출신이다. 사극의 말투를 익히는 것과 사투리를 고치는 것 중에는 어느 쪽이 더 어렵던가?

연기자들이 따르는 기준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사극에서의 대사 처리에 정답은 없다. 우리가 직접 조선 시대를 살아 본 것도 아니니 뭐가 맞고 틀린지 알 수가 없다. 즉, 나름대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셈이다. 사투리 교정은 다르다. 표준어라는 잣대가 엄연히 있기 때문에 어설프면 금방 티가 난다. 그나마 내가 사람들을 잘 따라 하는 편이라 사투리를 고칠 때 도움이 된 것 같다.

 

방송에서 수준급의 성대모사를 하는 걸 몇 차례 봤다.

외국에 나가도 실제로 말을 잘한다기보다는 잘하는 척을 잘한다.

 

씨엔블루처럼 모든 멤버가 배우를 겸업하고 있는 밴드도 드물다. 서로 모니터링은 열심히 해주나?

스케줄에 쫓기다 보면 본방사수 같은 건 못한다. 몰아서 보거나 스포일러 같은 걸 캐내는 정도?

 

서로의 연기에 대해 평하는 일은 아예 없나?

드물다. 좋은 연기에 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잘했네 못했네 지적하는 일이 괜히 자존심을 건드릴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속으로 ‘그래도 연기는 내가 제일 낫지’라고 생각을 한다거나…?

그렇진 않다. 그런데 일단 나는 주연급이고 다른 멤버들은 아직 조연이라… 하하, 농담이다. 다만 이런 건 있다. 조연이 주연보다 덜 중요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역할이 커질수록 내가 느끼는 부담이 더 무거워지는 건 사실이다. 잘 안되면 내가 못 해서 그런 건 아닐까, 괜히 고민도 되고.

 

맡은 일에 부담과 책임을 크게 느끼는 편인가 보다.

부담을 많이 느끼고 그래서 일을 책임감 있게 하려는 편이다. 어쨌든 씨엔블루에서도 리더이자 맏형이니까. 그런데 집에서는 내가 막내다.

 

어떤 막내 아들인가?

애교도 많고 말도 많다.

 

부산 남자들은 무뚝뚝하다는 오랜 선입견이 있다.

말투 때문에 그럴 거다. 실제로는 경상도 사람들이 아주 수다스럽다(웃음).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직업이다. 가끔은 악의적인 말을 들을 때도 있을 거다.

크게 신경 안 쓰는 편이다.

 

처음부터 안 썼나? 아니면 안 쓰게 된 건가?

후자다. 불필요한 말을 무시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다.

 

대중의 시선과 함께 살아가는 일에는 많이 편해졌나?

잘 될 것 같은 음악만 계산해서 만들려고 한 적도 있었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한 거다. 이제는 팬들도 좋아하고 나도 만족할 수 있는 선을 어느 정도 알게 됐다. 그만큼 적응했다는 뜻일 거다.

 

뮤지션으로서 막연하게나마 목표로 삼고 있는 게 있나?

꾸준히 나아갔으면 좋겠다. 길게 하고 싶다. 그러면 다 잘되지 않을까 편하게 생각한다.

 

해가 바뀌는 시기이니만큼 뻔하지만 이런 질문도 필요할 것 같다. 2015년에 기대하는 바는 없나?

일단 한 해의 시작이 솔로 활동이다. 최선을 다해 노래하고 공연하는 것, 그것 외에는 아직 생각할 겨를이 없다.

 

한 살을 더 먹는 기분은 어떤가? 그런데 예민하게 반응할 나이는 아직 아니겠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지만 문득 놀랍기도 하다. 벌써 내가 스물일곱이라니 곧 서른이 오겠구나, 이러고 있다.

 

서른이든 마흔이든 기대하고 있는 나이가 있나?

30대가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좀 더 명확해지고 그걸 익숙하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나이가 아닐까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