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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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비비에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브루노 프리소니와 아름다운 홍보대사 이네스 드 라 프레상주, 그리고 더블유 코리아가 함께한 서울에서의 어느 오후에 관한 이야기.

모델 김성희와 함께 포즈를 취한 로저 비비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브루노 프리소니. 김성희가 입은 주얼 장식이 돋보이는 드레스와 샹들리에가 연상되는 귀고리는 모두 샤넬 제품. 검정 새틴과 골드 메탈이 어우러진 ‘나이트 클러치’와 곡선적인 굽 모양이 특징인 페이턴트 소재 ‘버귤’ 힐은 모두 로저 비비에 제품. 메탈 오브제와 가죽 소재가 어우러진 뱅글과 반지는 모두 토즈 제품.

모델 김성희와 함께 포즈를 취한 로저 비비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브루노 프리소니.

김성희가 입은 주얼 장식이 돋보이는 드레스와 샹들리에가 연상되는 귀고리는 모두 샤넬 제품. 검정 새틴과 골드 메탈이 어우러진 ‘나이트 클러치’와 곡선적인 굽 모양이 특징인 페이턴트 소재 ‘버귤’ 힐은 모두 로저 비비에 제품. 메탈 오브제와 가죽 소재가 어우러진 뱅글과 반지는 모두 토즈 제품.

크리스찬 루부탱의 붉은 밑창, 마놀로 블라닉의 크리스털 장식, 피에르 아르디의 그래픽적인 프린트…. 슈즈와 백으로 명성을 얻은 액세서리 하우스들은 저마다 상징적인 디자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로저 비비에 하우스를 대표하는 것은?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 형태의 메탈 버클! 디자이너 로저 비비에가 1937년 첫 숍을 오픈한 뒤 1965년 선보인 버클 펌프스는 이브 생 로랑 몬드리안 컬렉션의 슈즈로 런웨이를 수놓고, 영화 <세브린느(Belle de Jour)> 속 카트린 드뇌브의 슈즈로 등장하며 각광받았다. 50년 전 디자인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동시대적인 세련됨을 갖고 있는 이 펌프스, 그리고 버클 장식은 이후 로저 비비에가 작고한 1998년까지 끊임없이 다양하게 재해석되며 담백한 취향을 가진 파리지엔들을 대변하는 액세서리가 되었다. 물론 장인이라 불러도 무방할 로저 비비에는 이런 실용적인 슈즈 외에 쿠튀르 슈즈 디자인에도 능했다. 1930년대 물랭루즈의 스타들을 위해 장식적인 슈즈를 만들던 이가 비비에며, 50년대 디올 쿠튀르 쇼에 등장한 스틸레토 슈즈를 디자인한 인물도 비비에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잊혀진 브랜드에 새로운 생명력이 생긴 건 2003년 토즈 그룹이 이를 재론칭하면서부터다. 이때 부임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바로 브루노 프리소니. 랑방과 크리스찬 라크로와에서 경력을 쌓고 1999년 자신의 슈즈 레이블을 론칭한 그는 비비에의 아카이브를 토대로 자신의 건축적 미학이 더해진 슈즈, 그리고 새롭게 라인을 확장한 백으로 이전보다 훨씬 많은 세계 여성들에게 ‘로저 비비에’라는 이름을 각인시키고 있다.

“로저 비비에는 따뜻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패션뿐만 아니라 예술과 가구,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도 대단했지. 요즘 난 브루노에게서 로저 비비에의 모습을 본다. 그는 내게 다방면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 서울 송원갤러리에서 열리는 <로저 비비에-아이콘스 커넥티드> 전시 오픈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로저 비비에 홍보대사 이네스 드 라 프 레상주가 옆에 앉은 브루노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번 전시는 디자이너 로저 비비에의 개인적 삶과 로저 비비에 하우스의 여정을 보여주는 자리로, 다양한 아카이브와 이와 관련된 비디오 아트, 사진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이 특징. “파리의 패션 하우스들은 한국에 충성도 높은 고객이 생겼다는 사실을 성공의 증거로 생각한다”며 즐겁게 웃는 브루노와 이네스. 늘어난 수요에 힘입어 지난봄 서울 갤러리아 백화점에 단독 부티크를 오픈하기도 한 이들에게 선 자신감, 그리고 앞으로 한국에서 있을 더 많은 일에 대한 설렘이 동시에 느껴졌다.

2005년부터 로저 비비에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이네스 드 라 프레상주. 이네스 드 라 프레상주가 신고 있는 벨벳 소재 로퍼 ‘슬리퍼’, 소파에 놓인 부드러운 분홍 색상이 산뜻한 ‘엔벨로프 소프트 클러치’는 모두 로저 비비에 제품.

2005년부터 로저 비비에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이네스 드 라 프레상주.

이네스 드 라 프레상주가 신고 있는 벨벳 소재 로퍼 ‘슬리퍼’, 소파에 놓인 부드러운 분홍 색상이 산뜻한 ‘엔벨로프 소프트 클러치’는 모두 로저 비비에 제품.

<W Korea>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오래 지내는 디자이너가 드문 시절이다. 그런 면에서 로저 비비에 하우스는 굉장히 성공적인 선택을 했다. 11년째 남성 디자이너로서 여성의 슈즈를 디자인하고 있는데, 여성이 아니라는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나?

브루노 프리소니(이하 브루노) 여성의 발이 편안하도록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테스트하기 위해 내가 직접 신어보는지 궁금하다면 대답은 ‘No’다. 나는 슈즈를 디자인하는 사람이고, 그건 스케치하는데 필요한 과정은 아니니까. 드레스를 만드는 남자 디자이너들이 그 드레스를 입어 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오히려 내가 남자라서 직접 신을 것을 생각하는 여자 디자이너들보다 상상력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고 본다.

이네스 드 라 프레상주(이하 이네스) 브루노 생각에 동의한다. 편안함과 합리적인 부분만 생각한다면 패션이 재미없어질 것이다. 아름다운 패션도 적어질 거고. 몸을 옥죄는 코르셋, 목에 무리가 가는 커다란 모자, 무거운 주얼리. 이 모든 것이 편안하기 위해 만든 아이템은 아니지 않은가?

<세브린느> 속 카트린 드뇌브의 버클 펌프스를 보면 로저 비비에는 여성을 배려하는 시선을 가지고 있는 브랜드라는 생각이 든다. 여성의 섹시함을 아찔한 힐에 국한시키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슈즈 디자이너들이 하이힐을 섹시함의 절대적 요소로 이야기한다. 브루노와 이네스가 생각하는 힐과 섹시함의 상관관계란?

브루노 누가 신느냐에 따라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이힐은 개인의 취향과 욕망이 철저하게 지배하는 패션 아이템이니까. 그런데 더 높고 가늘수록 섹시한 느낌을 주는 건 안타깝게도 사실이다.

이네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시대를 관통하는 섹스 심벌들, 예를 들자면 마릴린 먼로와 브리지트 바르도가 모든 사진에 하이힐을 신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데님 팬츠에 니트 스웨터를 입고 워커를 신은 채 헝클어진 머리로 렌즈를 응시하던 마릴린 먼로, 발레리나 슈즈를 신은 브리지트 바르도도 충분히 섹시하다. 그러므로 립스틱을 바르고, 손톱을 길고 반짝이게 손질하고, 높은 힐을 신으면 무조건 섹시하다는 생각 자체에 난 동의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신는 사람, 그리고 그날의 옷차림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 슈즈를 택했느냐다. 낮은 키튼힐을 신고도 충분히 섹시할 수 있다.

로저 비비에의 슈즈와 백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이네스 오늘 신은 것과 같은 ‘슬리퍼’ 로퍼 시리즈! 또 브루노의 부츠가 너무 좋다. 난 브루노가 지구상에서 가장 예쁜 부츠를 만든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이 알고 있듯, 난 슈즈 마니아다. 브루노는 내가 슈즈를 고를 때마다 까탈을 부린다고 구박한다. 인정한다. 난 옷은 저렴한 아이템으로도 세련되게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슈즈는 아니기 때문이다. 품질이 뛰어나고 우아한, 완벽한 슈즈를 찾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백 중엔 물론 나의 이름을 딴 ‘이네스’ 라인이 가장 좋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지금 가장 인기 좋은 백은 ‘미스 비브’다.

2014 F/W 미스 비브 백의 아이콘으로 아트 컬렉터이자 아트 관련 사이트를 운영하는 암브라 메다를 선택했다.

브루노 마치 70년대의 로렌 휴튼처럼 아름답고 친근하면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인물과 함께하고 싶었다. 물론 더 화제가 될 만한 배우나 톱모델을 기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로저 비비에 하우스는 잇 백, 잇 슈즈, 잇 걸과 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하기보다는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전문적인, 그러면서도 우아한 인물이 어울린다.

이네스 그녀는 정말 세련된 취향을 갖고 있다. 패션만이 전부라 믿는 패션 빅팀과 거리가 먼 인물이라 더욱 좋다. 난 진정으로 우아한 사람이란 바로 그런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현실과 동떨어져있지 않는 삶을 살고, 그러면서 아름답고 세련된 사람. 화려하기만한 연예인이 꼭 정답은 아니다. 진짜 아름다움이란 성형과 포토샵으로 만드는 것도 아닐뿐더러, 요즘 여성들은 똑똑해서 레드 카펫의 연예인이 신고 들었다고 꼭 열광하지도 않거든. 우린 진정성있는 브랜드를 꾸려가고 싶다.

로저 비비에와 브루노 프리소니에 대한 애정이 정말 각별하다고 느껴진다. 이 브랜드의 어떤 점에 마음이 끌려 홍보대사가 되기로 결심했나?

이네스 9년 전 로저 비비에 하우스로부터 홍보대사가 되어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전율을 느꼈다. 아무 설명도 필요 없었다. 난 이미 예전부터 로저 비비에의 모든 작품을 사랑해왔으니까. 로저 비비에의 액세서리가 좋은 건, 그 자체만으로 사람을 당당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티셔츠 차림이어도 고급 레스토랑에 갈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하면 될까? 주변에 ‘나 이거 살 돈 있다’고 과시하기 위한 액세서리가 아닌, 자기 만족감을 주는 브랜드라 더 좋다. 예쁜 아이템을 보고, 만지고, 매일 몸에 지니는 것. 그 자체가 행복이다. 물론 아까도 말했듯이 옷에는 훨씬 관대하다. 난 이자벨 마랑, 프라다, 셀린, 유니클로, 그리고 플리마켓에서 구입한 빈티지 아이템을 모두 똑같이 사랑한다.

옷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RTW로의 확장 계획은 없나? 멀버리나 코치, 토즈처럼 액세서리 브랜드로 시작해 토털 하우스로 몸집을 키우는 브랜드가 늘어나고 있다.

브루노 많은 이들이 묻는 질문이다. ‘로저 비비에’의 레디투웨어라…. 물론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그러나 슈즈에서 백, 주얼리와 선글라스까지 라인을 확장했듯이 언젠가는 가능한 일 아닐까?

이네스 난 언젠가 브루노가 그만의 미감으로 옷을 만든다면, 아름다울 것 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번 전시를 보고 한국 여성들이 브랜드 로저 비비에를 어떻게 기억했으면 좋겠나?

브루노 로저 비비에는 파리를 담고 있고, 또 닮았다. 겉은 차가워 보이지만 알면 알수록 많은 것이 내재된 양파 같은 존재. 사람들이 이를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네스 오늘 저녁에 예정된 전시 오프닝 파티에 한국 배우 최지우와 소녀시대의 윤아 등 다양한 이들이 참석할 것이다. 일부러 다양한 연령층의 셀레브리티를 초대하자고 제안했다. 요즘 디자이너들은 뮤즈를 물으면 대뜸 “젊고, 아름답고…” 라는 말부터 던지곤 한다. 난 모든 여성을 아우를 수 있는 브랜드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로저 비비에가 그런 액세서리 하우스라는 걸, 오늘 밤 알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이경은
포토그래퍼
장덕화
모델
김성희
헤어
김귀애
메이크업
박혜령
어시스턴트
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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