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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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렇게 입고 싶은 나, 비정상인가요?

외국 컬렉션장 앞에서 스트리트 패피들 사진 보면, 패핀지 퍼핀지, ‘패션 넘버5’ 같은 데 소재로 쓰일 법한 개그 복장도 많잖아요? 우리 엄마 친구같이 생긴 아줌마가 쥐돌이 귀 달고 나오거나 정신 멀쩡한 처자가 옷 대신 고기 덩어리 입는 거 말이죠. 그런데 문제는, 실은 저도 한 번쯤은 튀는 패션으로 서울 패션위크에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이러다가 유머 게시판 지분을 차지할까봐 겁나기도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나, 비정상인가요?

지극히 정상입니다. 질문하신 분이 비정상이라면 지금까지 에디터가 해외 컬렉션 출장에서 만난 그 수많은 사람들부터 (대부분의) 디자이너와 모델들을 비롯해 지금 더블유 사무실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마감에 매진하고 있는 에디터들 중 꽤 여럿도 비정상 취급을 받아야 마땅할 테니까요. 하지만 이건 꼭 얘기해주고 싶군요. 옷 대신 고기 입고 컬렉션장 앞에서 사진 찍히는 여자는 서울이 아니라 파리에서도 미친 여자 취급을 받는다고요. 옷으로 개그 치려는 의도가 아닌 바에야 컬렉션에서 독특했던 룩을 그대로 입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마세요. 임팩트 있는 피스 하나를 평소에 자신이 입은 룩에 섞으면 됩니다. 파파라치 표적용으로 에디터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것은 제레미 스콧의 괴물 얼굴 니트 스웨터, V 파일스의 ‘Fear’ 퍼 스톨과 레터링 목걸이, 좀 더 여성스러운 취향이라면 비카 가진스카야의 황금 러플 드레스, 스텔라 진의 만화 같은 벨트 프린트 펜슬 스커트 등입니다. 한 번 찍힌 의상은 두 번 다시 입으면 안 된다는 것도 잊지 마세요.

빨강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꽃무늬 원피스 소매 위로 낀 매끈한 고무장갑이 너무 멋져 보이는 거예요. 이거 내놓으면 엄청 히트칠 거 같아요. 대한민국 고무장갑 패션을 유행시키고 싶다는 나, 정상인가요?

고무장갑 끼고 런웨이 활보하는 꼴을 기어이 보게 되는 건가요? 어라? 그런데 제가 질문자의 사연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나는데… 아! 지난 파리 컬렉션에서였어요. 알레산드로 델라쿠아의 로샤 컬렉션에서는 빨간 고무장갑(실제로는 분홍색인 거 아시죠?)과 싱크로율 90%를 자랑하는 팔목 위로 올라오는 장갑을 블라우스와 코트 위로 매치했더라고요. 릭 오웬스 쇼에서는 장갑 옆선에 지퍼를 달아 맨손을 꺼낼 수 있게 만든, 마치 옆구리 터진 고무장갑을 연상시키는 긴 장갑도 등장했어요. 그러니 그 아이디어는 이쯤에서 접는 게 어떨까요.

얼마 전에 만난 친구 옷을 보고 좀 놀랐어요. 옷에 귀고리, 반지, 팔찌, 목걸이가 붙어 있는 줄 알았거든요. 자세히 보니 장식이 표면에 붙어 있는 거더라고요. 의자에 앉을 때 엉덩이 아프지 않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트렌드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일까봐 참았어요. 그런 옷이 도무지 예뻐 보이지 않는 나, 비정상인가요?

보통 사람의 시각에서 보면 정상일 테고, 저처럼 패션 하는 사람의 눈에서 보자면 비정상에 가까워 보이기도 해요. 옷 표면을 다양한 소재로 장식하는 건 신기한 일이 더는 아니거든요. 이번 시즌 깜짝 장식의 대표작으로는 운동화 끈 장식을 코트의 옆구리에 갖다 붙이고, 파인 주얼리에서나 볼 법한 정교한 나뭇잎 보석 장식을 스커트의 갈라진 틈 사이로 장식한 디올, 색색의 트위드 조각과 꽃 코르사주를 매달아 헤어 장식으로 이용해 ‘머리에 꽃 단 여자’를 만든 샤넬, 스웨터의 네크라인 주변으로 섬세한 인조 진주와 스팽글, 비즈를 촘촘히 장식해 마치 커다란 진주 목걸이를 한 듯한 느낌을 주는 발렌시아가의 예가 있어요. 스커트에 커다란 크리스털이 붙은 셀린의 스커트를 제가 한번 입어봤는데요, 하나도 아프지 않았으니 걱정 마시고요. 제 엉덩이가 유난히 푹신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니트가 대세더라고요. 특히 축축 늘어지는 니트는 잠옷 대용으로 입으면 밤에 남친에게 매력 발산하기 좋을 것 같던데…. 니트를 청순잠옷으로 입겠다는 나, 비정상인가요?

당신은 정상이에요. 목 늘어난 니트 하나 걸치고서도 이렇게 청순청순열매와 섹시섹시열매를 동시에 잡순 듯한 소니아 리키엘 쇼 사진 자료 속의 미란이… 아니, 미란다 커가 비정상인 거죠.

다른 데는 다 평균인데, 유독 팔만 짧아서 고민이 참 많아요. 엄마 말씀이 소매가 너무 길거나 짧으면 ‘없어 보인다’고 하시기에 그간은 불편해도 상의는 거의 수선해서 입었어요. 그런데 요즘 옷은 정말 길게 나오다 보니 일일이 수선하기도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길게 입을까 해요. 소매를 일부러 길게 입는 나, 비정상인가요?

정상, 비정상의 문제라기보다는 불편한가, 불편하지 않은가의 문제인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 옷은 패턴과 구조가 독특한 게 많아서 그냥 뚝 자른다고 해결되지 않고, 옷만 해치는 경우도 많고요.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이번 시즌에 손등을 다 덮을 정도의 긴 상의를 쿨하게 그냥 입고 다니는 스타일링이 여러 쇼에서 반복적으로 나왔다는 거예요. 정 불편하면 셀린 쇼에서 등장한 핸드 머프를 착용해 소매를 감추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에디터
패션 디렉터 / 최유경
포토그래퍼
제이슨 로이드 에반스
PHOTO
INDIG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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