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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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꽃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꽃을 다루는 일을 시작한 플라워 숍 헬레나의 유승재 대표. 그녀는 이제 청담동에 아틀리에를 새롭게 열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꽃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헬레나를 모를 수도 있다.

유승재 헬레나는 블로그나 웹사이트를 통해 홍보를 하지 않는 편이라 젊은 사람들은 많이 모를 수도 있다. 1999년 처음 문을 열고 15년이나 된 오래된 곳이지만(웃음). 예전에 했던 일과 지금 하는 일은 거의 똑같다. 매장에서 개인 고객을 상대로 일을 하기도 하고, 웨딩이나 브랜드 행사, 국제회의까지 다양한 분야에서도 활동 중이다. 한마디로 꽃과 관련한 광범위한 일을 하 는 셈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꽃의 본질적 의미를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번에 아틀리에를 새로 연 계기가 있나?

원래 청담동에 있던 플라워 숍은 약속을 해야만 겨우 찾아올 수 있는 곳이었다. 아틀리에 헬레나는 조금 더 다양한 사람과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이다. 꽃에 대한 내 생각을 대중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가려고 한다. 아직까지는 이곳에서 주로 작업을 하지만 9월부터는 본격적으로 플라워 수업을 시작할 것이다.

수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할 예정인가?

꽃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 가치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꽃이 어떻게 사람을 감동시키는지, 어떻게 행복을 줄 수 있는지를 알리고 싶다. 단순히 ‘이 꽃집이 유명하다’보다 ‘왜 꽃이어야 하는가’와 같은, 꽃에 대한 본질적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예를 들어 다양한 분야와 꽃의 연결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 ‘꽃과 그림’, ‘꽃과 문학’, ‘꽃과 영화’와 같은 주제로 다양한 커리큘럼을 개설할 예정이다. 피아노를 전공해서 오페라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오페라에도 꽃이 등장할 때가 무척 많다. 이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꽃이 늘 우리와 함께한다는 걸 전하려 한다.

1. 아틀리에 헬레나에는 플로리스트 유승재가 그동안 모아온 화병과 각종 앤티크 소품이 가득하다.2. 뾰족뾰족한 꽃잎과 넓은 그러데이션이 특징인 달리아.3. 헬레나를 상징하는 나비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1. 아틀리에 헬레나에는 플로리스트 유승재가 그동안 모아온 화병과 각종 앤티크 소품이 가득하다.
2. 뾰족뾰족한 꽃잎과 넓은 그러데이션이 특징인 달리아.
3. 헬레나를 상징하는 나비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랫동안 공부해온 음악 대신 꽃을 선택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꽃을 선물하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꽃을 직접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당시에는 지금처럼 꽃을 배울 수 있는 클래스도 많이 없었다. 그래서 꽃을 다룰 수 있는 곳이라면 무조건 찾아 가서 무보수로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꽃에 대한 갈증이 넘치던 시기였다. 음악을 전공하면서 배운 점 중에 플로리스트로 일하면서도 도움이 되는 점은 꾸준함과 성실함이다. 다만, 음악을 했을 때는 내 몸이 늘 굳어 있었다. 근데 꽃을 다루는 일을 시작한 이후로는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여유로워졌다.

무보수로 일하기를 자청했을 정도라니 놀랍다. 어떤 곳에서 일을 배웠는지 궁금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LA에서 일했을 때다. 계획 하나 없이 단순히 일해보고 싶다는 이유로 찾아갔는데 운이 좋게도 선뜻 허락해주었다. LA에서는 각종 할리우드 행사를 비롯해 대규모 행사가 많아서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당시에 내 별명이 ‘승 유 본(bone)’이었다. 마른 몸에도 불구하고 힘이 세고 체력도 워낙 좋아서 생긴 별명이다. 그때는 고된 일을 하면서도 늘 구름 위를 나는 기분이 들었다. 연애 초기처럼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하지만 그때도 이걸 직업으로 삼을 계획은 없었다.

그럼 한국에 와서 헬레나는 어떻게 열게 된 것인가?

정말 엉겁결에, 아무런 계획도 없이 헬레나를 열었다. 마케팅 전략 같은 것은 당연히 없었다. 그런데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맡게 된 아셈회의라는 국제 행사가 헬레나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3박 4일 동안 그곳에서 지내면서 낮에는 대기하고 밤에는 작업을 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행사가 끝난 후 관계자들로부터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라는 말도 들었다. 초창기였는데 그런 칭찬을 받아서 정말 힘이 났다.

그때 이후부터 지금까지 정말 여러 행사에 참여해왔다. 가장 어려 웠던 작업은 무엇이었나?

예전에 루이 비통 매장 오픈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행사를 위해 흰 튤립을 주문했는데 도착한 박스를 열어보니 노란 튤립이 들어 있었다. 그런 일이 종종 있다. 서류상으로는 분명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도착한 박스를 열어보면 그런 사고가 나는 거다. 그런 일이 생기면 최대한 순발력 있게 다른 구성을 짜내야만 한다. 또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는 꽃이 많은데 그 꽃이 연약할수록 도착하는 순간까지 늘 마음을 졸여야 한다.

보통 작업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편인가?

나는 무엇보다 꽃을 고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꽃은 색감이나 기울기가 섬세하게 다르다. 심지어 줄기 하나도 같은 꽃이 없다. 수입 국가나 계절에 따라 가장 알맞은 꽃을 선택하는 것에 있어서는 헬레나가 독보적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꽃을 구하는 사람들이 ‘헬레나가 없다고 말하면 진짜 못 구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니 이 쯤이면 확실한 신뢰를 쌓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웃음)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작업은 어떤 것이 있나?

사람을 보면 그 사람과 비슷한 꽃을 떠올릴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나는 심은하를 좋아하는데 그녀를 보면 카라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무언가 강인하면서도 복잡하고 미묘한 카라의 특징과 그녀한테서 받는 느낌이 유사하다. 나중에 꽃과 사람 사이를 탐구한 전시를 열고 싶다.

사람을 보고 꽃을 연상한다니 플로리스트다운 생각이다. 또 어떤 것에서 꽃에 대한 영감을 받나?

음악이다. 단순히 집이나 작업실에서 음악을 듣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 공연에 가는 것도 무척 좋아한다. 해외에서 좋은 공연이 예정되어 있으면 예매하고 최대한 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로맨티스트이고 이상주의자에 가까운 내 성격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떤 면에서 자신이 로맨티스트나 이상주의자에 가깝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성격 자체가 좀 고루한 편이어서 그런지 무엇보다 본질에 집중하는 걸 중요시한다. 물론 꽃은 디자인의 한 부분일 수 도, 예술의 한 부분일 수도 있지만 결국 꽃이 무엇인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 한다. 여러 사람들과 음향과 조명을 설치하면서 하는 작업도 좋아하지만 내가 가장 행복할 때는 기초적인 꽃 작업을 할 때다. 꽃을 다듬고 정리할 때, 그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렇다면 플로리스트 유승재가 생각하는 꽃의 아름다움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꽃은 그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어쩌면 사람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할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꽃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도 무척 감사한 일이다.

4. 앞으로 헬레나가 집중적으로 진행할 클래스가 열릴 공간.5. ‘매직박스’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바닥에 있는 테디베어들이 자양분이 되어 마술처럼 꽃을 피운다는 것을 표현했다.

4. 앞으로 헬레나가 집중적으로 진행할 클래스가 열릴 공간.
5. ‘매직박스’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바닥에 있는 테디베어들이 자양분이 되어 마술처럼 꽃을 피운다는 것을 표현했다.

6. 붉은 벨벳 같은 질감이 특징인 맨드라미.7. 아틀리에의 꽃은 모두 하나하나 그녀의 손길을 거쳐 재탄생한다.

6. 붉은 벨벳 같은 질감이 특징인 맨드라미.
7. 아틀리에의 꽃은 모두 하나하나 그녀의 손길을 거쳐 재탄생한다.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이채린
포토그래퍼
서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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