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게리, 파리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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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의 디즈니 콘서트 홀,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역작이자 그 도시의 랜드마크다. 올해 10월에는 그 목록의 마지막 줄에 파리 루이 비통 문화예술재단이 올라갈 것이다. LVMH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가 이 해체주의 건축가와 어떻게 손을 잡게 되었으며, 그 아름답고 신비로운 최종 결과물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대중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는지 소개한다.

파리의 자랑거리로 꼽혀온 수많은 건축 작품을 떠 올려보자. 그 이미지를 아무리 더듬어봐도 이번 가을 볼로뉴 숲에서 개관할 루이 비통 문화예술재단 (Foundation Louis Vuitton) 같은 건물은 없다. 프 랭크 게리의 최근 미술관 프로젝트는 이 도시가 한 번도 목격한 적 없는 묘하고 신기한 건물일 것이다. 힘차고 남성적 이면서도 여리고 섬세하고, 실용적이면서 몽환적이며, 문화 적 야심과 기업 홍보라는 목적을 동시에 품고 있다.

경이로울 정도로 새롭고, 이제까지 본 것과 전혀 닮지 않은 이질적인 건물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무언가와 어떻게든 연결시켜 이해해보려 한다.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파리의 루이 비통 문화예술재단을 처음 볼 때도 그럴 것이다. 바람을 받아 부풀어 오른 배의 돛 같기도 하고, 출항하는 범선 같기도 하고, 헤엄치는 고래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크리스털 성이 폭발하는 중인 것 같기도 하다. 안으로 들어가서 보면 18세기 이탈리아의 건축가 피라 네시가 살짝 스쳐가기도 하고, 계단으로 된 타워를 올려다보 고 있자면 러시아 구성주의 건축가 블라디미르 타틀린의 나선형 계단과 비슷하다는 느낌도 받는다. 정면에 똑바로 서서 외관을 보면 미국의 건축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대표 작으로 ‘유리로 된 시나이산’이라 불리는 육각형의 베스 숄름 회당(Beth Sholm Synagogue)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연상 작용과 비교 작업이 반드시 필요한 걸까? 수긍이 가는 의견도 없지 않지만 이것들은 단지 이 건물 이 완전히 새로운 실체라는 사실, 이제까지 그 누구도, 심지어 프랭크 게리 본인의 과거 작업과도 닮지 않은 기념비적인 공공 건축 작품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 결론을 유보하고 싶어서 하는 말들일 뿐이다. 다른 감상도 얼마든지 펼칠 수 있다. 만국박람회를 위해 건립된 상젤리제 중심가의 화려한 미술관 그랑팔레의 21세기 버전이라고 할 수도 있고, 게리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한 발 더 나간 파격적인 시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건물을 대단하게 만드는 정확한 지점은 놓친 것 같다. 또 다른 게리의 작품으로 역시 대형 범선의 닻을 연상시키는 뉴욕의 IAC 빌딩의 후손이라고 하는 평도 게리가 파리의 서쪽 외곽의 볼로뉴 숲 속 약간 생뚱맞은 부지에 무엇을 만들려고 했는지 정도만 설명해줄 뿐이다. 85세인 게리는 피카소나 라이트가 말년에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가능성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과거의 작업들이 아무리 독보적이고 중요하다고 해도 그것은 대단원의 마무리가 아니며 그 이상의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한 초석의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수년 동안 유리 소재에 매혹되어 갖가지 실험을 했으며, 유리를 자유자재로 휘고 비틀고 구부려 비대칭적이고 역동적인 외관을 만들어냈다. 사실 이 긴 여정의 기원은 1999년에 작업한 콘데나스트 빌딩의 카페테리아 인테리어였다. 티타늄으로 된 벽과 베네치아 유리로 된 칸막이는 그 자체로 건축이자 화려한 형식으로 전체 건물에도 특별한 형태를 부여했다.

게리는 돛과 배를 사랑하는 것처럼 물고기 모양도 무척 좋아 한다고 한다. 따라서 지금 이 건물 또한 자신의 모든 관심 분 야를 끌어내 엄청난 규모의 복잡한 오브제로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게리의 또 하나의 오래된 테마는 건물의 외관을 해체하여 그가 ‘뼈대’라 부르는 골조를 드러내 숨겨진 건축 미학을 감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 수십 년 전에 작은 목조 주택의 골조를 보여주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구부러진 철재와 목재를 전시하는 대형 건축물을 설계하게 되었다. 한때 이런 프레임워크는 에펠탑이나 중세 교회를 연상시킨다는 말도 있었다. 이 루이 비통 재단 건물은 굉장히 힘차고 남성적이다. 그러면서도 부드럽고 세심한 곡선이 살아 있다. 마치 발레리나의 우아한 동작을 아는 라인 베커(상대팀 선수들에게 태클을 걸며 방어하는 수비수)같다고 할까? 아니면 돛새치처럼 날렵하게 헤엄치는 대형 흰고래 같다고 할까.

약 1억4천300만 달러의 초대규모 프로젝트로 알려진 루이 비통 문화예술재단은 10월에 일반인에게 공개될 것이다. 패션 그 룹인 LVMH 모에 헤네시 루이 비통의 회장이자 CEO인 베르나르 아르노는 이곳을 컨템퍼러리 아트 뮤지엄이자 문화 센터로 명명했다. 따라서 이 건물이 화제가 되는 건 단순히 건축적인 특징 때문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에는 개인 소유의 미술관이 비교적 적은 편인데 이곳에는 예술품 수집가로 유명한 아르노의 소장품이 주로 전시될 것이다. 기업 이미지를 현대 미술 및 디자인과 연결시켜보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하지만 이 건물은 그저 LVMH라는 브랜드 이상의 가치의 브랜드로 발전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20세기 초중반까지 다른 어떤 곳 보다 현대 미술, 건축, 디자인 분야에서 창의적 에너지를 발산 했던 프랑스라는 브랜드, 혹은 예술의 도시 파리라는 브랜드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다. 파리는 이미 오래전에 창의력의 본산 지로서의 리더 자리를 뉴욕을 비롯한 다른 도시들에 넘겨주었다. 이후 프랑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리처드 로저스와 렌초 피아노의 퐁피두센터, I.M.페이가 설계한 루브르 박물 관의 유리 피라미드, 크리스티앙 드 포르장파르크의 시테 드 라 뮈지크(la Cite de la musique) 등의 야심찬 랜드마크를 선보였지만 과거의 명성을 되찾지는 못했다.

이제까지는 이렇게 개인이 주목할 만한 문화 시설 건립에 투자한 적이 없었고, 프랑스 정부의 간섭 없이 기획되고 설계 되고 관리되는 것도 처음이다. 1994년 지금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로 용도가 변경된 아메리칸 센터를 완성한 이후 게리의 첫 파리 프로젝트인 이 놀라운 신작 건물은, 거의 40여 년 전 퐁피두센터가 오픈한 이래 이 도시가 내밀 수 있는 가장 참신하고 매력적인 카드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 들어설 전시관과 복합 문화 공간은 민간 기업의 열정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실험실이 될 것이다. 파리는 한 번도 문화적 야심을 이 정도 규모의 사기업과 한데 묶어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이것은 게리의 유리문 밖으로 한참 더 멀리 퍼져 나가게 될 무언가를 만드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은 2001년, 프랑스 문화 정책을 지휘한 자크 랑 장관 밑에서 일한 장 클라베리가 아르노의 특별 고문으로 합류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빌바오에 있는 게리의 구겐하임 미술관에 매혹되었고, 아르노에게 같이 스페인에 가서 보고 오자고 설득했다. “그 건물을 처음 발견하고 그 앞에서 내가 느꼈던 그 경이와 충격을 그와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가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어요. 그가 워낙 바빠서 두 번이나 취소했거든요. 그래도 결국 2001년 11월에 가게 되었죠.” 클라베리는 아르노가 바로 눈앞에서 게리의 건물을 보고선 이 말밖에 못했다고 회상한다. “어떻게 사람이 이런 건물을 상상 할 수가 있지?”

아르노는 LA에 거주하고 있던 게리를 당장 만나야겠다고 했고 이 두 사람은 한 달 후 뉴욕에서 점심 미팅을 했다. 아르노는 게리에게 자신도 파리에 건물을 세우고 싶은 비전이 있다고 밝혔다. 문화예술재단을 만들어 예술과 교육을 지원하는 것은 루이 비통 같은 창의적인 기업의 의무라고도 설명했으며, 또한 그 건물이 파리를 대표하는 위대한 건축물의 반열에 들었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피력했다.

“이 건물은 우리 재단이 시도하게 될 첫 번째 예술 활동이 될 것입니다.” 이후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지휘하게 된 클라베리 는 말했다. 그와 아르노는 게리를 데리고 볼로뉴 숲 북쪽에 있는 어린이 놀이공원인 아클리마타시옹 공원(Jardin d’Acclimatation)으로 갔다. 언뜻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입지라고 할 수 있었다. 지난 몇 년간 파리의 문화적 에너지는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르노에게는 다른 속셈이 있었다. 아클리마타시옹 공원이 시립공원 안에 있긴 해도 토지 개발권은 루이 비통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르노는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은 건물, 클라베리의 표현에 의하면 ‘오트 쿠튀르 빌딩’을 원했기 때문에 파리 중심가와 떨어진 볼로뉴 숲에 그 건물을 세우게 되면 파리의 고풍스러운 거리 풍경과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개성 있고 모던한 건축물을 반대하는 정책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계산한 것이다. 물론 그들이 전권을 주장할 수는 없었다. 파리 시 측에서는 원래 이 자리에 있었던 저층의 사각형 건물보다 더 높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고, 게리의 최종 설계도가 허가를 받은 후에는 볼로뉴 숲 전체가 자신의 뒷마당이라고 여기는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부딪쳤다(사실 가장 가까운 주택가는 몇 블록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프랭크 게리 쪽에서 할 일은 자신의 설계를 이 울창한 녹지라는 주변 맥락에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었으나 사실 그에게 이런 작업은 너무 쉬웠다. 게리는 주변 환경을 모방하지 않고 대담하게 우뚝 서서 그 주변 지형을 바꾸며 시선을 확장시킬 건물을 지을 자신이 있었다. 빌바오의 구겐하임이 살베 다리와 강가의 공장 지대를 수용하여 새로운 전망과 풍경을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다. 8천9 백 평방미터의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은 숲과 공터로 둘러싸여 있고, 게리의 조형미는 다른 모든 건물들보다 여기서 더 자유롭게 발휘되고 있다.

하지만 설계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 재단 미술관에는 갤러리가 많아야 하고, 강당도 들어가야 하며 일반 이용자 편의 공간인 카페나 서점, 커다란 로비가 있어야 한다는 것 외에는 확실한 출발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건물을 설계할 때 외부 디자인부터가 아니라 내부 설계부터 하는 것이 게리의 성향이다. 그래서 먼저 아트 갤러리를 포함할 세 개의 공간을 박스 모양으로 만들어 세웠고,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들어가게 될 세 개의 나선형 타워를 중심에 놓았다. “유리벽에 미술 작품을 걸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가 내게 말했다. 그것이 원래 게리가 작업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그의 건축은 독창적이고 기하학적인 외관으로 유명하지만 그것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 이다. 그는 조각가적인 본능을 자유롭게 펼치기 전에 먼저 본래의 기능에 충실한지부터 확실히 한다. 이 기업이 소장하고 있는 제프 쿤스, 리처드 프린스 등의 작품 등이 들어갈 갤러리는 덕탈(Ductal)이라는 흰색의 섬유 보강 콘크리트로 덮어 씌웠고, 게리는 그것들을 ‘빙산’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빙산과 타워 위에 구부러진 유리로 외관과 지붕을 만들고 그 유리가 로비와 옥상 테라스를 가리게 했다. “개성이 강하지 않아 쓰임새가 다양한 갤러리를 만들 수 있지요. 나도 얼마든지 그렇게 설계할 수 있습니다.” 게리가 말한다.

여기서 다시 한번 게리의 전작을 참고해보자. 아주 오래전, 휘거나 구부러진 건축물을 주로 설계하기 전, 모양이 각각 다른 네모 상자를 세워 건물을 완성한 적이 있었다. 그는 이 오래된 아이디어를 꺼내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거대한 유리 돛을 적용해본 것이다. 이것은 초기의 게리 위에 후기 게리를 덧씌웠다고 할 수 있지만 향수를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옛것을 되돌아본다기보다는 과거로 손을 뻗어서 한 조각을 가져와 미래와 같이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건물에는 강당도 있는데 여러 단계로 떨어지는 폭포를 마주 보고 있으며 자연광이 들어온다. 이곳에서 LVMH 산하 브랜드들의 패션쇼가 열릴 것이다).

게리는 때로는 건물이 아니라 설치 미술이나 빙하 덩어리를 만든다는 부당한 비난을 받아왔지만 루이 비통 문화예술재단에 그런 평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건물은 상당히 평범한 모양의 갤러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딱딱한 정사각형 박스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공간은 평평한 벽으로 이루어진 직사각형이다. 전시될 작품이 없으면 미완성으로 보이며 이것은 이 건축물이 자신의 존재를 지나치게 주장하지 않는다는 표시가 된다. 게리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오, 프랭크, 당신 작품은 너무나 복잡해요. 예술을 압도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면 참으로 괴롭습니다. 나는 예술가들과 이야기를 나누죠. 나는 내 역할을 하고 그들은 그들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파리에서 게리는 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정직하고 꾸밈없는 공간에 전시된 작품도 돋보이고, 그 자체로 시선을 잡아끄는 호화롭고 개성적인 건축물은 내부의 작품을 더욱 강렬하게 해주는 것이다.

50여 년 전에 건축계에 발을 내디딜 즈음 프랭크 게리는 1년 동안 파리의 건축가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처음 유럽 건축을 접했다. 모든 것에 감명받았지만 그중에서도 육중한 로마네 스크 양식의 성당과 르코르뷔지에의 후기 작품인 곡선 건물들, 특히 버섯 모양 지붕의 롱샹 성당에 반했다고 한다. 이 루이 비통 재단에서는 그가 감동했던 모든 건물의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엄격한 구조, 부드러운 곡선, 또한 건물도 충분히 감각적인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게리는 오랜 세월 동안 이 개념을 탐구해왔으나 파리에서 더욱 특별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루이 비통 재단 빌딩은 자신 이 프랑스 건축에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는지를 잘 아는 프랭크 게리가, 그간의 빚을 갚는 기회로 여긴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에디터
황선우
PHOTO
HUFTON & CROW
PAUL GOLDBER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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