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제스키에르가 루이 비통에 합류한지 이제 막 한 시즌이 흘렀을 뿐이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그가 패션계에 미친 영향은 족히 10년치에 필적할 정도다. 손대는 곳곳마다 전에 없던 놀라운 결과물이 탄생하고 있다. 이것은 ‘왕의 행보’다.

패션계는 그 자체로 독립된 은하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행성과 위성도 있고, 더워지고 차가워지는 타이밍에 대한 기상 시스템도 갖추고 있으며, 별들이 모였다 흩어지기도 하고, 특정한 구심점을 향해 중력도 작용한다. 그리고 가끔은 아무런 이해 관계 없이 결과물만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디자이너가 출현하는, 그야말로 우주대폭발, ‘빅뱅’ 같은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바로 이때, 패션은 단순한 옷 입기, 모두가 열광하는 유행, 혹은 통장 잔고를 텅 비 게 하는 존재를 초월하는 상위 개념으로 자리 잡는다. 가장 최근 버전 패션계의 빅뱅은 파리에서 일어났다. 마크 제이콥스가 자신의 브랜드에 집중하기 위해 루이 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떠나고, 발렌시아가를 그만둔 후 케어링 그룹과의 불화로 법정 다툼까지 벌인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컴백해 지난 3월 5일 루이 비통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인 그 순간, 그야말로 패션의 모든 것이 펑펑 터져버렸다. 1백 년 역사의 패션 하우스 발렌시아가를 떠난 지 1년 만에 그는 공식적으로 루이 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어 다시 패션계에 발을 들였다. 그의 천재성은 단 한 번도 빛을 잃은 적이 없고 공백기에조차 그의 빈자리가 빛날 정도였지만, LVMH를 대표하는 루이 비통으로의 컴백은 그야말로 눈부신 귀환이었다. 그간 패션계는 전설과도 같은 인물을 순차적으로 잃어가던 타이밍이었다. 헬무트 랭은 예술가의 삶을 찾아 옷에서 손을 뗐고, 알렉산더 매퀸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존 갈리아노는 자신의 입으로 미래를 묶어버렸으며,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자취도 없이 패션계를 탈출해버렸고, 질 샌더는 세 번이나 자신의 브랜드에서 손을 놓겠다고 했다. 동시대의 유능한 디자이너들이 하나둘 패션을 등지는 시기에 들려온 제스키에르의 복귀 소식은 패션과 대중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의심으로 가득한 시대를 살고 있다. 미술, 영화, 무용, 음악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변화들이 그다지 순수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문을 품곤 한다. 이 시점에 루이 비통의 결정은 매우 대담한 것으로 보인다. LVMH 그룹은 제외하고서 루이 비통 단일 브랜드로만 보더라도 매년 94억 달러에 달하는 매출을 기록할 정도인데 반해, 제스키에르는 그간 발렌시아가에서 훨씬 작은 스케일로 브랜드를 이끌어왔다. 게다가 결벽에 가까운 완벽주의자고 세세한 것들에 광적으로 신경을 쓰며, 한번 결정하면 뒤돌아보지 않는 단호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아무튼 결과물, 즉 수익으로 모든 것을 증명해야 하는 루이 비통으로서는 흔쾌히 감내할 만한 인물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LVMH에게는 오히려 쉬운 결정이었다고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판을 뒤집는’ 인사를 감행한 주인공은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딸이자, 루이 비통의 부회장인 델핀 아르노였다. 전임자 마크 제이 콥스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유산을 남기고 떠났지만, 그 업적은 웬만큼 괜찮은 정도의 인물이 아니고선 결코 길들여지지 않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아르노는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은 ‘니콜라 제스키에르뿐이었다’고 말했다.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지금부터 해내는 모든 게 그 자체로 패션의 역사가 될 것이기에, 동시대를 살면서 그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은 우리에게도 미래를 예측하는 즐거움이 될 것이다. 트렌치코트, 리틀블랙드레스, 흰색 셔츠, 체인 핸드백과 같은 아이코닉한 패션도 처음 등장했을 때는 모두 낯선 것들이었다. 패션계에 컴백한 후 한국 매체와는 처음으로 <W Korea>와 서면 인터뷰를 가진 제스키에르는 “시대 초월적인 패션도 한때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가 창조하는 새로운 것들이 우리의 다음, 혹은 그 다음 세대에 의해 ‘시대 초월적’ 존재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지금은 믿을 뿐이다.

 

 

이제 겨우 단 한 번의 정식 컬렉션(2014 F/W)과 크루즈 컬렉션을 발표했을 뿐이지만, 제스키에르가 패션의 스포트라이트에 다시 들어오면서 업계에는 함부로 상상해선 안 될 법한 그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이는 마크 제이콥스가 무라카미 다카시, 리처드 프린스, 구사마 야요 이 등 패션에서는 좀처럼 전례가 없던 현대 미술가들과 협업하면서 16년에 걸쳐 쌓아온 ‘실험적’이라는 이미지가 존재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제이콥스가 예술가들을 패션의 판에서 놀도록 터를 닦아주는 방 식으로 일했다면, 제스키에르는 스스로가 예술가들의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 발렌시아가에서도, 루이 비통에서의 데뷔쇼를 통해 보여준 옷에서도 동시대적 익숙함과 새롭고 충격적인 것이 섞여 있었다. 무 엇보다 그는 ‘패턴’에 저돌적으로 접근하고 깜짝 놀랄 만한 결과물을 내놓는다. 최신 패션을 비슷하고 저렴한 버전으로 만드는 회사들이 유독 제스키에르의 디자인에 집착한 이유 역시 여기서 찾을 수 있 다. 유행하는 최신 컬렉션도 시간이 지나면 지겨워지게 마련인데, 처음엔 급진적으로 느껴지는 그의 의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는 것. 완전히 새로운 것과 익숙한 것을 조합하기에 언 제나 젊은 세대의 취향을 놓치지 않고 반영한다는 점도 주요 이유다.

 

 

지난 3월 5일 파리 루브르에서의 첫 데뷔 컬렉 션, 모나코에서의 크루즈 컬렉션을 통해 새 하우스 루이 비통에 완전히 적응한 느낌이다. 이 위대한 시작을 통해 제스 키에르의 루이 비통 컬렉션을 기대한 대중에게 무엇을 보여 주고 싶었나?

니콜라 제스키에르 루이 비통에서의 내 시작을 평가해보자면, 새로운 고객들을 지향한 의류(프레타 포르테)를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아름다운 도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름다운 도전을 통해 스스로도 엄청난 기쁨을 얻었고, 루이 비통의 역사적인 ‘첫 번째’ 크루즈 컬렉션 쇼를 통해 브랜드 모두가 이루어낸 것이기도 하다.

 

데뷔 컬렉션에서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루이 비통 쇼에 서 가방만큼이나 옷이 존재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렇다. 첫 컬렉션과 크루즈 컬렉션을 통해 루이 비통에서 의류가 액세서리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각인시키고, 공표하고 싶었다.

 

작년 11월, 루이 비통 합류 사실이 발표되자 패션계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 후로 11개월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벌써 완벽하게 합체된 느낌이다. 당신이 루이 비통 하우스에 들어가서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내가 루이 비통에서 새롭게 보고자 한 것은 코드, 로고, 아이콘의 세상이다. 최근 패션에서 로고는 다소 중요하지 않게 취급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루이 비통의 익숙한 로고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고, 또 그만큼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모노그램과 다미에 캔버스가 그랬다. 이 두 가지는 보는 순간 바로 루이 비통이다 싶을 정도로 잘 알려진 하우스의 상징이긴 하지만, 내 경우 좀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일부러 하려고 한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그게 보이더라. 일례로, 원으로 둘러싸인 매우 간결한 LV 로고를 디자인해 기존 것을 새롭게 해석했다. L과 V와 원이 모두 떨어져 상징적으로 연결된 큼직한 귀고리도 이 작업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아카이브와 새로운 발상을 잇는 이러한 가교적 요소들이 내겐 무척 흥미롭다. 한계나 제약 없이 원하는 것 을 모두 시도해볼 수 있어서 특히 좋은데, 내가 유난히 선호하는 게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하이브리드적 요소를 넣어서 혼합하는 것이다. 경계란 깨지라고 있는 것이니까.

 

조심스러운 질문이지만 당신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훌륭했던 전임자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마크 제이콥스의 업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마크 제이콥스는 루이 비통 의류 컬렉션의 창시자다. 사람들은 먼 옛날부터 루이 비통에 의류가 있었다고 착각하곤 하지 만, 마크가 겨우 16년 전에 레디투웨어를 시작했고, 겨우 16년 만에 대단한 토털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나는 두 번째 단계에서 합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루이 비통이 이처럼 강력한 전통으로 무장하고 있는, 놀랍도록 동시대적 브랜드로 이미지를 굳히게 된 데는 무엇보다 그의 영향이 컸다.

 

전임자에 대한 당신의 존경은 데뷔 컬렉션 당시 객석에 놓여 있던 정중한 한 장의 편지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일반적인 쇼 노트나 룩 설명서 대신 편지를 놓은 이유는 무엇인가?

전임자에게 오마주(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의 업적과 재능에 대한 일종의 경배)를 바치는 것이 패션계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다고 듣기는 했지만, 내게 있어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가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더불어, 마크가 루이 비통에서 했던 작품을 돌아보는 것 역시 중요했다. 편지에서 그를 언급한 것은 그런 이유였다. 또 첫 쇼는 내게 있어 매우 감격스러운 순간이기에 그 감정을 쇼에 와준 사람들과 함께 솔직하게 나누고 싶었다. 패션계를 그리 오래 떠나 있었던 것도 아니고 떠나는 것 역시 스스로 결정한 일이긴 하지만, 패션이 그리웠었다. 떨어져 있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패션계는 치열하고, 또 그만큼 조화롭기도 하다. 나와 마크뿐만 아니라 모든 종사자들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달리는 동지애가 있는 곳이다. 패션쇼에 모인 사람들과 그런 동지애를 나누고자 했다.

 

이 사진들은 모두 더블유를 통해 한국에 처음 공개되는 것으로, 지난봄에 열린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첫 루이 비통 쇼를 사진가 유르겐 텔러가 촬영한 것이다. 아무런 제약 없이 쇼장 곳곳을 누비며 담아 낸 그의 사진에는 타인의 시선으로 포착한 제스키에르의 천재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보는 사람을 전율케 한다.

이 사진들은 모두 더블유를 통해 한국에 처음 공개되는 것으로, 지난봄에 열린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첫 루이 비통 쇼를 사진가 유르겐 텔러가 촬영한 것이다. 아무런 제약 없이 쇼장 곳곳을 누비며 담아 낸 그의 사진에는 타인의 시선으로 포착한 제스키에르의 천재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보는 사람을 전율케 한다.

 

 

루이 비통 하우스는 역사에 비해 룩, 혹은 실루엣에 대한 아카이브는 그리 강력하지 못했다. 하우스를 대표할 만한 룩을 만들기 위해 어떤 계획과 비전을 갖고 있는가?

루이 비통의 여성은 단일한 모습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여러 가지 모습을 하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을 대변한다. 실제로 이번 시즌 진행된 나의 첫 루이 비통 캠페인은 다양한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자유로운 성향의 그들은 옷을 다양하게 섞어 연출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바로 럭셔리와 캐주얼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시크함이다. 이것이 바로 ‘현대적(Modern)’인 것이다. 루이 비통 컬렉션을 통해 많은 여성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어울리게 섞어보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

 

첫 컬렉션을 통해 패션계에, 루이 비통의 기존 고객들에게, 혹은 루이 비통에 관심조차 없던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한마디로 무엇인가?

나의 첫 루이 비통 컬렉션에 하나의 단어를 붙인다면, ‘욕망 (Desire)’이 될 것이다. 모든 패션은 무엇보다 사람들로 하여 금 욕망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것이 최우선 목표가 되어야 한다. 옷을 보고서 ‘아, 이거 루이 비통 최신 컬렉션이야!’ 라고 사람들이 알아보게 만드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 컬렉션을 과시용으로 내세운다거나, 두고두고 입을 수 없는 일회용의 특별한 룩을 제시하는 건 내 방식이 아니다. 내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가 ‘동시대적’이라는 말이다. 규칙을 깨트리고 서로 다른 창작 코드를 충돌시키는 아이디어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여성들이 새로운 흥미를 느끼고, 나아가 시간이 지난 후에는 오래 간직하고 싶어할 만한 것을 만들고 싶다. 트렁크의 미니 버전, 클러치 같은 것이 그런 아이디어의 표현일 것이다. 때문에 보다 더 강력한 패션 포인트를 강조하는 동시에 힘을 빼고 간결하게 표현한 부분도 있다.

 

지난 7월 공개된 첫 광고 캠페인에는 애니 레보비츠, 유르겐 텔러, 브루스 웨버 등 시대를 정의하는 패션 사진가 3인이 참여했고, ‘시리즈 1’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당신의 아이디어였나?

그렇다. 나와 가깝다고 느끼는 예술가들의 조합을 한자리에 모으고 싶었다. 이 세 사진가는 내가 무척 존경하는 사람들로, 이들이라면 이전에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한날한시, 다만 다른 장소에서 진행한 ‘시리즈 1’ 캠페인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

나는 사진가들에게 각자 ‘도전’에 직면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해준 것뿐, 나머지는 모두 그들의 손에 맡겼다. 작가들이 자신이 가장 편안하게 생각하는 환경에서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우리가 기존에 그들에 대해 알고 있던 스테레오타입의 팩 트를 제외하고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지 궁금했다. 완성해놓고 보니 세 편의 다른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로 결합되었는데, 그들의 비주얼적인 표현 자체가 너무나 강력해서 어떤 잣대나 분류, 정의를 뛰어넘은 초월적인 창작물이 되어주었다.

 

캠페인에 참여한 작가 중에서도 유르겐 텔러와의 지속적인 작업이 시선을 사로 잡는다. 첫 컬렉션 직후부터 쇼장의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오가며 촬영하는 그를 목격했는데, 모나코에서도 종횡무진 활약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라는 사진집을 함께 발간했다. 그의 파인더를 통해 무엇을 보여 주고자 했나?

루이 비통에서의 나의 출발을, 지금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모험을 누군가가 지켜보아주기를 바랐고, 그게 유르겐 텔러였다. 이 엄청나게 광대한 루이 비통 하우스에 있다 보면 가끔 현실감을 잃곤 하는데, 그 반대로 나는 이 모든 상황이 현실이라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 장치를 원했고, 이를 위해 유르겐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즉,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찍고, 가고 싶은 곳은 다 갈 수 있도록 하우스로 가는 열쇠를 그에게 준 것이다. 이를 통해 탄생한 그의 작품은 나로 하여금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했다. 즉, 내가 꿈이 아니고 현실에서 진짜로 루이 비통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을 정확하게 담아낸 것이다. 피팅을 위해 도착하는 모델들, 하루 동안에 이루어지는 사건 사고들, 유르겐의 관심을 끄는 특별한 옷들, 스튜디오 안의 다양 한 조명…. 유르겐 텔러는 ‘특별한 순간(Moments)’을 포착하는 사진가다.

 

루이 비통은 그간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에 가장 적극적인 하우스였다. 아이코닉 하며 동시에 베스트셀러인 제품 역시 협업으로 탄생한 경우가 많았다. 혹시 계획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는지 궁금하다.

델핀 아르노와 나는 협업을 통해 모노그램을 재해석하는 멋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아이코노클라스트’라고 이름 붙여진 이번 프로젝트에는 칼 라거펠트,  신디 셔먼, 프랭크 게리, 마크 뉴슨, 레이 가와쿠보, 크리스찬 루부탱 등 장르 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다양한 아티스트가 참여했다. 우리는 그들의 창의적 기질과 상상력을 존중해 각자 원하는 가방, 혹은 여행용 가방을 만들도록 했다. 루이 비통의 모노그램을 사용하라는 것 외에는 아무 제약도 두지 않았고, 이를 통해 탄생한 가방들은 아주 멋지다. 기대해도 좋다.

 

발렌시아가와 루이 비통. 대단한 두 파리 하우스에서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혹시, 자신의 시그너처 브랜드를 갖고 싶은 생각도 있나?

루이 비통에서 나는 완전히 자유롭다. 아무도 내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원하는 그대로의 컨디션으로 모든 것을 누리고 있다. 당분간은 그저 이 순간을 만끽하고 싶다.

 

당신처럼 즐겁게 일하면서 꿈을 이루고픈 젊은 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가 있다면?

아트 디렉터가 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삶의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 중에서 아트 디렉터로 사는 인생을 택했다면, 스스로 몰두하고 요구하는 정도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는 점을 기억하길 바란다. 아트 디렉터는 결코 경계를 허무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된다. 다음으로, 사업적으로 균형 잡힌 경제 감각 또한 요구된다는 사실도 반드시 기억하길. 이 직업은 매우 이율배반적이다. 외롭지만 강해야 하고, 창의적이면서도 현실적이어야 한다.

 

한 달 후면 파리에서 두 번째 컬렉션이 열린다. 마지막으로 더블유 독자들에게 이에 대한 실마리를 공개해줄 수 있나?

노코멘트. 하지만 이것만은 잊지 마시길. 시대 초월적인 것들도 모두 한때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