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세월이 흐른다는 건 근사한 일임에 분명하다.

회색 헨리넥 니트는 Bottega Veneta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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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겼다는 말 지겹지 않느냐’는 어느 방송 리포터의 질문에 대한 당신의 대답이 유행어가 되었다. 알고 있나?

모르고 있었다. 뭐라고 답했지?

 

‘짜릿해, 늘 새로워, 잘생긴 게 최고야’.

아, 그런 대답을 한 기억이 난다(웃음).

 

실제로 자주 받는 질문일 거다.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답하기 어렵기 때문에 농담으로 넘길 수밖에 없다. 많은 것을 표면적으로 판단하는 외모지상주의는 시대의 흐름이지만 사실 더 중요한 본질은 그게 아니지 않나. 인간이 갖고 있는 내면의 크기와 아름다움에 진짜가 있는 거다. 하지만 배우를 하면서 먹고 사는 사람이 ‘너 얼굴 잘났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내면의 가치가 더 중요하죠’, 하고 반응한다면 어떤 답을 들을까? ‘너는 기본이 됐잖니, 그러니까 그런 얘기도 하는 거야’ 하며 빈축을 살 거다. 그러니 차라리 농담으로 잘생겨서 좋다 최고다,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 그렇게 응대한다.

 

곧 개봉하는 <마담 뺑덕>으로 토론토 영화제에 다녀왔다. 외국 관객들은 <심청전>이라는 원작을 전혀 모른 채 봤을 텐데 반응이 어떻던가?

영화 도입부에서 영어 지문으로 대략의 스토리가 나온다. 놀라운 점은 외국 관객들이 더 순수하게 작품에 몰입하고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거다. 언어적인 뉘앙스를 까다롭게 받아들이지 않아서인 것 같다.

 

현지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무엇이었나?

여태까지 했던 롤과는 많이 다르다, 고민스러웠을 텐데 어떻게 선택하게 됐나, 감독의 어떤 설득이 있었나 등등.

 

당신의 답은?

나처럼 어린 시절부터 청춘 스타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아온 사람은 팬들에게서 부여받은 판타지를 나이 먹으면서 깨고 진보시켜 나가야 한다. 그게 배우로서의 의무다. 나에게 부여된 갖가지 환상을 캐릭터에 투영시키면서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인물을 찾아서 가는 거다. 학규는 이 캐릭터를 어떤 남자 배우가 쉽게 선택할 수 있을까, 잘못하면 큰일나겠네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까다로운 인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매력적이고 도전해보고 싶은 캐릭터였다.

 

영화를 미리 본 사람들 얘기로 어린 여자와 치정에 얽히는 학규는 사실 지질한 인물이지만, 정우성이 연기하기 때문에 나락까지는 떨어지지 않으며 품위를 유지한다고 하더라.

작은 행위에서 드러나는 디테일한 지질함들은 처음 감독님과 시나리오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배제시켰다. 관객에게 불편하게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신 잘못된 선택의 순간에 드러나는 어리석음에 진지하게 접근하려고 했다. 학규는 자신이 처한 곤란에서 도망가거나 외면하기 위해서 빤히 보이는 술수를 부리면서도 그 순간에는 절대적으로 맞는 판단이라고 믿는 인물이다. 그런 면에 지질함이 있을 것이라고 접근했다. 어떤 신을 찍고 나서는 마음이 안 좋기도 했다. 내가 연기하는 인물과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의 불편함일 것이다.

 

비유적인 표현으로 ‘욕망에 눈이 먼다’고 하는데, 감독 입장에서는 맹인인 심학규 캐릭터를 가져와서 그렇게 욕망에 눈머는 파멸의 서사를 만들고 싶었나 보다.

그런 이야기가 맞다. 하지만 잘못된 본능에 휘둘린 삶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는 이야기기도 하다. 욕망의 폭주를 멈추기 힘들지만, 그에 대한 비용을 치르는 게 삶이기도 하다는 반어법이 있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 가정이 있고 직업적으로 존경받는 남자가 어린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어떻게 받아들였나?

사회에서 자리를 굳건히 지켜야 하는 나이에 그런 감정적인 힘에 자신을 놔버린다는 건 극도로 위험한 일일 것이다.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잘못 발을 들이고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처럼.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잃을 게 많은 나이니까 더 치명적이고, 더 극적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 거다.

 

경험이 적은 신인 배우랑 연기한다는 건 어땠나.

이솜이라는 여배우는 어리지만 조연으로 영화 현장 경험이 있는 상태였고, 자기가 맡은 첫 주연이 얼마나 무게감 있고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고, 각오가 대단했다. 이 친구가 마음 편히 자기 가능성을 펼칠 수 있게 옆에서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파트너라는 게 내 역할이었다. 촬영 회차가 쌓여가면서 스트레스가 있게 마련인데 자기 역할을 잘해내겠다는 투지를 유지했다.

 

당신이 이솜 정도의 나이였을 때는 어떤 배우였나?

한창 뛰어놀 때였다. 영화 현장이 나를 반기고, 나는 영화 현장이 재밌고.

 

어릴 때 즐기면서 일했나?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찍 데뷔한 스타들의 경우 우연히 시작해 자의식 없이 주어진 대로, 일에 대한 재미를 그리 못 느끼다가 커리어가 쌓이면서 뒤늦게 발견했다는 경우도 꽤 봤다.

나는 자의식으로 중무장한 애였다. 자의식으로 아주 철저하게 똘똘 뭉쳐 있었다(웃음). 가진 건 없지만 남의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았고, 나 스스로를 많이 믿었다. 그래서 현장이 더 중요했다. 하는 일의 소중함을 알았다. 일로 인해서 내가 되받는 가치의 크기에 대해 늘 감사했다.

 

얼마 전 당신이 <비트> 때의 사진을 들고 찍은 컷을 봤다. 어떤 생각이 들던가?

예뻤네… 뽀얗구나… (웃음). 그때 나는 왜 조언을 해줄 만한 선배를 더 열심히 찾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나이에는 더 까다롭게 시나리오를 보고 골랐다. 영화 한 편에 대한 존중감이 너무 커서, 촬영이 진행되는 중에 들어오는 시나리오는 읽지 않았다. 어떤 영화를 찍는 중에는 여기 나를 온전히 던져야 한다는 고지식함이 있었다. 하지만 철학적인 고지식함은 있었으되 큰 배우가 되는 과정에 필요한 지식은 없었다. 학교를 다니거나 연극을 해본 것도 아니고 온전히 내 스스로의 직관과 감, 감성으로만 연기했다. 그때 좀 더 공부했다면 어땠을까, 보이스 트레이닝이라던가 그런 걸 받았다면… 하는 생각은 들었다.

 

가까운 선배가 있었다면 그런 면에서 조언을 구했을까?

스타 옆에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 다들 빛나는 스타의 화려함을 즐기려고만 하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면 또 그 나름대로 커리어를 쌓지 못했다는 단점이 있지 않았을까?

학교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 계획표나 수업 과정에 비추어 나의 부족함을 빨리 깨닫고 학교 안에서든 밖에서든 내 모자람을 채울 수 있는 여지가 일찍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 성장기에 학교 안에서 형성되는 사회성이라는 게 있다. 나는 그런 교류나 대인 관계 경험이 적은 데서 오는 외로움이 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에 더 집착하고 촬영장이 나의 온전한 놀이터처럼 느껴졌을 수 있다. 그리고 영화와 영화 텀이 길었다. 1년, 어떤 때는 2년…. 제작 편수도 지금보다 적었지만 일을 더 많이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는 거 같다.

 

연기 면뿐 아니라 커리어 관리에서도 선배의 조언이 아쉬웠나?

둘 다 양립하는 이슈인 것 같다. 영화 사이의 공백이 길어지면 괜한 고민이 많아지니까…. 그 텀이 짧으면 짧을수록 좀 더 많은 경험이 생기는 거 같다.

 

요즘에 그래서 쉬지 않고 일하는 건가? 올해 개봉하는 영화만 세 편이다.

<호우시절> 내놓고 4년 정도 텀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조바심이나 갈증을 느꼈다. 지금 나는 어린 여자에 빠져드는 학규의 욕망과 다른, 일에 대한 정우성의 욕망을 펼치고 있는 거다(웃음).

 

성근 짜임의 터틀넥 니트와 검은색 팬츠는 Dolce & Gabbana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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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영화 사이가 4년이나 벌어진 이유가 있었나?

복합적인 이유였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다음 시나리오를 읽기 시작하는 내 스타일도 있었고, 당시는 매니지먼트가 확장되는 시기기도 했다. 배우에게 들어오는 시나리오를 매니지먼트가 먼저 받아 검토한 다음 자기가 데리고 있는 다른 배우에게 건네보는 식으로 회사 안에서 기획이 이루어지는 때였다. 그러다 보니 십몇 년이 지난 후 어떤 감독에게 ‘내가 시나리오 보냈는데 너 그거 안 했잖아’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도 생겼다. <비트>와 <태양은 없다>, <무사>까지 이어질 때 어떤 분들은 ‘정우성은 김성수 감독, 우노필름이랑만 한다’며 접촉할 엄두도 못 냈다고 한다.

 

전략적으로 커리어 관리를 하기보다 누군가와 마음이 맞으면 쭉 가는 스타일인가?

마음도 맞아야 하지만 작품이 맞아야 한다. 사람만으로는 확실히 아니다. 김성수 감독의 경우 <비트> 전 작품은 시나리오 보고 정중히 거절했었다. 맥주 한 잔 마시고 쿨하게 헤어졌다. 감독님은 앙금 남기지 않고 다시 <비트>라는 작품을 제안했고. 지고지순한 순둥이 청년처럼 ‘이 사람이 좋으니까 뭐든 다 함께해야지’ 그런 식은 아니었다.

 

남자 배우로서 베드신이 강한 영화에 출연한다는 거, 어떤가?

타당성이 가장 중요하다. 드라마와 연결된 장면인지, 아니면 장사를 위한 장치인지. 쇼비즈니스이기도 작품이기도 한 영화의 양면 가운데 어떤 단어를 더 본질적으로 생각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배우 스스로가 베드신이 있는 작품을 선택할 때 상업적인 코드로 이 신을 이용하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면 망가지는 거다. 대신 배우가 사랑하는 두 남녀의 관계를 숨소리로 전달하고, 관객들은 행위가 아닌 감정으로 볼 수 있다면 성공하는 거다. 그랬을 때 더 농도가 짙고 밀도 있는 감정이 축적되면서 그게 아무리 야해도 장면이 아닌 이야기가 된다. 단지 섹스를 보고 싶다면 포르노를 보지 왜 어쭙잖은 베드신을 보러 극장에 오겠나.

 

여자 관객들이 원하는 바다. 하지만 남자 배우들의 노출 수위가 아니라 그런 감정의 밀도 높은 수위까지 가는 데 실패하기 때문에 대개 실망스럽다는 평을 내리곤 한다.

제작진이 현장에서 타협하기 때문이다. 촬영을 할 때는 치열해야 한다. 내가 여기서 이렇게 몇 시간째 벗고 있는데 빨리 끝내야지, 가 아니라 더 찍어야 하는데 지금 놓친 거 없나 살펴야 하는 거다. 그런 신을 찍을 때는 아무리 베테랑 감독이나 기술 스태프들이 있어도 타협의 시점이 온다. 현장에서 다들 지치는 것이다. 베드신이라고 해서 ‘아 이 정도 했으면 이제 됐다’고 일찍 달아 나면 안 된다.

 

그런 상황에서 사실 가장 도망가고 싶은 사람이 배우 아닌가?

당연하다. 게다가 신인 여배우 라면 더 그럴 것이다. 1시간이 몇 시간처럼 느껴질 테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오히려 감독한테 치열하게 얘기한다. ‘지금 얘 얼굴이 빠졌으니 찍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워낙 민감하게 신경들이 곤두서 있기 때문에 필요해도 서로에게 말을 아끼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바로 타협이다.

 

공동 작업이고 심신이 지쳐 있으면 막상 이렇게 저렇게 더 찍어보자는 얘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을 텐데.

스크린에서 볼 때 후회 안 하려면 말해야 한다. 우리의 작업에 있어서 더 나은 결과를 낳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냉혹해져야 한다, 스스로에게도 그렇고.

 

배우가 아니라 감독 마인드다.

나 정도의 경험이 있고 자기 캐릭터에 대한 욕심, 영화 전체 에 대한 욕심을 갖고 있는 배우가 이런 마인드를 갖고 있다면 감독도 훨씬 편해질 거다. 감독과 배우는 함께 핑퐁을 치는 거니까.

 

고마울 것 같다.

고맙다고 하더라(웃음). 임필성 감독에게 ‘당신은 나 만나서 영화 인생이 편 거다. 여태까지는 연습이었고, 이제 새로운 영화 인생이 열렸다’고 했다.

 

확실히 농담이 늘었다.

개그 프로 보면 원초적인 거, 쉬운 거 좋아한다. 억지로 상황 설명 하고 주저리주저리 웃기려고 애쓰는 거 말고 캐릭터 하나 잘 만들어서 웃기는 거.

 

TV 코미디 프로그램도 보나?

요샌 통 못 봤는데 집에 있다가 시간 맞으면 본다. 유쾌하니까. 건전한 웃음 아닌가. 남을 험담하거나 끌어내리면서 즐거워하는 게 아니니까.

 

코미디가 사실 어려운 것 같다.

웃기기 위한 고민은 고독하다.

 

촬영하는 가운데 산으로 가거나 영영 도망치고 싶은 영화도 있을 것 같다.

운 좋게, 그런 영화 는 없었던 편이다. 얼마 전 다음 개봉작이 될 <나를 잊지 말아요> 촬영을 끝냈다. 신인 감독들이 범하는 가장 큰 실수가 완벽하게 콘티를 짜고, 자기한테 필요한 것만 잘 찍으 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다. 어떤 현장 어떤 감독이든 그렇게 규정짓는 행위가 일어나면 자기 완벽 안에 빠져서 놓치는 게 생긴다. 이윤정 감독은 신인이지만 다행히 그렇지 않 았다.

 

시나리오를 고를 때, 어떤 이야기에 끌리나?

우린 다 뻔한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다. 뻔한 액션의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고. 하지만 그 가운데 새로운 액션, 새로운 사 랑법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나. 늘 뭔가 새로운 게 하나는 있는 게 나를 자극하는 거 같다. 최우선적으로 보는 건 캐릭터고. 문자화되어 있지 않은 여백 안에서 내가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가야겠다는 것이 보일 때 가장 큰 매력을 느낀다.

 

학규에게서 본 여백은 무엇이었나?

학규는 전체가 여백이었다. ‘이걸 내가 해도 될까?’ 배우에게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뭔가 잃을 수도 있을 거라는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을 극복 한다면 뭔가 더 해낼 수 있는 거고…. 얘기하다 보니까 무슨 이순신 장군 대사 같지만(웃음), 여러 걱정들을 이겨내고 내가 정면 돌파한다면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던 재미있는, 이상한 남자 캐릭터 하나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당신에게 어떤 것인가?

시나리오 속의 인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에게 말을 건넨다. 캐릭터의 대사가 적고 말수가 없을 때조차 무슨 얘기를 하 려는 것인지 찾는다. 특히 <감시자들>의 제임스는 무드랑 뉘앙스만 있어서 내 것을 많이 갖다 씌워줘야 했다. 일이 재밌고 현장이 즐거운 건 이런 이유다. 시나리오 안의 캐릭터에게 느낌을 받아서 그걸 내 안에서 씌워서 다시 표현하는 과정이니까 질리지가 않고 재밌다. 늘 새로운 걸 찾아내는 일이니까.

 

인물과 대화하는 느낌이다.

그래야 한다. 현장에 대사도 잘 안 외워 간다. 숙지는 돼 있지만 이렇게 쳐야지라고 결정지어서 가진 않는다. 리허설 하면서 찾는 게 흥미진진하다. 연기란 살아 있는 거 같다. 살아 있는 거고, 살리는 거다. 배우가 살려야 하는 거.

 

 

 

얇은 터틀넥 니트와 가죽이 덧대진 네이비색 트렌치코트, 줄무늬 팬츠는 모두 Gucci, 슈즈는 Berluti 제품.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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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동시대, 그리고 이후에도 많은 배우들이 등장했지만 정우성만의 뚜렷한 성취가 있다. 청춘의 아이콘이라는 것.

이전의 내가 겪은 시기와 지금의 청소년들이 겪는 시기 사이에 생활 환경이 완전히 달라진 것 같다. 분명 똑같은 고민과 외로움이 있을 것 같은데 표현법이 달라졌다고 할까. 예전에는 안으로 숨을 곳이 없는 대신 표출할 수 있었다면, 오히려 지금의 세대는 속으로 감추는 것 같다. 요즘 배우들이 청춘의 고민과 반항을 보여주지 못하한다기보다 영화적으로 그걸 그려내기가 어려운 시대인 것 같다.

 

<비트>에서 두 팔을 벌린 채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이 있었다면, 요즘 세대의 고민을 드러낼 때 는 핸드폰을 만지고 있거나 키보드를 두드리는 모습이 될 확률이 높을 것 같다.

소통의 기기에 다 갇혀서 진짜 소통을 못하고 있다. 속으로 생각하고 남몰래 혼잣말을 던지고.

 

어떻게 보면 당신은 좋은 시대에 청춘을 보냈던 것일까?

모든 건 시대가 만드는 거다. 인물이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일 외에 당신에게는 뭐가 중요한가?

평일 한산한 시간대에 극장 가서 영화 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그거 외엔 친구들 만나는 거 좋아한다. 사람을 좋아하니까 영화가 좋은 것 같다. 사람을 다루는 작업이니까. 삶을 다루는 직업이고. 사람을 가장 사랑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배우는.

 

배우들이 오히려 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나 피해 의식이 강한 경우도 있던데.

사기꾼도 많고, 앞에서 좋은 얘기 하고 뒤에 가서 이상한 말 하는 사람도 많으니까. 스케줄이 많다 보니까 그렇게 많은 사람과 접촉할 기회도 없지만 나는 사람 만나는 건 아직도 재밌다.

 

배우들은 인간관계의 희로애락, 특히 어려운 시간을 연기의 재료로 받아들인다는 얘기를 종종 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이게 다는 아니라고 정리 하는 편이다. 객관화해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 안 좋은 상황을 만나도 무너지지 않는 다는 거,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아는 거.

 

양면이 있는 것 같다. 연약할 수밖에 없는 직업인데 또 강할 수 있고, 단단해야 하고.

배우는 갑 옷을 입은 어린아이일 수도 있고 물총을 든 어른일 수도 있다.

 

연애할 때는 어떤 남자친구인가?

(웃음)… 계속 목말라 하는 남자친구?

 

더 많이 사랑하고 많이 표현한다는 뜻인가?

표현을 많이 하고, 그래서 많이 귀찮게 한다. 상대방은 아마 어노잉하다고 할 거다(웃음).

 

최근에 아트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정재 씨가 전문가 수준으로 관심을 갖고 있고, 나도 집 꾸미는 걸 좋아한다. 작품이 집 안의 기운을 만드는 경우가 있으니까 그런 것들 보고 즐기는 거다.

 

자기 마음을 건드리는 작품을 만나는 경험을 한다고 하더라.

작가가 자기 인생 안에서 얼마만큼 자기 성찰과 고민을 했는지가 화폭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런데 그 수준에 있는 작가들의 작품은 다 비싸다(웃음). 컬렉팅은 가볍게 시작해서 조금씩 더 내 능력에 맞게끔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술 작품이건 음악이건 여러 가지 간접 체험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상상력의 크기를 더 확대시키는 과정이고, 그런 것들은 계속 접해야 한다. 사진책 보는 걸 좋아한다.

 

특별히 좋아하는 사진 작가 있나?

토마스 루프나 안드레아스 거스키 같은 파인아트 사진도 좋지만 70년대 뉴욕을 찍은 스냅 사진 같은 데서 영감을 많이 찾는다. 어떤 시대의 몽타주들을 모아놓은 것들 에서 배우로서 양분을 얻는 편이다.

 

영화 연출을 할 거라는 얘기를 해왔고, 단편이나 뮤직비디오도 작업했다.

이제는 적당한 타이밍이 어느 순간 만들어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시나리오도 작가랑 함께 쓰는 중이다.

 

첫 장편 영화에서 감독들은 보통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데.

나 역시 어떤 장르의 어떤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고 있다. 하고 싶은 것만 해서는 안 되고, 해야 하는 것을 해야 하니까. 사실 나는 요즘 상업 영화가 요구하는 많은 요소를 배제하고 단어 하나 가지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그런 걸 좋아한다.

 

별로 안 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많이 넓어지고 깊어진 것 같다.

결국 삶은 자기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밖에 내놓고 자꾸 뭔가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기 안에 있어야 한다. 휘둘리면서 어떻게 중심을 잡을 수 있겠나.

 

아까 일을 많이 하는 게 요즘 정우성의 욕망이라고 말했다. 욕망의 끝엔 보통 파국이 있기 마련 인데… (웃음)

스트레스가 쌓이는 시기 같기는 하다. 보통 어디 여행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같이 작업하는 동료나 친구를 만나 술 한잔하면서 푼다. 그런데 힘들어서 술을 마시다가 술 때문에 오히려 더 힘들어질 때가 있다(웃음).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생각도 가끔 하나?

몸의 변화라는 물리적 체감보다는 오히려 경력으로 느끼는 것 같다. 현장에서 내 역할이 변한다는 걸 실감할 때. 선배로서 어떻게 리드하고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에게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회사에서도 이전에는 나를 맡겨놨다면 이제는 이끌어가야 하는 시기인 것 같고, 그런 사회적인 위치나 책임감을 느낀다.

 

주변과의 관계를 잘 맺어야 좋은 어른이 된다는 얘기일까?
주변에 나눠준다는 게 결코 내 것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다. 내가 가진 걸 덜어주면 함께 나눌 수 있기 때문에 더 좋아진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걸 함께하면서 내 의도대로 명확히 이끌 수 있다는 장점도 있 다. 예전에는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그런 게 있어도 함부로 드러내지 못했다면 지금은 후배들이 잘 모르거나 접해보지 못한 것을 소개해주는 즐거움이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이 못 마셔본 술도 알려줄 수 있고, 같이 일하는 친구들에게 고민이 있다면 내 경력으로 조언해줄 수 있고.

 

듣다 보니 나이 먹는다는 게 좋은 일 같다.

좋은 점이 많다. 적어도 나에게는 긍정적인 면으로 다가온다. 주변과 맺는 관계가 달라지긴 하지만 사실 나 자신만을 놓고 볼 때는 달라 지는 건 없다. 그대로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