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르 , 샤르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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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에 이른 여름날의 술로는 시원한 화이트 와인이 제격이다. 부르고뉴 지방 샤르도네라면 음식과 함께도, 그냥 마셔도 좋다. 이렇게나 다양하니까.

얼마 전 보르도 지역으로 출장 갔을 때의 일이다. 와인을 구입하려고 추천을 부탁하자 담당자는 웃음으로 답을 피해갔다. “저는 사실 (보르도보다) 부르고뉴 와인파거든요.” 부르고뉴는 우아하고 깊이 있는 레드 와인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동부 내륙 지방이다. 100개의 아펠라시옹(특정한 포도가 자란 지역이나 지방의 단위)은 프랑스 전체의 20%에 달할 정도의 큰 규모다. 굳이 편을 가르자면 남서부 해안과 가까운 보르도 지역과는 다르게 병목과 어깨 사이 곡선이 완만하게 떨어지는 보틀을 주로 사용하며(보르도 와인 병은 목과 어깨의 경계가 뚜렷하게 각이 진다), 레드 와인의 맛도 역시 강하고 힘있는 보르도에 비해 부드럽고 섬세하다. 지난겨울 유행색인 짙은 붉은 컬러를 일컫는 ‘버건디’라는 단어가 이 지역의 지명에서 왔을 정도니까. 하지만 부르고뉴 지역 와인 평균 생산량의 62%는 화이트 와인이며, 나머지 가운데서 8%도 스파클링 와인 종류인 크레망 드 부르고뉴다. 그러니까 사실 부르고뉴 와인의 70%는 ‘버건디’ 색이 아닌 셈이다.

부르고뉴 와인의 특징 하나는 다양한 품종을 블렌딩해서 만들지 않고 단일 품종 포도를 사용한다는데 있다. 레드 와인은 피노누아, 화이트 와인은 샤르도네 품종의 포도로만 만든다. 품종에 있어서 순수성을 지키다 보니 와인에 개성과 특징을 부여하는 요소로서 포도를 재배하는 토양, 또 각 해의 날씨에 따른 빈티지 같은 부분이 더 중요해진다.

1. 복숭아, 서양배 같은 과일향과 꽃향이 싱그러운 푸이 퓌세. 2.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를블렌딩하는 스파클링 와인인 크레망 드 부르고뉴, 알베르 비쇼. 3. 잘 익은 과일의 우아한 맛이 나는 레 생 자크. 4. 해산물에 곁들이면 잘 어울리는 샤블리 지역의 라 피에르레.

1. 복숭아, 서양배 같은 과일향과 꽃향이 싱그러운 푸이 퓌세. 2.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를
블렌딩하는 스파클링 와인인 크레망 드 부르고뉴, 알베르 비쇼. 3. 잘 익은 과일의 우아한 맛이 나는 레 생 자크. 4. 해산물에 곁들이면 잘 어울리는 샤블리 지역의 라 피에르레.

5.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 중 가장 파워풀한 메종 루이 자도의 코르동 샤를르마뉴. 6. 탄탄한 구조감의 생토뱅 프리미에 크뤼. 7. 은은한 풀향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마콩. 8. 살구와 황도의 풍성한 맛에 쌉쌀함이 더해진 라 비녜.

5.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 중 가장 파워풀한 메종 루이 자도의 코르동 샤를르마뉴. 6. 탄탄한 구조감의 생토뱅 프리미에 크뤼. 7. 은은한 풀향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마콩. 8. 살구와 황도의 풍성한 맛에 쌉쌀함이 더해진 라 비녜.

미국을 비롯한 신대륙 와인은 포도의 품종에 더 의미를 부여한다면, 유럽, 특히 프랑스 와인은 원산지가 더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된다. 한 마을 한 포도원 안에서도 마치 모자이크처럼 토양의 물리적, 화학적 특질이 세분화되는 부르고뉴는 더 심하다. “우리는 특정 포도밭의 작은 구획 하나하나를 ‘클리마’라고 불러요. 세계 어디도 아닌 부르고뉴에만 있는 개념이죠.” 부르고뉴 와인 협회 대변인 루이 모로의 말이다. 같은 품종의 포도를 한 사람의 소유주가 같은 경작법으로 키우는데, 불과 100m를 사이에 두고 어느 구역은 더 파워풀하고 과일 향이 풍부하며, 다른 구역은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맛이 난다면? 이런 경우처럼 오랜 세월 농사를 지어온 데이터에 근거해 부르고뉴의 와인 생산자들은 ‘클리마’를 구분하고 경계 짓는다.

“샤르도네는 매우 탄력적인 품종이죠. 많은 것을 포용하는 원만하고 풍성한 맛의 와인이에요.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난 샤르도네가 조금 묵직한 반면, 이건 음식 맛을 짓누르지 않아요. 석회질의 토양에서 자라 미네랄의 긴장감을 품으면서도 곧고 상쾌한 순수함이 살아 있어요.” 언론 홍보담당관 세실 마티오는 부르고뉴 샤르도네만의 매력을 이렇게 정리한다. 한 품종의 포도를 키워 와인을 만들지만 모자이크처럼 다양한 클리마 덕분에 부르고뉴 와인은 무척 다양하고 범위가 넓은데, 샤르도네 품종의 화이트 와인도 마찬가지다. 잔에 따라놓고 보면 투명한 금빛에서부터 녹색이 감도는 노랑, 잘 익은 볏짚색까지 색이 다양하며 향과 맛도 가벼운 것에서 묵직한 것까지 다채롭다. 예를 들어샤블리 지역의 ‘라 피에르레’는 상큼한 시트러스 맛이 뚜렷하다면, 마코네 지역의 ‘푸이 퓌세’는 복숭아나 서양배와 같은 과일 향과 미네랄 터치, 스파이시한 아로마가 조화를 이룬다. 둘 다 상큼하고 가볍게 마실 수 있는 화이트 와인이다. 스파클링 와인인 크레망 드 부르고뉴는 샤르도네에 피노 누아를 섞어서 감귤맛의 신선한 청량감에 유연함과 깊이감을 더한다. 화이트 와인치고 드물게 오크통에 숙성시키는 샤르도네의 특성상 단단하고 힘있는 구조감을 느낄 수 있기도 하다. ‘생토뱅 프리미에 크뤼’는 섬세하면서도 중량감 있게 오일리한 텍스처가 매력적인 화이트 와인이며, 메종 루이 자도에서 생산하는 ‘코르동 샤를르마뉴’는 잘 익은 과일과 나무 향, 계피와 벌꿀까지 느껴진다. 숙성시켜 마실 수 있는 잠재력 있는 와인이다.

선입견 없는 모험가에게 더 풍부한 경험을 허락하는 건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지만, 알코올과 미식의 세계는 특히 더욱 그렇다. 레드에 비해 화이트 와인에 대한 애정은 참 인색한 한국 시장이라지만, 부르고뉴의 샤도네이를 탐험해보는 건 충분히 새로운 미각적 즐거움이 될 거다.

에디터
황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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