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아에게 말을 걸었다. 낮은 목소리의 차분한 응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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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길을 조심조심 걸어가는 것 같은 인터뷰였다. 몇몇 물웅덩이들이 대화의 아래에 고여 있었다. “다 얘기해야 해요? 어디까지 얘기해야 하지?” 얼굴 관상만큼이나, 발성과 음색에서 사람의 성품을 짐작하게 되는데 웃음기가 섞인 이지아의 음성은 차분하고 맑았다. 곤란하다 싶은 질문에도 당황하거나 말이 급해지지 않는 세련된 화법을 갖고 있다. 이 배우에 대해서는 꽤 오랫동안, 신기할 정도로 알려진 바가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큰 드라마의 주연급으로 데뷔를 했는데, 모델이나 아역 출신도 조연으로 출발하거나 길거리 캐스팅된 것도 아니었다. 강남 여고 몇 회 졸업생에 몇 대 얼짱을 했다는 또래 배우들 틈에서, 미국에서 살다 왔다는 그녀의 성장 과정은 전혀 드러난 바가 없었다. 유창한 영어와 일본어 실력, 직접 디자인한 홈페이지와 의상, 베이스 연주에 보컬까지. 별에서라도 온 건가? 그러다 결혼과 연애에 대한 가십으로 대한민국을 번쩍 들었다 놨다 했다.

“회식 자리에서 함께 와인을 마시는데, 김수현 선생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지아야, 고생 많았다’. 드라마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기획사의 오프더레코드 요청이 있기도 했지만, 이지아 자신 또한 지난 결혼과 연애의 디테일에 대해 직설적으로 털어놓지 않았다. 과거의 일이기도 하고, 상대방도 걸려 있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대신 이지아는 자신의 입장에서 지나온 시간의 의미를 객관화하고 걸러내서 이야기했다. 요동치는 세월을 보낸 뒤에 담담해지고 깊어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W Korea> 드라마를 끝낸 지 2주 됐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이지아 피부가 좋아졌다. 그거 하나로 다 표현되지 않나? (웃음) 처음으로 이렇게 긴 주말극을 했는데 쉬는 날이라도 뭔가 나를 놓을 수 없었다. 물리적으로 잘 시간이 있어도 심리적으로 잠이 안 올 만큼 스트레스가 많았다.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는 워낙 배우들에게 쉽지 않다고 하더라.
무슨 대사를 하면서 컵을 들어야 하는지 내려야 하는지 시선을 어딜 봐야 하는지가 대본에 다 적혀 있다. 연기에 좋은 방향으로 그 대본이 도와줄 때도 많지만, 나를 좁은 공간에 가두기도 한다. 그런 것이 처음에는 불편하고 답답했는데, 그 안에서 또 할 수 있는 것들이 생기더라.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좁은 공간에서도 요령껏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훈련받은 느낌이다. 호흡이나 발성 같은 부분도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대본에 “그때 나는, (눈물 또르륵)”이라고 적혀 있다면 “그때 나는”을 말한 다음에 딱 눈물이 나와야 하고, 또르륵 흘러야 한다. 이걸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감독님이, “정말 A급 좋은 배우들은 해”라고 답하더라. 그 말이 나를 몹시 자극했다(웃음).

배우로서 기술적인 성장을 이루었다면, 인간적인 면으로는 어떤가?
<세번 결혼하는 여자(이하 세결여)>는 결혼과 이혼, 여자의 독립적인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하는 드라마였다. 개인적인 성장도 물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에 대한 강박을 좀 극복한 것같다. <세번 결혼하는 여자>라는 제목부터가 자극적이다 보니 처음엔 걱정했던 게 사실이다. 혹시나 나의 사생활과 결부시켜서 생각하는 거 아닌가, 이미지에 안 좋지 않을까 하고. 게다가 오은수라는 캐릭터 또한 사랑받고 동정받을 만한 인물이 아니지 않나. 난 사실 동정받고 싶은데, 지금 이 시기에 동정받아야 하는데(웃음). 고민했다. 배우들은 캐릭터나 작품을 놓고 다양한 고심을 한다. 많은 시청자들이 극 중 캐릭터에 몰입하고, 배우의 이미지에 그 배역을 각인시키기 때문에. 저건 드라마니까, 라고 분리해서 생각해주면 좋은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 드라마를 하고서 사람들이 진짜 내가 세 번 결혼했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을 버리고 용기를 낸 건 김수현 선생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 용기가 무언가 나의 한 꺼풀을 깰 수 있도록 돕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주인공 오은수가 사랑받거나 동정받지 못할 인물이라면, 너무 바르고 곧아서일 거다. <세결여>의 두 번 이혼 다음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결혼이었는데 그녀의 삶을 어떻게 바라봤나.
많은 여자들이 할 수 없는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비난도 많이 받았지만 적어도 은수라는 친구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충분히 성실한 인물이었다. 시댁이나 배우자의 외도 문제에 대해 할 만큼 하고 나서 이제 안 된다고 판단했을 때 정확하게 돌아서는데, 그 돌아서는 모습이 너무 똑부러지니까 손가락질을 받는다. 엔딩을 보면 결국 은수의 선택이 옳았지만. 이해하기 쉽지 않았지만, 여자로서 그런 강단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경하는 부분도 있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당신은 그만큼 냉정하지 못하나?
그렇지 못한 편이다. 돌아설 때 단호하긴 하지만 은수보다 더 오래 흔들림을 겪는 성격이다. 은수는 두 번 만에 자신을 찾는다. 이혼도 두 번 후에는 혼자의 삶을 결정하며, 남편 외도도 두 번 반복되었을 때 결단을 내린다. 많은 여자들은 아마 두 번이 아니라 수없이 참고, 자기 자신이 견딜 수 없는 순간까지 가야지만 헤어지지 않을까?

그런 단호함에 대해 ‘지랄맞은 성격’이라는 대사도 나오더라(웃음).
맞다. 그 대사에 나는 또 ‘지랄맞은 성격으로 지랄같이 살다 죽을 테니 상관 마’ 하고 받아쳐야 했는데, 솔직히 하기 싫었다(웃음). 너무 객기 부리는 느낌이 있어서. 서로를 이해 못하고 폭발하는 장면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말을 하는 상황이긴 했다. ‘성격이 운명이다’라는 그리스 비극 때부터의 이론이 잘 적용되는 드라마였던 것 같다. 모든 캐릭터가, 그러지 않길 바라면서도 자신을 닮은 선택을 했다. 현실적이고 자연스럽게. 은수의 인생은 은수가 만든 거다.

작은 선택이 모여 만들어지는 게 인생이라면, 당신은 선택의 순간에 어떤 결정을 내리는 편인가?
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주관이 확실한 편임에도 내가 믿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에게 나의 영역을 기꺼이 침범받는 것 같다.

주변에 누구를 두는지가 중요하겠다.
굉장히 중요하다. 힘들 때 혼자 있으려 하는 데는 그런 이유도 있는 것 같다. 내 자신이 침범당하는 게 쉽지 않아서.

보통은 힘들 때 누구랑 같이 있으려고 하지 않나?
나는 정반대다.

용감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용감하다기보다 나를 만들어온 상황들, 경험들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부모님은 많은 시간 한국에서 왔다 갔다 하셔서 반은 유학, 반은 가족과 생활하는 식이었다.

해외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사람은 아무래도 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더라. 당신도 이방인이라고 느끼나?
중요한 시기를 다른 문화권에서 보냈기 때문에 적응하는 시기가 필요했던 것 같다. 미국은 인종이나 가치관, 취향이 다양한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나라니까. 다르다는 게 잘못된 건 아닌데 우리나라에서는 못이 튀어나와 있으면 망치질부터 하는 느낌이었다.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튄다는 것이 비난받을 수 있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 이제는 그런 분위기에 많이 적응했지만.

배우나 뮤지션들 인터뷰를 해보면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 많다. 아마 개성을 바탕으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규격과 표준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회가 더 숨 막히게 느껴질 것 같다.
나를 포함해서, 그 갑갑함이 없는 곳에서 생활해본 사람은 더할 것이다. 여배우들에 대한 인식도 그렇다. 처음에 내가 이것저것 시도했을 때의 반응이 곱지 않았다. 디자인이나 음악 같은 건 취미 생활이랄까, 내가 좋아하는 걸 할 뿐인데 ‘여배우가 왜 이런 걸 해?’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부드러운 브라운 톤의 니트 톱, 레이스 펜슬 스커트, 브리프는 모두 Burberry Prorsum. 커다란 꽃무늬 모티프 비즈 장식 이어링, 링은 모두 Feverish, 실버 스텔레토 힐은 Suecomma Bonnie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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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재능을 멋있게 보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글쎄, 내 주변 사람들이 자꾸 나를 작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배우가 왜 그런 걸 해야 해? 연기만 하면 되고 예쁘면 되지’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외모로 승부할 수 없기 때문에 나의 고유성을 찾아가야 한다(웃음). 어느 순간부터 드러나는 것에 대해 자제하고 있다. 배우로서 연기보다 다른 사생활이 너무나 부각된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재주조차도 드러내는 게 지금으로서는 부담스럽다. 연기로 먼저 얘기하고 인정받고 싶다.

기왕에 가진 재능이 아깝지 않나?
‘내가 이런 것도 잘해요’라고 포장해서 선전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뿐이고, 굳이 아티스틱해 보이려고 노력할 이유도 없다. 나중에 좋은 기회가 생기면 재미있는 작업을 시도해볼 수도 있고, 그게 드러날 수도 있겠고. 지금은 혼자서 간간이 그림도 그리고 이런저런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표나게 알리고 싶지는 않다.

김수현 작가는 배우 김희애에 대해서 ‘생긴 거나 발음이 차돌맹이 같다’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당신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이 있었나?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와인 한 잔 같이하는데, “지아야, 고생했다” 하시더라. 드라마가 끝났을 때가 아니라 한창 촬영 중이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많이 남았잖아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선생님” 했더니 “그런 뜻이 아니야”라고만 하시더라.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이 없는데도 이해가 갔다. “선생님 어떻게 아세요?” 하니까 “이 나이가 되면 다 보여” 하시더라.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거기까지가 대화의 전부였다. 선문답 같기도 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그 한마디가 큰 힘이 됐다. 내가 더 잘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은 많이 남지만.

연기에 대해 만족스럽지 않다는 뜻인가?
돌아서고 나면 매번 왜 그때 그렇게밖에 못했을까 하는데, 그게 다음 작품을 할 때 조금 더 나은 지점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같다. “드라마 잘 봤어요”라는 인사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기보다 뭔지 모르게 부끄럽다. 내 자신이 만족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그럴 수도 있고, 나를 알아봐준다는 게 쑥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배우들이 자기 못 알아보면 서운해한다고 하지 않나. 나는 사람들이 날 못 알아보면 정말 기분이 좋다(웃음).

혼자서 밖에 나다닐 일이 많나?
식품관에도 가야 하고 음식점에도 가야 하니까(웃음). 대부분 레스토랑인 것 같다. 나에게 신경 안 쓰고 아무도 모르는 것 같으면 기분이 좋다. 어느 때는 바로 뒷자리에서도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느껴질 때가 있다.

대중이 바라보는 시선까지는 어쩔 수 없지 않나?
그 이상으로 사람을 재단하는 건 문제가 되겠지만. 진실에 대한 확인 없이 자신이 들은 것을 사실이라 믿어버리니까. 그런 게 상처가 되는 점이 많다.

드라마에서 “행복해?”라는 질문이 반복된다. 당신에게는 행복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온전히 나만 있는 순간이 행복하다. 미리 앞서서 뭔가를 걱정하거나 과거로 돌아가 이미 벌어진 일에 묶여 있지 않은, 온전한 현재가 행복하다.

그렇다면 지금 행복하다는 얘기도 될까?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해도, 언젠가의 좋았던 때를 떠올리며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편이 아니다. 늘 지금에 충실하려고 애쓴다. 내년에 뭐 해야지, 10년 후에 뭐 해야지 하는 계획을 세우는 걸 심각하게 못하는 편이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중요하고 행복하고 소중하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에 그 후로는 현재를 즐기려고 노력한다.

현재의 소중함을 깨달은 계기가 있었나?
계기야 있었지.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독특하게 보냈다. 오래 혼자 있고 그러다 보니 그 나이 때 못해본 것도 많고 해서 그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

미래를 위해 현재를 유보하면서 지냈다는 뜻인가?
그렇게 살아서는 아니지만… 어떻게, 다 얘기해야 하나? (웃음) 어디까지 얘기해야 하나… 아시겠지만, 나는 타지에서 오랫동안 은둔 생활을 했다. 그러니 20대에 해보지 못한 게 많다. 그 당시에는 현재를 즐길 줄 몰랐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그런데 지나고 나서 보니까 지금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을 때인 거다. 어린 날을 그렇게 보냈기 때문에, 시간이 간다는 것에 대해서 그런 감각을 갖고 있다.

꽃 아플리케 장식의 시스루 톱과 미디렝스 스커트는 모두 Blumarine, 아이보리 톤 레이스 브라는 Wolford, 심플한 진주 장식 브레이슬릿은 Vintage Hollywood, 태슬 디자인의 골드 이어링은 Actonoon, 컬러풀한 스틸레토 힐은 Dior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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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인 꽃 프린팅과 비즈 장식의 원피스는 Prada, 검정 레이스 아플리케 브라는 La Perla, 크리스털 장식 드롭 이어링은 Prada, 앤티크한 디자인의 더블링은 Mawi by Bbanzzac, 색감 있는 로즈 패턴의 스틸레토 힐은 Dior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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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다시 현재에 충실한 연애를 할 수 있었을 때 행복했을 것 같다.
글쎄, 매순간 순간이 행복하니까 물론 그때 당시에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소중했고. 하지만 지금나에게 중요한 건 오늘이다. ‘맞아 그때 행복했지’ 하고 굳이 지난날을 떠올려 회상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게 당신의 행복에 절대적인 조건은 아닌가?
혼자 있다고 해서 적어도 비어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 것 같다. 지쳤다 이제(웃음). 내 나이에 연애도 몇 번 못해봤지만, 현재로서는 그렇다. 지쳤다. 사람들 보면 참 잘 만나고 잘 헤어지고 하는데 나는 성격상 그런 게 잘 안 된다. 너무 진지하다고 할까. 마음을 여는데도 오래 걸리고. 언제부터 다시 마음을 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런 진지함이 연기해온 인물들에게서도 보인다. 대체로 연약하면서도 강단 있는 캐릭터를 골라온 것 같다.
일부러 찾아다니는 건 아닌데 그런 이미지가 나에게 있나 보다. 하지만 혼자 속 끓이고 속앓이하는 인물은 그만하려고 한다.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다. 좀 다른 걸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미술을 전공했고, 음악적 재능도 뛰어난데 배우가 되었다.
인연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배우가 되기 위해 계속 노력했던 사람은 아닌데 그런 계기와 기회가 있었고, 정신 차려보니 여기 와 있더라. 나의 데뷔를 두고 억측이 많은데 다 사실이 아니다. “임금님귀는 당나귀귀”같이 본의 아니게 얘기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니까. 어쩌면 내 얘기들이 갈대 숲에서 메아리칠지도 모른다(웃음).

본인의 평화가 가장 중요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려고 많 이 노력한다. 어떻게 노력 안 하는데 자연스럽게 평화롭겠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지만.

쉴 때는 주로 뭐하면서 시간을 보내나?
혼자 정말 잘 논다. 관심 있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궁금한 것도 많고, 뭐 하나 꽂히면 파고드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그다지 공허함을 못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주변에서 밖으로 끌어내려고 하지 않나? 그런다고 내가 쉽게 나가나? (웃음)

계획하지 않는 삶이라고 했지만,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 하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목표를 세우고 이루려 애쓰기보다, 좋아하는 무언가를 자연스럽게 하다 보면 그게 쌓여서 결과물이 나오더라. 연기도, 좋아하는 다른 관심사도 자유롭게 즐기면서 더 인정받으면 좋겠다. <태왕사신기>, <아테나>, <베토벤바이러스>… 내 작품들은 대체로 다 잘 됐다. 그런데 사생활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충격이 있다 보니까 나의 커리어가 쓰나미처럼 쓸려가버린 것 같아 아쉽고 안타깝다. <세결여>로는 다시 쌓아가는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내 기사에는 댓글이 보통 나쁜데 이번 드라마에 대해서는 다음 작품 기대된다는 얘기 많이 들었다.

댓글을 읽나?
내가 직접 보지는 않지만 모니터링받는다. 드라마 시청자 게시판은 꼭 보고. 기사에 달린 댓글 보면 보통 속만 시꺼메진다.

의도적으로 댓글에 무관심해지는 것도 방법일 거다.
그러려고 한다. 나도 살아야지(웃음).

현대 미술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는데, 어떤 아티스트를 좋아하나?
트레이시 에민, 리처드 프린스처럼 트렌디한 작가도 좋아하지만 에드 루샤나 루시안 프로이트 같은 화가의 힘있는 작품도 좋아한다. 그런데 누가 봐도 깊이 있는 작품이 많지만 나를 건드리는 작품은 따로 있는 것 같다.

혹시 작품 컬렉팅도 하나? 구매하는 건 훌륭한 그림보다는 그렇게 자기를 건드리는 작품이라고들 하더라.
아주 비싼 건 못하지만 기돈 루빈이라는 이스라엘 아티스트 작품을 갖고 있다. 평범한 일상과 추억을 그리는데, 특이한 점은 모든 그림의 인물 얼굴에 눈코입이 없다는 거다. 표정이 없는 데도 보고 있으면 뭔가가 떠오른다. 그 사람이 얘기하는 익명성이 아마 나를 건드렸나 보다(웃음).

그림 모으는 걸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재밌겠다.
나는 나에 대해 들키는 걸 좋아하진 않는데, 구매하는 작품은 자기 에고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제 뭐하고 싶은가?
웃긴 거 하고 싶다. 내 안에 그런 게 살고 있다. 망가지는 것에 대해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차피 외모로 승부할 수 없기 때문에(웃음).

<설국열차>에서 들창코로 망가져 연기했던 틸다 스윈턴은,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게 되는 것’을 성공의 정의라고 하더라.
나는 그렇다면 아직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웃음).

성공을 향해 가는 과정에 있다고 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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