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사탕처럼 부드러운 색감으로 채워진 김한나의 화폭은 일상의 치열함에서 벗어난 환상적이고 고요한 세계다. 자신을 닮은 소녀와 그의 친구인 토끼를 꾸준히 그려온 작가를 그의 개인전 <손끝으로 모은 까다로운 순간들>(~8월 6일)이 진행 중인 스페이스K 서울에서 만났다. 작고 수줍게 속삭이는 그의 답변은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워야만 겨우 들을 수 있었다.

<W Korea> 김한나의 작품에는 늘 작가 본인의 이름을 딴 ‘한나’라는 소녀와 흰 토끼가 등장한다. 토끼를 그리기 시작한 건 언제부턴가? 그리고 토끼가 아닌 다른 동물을 고려해 본 적은 없나?
김한나 2004년의 대학교 여름방학 무렵이었다. 원래는 내가 토끼가 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기 때문에 대신 친구가 됐다. 이유나 의도와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시작된 일이다.

실제로 토끼를 키운 경험은 있나?
없다.

매번의 개인전에는 전체를 아우르는 이야기가 있었다. 헤어졌던 토끼와 다시 만나는 과정이 하나의 전시가 된 적도 있었고, 사회에 진입하면서 겪는 성장통을 다룬 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의 ‘이야기’는 어떤 걸까?
간단히 설명하자면, 게으름을 잘 지켜내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왜 ‘게으름’인가?
나에게는 무척 중요하다고 해야 할까? 작업을 할 때나 삶을 살아갈 때 어떤 힘의 원천이 된다. 게으름을 잘 지켜내야 내가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모두가 치열하게 살기를 강요받는 요즘, 게으름은피 해가거나 극복해야 할 무언가로 취급받기 일쑤다.
맞다. 사실 지난 해에 여러 가지 이유로 게으름을 잘 유지하지 못했다. 빼앗겼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 경험을 통해 게으름의 긍정적인 힘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됐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이 게으르다고 생각할 때 막연한 죄책감을 느끼는데, 본인은 그 반대인가 보다.
게으름이라는 게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관심을 주는 것, 내게 게으름은 그런 의미다.

전시의 제목이 <손끝으로 모은 까다로운 순간들>이다. 어떻게 떠올리게 된 문구인가?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게으름을 유지한다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그걸 모으고 지키는 자체가 까다로운 순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소중히 다루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1. ‘땀’ 2. ‘앗! 간지러워’ 3.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1. ‘땀’ 2. ‘앗! 간지러워’ 3.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전시작 중에서 개인적으로 의미가 특별하다고 생각되는 작품을 꼽는다면?
일단 ‘땀’이라는 그림을 들겠다. 게을러도 땀이 흐르더라(웃음). 문득 그 경험이 신기하고 흥미롭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한나와 토끼를 두 개의 캔버스에 각각 그려 나란히 붙인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도 내게는 특별하다. 지난 개인전 당시 작업 노트에 ‘바람을 따라가겠다’고 적었었다. 바람을 따라갈 수 없다면 차라리 바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물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자유롭고 게으르게. 그렇게 살 수 있었으면 한다.

만화나 동화처럼 따뜻하고 귀여운 장면을 담는다. 실제로도 만화를 무척 좋아한다고 알고 있는데, 순수미술 작가 대신 만화가가 될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
대학 졸업 무렵인가 졸업하고 할 일이 없을 때인가, 만화를 하나 쓴 적은 있다. 그런데 너무 재미가 없는 거다. 그래서 바로 포기했다. 그냥 하던 작업을 계속하는 게 좋을 듯싶었다.

특히 좋아하는 작품이 있나?
야마시타 카즈미의 <천재 유교수의 생활>이다.

혹시 만화에서 구체적인 작업의 아이디어를 얻을 때도 있나?
굳이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맥락이 닿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아무튼 늘 만화를 보니까.

사실은 겨드랑이에서 토끼가 솟아나는 장면을 묘사한 ‘앗! 간지러워’를 보면서 이와아키 히토시의 <기생수>를 떠올렸는데….
그러고 보니 그런 느낌이…. 하지만 전혀 별개의 작업이다(웃음).

토끼나 한나가 등장하지 않는 작업을 구상해본 적도 있나?
언젠가 생각은 해봤다. 풍경을 그려보려 했지만 결국 시도에 그쳤다.

하지 못한 이유가 있나?
스케치를 하다 보면 결국에는 어쩔 수 없이 나와 토끼를 그리게 된다.

작품 속에 묘사된 한나는 열몇 살 정도가 될까 싶은 소녀다. 30대인 작가와는 꽤 터울이 지는 셈이다. 스스로의 진짜 모습은 어린아이에 가깝다고 생각하나?
그보다는 내가 원하는,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그린다고 봐야 한다. 저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겨 있다.

어떤 것들이 ‘예쁘게’ 느껴지나?
자유로운 모습, 그런 데서 아름다움을 본다.

앞으로도 꾸준히 한나와 토끼를 그리게 될 거다. 시간이 흐르면 그들도 나이를 먹게 될까?
사실 예전에 비하면 지금도 많이 자란 상태다. 한나의 표정은 성숙해졌고 토끼도 더욱 커졌다. 앞으로도 나와 함께 천천히 나이가 들고, 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