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극적인 아름다움의 경연장인 오트 쿠튀르의 세계.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진 뷰티 환상 동화.

간결한 아름다움, 순수의 시대

장인의 혼이 고스란히 담긴 옷을 걸친 여자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얼굴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디올과 발렌티노 쿠튀르가 좋은 답이 되어줄 듯하다. “그녀는 오필리아예요. 잔잔한 아름다움을 품은 더없이 여린 소녀죠.” 발렌티노 쿠튀르에서 완벽한 누드 페이스를 보여준 팻 맥그라스는 창백해 보일 정도로 치밀하게 정돈된 피부 위에 하이라이터만을 사용해 섬세한 옷의 디테일이 우아하게 살아나도록 만들었다. 디올 쿠튀르를 책임진 피터 필립스는 아기처럼 매끄럽고 보송보송한 피부 위에 오직 실버 아이라인 하나만을 더해 순수한 면모를 더 극적으로 드러냈다. 파운데이션과 컨실러를 적극 활용해 곱고 매끈한 피부 결을 표현한 뒤 버터 크림처럼 밀도가 느껴지는 가볍지 않은 누드 톤의 섀도를 얇게 발라주자. 혹은 빅터&롤프처럼 화이트 섀도를 투명하게 발라도 좋다. 그리고 아주 엷은 장밋빛 혹은 핑크빛이 감도는 하이라이터를 T존과 C존에 톡톡 두드려 얼굴의 윤곽을 살리자. 입술은 부드러운 혈색만 돌면 충분하다. 단, 질감이 매트할수록 우아하다. 물론 군더더기 없는 아름다움이 반드시 누드 팔레트로만 이뤄질 필요는 없다. 아르마니 프리베를 보자. 그 흔한 블러셔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얼굴에는 오직 그레이와 블랙을 넘나드는 스모키 메이크업만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내추럴하고 투명하지요”라는 린타 칸텔로의 말이 무엇인지 가슴으로 와닿지 않은가?

패션 동화와 함께한 뷰티 판타지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어른들의 패션 놀이터라는 말에 걸맞은 드라마틱한 신이 연출되었다. 언제나 한 편의 환상 동화와 같은 쇼를 보여주는 장 폴 고티에는 역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지극히 창백한 얼굴 그리고 그 위 어딘가에 레드 컬러가 있죠. ‘쿠튀르 고스트’예요”라고 정의한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테판 마레의 말처럼 일체의 다른 색조 제품을 배제한 채 오직 다양한 질감의 레드 컬러로만 빚어낸 얼굴은 남성성과 여성성의 경계를 미묘하게 무너뜨린다. 그런가 하면 아틀리에 베르사체는 볼드한 색감에 그래픽적 요소를 더해 쿠튀르를 모던하게 변모시켰다. 농밀한 청록색의 두터운 아이라이너에 블랙 라인을 얇게 더해 글래머러스한 아이 메이크업을 완성한 것.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처럼 검은 도트의 레이스 마스크로 극적인 메이크업 테크닉을 대신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쿠튀르의 백스테이지를 풍성하게 만든 데는 헤어의 힘이 크다. 이는 메이크업이 미니멀할 때 더욱 돋보이는데 샤넬 쿠튀르가 대표적. 실버 화이트로 아이섀도 대신한 간결한 메이크업과 달리 마치 남자아이가 대충 만진 듯 모발의 질감을 제멋대로 한껏 살렸다. “마치 80년대의 보이 밴드 같죠.” 헤어스타일리스트 샘 맥나이트는 말한다. 발렌티노와 스키아파렐리 역시 이런 무드에 동참했다. 얼굴은 최소한의 컬러로만 완성했으나 헤어스타일만은 목덜미부터 등을 따라 유려하게 굽이치는, 촉촉하게 젖은 컬을 넣거나 새 둥지처럼 엉킨 반머리 묶음 스타일로 반전의 매력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