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새롭고 뜨거운 이름, 안재현을 가까이서 들여다봤다.

갈색 칼라가 달린 베이지색 셔츠, 회색 턱시도 재킷, 보라색 팬츠, 카키색 스카프는 모두 Prada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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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되기 전부터 안재현은 이미 스타였다. 물론 어떤 사람, 예를 들어 중년의 <전국노래자랑> 열혈 시청자에게는 그의 팬덤이 다른 은하계의 일처럼 멀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몸의 일부처럼 여기는 소녀들 사이에서 이 경력 5년 차의 모델은 우주의 밝은 중심이다. SNS에서 끊임없이 공유되고 리트윗되던 환호성은 결국 영화 및 방송 관계자들의 귀에까지 흘러들어갔다. 30%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한 <별에서 온 그대>는 ‘배우’ 안재현의 데뷔작이었다. 전지현의 무뚝뚝한 동생은 주인공의 가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작은 캐릭터였지만 쏟아진 관심은 기대 이상이었다.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패션왕>과 경쾌한 수사 드라마인 <너희들은 포위됐다> 제작진도 연이어 그를 촬영장으로 불러들였을 정도니까. 고민 끝에 외도를 결심한 모델은 겨우 반년 만에 가장 바쁜 신인 연기자 중 한 명이 됐다. 냉정히 이야기하자면 안재현이 ‘준비된 배우’는 아니다. 복잡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신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경험 부족이 드러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첫 시나리오를 받아보기 전까지 그에게 연기는 아예 관심 밖의 일이었다. 애써 찾아 나서기도 전에 기회가 먼저 찾아왔다는 점에서 스스로도 인정하듯 이 스물여덟의 청년은 행운아가 맞다. 어쩌면 정말 중요한 건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안재현은 무엇이 중요하고 또 중요하지 않은지를 직관적으로 아는 사람인 듯했다. 배우로서의 목표를 물었을 때 그가 말한 건 신인상 트로피가 아니었다. 다만 현장에서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나르시시즘을 채워줄 누아르보다는 페이소스가 깃든 코미디에 욕심을 냈다. “주성치를 좋아하거든요. <너희들은 포위됐다>에 함께 출연 중인 차승원 선배님도 필요할 때면 아낌없이 망가지시는데 전 그런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해요. 소속사에서는 말리는 눈치지만 전 망가지는 게 좋아요. 폼 나는 것보다는 어설픈 캐릭터가 제게 더 편한 옷 같아요.”

그래픽적인 프린트 톱은 Givenchy by Riccardo Tischi, 반짝이는 소재의 집업 점퍼와 남색 버뮤다 팬츠는 Juun.J, 컬러풀한 샌들은 Camper 제품, 갈색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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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드라마 출연작인 <너희들은 포위됐다>가 어느덧 종영을 앞두고 있다. <별에서 온 그대> 때와 비교하면 어떻게 다른 경험이었나?
안재현 <별그대> 때는 한 신을 찍고 나면 지쳐버렸다. 모델들이 첫 화보 촬영 때 세 컷쯤 찍고 기진맥진하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이라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주변 스태프들은 나만 바라보고 있으니 마냥 어리둥절했다. 이제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정도는 알게 된 것 같다. 그게 가장 큰 차이다.

데뷔 전 한동안은 배우 캐스팅 제안을 전부 거절했다고 들었다. <별그대> 역시 오랜 고민 끝에 참여하게 된 작품이다.
나를 위한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잘할 수 없는 일에 한눈을 팔 게 아니라 모델로서 먼저 자리매김하고 싶었다.

마음을 바꾼 계기는 무엇이었나? <별그대>의 장태유 감독이 어떤 말로 설득했는지 궁금하다.
거절하더라도 일단은 직접 뵈어야 할 것 같았다. 첫 만남 때 감독님과 2시간쯤 이야기를 나눴는데 서로 입장이 뒤집힌 듯 묘한 상황이었다. 정말 생각이 없느냐고 계속 물으시는데 나는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저 리딩 못하는 것 보셨잖아요….” 나한테는 너무 어려운 일같았고 위계 질서가 엄격한 현장 분위기도 부담이 됐다. 감독님도 ‘얘는 도대체 뭐지?’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다음 날 다시 조감독님과 함께 찾아오셔서 방송과 드라마 시스템에 관해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을 해주셨다. 감사하기도 하고 이런 분이 또 어디 계실까 싶었다. 무조건 믿고 따라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있었다. 몇 년을 모델로 일하다 보니 보여줄 수 있는 게 점점 바닥나는 기분이었다. 변화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 외에도 데뷔 전부터 안재현을 캐스팅하려는 작품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 업계 관계자들의 ‘촉’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고마운 제안들을 두고 재거나 고르기가 싫었다. 그래서 공손하게, 하지만 단호하게 전부 거절을 했다. 그 모습을 대체로 나쁘게 보시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중에라도 인연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분이 많다. <별그대>로 데뷔하고 나니 그때부터 다시 연락들을 주신다.

데뷔 전과 데뷔 후,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바뀌었나?
모델은 쉴 수가 없는 직업이다. 잠깐만 눈에 띄질 않아도 이 사람은 수명이 끝났다고들 생각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계속 자기 존재를 알려야 한다. 배우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한 작품 끝내면 재충전할 수 있다는 게 큰 특권 같았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관찰하니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든다. 안 보이는 데서도 많은 걸 외롭게 해야 하는 일이다.

<너포위>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는 차승원 역시 출발은 모델이었다. 청하고 싶은 조언이 많았을 거라는 짐작이 든다.
몸둘 바를 모를 정도로 예뻐해주시고 일일이 피드백을 주신다. 본인이 오래전 거친 과정을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셈이니 선배로서 책임감을 느끼시는 듯하다. 나한테는 ‘모델로서의 멋진 것’을 놓아야 한다고 하셨다. 또 싸구려 작품이나 싸구려 연기 같은 건 없다는 말씀도 들려주셨다. 주연, 조연을 가리지 말고 정말 재미있겠다 싶은 걸 하라는 의미셨다.

<너포위> OST에도 참여를 했다. 직접 노래를 불렀던데.
제의를 받았을 때 과연 해도 되는 걸까 싶었다. 3일 연습하고 바로 녹음을 했는데 보컬 선생님과 음향 감독님, 그리고 무엇보다도 좋은 기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평소에도 노래하는 건 좋아하나?
전혀 아니다. 자신감 있게 즐기질 못하고 일처럼 부른다. 노래방에 가면 미션을 하나 맡은 기분이다. 음악은 그냥 듣는 쪽이 더 좋다.

앞에 나서는 걸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닌가?
그런 것 같다. 다만 성격이 급한 편이다. 마음을 먹었으면 당장 결과를 내야 한다. 맡은 일에서 빨리 완성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크고, 그래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오렌지색 패턴이 포인트인 흰 셔츠는 Kris Van Assche by Koon, 그물처럼 성근 조직의 톱은Lanvin 제품.

오렌지색 패턴이 포인트인 흰 셔츠는 Kris Van Assche by Koon, 그물처럼 성근 조직의 톱은
Lanvin 제품.

앞으로는 배우로서의 활동으로 무게중심이 완전히 옮아가게 될까? 모델 일은 계속 병행할 생각인지 묻고 싶다.
하고 싶다. 그런데 일단 작품에 투입되면 내 의지대로만 움직이기가 어려워진다. 한때는 모델에만 집중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상황이 이렇게 바뀌었다. 예전에는 한번 뱉은 말은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러다 랄프 왈도 에머슨의 책을 읽었더니 그 안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어제 뱉은 말 때문에 오늘의 당신을 버리지 말라.’ 거기서 뭔가를 깨달았던 것 같다. 과거의 목표에 집착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변화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싶다.

연기를 시작하고 난 뒤 많은 변화를 겪었을 거다. 잘 적응 중인 것 같나?
아직 <별그대> 시작 무렵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작년 10월부터 시작된 하루가 끝나지 않은 기분이다.

한 박자 쉬면서 차분하게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크겠다.
그런데 11월까지는 이미 계획이 채워진 상태다. 올해는 없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괜찮다. 이참에 전기세도 좀 아끼고….

혼자 사나?
독립한 지 3년 됐다. 새벽에 들락거리며 부모님 깨우는 것도 신경이 쓰였고, 좀 더 일에 시간을 쏟고 싶었다.

혼자 지내는 걸 못 견디는 사람도 많다.
난 아니다. 혼자만의 공간이 있다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집돌이다. 난 밖에서 사람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 아니다. 핸드폰처럼 집에서 충전을 한 뒤 밖에 나가 쓰고 돌아오는 쪽에 가깝다.

집에서는 뭘 하나?
게을러진다. 술 마시는 것도 좋아한다.

술도 혼자 마시나?
영화 한 편이나 라디오를 틀어놓고 낮부터 와인 한 병을 따면 여행 온 기분이다. 혼자만의 파티랄까.

혼자 정말 잘 노나 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지만 진짜 친한 친구는 손에 꼽는다. 게다가 다들 자기 일이 있으니까 마음처럼 쉽게 모이질 못한다.

연기자 데뷔 전부터 이미 아이돌급의 팬을 거느린 스타였다. 남자 모델로서 그 정도의 대중적 인지도를 얻는 건 꽤나 이례적인 일이다. 영화나 드라마 제작진도 처음에는 그 팬덤을 주목하지 않았을까 싶다.
종종 회의감도 느꼈다. 어느 날 감정을 잘 끌어내서 정말 좋은 사진을 찍었는데 현장 스태프들마저도 모델을 끝까지 하라고 하는 대신 이제 연기를 해도 되겠다고들 말씀하셨다. 물론 어떤 의미였는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패션 시장이 커졌다고는 하지만 모델에 대한 대우는 충분히 개선되지 않았으니까. 아무튼 그때는 그런 분위기가 섭섭해서 오히려 더 모델에 집중하고 싶었다.

어린 팬이 특히 많은 편 아닌가? 포털 사이트에서 ‘안재현’을 검색하면 결과들이 재미있다.
지식인에서 ‘안재현과 결혼하는 법’에 대해 묻고 답하는 걸 봤다(웃음). 그런데 요즘은 워낙 바빠서 인기나 인지도에 대한 실감은 오히려 전보다 덜하다. 다만 가끔 어르신들이 알아보셔서 그게 좀 재미있다.

20대 후반처럼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인지 드라마와 영화에서 각각 고등학생을 연기했다. 작품을 통해 학창 시절로 돌아가보는 건 어떤 경험이었나?
어려웠다. 더군다나 <별그대>의 까칠한 윤재는 나와 여러모로 정반대의 인물이다. 난 예절과 예의가 너무 중요한 사람이다.

동명의 웹툰을 영화화한 <패션왕>도 이미 크랭크업했다. 이 작품에서 맡은 원호 캐릭터는 어땠나?
윤재와는 또 다르게 도도하다. 철이 없는 걸 나쁘게 표출하는 경우랄까. 윤재나 원호가 아닌 안재현의 고등학생 시절도 궁금하다. 공부는 안 했는데 그렇다고 수업 시간에 자거나 딴짓을 한 것도 아니다. 2학년 때는 선생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저는 어차피 대학 갈 생각이 없습니다. 앞에서 문제를 풀거나 하는 건 열외시켜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이런 애가 나름 성실하긴 해서 수행평가는 만점을 받았다. 선생님들께서도 마음 고쳐먹고 공부하면 안 되겠느냐고 걱정을 해주셨다.

대학 진학은 왜 포기하려고 했나?
빨리 취업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몇천만원씩 학비를 써가며 4년을 흘려 보내느니 그 기간에 돈을 버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고3 때 마음을 고쳐먹긴 했지만.

앞날에 대해 조숙한 고민이 많았던가 보다.
20대는 노는 시기가 아니라 투자하는 시기라고 생각했다. 돈 욕심보다는 나를 업그레이드해야겠다는 조바심이 컸다.

결혼 욕심은 왜 그렇게 컸나?
좋지 않나. 가정이라는 단어 자체가 굉장히 예쁜 것 같다.

어느덧 결혼을 해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가 되긴 했다.
그래서 기분이 묘하다. 스물두 살 때부터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고 다니다가 혼자인 채로 스물여덟이 됐다.

점점 결혼은커녕 연애까지 힘들어지는 것 아닐까?
늘 시간에 쫓기고 지켜보는 눈도 많아지고. 지금은 연애보다 일 욕심이 왕성한 때다. 승부욕도 솟는다. 다른 배우들을 보면 나라고 못할 이유가 있을까, 한번 제대로 해보자, 생각한다.

사생활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
드물게나마 친구들과 포장마차에서 만나 소주 한잔하는 게 큰 즐거움인데 이제 회사에서 혼자 어딜 안 보내려고 한다. 내가 워낙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라 불안한가 보다. 어디 가서 술 마시고 사인회 같은 걸 하고 있으면 어쩌냐고 걱정한다.

술을 꽤 좋아하나 보다. <너포위>가 끝나야 좀 더 즐길 여유가 생길 텐데.
봉인 해제다. 선물 받은 술이 집에 쌓여 있다.

술이 종영 후 계획의 전부는 아닐 거다.
무용을 배우면 어떨까 한다. 액션 스쿨에 다니고 운동도 시작할 생각이다. 내가 정적인 편이다. 책 읽는 것 좋아하고 웬만하면 한자리에서 모든 걸 다 해결하려 한다. 그래서 몸 쓰는 걸 배우고 싶다.

막연하게나마 배우로서의 바람이 있나?
처음 낯선 기계를 선물 받았다면 일단은 그냥 즐거울 거다. 하지만 전원을 켜고 사용법을 익히는 동안에는 끈기가 필요하다. 그 과정을 마쳐야 비로소 제대로 된 행복을 맛볼 수 있다. 나도 배우라는 일에 좀 더 익숙해지고 싶다. 지금은 행복보다는, 기껏해야 겨우 해냈다는 뿌듯함을 가끔 느끼는 정도가 고작이다. 뭔가 큰 결과를 이루고 싶은 바람은 아직 없다. 그냥 현장에서 더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