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트 쿠튀르가 한땀 한땀의 정교한 장인 정신만 대변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번 시즌, 파리 오트 쿠튀르 현장은 하이패션의 실험정신을 보여주는 각축장이었으니까. 모던한 소재와 액세서리의 믹스 매치, 미니멀리즘을 표현한 칼 같은 재단과 조형적인 실루엣으로 이루어진 이 네오 쿠튀르의 축은 오늘날 쿠튀르의 새로운 고객층으로 급부상한 젊은 VIP들의 취향을 두루 만족시키며, 21세기 쿠튀르의 새로운 도약을 알렸다. 그러니 여기 감각의 한 수를 보여주는 디자이너들의 새롭고 흥미로운 시각이 담긴 모던 쿠튀르, 그 진화하는 패션의 현재를 느껴보길!

쇼킹 핑크로 대변되던 엘자 스키아파렐리의 센세이셔널한 초현실주의. 그 혁신적인 면모를 21세기 버전으로 다시금 재현하고 싶었던 걸까. 마르코 자니니가 선보인 스키아 파렐리의 쿠튀르 쇼는 강렬한 팝 컬러의 경쾌한 충돌과 기묘하기까지 한 위트를 한데 뒤섞으며 브랜드의 DNA를 신선하게 상기시켰다. 다시 말해 과잉과 절제의 경계를 넘나들며, 스키아파렐리의 판타지와 과감한 본성을 드러낸 것. 그중 소매에 퍼를 장식한 가죽 집업 점퍼와 엘자 스키아파렐리를 상징하는 ES가 적힌 쇼킹 핑크 색상의 코트, 아카이브 속 화살을 맞은 하트를 응용한 니트 톱, 쥐들의 행렬을 담은 프린트 드레스에선 모던한 위트가 넘쳤다. 또한 시폰처럼 보이는 악어가죽과 핸드 페인팅 된 나비 등에선 숙련된 쿠튀리에 정신이 느껴지기도. 결과적으로 흥분 어린 에너지와 혁신적인 스타일은 센세이션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지난 시즌, 빈티지 패브릭을 활용한 아티즈널 컬렉션의 연장선상에서 다시 한번 그 실험 정신을 보여준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디자인 팀. 아예 옷감이라는 토대부터 희소가치를 지닌 독창성에 기반한 그 두 번째 시도에는 뉴욕의 창고 세일이나 런던의 앤티크딜러를 통해 발견한 1950년대의 진귀한 패브릭이 이용되었다. 그리고 수십, 때론 수백 시간에 걸쳐 아틀리에 장인들의 정교한 손놀림을 통해 물결치듯 표현한 꽃 모티프와 동전 장식, 자수로 표현한 일본 지도 등이 더해지며 그 값어치를 몇 배로 끌어올렸다. 환상적인 패치워크나 빈센트 반 고흐의 그 유명한 붓꽃 페인팅을 묘사한 룩, 게다가 오늘날 마르지엘라의 아티즈널 컬렉션을 상징하는 페이스 베일이 아티스틱한 면모를 과시했다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동시대적 무드가 넘쳐흘렀다. 바로 한쪽 다리를 과감하게 드러낸 바이어스 컷의 스커트나 일본식 자수 장식을 더한 반지르르한 새틴 소재의 보머 재킷, 그리고 옷에 새긴 아이 러브 유 등의 문구들. 이처럼 오트 쿠튀르의 정수에 브랜드 특유의 독창적 아이디어를 가미한 마르지엘라의 시도는 지난날 쿠튀르가 지닌 표현의 한계를 새로운 가능성으로 치환시켰다.

이번 시즌처럼 쿠튀르에서 붉은색이 각광을 받은 적이 있었을까. 이러한 트렌드에 방점을 찍은 것은 바로 빅터&롤프 듀오. 그들은 레드 카펫을 위한 룩이라는 타이틀을 고집스러울 만큼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이는 셀레브리티들에 대한 패션계의 중독 현상을 비튼 것. “요즘의 문화적 현상에 대한 우리의 생각, 즉 레드 카펫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표현했죠.” 그 결과 큼직한 보 장식이나 레오퍼드 혹은 지브라 패턴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미디 드레스와 코쿤 실루엣의 케이프, 오프숄더 코트 등 일반적인 이브닝드레스와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룩들이 레드 카펫 위에 등장했다. 한마디로 쿠튀르에 대한 기대와 편견을 보기 좋게 저버린 파격적인 쇼.

언제나 여자의 감성 어린 로망을 자극하는 지암바티스타 발리. 이번 쿠튀르 쇼를 위해서 그가 염두에 둔 목적지는 클래식한 할리우드 시대의 글래머러스한 비치 클럽이었다. 그의 뮤즈들은 머리에 두건을 두른 채 청량한 마린 스트라이프 프린트나 화사한 색감의 꽃잎이 정교하게 어우러진 룩을 입고 등장했다. 특히 파자마 스타일의 셔츠와 밑단을 돌돌 말아 올린 줄무늬의 실크 팬츠는 모던하고 여유로운 낭만을 안겨주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아가 와일드하게 연출된 모피 장식 코트와 톱은 관능적인 면모를 과시하기도. 그러데이션이 돋보이는 섬세한 오간자 드레스가 피날레에 등장하기 전까지, 데이웨어의 우아함에 집중한 디자이너의 모던한 감각이 돋보였다.

발렌티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와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는 자연에 집중했다. 다시 말해 르네상스 화가 라파엘로 이전 시대에 자연을 통해 겸허하게 예술을 표현하던 예술가들의 정신을 컬렉션에 투영한 것. 그 결과 꽃이나 백조 등을 그래픽적인 간결한 패턴으로 형상화한 드레스, 깃털 장식을 이용해 관능적인 질감을 표현한 드레스 등 아티스틱한 노스탤지어가 가득 느껴지는 컬렉션이 탄생했다. 물론 자수와 엠브로이더리의 향연이 느껴지는 농밀한 시스루 드레스와 하우스의 유산인 붉은색 드레스도 등장했지만, 이들이 모두 2014 가을 버전으로 새롭게 느껴진 까닭은 가죽 액세서리 덕분. 즉, 가슴부터 허리 부분을 감싼 가죽 밴드와 무릎까지 올라오는 글래디에이터 슈즈 등 관능적인 모던함을 더한 악센트는 듀오의 명민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