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미감은 남자가 드러낸 살갗의 면적이 넓거나 근육의 부피가 크다고 해서 기계적으로 충족되지 않는다. 좀 더 섬세하고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여성의 에로 미학을 건드리는 남자들의 노출은,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일상의 대부분을 금기당한 채 오로지 팬들의 사랑만 이슬처럼 먹고 살아야 하는 아이돌에게 ‘몸’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재산이다. 그리고 이들이 서는 무대는 그렇게 불특정 다수의 환상 속에 속박당한 이들이 자신의 젊은 육체를 뽐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다. 후렴구에서 재킷을 조금씩 벗어 젖히는 안무로 한국 남자 아이돌 역사의 새 지평을 연 신화의 ‘Only One’이나 ‘등짝신기’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지금까지도 각종 여초 사이트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동방신기 ‘주문(Mirotic)’의 2008년 SBS 가요대전 퍼포먼스, 전원 상의 탈의도 아닌 무려 ‘찢기’를 선보이며 ‘짐승돌’ 닉네임에 쐐기를 박은 2PM의 2010년 MAMA 무대 등. 가요계 역사상 빛나던 순간을 하나하나 꼽자면 양 손가락이 모자라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이 주옥과도 같은 예시들에서 오로지 ‘노출’에만 주목한다면 나는 그야말로 실망스러울 것이다. 오랜 시간 삶의 안팎으로 제련된 젊음이 모여 완성해내는 극기에 가까운 몸짓, 그리고 그 끝에 기어코 등장하고야 마는 ‘몸’. 이 경탄은 단지 순간의 짜릿함에 의한 것이 아닌, 기다림 끝에 절정을 맞은 생에 바치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세속적인 찬사에 가깝다.
– 김윤하(음악 칼럼니스트)

<셰임>이란 영화를 봤었다. 섹스 중독자가 주인공인 만큼 주연 배우 마이클 패스밴더는 아낌없이 노출을 감행한다. 덩달아 여배우 캐리 멀리건도 스스럼없이 알몸을 보인다. 그런데 정작 국내 개봉 화면에선 중요 부위를 뿌옇게 처리해 가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작태를 보며 드는 생각은 ‘배우가 어떻게 벗은 몸을 저렇게 가린단 말인가!’였다. 몸을 보이는 게 그다지 스스럼없는 서구권 배우들과 달리 한국에서 노출 연기는 커리어를 거는 모험이 된다. 특히 여배우에게는 더 그렇다. 여배우가 아니라 남자 배우의 엉덩이가 기억나는 장면은 아마도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감우성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스캔들>의 배용준이 그다음이었던 것 같고. <타짜>의 조승우, <하녀>의 이정재, 아아 그리고 <쌍화점>의 조인성! 그의 엉덩이 노출이 영화 흥행에 미친 영향은 객관적 데이터로 분석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나는 ‘백만 불짜리’ 엉덩이로 기억한다. ‘매너손’이 유행이라는데 여배우의 노출 부담을 줄이며, 그것이 덮고 있을 무엇까지 상상하게 만드는 남자 배우들의 엉덩이야말로 ‘매너 엉덩이’가 아닌가! 게다가 서구남자 배우들처럼 앞뒤로 덜렁거리지 않고 수줍은 듯 살포시 돌아선 그들의 엉덩이는 앞에 보이는 것이 무엇이든 그 이상을 상상하게 만드니 어찌나 귀한가 말이다.
– 구정아(영화 프로듀서)

남자의 노출에 인색한 편이다. 정확히 말하면 ‘최근’ 남자들의 근육이 시시해서다. 헬스클럽에서 천편일률적으로 단련한 근육에는 태생적 섹시함이 결여되어 있다. 비비크림을 바른 곱상한 마스크와 몹쓸 한 쌍을 이룬 몸. 조화의 미는 오간 데 없는데, 슬프게도 이게 지금의 시대를 관통하는 정석 같은 몸이란다. 근육은 물리적 법칙 외에도 잔근육 마디마디 붙은 남자의 인생과 사연으로 완성된다. 그런 면에서 내게 최상의 감흥을 안겨준 남자의 노출은 영화 <머드>의 도망자 매튜 매커너히였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살인자가 되고 감옥을 탈주한 순정남 ‘머드’(이름마저 진흙탕!). 낡은 셔츠를 벗는 순간 미시시피 강의 눅진한 태양에 노출된 구릿빛 근육은 그의 삶 전체로 다가왔다. 이 경우의 근육은 화려한 치장이 아니라 처연해서 끌릴 수밖에 없는 몸으로 기능한다. 그때 매커너히의 근육은 스티븐 소더버그 <매직 마이크>의 클럽 댄서 ‘댈러스’가 제공한 근육의 공허한 쾌감보다 몇 배는 더 섹시했다.
– 이화정(<씨네21> 기자)

일해야 근근이 먹고살 수 있는 주제에 천성이 게으름뱅이인 나는 근성이라고는 없이 흐물흐물, 그래서 반대로 일하는 근육에 반하고 만다. 운전하는 남자가 걷어 올린 소매 아래 단단한 팔이라든가, 경기장에서 달리는 남자들의 힘찬 다리라든가. 일하지 않고 있는,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근육에는 아무런 매력이 없다. 가령 아이돌 퍼포먼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옷을 확 올려 초콜릿 복근을 보여준다고 해도, 마시는 프로틴과 기획사 트레이닝의 결과물을 본 기분일 뿐. 하지만 최근 태양의 ‘눈 코 입’ 뮤직 비디오를 보고 복근의 무용함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었다. 상의 탈의한 상태로 전곡을 소화하는 동안, 복식호흡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던 그의 단단한 배 근육. 역시 일하는 근육만이 짜릿하다. 화면에서든 일터에서든 침대에서든 간에.
– 박현주(번역가)

당신이 혹시 남자의 몸에 대해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면 스티븐 소더버그의 영화 <매직 마이크>를 보는 게 좋겠다. 온갖 사이즈와 다양한 체지방률, 근육량을 가진 남자들의 몸을 보며 취향을 가늠할 수 있으니까. 나의 선택은 무조건 채닝 테이텀이다. 나는 <스텝업> 때부터 채닝 테이텀을 사모해왔는데 그게 좀 이상하다. 여러 가지 사이즈의 공을 몸 여기저기 붙여놓은 것 같은, 양감이 두드러지는 이른바 ‘고릴라’ 근육은 내 취향이 절대 아닌 줄 알았는데 그만은 예외이기 때문이다. 반면, 이 영화 속 매튜 매커너히의 몸이야말로 최악이었다. 우리나라 배우들과 개그맨, 중년 배우들이 트레이닝과 인간 이하의 식생활을 고집하며 만든 부자연스럽고 자아도취의 산물로밖에 보이지 않는 몸과 비슷해 보인다. 저런 남자를 만나는 여자는 고생이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어느 날 또 <매직 마이크>를 보며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왜 채닝 테이텀만은 예외일까. 결론은 그의 얼굴이었다. 몸과 묘하게 부조화를 이루는 그 베이비 페이스와 낯 가리는 강아지 같은 눈빛이다. 몸과 얼굴 사이의 부조화가 키포인트였던 거다. 역시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뼈아픈 교훈을 배운다. 역시 얼굴이 중요하다. 아 참, 나는 그의 긴 팔도 너무 좋다. 이런, 역시 난 고릴라 취향이었나? 하지만 “그럼 JYP가 이상형이구나!”라고 말한다면 당신을 지구 끝까지 쫓아가 처단하겠다.
– 이주희(푸드 칼럼니스트)

언젠가부터 ‘보통’ 남자의 몸이 멸종했다.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의 직업은 다양한데 몸은 왜 다들 헬스 트레이너인 걸까? <역린>에서 곤룡포를 벗은 현빈의 등 근육은 눈부셨으나 조선 시대 임금님이 팔도 산해진미 9첩반상을 치우게 하고 식이조절과 운동을 병행하며 백성 대신 자신의 몸을 돌보신 걸까? 이런 의문이 드는 순간 스토리 속 인물이 아니라 ‘입금 받으면 뭐든지 다 한다’는 배우만 보여 거북스러워진다. 너무 열심히 가꾼 남자 몸에서 느끼는 건 설렘보다 관리 시대의 피로감. 한발 떨어져서 감상하고는 싶지만 그 등을 안아주고 싶거나 그 어깨에 기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 것이다. 섹시한데, 섹시하지가 않다. 닭가슴살만 먹으며 하루에 3시간씩 헬스장에서 보냈다고 외치는 몸보다, 운동도 좋아하지만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포기할 수 없다고 속삭이는 몸이 더 매력적이다. 섹시함은 강박과 안달복달이 아니라 여유와 자신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보디빌딩으로 가꾼 매끄러운 근육보다 운동과 일상이 적당히 타협한 야구 선수들의 굴곡 있는 몸이 좋다. 두산 정수빈의 아담한 팔뚝, 다저스 류현진의 동그란 배도 내 눈에는 사랑스럽다. 롯데 3번 타자 손아섭이 홈플레이트를 밟고 덕아웃에 돌아와 헬멧을 벗고 떡진 머리를 드러낼 때면, 비가 무대에서 웨이브를 추며 러닝셔츠를 벗고 초콜릿 복근을 드러낼 때보다 설렌다. 복잡해서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