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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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쇼핑을 싫어한다는 건 오해일지도 모른다. 여자들이 백화점을 세 바퀴째 훑는 동안 세상의 나머지 반은 이런 물건들을 위해 지갑을 연다. 여섯 명의 남자에게 그들만의 쇼핑 취향에 대해물었다.

자전거가 있는 풍경

카페 벨로마노 대표 서천우의 빈티지 바이크 편력

카페를 운영하면서 자전거 탈 시간이 부족해지다 보니 대신 수집에 관심이 생겼다. 오래된 클래식 바이크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 이래 꾸준히 빠져 지내고 있다. 1 꼴라고 오발 cx모델(1984년)은 처음 장만했을 때보다 두고 볼수록 더 마음에 드는 경우다. 정비를 하면 할수록 매력적인 녹색과 날렵한 모양새가 진가를 발휘한다. 완벽하게 복원해서 임신 중인 아내가 출산을 하고 나면 선물할 생각이다. 이 중에 단 하나만 남겨야 하는 상황이라면 무척 고민이 될 거다. 하나하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래도 전시용보다는 보관 중인 것보다는 현재 타고 다니는 2 치넬리 슈퍼 코르사(1984년)를 택해야 하지 않을까? 가장 최근에 장만한 건 3 이탈리아 다꼬르디 공방의 50주년 기념 모델(1988년)이다. 경기도 광주의 어느 카센터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걸 우연히 발견해 구매했다. 클래식 자전거는 오래된 물건이니만큼 사연도 많다. 언젠가는 스위스 수집가로부터 4 이탈리아 공방 제작의 금도금 쵸치 스페셜(1978년) 모델을 구입했다. 그런데 배송 중 자전거 프레임 싯튜브가 눌리는 사고가 발생한 거다. 셀러에게 항의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기 때문에 제품을 복원할 방법을 찾아 직접 백방으로 뛰었다. 결국 낙원상가에서 우연히 장인을 만나 수리를 마칠 수가 있었다. 추가로 구입하고 싶은 제품이야 너무 많다. 캄파놀로 50주년 기념 구동계세트, 캄파놀로 공구풀세트(우드케이스), 꼴라고 아라베스크 리갈 모델, 프랑스의 명품 자전거라 불리는 르네 에르메스 등등. 하지만 가격대가 너무 높아서 소장이 쉽지는 않을 거다.

밖으로 나가버리고

스트리트 패션숍 휴먼트리 대표 김종선이 이베이에서 건진 빈티지 아웃도어 용품들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저렴한 아이템은 1 성냥일 거다. 외국에 여행을 갈 때마다 예쁜 게 눈에 띄면 넉넉히 사두는 편이다. 실제로 사용을 하냐고? 물론이다. 한창 추운 겨울에는 야외에서 라이터가 얼 수 있기 때문에 성냥을 꼭 챙겨야 한다. 일본에서 구입한 2 카무플라주 문양의 콜맨 랜턴에 대해서는 약간 후회를 하고 있다. 배터리를 장착하는 제품인데 불빛이 약한 편이라 영 손이 가질 않는다. 최근에는 플라스틱 원반인 3 프리스비를 구입했다. 캠핑 때 챙겨가면 무료한 시간을 때우는 데 꽤 도움이 된다. 캠핑에 재미를 붙인 건 2007년부터다. 겨울에 사용하기 어려운 가스 램프 대신 실용적인 가솔린 랜턴을 찾았는데, 이베이에 있는 매물이 거의 빈티지 콜맨이었다. 그때 4 빨간색 콜맨 랜턴을 구입한 게 일종의 계기가 돼서 자연스럽게 빈티지 아웃도어 용품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과거 영국, 일본, 이란 등에서만 생산되던 5 알라딘 난로 역시 집중 수집 품목 중 하나다. 드문 편이라는 흰색 모델 하나를 꽤 어렵게 구했다. 가지고 있는 걸 전부 처분하고 하나만 남겨야 한다면 6캠프라이트의 빈티지 랜턴을 고르겠다. 1950~6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뒤 이제는 사라진 브랜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장이 났는데도 수리조차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만큼 드문 물건이기 때문에 절대로 버리질 못할 것 같다.

작은 영웅들

버네이스 애플트리 PR컴퍼니 대표 안재만이 집착하는 피규어와 미니어처

취미가 피규어나 토이 수집이다 보니 해외 출장이나 여행 중에도 꼭 관련숍을 찾아 나서게 된다. 언젠가는 파리 소르본 대학교 옆을 지나다 땡땡 전문 매장에 들렀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1 피노키오 인형이 딱 하나 있는 거다. 컬렉터인 오너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1960년대 빈티지라고 했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져 구입한 물건이라 기억에 남는다. 컬렉션 중 딱 하나를 남겨야 한다면 2 코난 풀 세트를 택하겠다. 그리 비싸게 구입한 아이템은 아니지만 내가 이 애니메이션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3 슈퍼맨 일러스트레이션 포스터를 구입했다. 몇몇 캐릭터에 대해서는 피규어부터 포스터까지 다양하게 쇼핑을 하게 되는데, 슈퍼맨이 그런 경우다. 한 편 <스타워즈>의 R2D2를 실물 크기로 재현한 피규어는 수년째 욕심만 내고 있다. 어디서 파는지도 알고 가격까지 확인해뒀다. 하지만 통관료가 워낙 비싸서 아직 엄두는 못 내는 상황. 가끔은 선물을 받기도 한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몇 해 전 클라이언트로부터 받은 4 해리 포터의 지팡이다. 동그란 안경테 때문에 내 별명이 해리 포터였던 적이 있다. 그 이유에 더해, 당시 겪고 있던 문제를 마술처럼 잘 해결하라는 뜻으로준 비했다고 해서 감동을 받았다. 가장 집중하는 건 5 킹 앤 컨트리의 밀리터리 미니어처들이다. 2004년쯤 홍콩에서 우연히 매장을 발견하고 크리스마스 에디션을 구입하면서 본격적인 수집이 시작됐다. 1, 2차 세계 대전의 역사를 꼼꼼히 재현하는, 세계적으로 마니아의 규모가 엄청난 브랜드다. 나만 해도 더 싸게구 입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내친김에 2008년부터 한국으로 정식 수입을 하게 됐을 정도다. 주요한 역사를 충실히 옮기려는 킹 앤 컨트리의 아이템 중에는 물론 6히틀러와 관련된 제품도 있다. 이런 물건은 꺼내 보이기가 조심스러워서 괜히 샀다 싶을 때도 있다. 우리도 그렇겠지만 특히 유럽인의 경우, 나치에 대해 즉각적으로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니까.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정준화
포토그래퍼
엄삼철,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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