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영역을 향해 지구본을 빙빙 돌리던 중, 디자이너들의 시선은 태초의 아름다움을 품은 아프리카 대륙에 고정됐다.
2014년, 신비롭고 평화로운 정글의 세계를 향한 패션계의 스펙터클한 모험기를 감상하시길!

이번 시즌 단 하나의 대륙을 여행해야 한다면 단연 미지의 세계 ‘아프리카’다. 피비 파일로의 컴백과 90년 대 트렌드가 맞물리며 오랜 시즌 패션계를 평정해온 미니멀리즘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화려하고 원시적인 맥시멀리즘이 그 위용을 떨치며 초대형 트렌드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2014 S/S 런웨이를 평정한 아프리카니즘은 룩에 단순히 야성적인 동물 무늬를 넣는다거나 원초적인 소재를 이용해 밀림을 누비는 듯한 효과를 낸다거나, 도심에서 즐기는 사파리 웨어 같은 일차원적인 방식을 넘어서 테크닉적인 장식과 쿠튀르 기법이 극에 달하며 특유의 활기찬 에너지를 담은 원색적인 조류를 형성하고 있다. 인공적 요소가 첨가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 순수한 대자연을 간직한 아프리카라는 광활한 미지의 대륙이 품은 다양한 문화와 정체성을 느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풍부한 영감을 제공해온 아프리칸 스타일이 패션사에 처음 기록된 것은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크리스찬 디올은 ‘정글’이라는 레오퍼드 프린트의 데이 드레스와 ‘아프리크’라는 이름을 붙인 이브닝 시폰 스커트를 통해 아프리칸 무드를 패션 세계에 도입했으며, 일러스트레이터 르네 그로우(Rene Gruau)는 레오퍼드 스카프를 감고 있는 여성에게서 영감을 얻어 디올의 향수 ‘미스 디올’의 광고를 통해 표범의 발 위에 여성의 곱고 우아한 손을 살포시 올려놓은 이미지를 그려 넣기도 했다. 이후 1967년에는 이브 생 로랑이 아프리카에서 영향을 받은 ‘밤바라(Bambara)’ 컬렉션을 발표했으며, 나무와 조개, 라피아 등의 소재로 만든 원초적인 주얼리가 장식된 강렬한 색감의 미니 드레스 시리즈를 선보였다. 같은 시기에 발렌티노 가라바니 역시 대초원에서 영감을 얻은 컬렉션을 무대에 올렸는데 기린과 얼룩말 패턴이 담긴 코트와 튜닉은 큰 인기를 얻었다. 그렇다면 2014년의 디자이너들이 탐험한 아프리카니즘은어떤 모습일까?

먼저 동시대 미니멀리즘의 선구자인 피비 파일로는 컨템퍼러리 아트와 트라이벌 무드를 폭발시키며 이번 시즌 맥시멀리즘으로 급작스럽게 방향을 선회했는데, 아프리카 문화를 사랑한 미술가 앙리 마티스나 파블로 피카소의 거친 붓터치가 연상되는(때론 런던 쇼디치 지역을 뒤덮은 그라피티처럼 보이기도!) 토속적인 패턴과 강렬한 색감, 프린지 장식을 이용해 모던하고 세련된 룩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아프리카의 원색적인 즐거움은 피비 파일로가 구축한 예술의 영역과 만나 동시대 여성들을 단박에 홀릴 매력적인 의상으로 승화됐다. 또 알렉산더 매퀸의 사라 버튼은 울창한 밀림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아프리카 부족의 화려한 색감과 장식성에 주목했고, 지오메트릭 패턴과 타조 깃털, 비즈 등의 요소와 스트리트 문화를 조합해 쿠튀리에들도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정교하고 극적인 의상들로 휘감은 매퀸 원시 전사들을 창조해냈다. 그런가 하면 아프리카 소년들의 자유로운 믹스 매치 방식에 매료되어 지방시 남성복 컬렉션에서 아프리카 부족과 믹서, 앰프 등의 음향기기를 묘하게 결합시킨 리카르도 티시는 아프리카에 대한 영감을 여성복에도 그대로 가져왔는데, 무대 가운데 자욱한 연기와 함께 재현된 자동차 추돌 현장은 아프리카와 일본, 인도 등 다양한 문화권이 충돌한 이번 시즌 테마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마사이족의 전통 의상에서 가져온 듯한 원시적인 패턴과 둘둘 둘러서 입는 인도의 사리, 일본의 기모노에서 차용한 실루엣과 함께 어우러진 마담 그레의 우아한 입체 재단, 얼굴을 뒤덮은 반짝이는 수천 개의 스와로브스키 마스크는 티시의 파격적이고 음울하며 공격적인 성향과 어우러지며 더욱 빛을 발했다. 그렇다면 무대에 대지 위의 풍요로운 컬러들을 대방출시킨 프라다는 어땠을까? 오색 깃털 장식 헤어밴드를 두른 프라다 걸들은 멕시코와 아프리카의 활기찬 색감이 채색된 옷에 큼지막한 유색 크리스털 주얼과 스팽글, 비즈를 주렁주렁 달고 북아메리카 인디언 추장의 딸, 포카혼타스처럼 경쾌하고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발렌티노와 드리스 반 노튼 역시 아프리카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퓨전 스타일을 표방했는데, 로마 오페라 하우스의 복식에서 시작한 발렌티노는 나바호 패턴처럼 원시 부족의 전통 의상에서 엿볼 수 있는 에스닉한 패턴과 태슬 장식 등을 이용해 고전적이고 성스러운 여인을 탄생시켰다. 한편 원시적이고 대담한 아프리카 문화를 고스란히 흡수한 야생 그 자체의 컬렉션도 눈에 띄는데, 디스퀘어드2와 몽클레르 감므 루즈의 야성적인 동물 프린트가 그 예다. 특히 몽클레르 감므 루즈의 지암바티스타 발리는 얼룩말과 기린, 표범과 악어 등 정글에 서식하는 온갖 동물과 파충류의 패턴을 옷에 담았고, 타조털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깃털 장식을 통해 드라마틱한 실루엣을 연출했다. 래스터페리언(에티오피아의 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를 숭상하는 자메이카 종교 신자로 이들은 흑인들이 언젠가는 아프리카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고 독특한 복장과 행동 양식을 따른다) 패션을 차용한 준야 와타나베의 모델들이 레게 머리에 커다랗게 부풀린 깃털 장식을 얹고 나올 때는 아프리카의 풍경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시작될 때 나올 법한 피리와 북소리가 뒤섞인 웅장하고 이색적인 음악이 들려오는 듯했다. 그뿐인가! 늘 자신들의 고향인 캘리포니아를 향해 연서를 보내는 로다테의 뮬레비 자매는 스트리트 펑크에 빠진 2014년 버전의 원시인을 재치 있게 그려냈고, 수풀이 우거진 정글의 싱그러운 식물과 에스닉한 프린트에 대한 찬사를 보낸 에르메스 룩의 향연을 보고 있노라니 다부진 근육을 자랑하는 용맹스러운 타잔이 나타나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이처럼 이번 시즌 런웨이에는 넓디넓은 초원을 자유로이 내달리는 야생동물,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거대한 폭포와 울창한 밀림처럼 그 자체로 경이로운 아프리카 정글의 풍경이 광활하게 펼쳐져 미지의 세계인 비밀스러운 동물의 왕국에 초대받은 듯한 느낌이 든다. 흰색도 밝고 검은색도 밝은 아프리카의 활기찬 풍광은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에 평안함과 여유로움을 더해줄 것이다. 올봄, 검은 대륙의 원초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신비롭고 긍정적인 아프리카 문화가 끌어당기는 강력한 마력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