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는 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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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한한 배우나 가수에게는 어김없이 ‘두 유 라이크 김치?’를 외치고 타임스퀘어 전광판과 <뉴욕타임스> 지면에는 비빕밥과 불고기 광고를 띄운다. 한식을 세계에 알리는 일은 어쩌다가 전 국민적인 사명이 된 걸까? 그리고 한국 음식과 한국 음식 마케팅을 몇 걸음 밖에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살피면 과연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다른 곳에서 왔지만 이곳의 먹거리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세 명에게 솔직하고, 때로는 신랄하기까지 한 의견을 청했다.

어떤 사람들이 말했나?
1. 대런 모리시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총지배인.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이며 한국 체류 기간은 햇수로 3년이다.
2. 대니얼 튜더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을 거쳐 현재는 펍 ‘더 부스’의 공동 대표를 지내고 있다. 영국 출신이고 한국에서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그리고 2010년부터 현재까지 이렇게 총 7년을 보냈다.
3. 달시 파켓
영화평론가이며 들꽃영화상 조직위원장이다. 미국 출신이며 한국에서 17년째 생활 중이다.

지금껏 맛본 중 가장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던 한식 메뉴는 어떤 것인가?
대런 모리시 : 모든 음식에는 조리한 셰프의 사상과 철학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요리를 접하면 적응하기가 비교적 수월해진다. 하지만 살아 있는, 혹은 익히기 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산낙지, 꼴뚜기, 주꾸미는 여전히 적응하기가 어렵다. 아무래도 날것으로 먹는 재료를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할 듯하다.
대니얼 튜더 : 못 먹는 음식이 많지는 않은데 일단 홍어가 먼저 떠오른다. 산낙지와 번데기도 그 목록에 포함시켜야 할 거다. 시도는 해봤지만 즐겼다고는 도저히 말 못하겠다.
달시 파켓 : 한국 음식의 매운맛에는 쉽게 적응을 했다. 하지만 워낙 뜨거운 요리가 많아서 그 때문에 애를 먹었다. 개인적인 입맛 때문이겠지만 선지 해장국은 영 꺼리게 된다.

한식에 대한 외국인의 실제 인식은 어느 정도라고 보나? 예전과 비교하면 해외에도 한국의 음식 문화가 많이 알려졌다고 생각하나?
대런 모리시 : 지난 몇 년간의 노력 덕분에 인식이 꾸준히 높아 졌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다른 나라의 요리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갈 길이 먼 듯하다.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한식은 거창하고 압도적인 느낌이다. 가짓수도 많고 반찬까지 엄청나게 다양하니까. 전통 한식상을 차리는 데 들여야 하는 시간과 노력도 놀랍다. 한국 문화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함께 이루어진다면 음식에 대한 거리감이 서서히 줄어들 거라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인의 반주 습관이 무척 흥미롭다. ‘치맥’을 무척 좋아하는데 지금껏 많은 나라에서 지내봤지만 맥주와 이렇게 잘 어울리는 닭 튀김은 여기서만 맛볼 수 있었다.
대니얼 튜더 : ‘외국인’이란 누굴 말하는 건가? 한국에서 무척 자주 듣는 단어다. 솔직히 지나치다고 느껴질 정도다. 무슨 뜻이냐 하면, 해외 인구의 99%가 한국 입장에서는 ‘외국’이라는거다. 만약 ‘서양인(Westerner)’을 뜻한 거라면 그 안에도 굉장히 다양한 분류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미국인은 영국인보다 한국 음식에 대해 훨씬 잘 알고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이민자들이 있었던 특징 때문이다. 나의 나라, 즉 영국의 경우를 살피자면 아마도 런던의 세련된 사람들은 비빔밥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느 지역의 평범한 주부는 들어본 적조차 없을 수도 있다. 물론 전반적으로 보면 한식에 대한 인식은 어느 곳에서나 높아지는 추세다.
달시 파켓 : 1997년부터 줄곧 한국에서 지냈기 때문에 답하기가 어렵다. 예전보다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은 든다. 하지만 코즈모폴리턴적인 대도시에만 한정된 이야기다.

본인 입맛에는 잘 맞던데 한식 홍보하는 사람들이 통 소개하질 않는다고 생각한 한식 메뉴가 있나? 고국의 친구에게 직접 한식을 대접한다면 어떤 메뉴를 고르겠나?
대런 모리시 : 맛있게 먹은 음식이 상당히 많지만 늘 이름을 기억하는 게 어렵다. 식당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다르다 보니 이게 전에 먹어봤던 것과 같은 메뉴인지 헷갈리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메모를 해가며 외워야 할까 보다.
대니얼 튜더 : 많다. 닭볶음탕, 유황오리, 보리밥, 고갈비, 부대찌개, 감자탕… 이 모든 음식이 다 환상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외국인’이 이걸 좋아할 거라고 지레 짐작하진 말아 달라.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입맛의 문제니까. 내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 식의 일반화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나는 일반적으로 고기가 많고, 매콤하고, 국물이 있고, 푸짐한 음식을 좋아한다. 닭볶음탕, 감자탕, 부대찌개 등을 언급한 건 그래서다. 보리밥은 먹고 나면 건강해진 기분이 들어서 좋다. 유황오리야 뭐, 그냥 맛있으니까. 그리고 고갈비는… 포장마자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달시 파켓 : 콩국수와 보쌈이 최고지만 김치와 잘 어울리는 다른 음식들도 좋아한다. 김치에 곁들일 만한 음식의 조합을 알리는 게 하나의 한식 홍보 방법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유럽 혹은 미국의 파인 다이닝 문화에서 일식은 이미 오래전에 확실한 입지를 구축했다. 그렇다면 한식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대런 모리시 : 쉽게 답하긴 어려운 문제다. 일식이 대중화된 데는 일본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당시의 국제 경제 등 여러 외부적 요인이 작용했다고 본다. 아무튼 중요한 건 접근성과 제공 방식이다. 그 요리를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충분한 설명을 곁들이는 게 중요하다.
대니얼 튜더 :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그런데 한국인들 스스로가 한식을 그다지 존중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이곳에서 비싼 요리는 거의 항상 외국의 메뉴다. 한국에 있는 한식당들이 프레젠테이션이나 서비스를 높이지 않는다면 해외에서도 별 성과가 없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굳이 미국과 유럽의 파인 다이닝에 집착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서양인에게 인상적인 것, 혹은 일본보다 나은 걸 보여주려고 애쓰는 한국인이 그렇게나 많다는 건 슬픈 일이다. 그런 경쟁심은 한국에 별 도움이 못 된다. 한식은 이미 훌륭하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 즐기자.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
달시 파켓 : 꽤 높다고 본다. 일단 익숙해지고 나면 한식은 상당히 중독적이니까.

얼마 전 <뉴욕타임스>에는 추신수 선수가 등장한 불고기 홍보 광고가 실렸다. 하지만 현지는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그에 대한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불고기, 비빔밥, 떡볶이 등을 당장이라도 입안에 떠 넣어주려고 하는 듯한 한식 광고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실제로 그 때문에 해당 음식을 맛보고 싶었던 적이 있나?
대런 모리시 : 모든 광고는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그걸 보게 될 사람의 입장에서 기획되어야 한다. 문제가 있는 기획은 효과는 고사하고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다. 언급한 내용에 대해 내가 읽거나 들은 몇몇 반응을 근거로 이야기하자면, 이번 광고가 그런 경우인 듯하다. 식문화를 알리고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그 지역 소비자들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필수적이다. 그런데 소셜미디어에서 그토록 많은 반응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완전한 실패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니얼 튜더 : 나는 여기에 살면서 이미 그 음식들에 익숙해진 상태다. 그 광고가 나 같은 사람을 위해 기획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 와본 적이 없다고 한들, 그 이미지에 끌렸을 것 같지는 않다. 디자인도 별로인 데다 타깃의 관점을 충분히 고려하고 쓴 문구들도 아니다. 오히려 역효과를 낳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게다가 그런 광고들은 늘 <뉴욕타임스>에만 실리는 데 알다시피 난 미국인도, 뉴욕 출신도 아니다. 그 프로젝트를 통해 긍정적인 결과를 얻은 건 광고비를 입금받은 <뉴욕타임스> 주주들뿐이지 않을까 싶다.
달시 파켓 : 대부분의 경우, 난 광고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화제가 된 김치 블러디메리나 한식세계화사업비 2억원을 투자해 레시피를 개발했다는 블루베리전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이러한 퓨전 한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한식을 알리기 위해서는 외국인의 입맛에 맞도록 어느 정도 레시피를 개량할 필요가 있다고 보나?
대런 모리시 : 한식 프로모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의견이 있다. 일단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음식과 함께 알리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새롭고 흥미로운 것이 요구되는 시대라면 퓨전도 당연히 시도해야 할 전략이라고 본다. 물론 주의해야 할 점은 있다. 퓨전이 제아무리 효과적인 방법론이라 한들 그 때문에 한식의 고유한 특징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
대니얼 튜더 : 퓨전은 흥미롭다. 그리고 김치 블러디메리는 무척 창의적인 발상 같다. 하지만 한식을 홍보할 때는 난 차라리 전통적인 메뉴를 보여주겠다.
달시 파켓 : 싫다! 윽!

홍보 담당자들은 한식이 ‘건강한 음식’임을 특히 강조한다. 이 이야기에 동의하나? 사실 한국 음식 중에는 간이 세고 짠 국물 요리가 많다. 일반적인 건강식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특징이다.
대런 모리시 : 먹는 것마다 죄다 몸에 좋은 나라가 세상에 존재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짠 국물 요리가 많다는 건 한식의 특징 중 하나다. 그래도 한국인들은 재료의 산지나 조리법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라 큰 문제는 없는 듯하다. 음식 자체의 성격이 워낙 다르다 보니 서양식과 한식을 몇몇 기준 앞에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건 어려울 듯하다.
대니얼 튜더 : 좋은 질문이다. 한식이 기본적으로 건강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무얼 먹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이를테면 같은 메뉴라 해도 집에서 먹는 것과 식당에서 먹는 것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식당에서 닭볶음탕을 먹으면서 정말 맛있지만 심하게 짜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누군가의 집에서 그 음식을 맛보면 훨씬 건강한 맛이 난다. 사실 어디에나 들어가는 고추장과 고춧가루만 해도 위에는 별로 좋지 않다. 한국에 위암이 그토록 흔한 것도 단순한 우연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보리밥에 대해 말하라면 난 이보다 더 건강한 음식은 떠올릴 수가 없다. 즉, 건강한 한국 음식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달시 파켓 : 무척 짠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식은 무척 건강한 느낌을 준다. 넓은 의미의 건강식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식 마케팅의 효과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겠나? 만약 자국에서 집행되는 한식 마케팅을 직접 지휘한다면 어떤 전략을 시도하고 싶은가?
대런 모리시 :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와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와 협약을 맺고 지난 3년간 한식과 관련된 용어를 알리기 위해 힘써왔으며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에 확산되고 있는 한류가 한식에 대한 관심을 독려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대니얼 튜더 : 한국 정부가 주도하는 음식 마케팅은 전혀 효과적이지 못했다. 그리고 서경덕 교수 등이 추진했던 <뉴욕타임스> 광고는, 효과적이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안 하느니만 못한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나라면 어떤 전략을 시도하겠느냐고? 뛰어난 한국 요리사들이 주요 도시에 식당을 내도록 은밀하게 지원하겠다. 그리고 역시 조심스럽게 미디어 노출 계획을 세워서(예를 들면 TV쇼 PPL이라든가) 유명인들이 한식을 먹는 모습이 전파를 타도록 하겠다. 뭔가 의도적인 노력이 진행 중이라는 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애쓰는 듯 보이는 건 전혀 쿨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달시 파켓 : 한식 마케팅에 돈을 쓰는 것 자체에 비판적인 입장이다. 차라리 사람들이 실제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이벤트를 기획하는 데 집중하겠다.

한식, 혹은 한식 마케팅에 대해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대런 모리시 : 한식 산업이 새로운 변화에만 집착하는 것도 썩 바람직한 일은 아닌 듯하다. 그보다는 한국 음식에 관한 전반적인 지식과 문화적 특색을 알리는 일이 먼저라고 본다. 이런 환경이 조성된다면 해외에서도 전통 그대로의 한식을 대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다.
대니얼 튜더 : ‘이 음식은 외국인에게는 너무 매울 거야’ 같은 염려는 그만둬라.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약간 언짢아진다. 고국에서 사람들은 수시로 인도와 태국 음식을 먹는다. 매운맛을 별 문제 없이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또한 ‘외국인들’이라는 단어를 수시로 듣는 데 지쳐가고 있다. 그때마다 상당한 소외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예를 들어) 독일에 무언가를 팔려고 들 경우, 독일인은 외국인이 아니다. 내가 외국인이 되어야 한다.
달시 파켓 : 가장 효과적인 건 한국인들이 그들의 외국 친구들을 한식 레스토랑에 데려가는 거다. 정부가 돕기 위해 나설 필요조차 없다. 외국인들을 한국 음식에 중독시키는 데 이보다 효과적인 방법도 드물다.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정준화
포토그래퍼
김기현
기타
COOPERATION / 정소영의 식기장 02-541-6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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