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메이어는 세상의 유행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포크와 블루스의 담백하고 진한 소리 속으로 점점 더 깊게 걸어 들어가는 중이다. 공연을 위해 처음 한국을 방문한 로커는 대세를 자꾸만 거꾸로 거스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성향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존경해 마지않는 뮤지션과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 스튜디오를 나선 뒤 집에 돌아와 보내는 사적인 시간에 대해서도 편안하게 털어놓았다.

어쩌면 존 메이어는 나쁜 남자일지도 모른다. 제니퍼 애니스턴, 테일러 스위프트, 케이티 페리 같은 미녀 스타들을 섭렵한 애정 편력은 결코 심상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는 썩 좋은 뮤지션이다. 지난 2001년에 어쿠스틱 기타를 퉁기며 데뷔한 이 아티스트는 10여 년에 걸친 커리어 동안 꾸준히 넓어지고 깊어졌다. 2천만 장에 달하는 판매고와 7개의 그래미 트로피는 그간의 음악적 성취에 세상이 보낸 섭섭지 않은 격려였다. <롤링 스톤>지는 일찌감치 메이어를 ‘새로운 기타의 신’ 중 한 명으로 지목한 바 있다. 기타 브랜드인 펜더와 마틴은 그의 이름을 딴 시그너처 모델을 생산 중이다. 이에 더해 최근 알게 된 사실이 또 있다. 이 잘생긴 로커는 무척 수다스러운 인터뷰이이기도 하다. 질문 하나를 던지면 태엽이 풀릴 때까지 움직이는 장난감처럼 5~6분에 걸쳐 혼자 말을 쏟아냈다. 그래서 많은 것을 물어보지 못했는데도 결코 적지 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존 메이어의 첫 번째 한국 공연 전날, 그가 머무르던 호텔 스위트룸을 찾았다. 벨을 누르자 장신의 뮤지션이 직접 문을 열고 방문객들을 맞는다. 험상궂은 매니저라든가 곁을 지키며 물병을 따주는 어시스턴트 같은 이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정-말 흥분돼요.” 낯선 도시에서의 첫 무대를 앞둔 심정을 묻자 그가 믿어달라는 듯 ‘리-얼리’를 강조해가며 답했다. “공항부터 호텔 로비, 그리고 이 아름다운 객실까지 이동하는 동안 벌써 서울이 좋아졌어요. 잘 모르는 상태에서도 그냥 느껴지는 감정이 있잖아요.” 잠시 쉼표가 찍히는가 싶더니 이내 다음 문장이 빠르게 이어진다. “얼마나 많은 티켓이 팔렸는지 들었을 때 무척 놀랐어요. 한국에 더 일찍 왔어야 했다고 생각했죠.”

만약 존 메이어가 몇 년쯤 더 일찍 내한했다면 세트리스트는 지금과 사뭇 달랐을 수도 있다. 최근 앨범들, 그러니까 2012년과 2013년에 내놓은 <Born and Raised>와 <Paradise Valley>에서 그는 블루스와 컨트리, 포크 같은 미국적인 장르의 주요한 원류들을 탐색했다. 기존 작업과도 연속성을 지니는 행보이긴 하나 확실히 변화의 경사가 급해진 느낌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변화는 어쩔 수 없이 두려운 일이거든요. 아니, 솔직하게 털어놓을게요. 음악을 많이 만들다보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스타일을 아우르게 돼요. 게다가 전 한정된 취향 안에서만 움직이는 사람도 아니고요. ‘이 다음에는 어떤 앨범을 만들까?’라고 계획하면서 작업한 적은 없어요. 아티스트가 어떤 음악을 내놓았다면 그건 그 당시 그가 만들 수 있었던 유일한 음악일 거예요. 싱어송라이터가 아닐 경우에는 가만히 앉아서 완벽한 곡이 오기를 기다리면 되겠죠. 하지만 직접 곡을 쓰는 아티스트에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어요.”

작업실에 있는 그 순간 자신을 흥분시키는 무언가를 파고들 수밖에 없으며, 어떤 면에서 그건 자신의 의지나 계산 밖에 있는 일이라고 존 메이어는 말했다. 그리고 지금은 ‘단순함’에 매료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포크에 더 집중하게 된 건 그런 이유예요. 심플하지만 그 안에 다양한 멜로디를 품고 있는 장르거든요.” 그가 특히 감동하는 건 언뜻 보기에는 단순하더라도 파고들수록 겹겹의 차원이 드러나는 예술이다. “최근의 작업을 통해 얻은 게 많아요. 이 음악들은 제 예전 곡들의 또 다른 변주 같아요. ‘Your Body is a Wonderland’와 ‘Waiting on the World to Change’와 ‘Dear Marie’ 등을 한데 모아놓으면 흥미로운 흐름이 읽힐 거예요. 다음 앨범요? 저야 어떤 게 나올지 전혀 모르죠. 또다시 그 무렵에 제가 가장 연주하고 싶은 곡을 만들 테니까요. 그러면 1백만 장이 팔리거나, 한 장도 팔리지 않거나, 혹은 그 사이거나 그렇겠죠.”

뮤지션의 말에 따르면 새 앨범에 대한 미국 대중의 반응은 시큰둥한 편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다른 나라, 예를 들어 브라질 팬들은 이 음악에 열렬하게 반응했다. “재미있는 결과라고 생각해요. 이건 더없이 미국적인 장르니까요. 사실 미국은 요즘 유럽과 연애 중이죠. 하지만 전 오래된 미국 음악에 빠져 지내요.” 여기까지 말을 마친 존 메이어가 갑자기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내 마음은 부서진 항구를 지나 밤의 파도 너머로 항해를 떠나네(Sailing Heart-Ships Thru Broken Harbors Out on the Waves in the Night)….” 닐 영의 ‘Tell Me Why’였다. 그는 이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감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After the Gold Rush> 앨범이 지금 발매된다면 과연 몇 장이나 팔릴까요? 전 그 답을 모르고 신경도 안 써요. 얼마가 팔리든, 혹은 팔리지 않든 그의 음악이 정말 훌륭하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으니까요.’”

1. 존 메이어는 디타와 네이티브 손스의 디렉터였던 토미 오가라(뒤)와 함께, 잊혀진 프랑스 아이웨어 브랜드인 맥스 피티온을 부활시켰다. “근사한 선글라스는 일종의 동반자 같아요. 함께 많은 곳을 여행하다 보니 특별한 애착을 느끼게 되죠. 물론 가끔은 그러다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뭐, 모든 친구가 영원한 건 아니잖아요?”2. 맥스 피티온의 대표 모델인 폴리티션. 3. 화가 클리포드 베일리가 작업한 맥스 피티온의 광고 비주얼.

1. 존 메이어는 디타와 네이티브 손스의 디렉터였던 토미 오가라(뒤)와 함께, 잊혀진 프랑스 아이웨어 브랜드인 맥스 피티온을 부활시켰다. “근사한 선글라스는 일종의 동반자 같아요. 함께 많은 곳을 여행하다 보니 특별한 애착을 느끼게 되죠. 물론 가끔은 그러다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뭐, 모든 친구가 영원한 건 아니잖아요?”
2. 맥스 피티온의 대표 모델인 폴리티션.
3. 화가 클리포드 베일리가 작업한 맥스 피티온의 광고 비주얼.

존 메이어를 열중시키는 게 닐 영의 음악뿐만은 아니다. 최근 그는 1920년대에 설립돼 1950~60년대쯤 전성기를 누린 뒤 1970년대 말 생산을 중단한 프랑스 아이웨어 브랜드 맥스 피티온(Max Pittion)을 부활시키며 사업가로서도 새로운 걸음을 뗐다. 물론 경험이 풍부한 조력자 역시 영입을 한 상태다. 존 메이어의 비즈니스 파트너는 디타, 네이티브 손스 등을 이끌었던 토미 오가라다. “우리는 취향이 무척 비슷해요. 심지어 갖고 있는 자동차도 같은모델이거든요.” 인터뷰에 동석한 그가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는 파피루스에 맥스 피티온의 제품이 입점한 상태다. 오가라는 “새롭고 흥미로운 시도에 적극적일 뿐만 아니라, 무턱대고 다양한 종류를 섭렵하기보다는 제대로 선별된 컬렉션을 갖추고 있는 스토어이기 때문”에 이 안경 편집숍과 협력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선글라스와 록스타의 관계야 워낙 각별하긴 하지만 사업은 또 다른 문제다. 메이어도 애초에는 지금처럼 일을 크게 벌일 생각이 아니었다고 한다. “인터넷 서핑 중 우연히 맥스 피티온의 빈티지 안경테를 발견했는데 디자인이 정말 근사했어요. 그런데 막상 주문을 해서 받아봤더니 제 얼굴에는 너무 작더라고요.” 보통의 경우라면 이쯤에서 포기했을 텐데 그때만큼은 괜한 오기가 생겼던 모양이다. 동일한 디자인을 큰 사이즈로 키우는 작업을 의뢰했지만 첫 번째 프로토타입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조금만 더 손을 보면 될 것 같아서 그만두고 싶지 않더군요. 어떻게든 저한테 딱 맞는 물건을 완성하고 싶었어요.” 토미 오가라에게 손을 내민 것도 이 무렵이었다. “빈티지 맥스 피티온을 보여줬더니 무척 좋은 제품이라며 토미가 흥미를 보였어요. 현재 이 브랜드와 관계를 맺고 있는 회사가 있을지 검색을 해봤죠.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뭔가를 검색창에 입력했는데 어떤 정보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어요? 그 순간이 계기가 됐어요. 오래전 사라진 브랜드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재론칭을 결심했습니다.” 결국 존 메이어가 이베이에서 발굴한 폴리티션(Politician) 모델은 토미 오가라의 손을 거쳐 근사하게 업데이트됐다. “시간을 초월한 디자인이라고 확신해요. 레이밴 웨이페어러나 양키스 야구모자, 롤렉스 서브마리너처럼요.”

토미 오가라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의 존 메이어를 상당히 높게 평가한다. “작은 디테일도 놓치질 않으니까요. 무엇보다 자기가 원하는 걸 정확하게 알고 있고요.” 메이어는 이번 도전이 여러모로 본인에게 잘 맞는 프로젝트였다고 했다. “달랑 안경테 하나와 브랜드 이름이 주어진 전부였잖아요. 아무 내용이나 쓰라고 하는 대신, 특정 단어에 대해 자유롭게 쓰라고 요구하는 숙제 같았어요. 충분한 자유가 주어지는 동시에, 생각을 집중시키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구체적인 출발점도 있었죠.” 뮤지션인 그는 새로운 아이웨어 라인을 준비하는 과정을 앨범 제작에 비유하기도 했다. “첫 트랙이 발라드면 두 번째는 헤비한 기타 사운드로… 이렇게 곡 순서를 짜듯 폴리티션, 셸비, 뉴웰 등등의 모델을 하나씩 더해가는 겁니다.” 아이웨어 사업은 그에게 음악 작업과 전혀 다른 성격의 일이 아니다. “제 브랜드 제품이라서가 아니라 소비자의 눈으로 봐도 맥스 피티온의 폴리티션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뮤지션일 때도 전 제가 듣고 싶은 음악만 만듭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받아들이든 간에 정말 특별한 무언가를 완성할 수 있거든요.” 존 메이어와 토미 오가라는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시도해보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막대사탕처럼 밝은 파랑 프레임이 대담하게 느껴지는 신제품도 그 ‘시도’ 중 하나인 듯했다. “토미는 전혀 망설이지 않고 제게 이런 컬러를 제안해요. 저도 ‘아니 그건 좀… 룰이 아니지 않나’ 이런 식으로 머뭇거리진 않고요. 전 업계의 룰이 뭔지 모르거든요. 진정한 창의성은 룰을 모를 때 튀어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묵묵히 듣고 있던 토미 오가라가 불쑥 입을 열었다. “닐 영이 이 푸른 선글라스를 쓴 모습을 보고 싶군.” 존 메이어는 생각이 달랐다. “난 비욘세가 쓴 걸 보고 싶은데? 그냥 예뻐서 구입했다가 한참 뒤에 공급자가 나라는 걸 우연히 알게 됐으면 좋겠어.”

선글라스를 만들 때든 곡을 쓸 때든 존 메이어는 결과물 보다 창작의 과정 자체에 더 열광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하나의 음악을 가진 것도, 갖지 않은 것도 아닌 미묘한 순간에 아티스트로서 최고조의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멜로디들이 희미하게 떠오르기 시작하면 일단 앉아서 언제까지고 연주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문득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할 이야기가 선명해지고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온 힘을 다해 스스로를 다잡아야 하죠. 흥분해서 미친 놈처럼 굴지도 모르니까요. <Paradise Valley> 당시에는 곡 하나를 쓸 때마다 매번 그랬어요.” 할 말을 고르듯 잠시 닫혔던 입술이 다시 빠르게 움직인다. “어디에서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할게요. 레코딩을 할 때 전 작업 중인 음악과 사적인 시간을 보내곤 해요. 다 완성되진 않았지만 사람으로 치면 심장도 뛰고 손가락도 생긴, 그러니까 태아쯤되는 상태의 노래를 집에 들고 오는 거죠. 그 곡을 비로소 손에 쥔 첫날밤, 혼자 헤드폰으로 열두 번쯤 반복해 듣습니다. 그리고 춤을 추며 온 집 안을 돌아다녀요. 밤이 지나고 다시 고단한 작업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리란 걸 알거든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일종의 자축이에요. 스튜디오에서는 감정적 도박에 가까운 과정을 치르기 때문에 사이사이마다 이렇게라도 쌓인 걸 해소하고 나를 격려할 필요가 있어요.”

존 메이어는 디스코그래피를 통해 미국 음악의 역사를 새삼스럽게 되짚는 중이다. 또한 공교롭게도 그가 새로 시작한 사업은 사라진 안경 브랜드를 부활시키는 작업이다. 이 뮤지션에게는 동시대의 유행보다 과거의 유산에 더 강하게 매료되는 성향이 있는 걸까? “그보다는 핵심(Core)에 이끌리는 것 같아요. 요즘 세대는 디지털 음원으로 비틀스를 들으며 깨끗하고 선명한 음질에 감탄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원재료는 수공예적이고 아날로그적인 사운드 잖아요. 저는 핵심, 혹은 정수로 돌아가되 그걸 제 방식대로 다루고 싶어요.” 뿌리가 뭔지도 모른 채 가지 끝의 열매만 따먹고 싶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어찌 보면 그럴 필요가 없는 시대에 그는 굳이 험하고 먼 길을 걷는 중이다. 이튿날, 약속된 공연 시간보다도 오히려 몇 분쯤 일찍 존 메이어가 잠실 종합운동장 보조 경기장 무대 위에 올랐다.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들을 기억하고자 오른쪽 가슴에 단 노란 리본이 멀리서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세트리스트는 ‘No Such Thing’같은 초기 히트곡부터 ‘Waiting on the Day’ 등의 신곡까지를 골고루 아울렀는데, 관객들은 특히 블루스풍의 진한 기타 솔로가 터져나올 때마다 아낌없이 몰입했다. 헤드 뱅잉을 하며 남아도는 기운을 발산할 만한 파티는 아니었다. 메이어의 연주는 불을 댕긴 듯 단숨에 흥분시키기보다는 천천히 취하게 만드는 쪽에 가까웠다. 붉던 하늘이 어둡게 내려앉는 동안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기타를 뜯는 아티스트를 지켜보며 하루 전에 나눈 대화를 다시 떠올렸다. “문화를 커다란 바퀴에 비유하자면, 대중의 관심은 그 한 부분에만 멈춰 설 때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 해독제가 되어주는 건 바퀴의 정반대 쪽에 있는 무언가예요. 우리는 한 가지만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섭취하곤 하죠. 그래서 수시로 배출하고 세척할 필요가 있어요.” 그게 바로 <Born and Raised> 같은 앨범을 만든 이유일 거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지금의 대세를 따르는 일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고도 했다. “그 ‘지금’은 두 달 만에 끝날 테니까요. 오늘 내놓은 레코드가 히트한다면? 고작해야 7월까지예요. 하지만 당장이 아닌 좀 더 먼 미래를 바라보며 씨앗을 심는다면 정말 근사한 한 해 한 해를 보내게 될 거예요.” 무언가가 넘쳐날 때 이 뮤지션은 늘 정반대의 방향을 눈으로 좇는다. “그게 나예요. 항상 무리로부터 달아나려고 하죠.” 록계의 나쁜 남자는 구르는 돌처럼 흔하다. 하지만 동세대에서 존 메이어와 같은 고집을 지닌 아티스트는 결코 흔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