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기울이면, 슈즈의 대화가 들린다. 시선을 고정하면, 슈즈의 현란한 춤도 보인다. 시적 표현이 아니라 경험한 일이다. 지난 3월 말, 에르메스의 ‘슈 쇼(Shoe Show)’ 행사를 통해 그 놀라운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슈 쇼는 ‘변신(Metamorphosis)’을 주제로 제작된 에르메스의 봄/여름 슈즈 컬렉션을 댄스 퍼포먼스에 결합해 보여주기 위한 독특한 개념의 공연형 디스플레이로, 프랑스 문화 훈장을 수상한 바 있는 세계적인 현대 안무가 조엘 부비에(Joelle Bouvier)가 직접 안무를 맡아 기획에 참여한 작품이다. 이번 공연을 위해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날아온 전문 댄서들은 에르메스 슈즈의 아티스틱 디렉터, 피에르 아르디(마침 시그너처 브랜드 론칭을 위해 한국을 찾은 그가 행사장에 깜짝 등장했다)가 디자인한 갖가지 슈즈를 착용하고 25분간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펼쳤다.

슈즈만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무대는 바닥에서부터 사람의 허벅지 정도에 닿는 높이까지만 공개 되었는데, 무용수들의 표정과 상체의 움직임을 배제하면서 마치 슈즈가 의인화되어 살아 숨 쉬는 듯한 장면이 생생하게 연출되었다. 색색의 슈즈가 기차 대형을 이루어 철길 위를 달리는 모습, 슈즈의 색상이 변하거나 한 켤레가 여러 짝으로 나눠지면서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는 듯한 숨바꼭질, 여름 해변가에서 슈즈가 공놀이를 하는 활기찬 이미지 등 총 11막에 걸쳐 펼쳐진 공연은 물 흐르듯 유연하게 연결된 음악과 어우러져 찰나의 백일몽을 꾸는 듯한 환상을 남겼다. 안무가 조엘 부비에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브제를 통해 꿈과 판타지라는 생명력을 표현하여 삶에 작은 변화를 주는 공연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슈 쇼 공연장 입구의 로비에서는 ‘워크 앤 토크(Walk and Talk)’라고 이름 붙여진 또 다른 디스플레이가 관객들을 맞았다. 각각의 포디움마다 한 쌍의 슈즈가 전시되어 있고 옆에 비치된 헤드폰을 쓰면 해당 슈즈가 의인화되어 나누는 유머러스한 대화를 들을 수 있는 방식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발을 구입하기 위해 매장을 찾은 신발의 이야기, 파티에서 샴페인에 취해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하이힐의 주정을 다른 한 짝이 말리는 사연, 연예인만큼 바쁜 삶에 지쳐 휴가를 떠나고 싶어 하는 스트랩 플랫 슈즈의 푸념 등이 성우의 실감나는 연기를 통해 귀와 눈을 거쳐 생명력을 얻었다.

좋은 슈즈는 여자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준다고 했다. 살아 숨 쉬는 슈즈의 동작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일상에 지친 몸을 있는 힘껏 받쳐주는 슈즈가 안쓰럽고, 동시에 사랑스러워졌다. 이 쇼를 본다면, 당신도 유행을 좇기보다는 자신에게 딱 맞는 슈즈를 보듬으며 아껴야 할 당위성을 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