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스 반 노튼의 상상력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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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F/W 파리 패션위크 기간 중 가장 화제를 모은 행사는 단연 파리 장식미술박물관에서 열린 드리스 반 노튼의 <Inspirations> 전이었다. 30여 년 동안 쌓은 창조의 원천을 망라한 이번 전시는 이 탐미적인 디자이너의 패션사를 넓고 깊게 비춘다. 드리스 반 노튼이 더블유에게 이야기한 영감의 여정.

전시장 앞에서 포즈를 취한 드리스 반 노튼.

전시장 앞에서 포즈를 취한 드리스 반 노튼.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스타일을 보여주고 제안하는 동시에 매 시즌 진실되며 아주 영리한 쇼를 보여주는 디자이너는 매우 드물다. 드리스 반 노튼이 바로 이런 인물이다”라고 바니스 뉴욕 백화점의 CEO 마그 리가 이야기한 것처럼 그는 상업성과 예술성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매 시즌 찬사를 받아온 디자이너다. 물론 그는 매체나 평단의 비평에 일희일비하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그저 꾸준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패션 세계를 구축해온 인물. 데뷔 이래 선보인 자신의 컬렉션을 집대성한 이 전시에서는 사진, 영화, 음악, 아티스트들의 작품, 아이코닉한 인물 등 그에게 영감을 준 모든 것들이 명확한 주제 아래 전시되며 이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컬렉션 피스들과 짝을 이뤄 소개된다.

1. ‘마블(Marble)’ 카테고리에 자리한 그의 2008 F/W 컬렉션 룩들. 왼쪽에 놓인 주얼 장식의 검정 테일러드 재킷은 그가 영감 받은 엘자 스키아파렐리의 1938 S/S 컬렉션 룩이다. 2. 앤드워프의 학생 시절인 1970년대, 데이비드 보위와 장 콕토, 비스콘티에서 영감을 받은 그의 초창기 시절 의상들. 3. ‘나비’를 주제로 한 카테고리에 놓인 의상들. 나비 모양의 화려한 패턴이 인상적인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 와 나비 프린트의 드레스, 망사 가운으로 구성된 엘자 스키아파렐리의 1937 S/S 컬렉션 룩이 눈에 띈다.

1. ‘마블(Marble)’ 카테고리에 자리한 그의 2008 F/W 컬렉션 룩들. 왼쪽에 놓인 주얼 장식의 검정 테일러드 재킷은 그가 영감 받은 엘자 스키아파렐리의 1938 S/S 컬렉션 룩이다. 2. 앤드워프의 학생 시절인 1970년대, 데이비드 보위와 장 콕토, 비스콘티에서 영감을 받은 그의 초창기 시절 의상들. 3. ‘나비’를 주제로 한 카테고리에 놓인 의상들. 나비 모양의 화려한 패턴이 인상적인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 <나비>와 나비 프린트의 드레스, 망사 가운으로 구성된 엘자 스키아파렐리의 1937 S/S 컬렉션 룩이 눈에 띈다.

성공적으로 전시 오프닝을 마쳤다. 기분은 어떤가?
무엇보다도 전시가 성공적이어서 너무 기쁘다. 이 에너지를 모아 9월에 앤트워프에서 열릴 전시에 쏟아야 한다.

장식미술박물관에서 전시를 연 것 자체가 화제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전시를 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장식미술박물관에서 먼저 제의를 해왔다. 고마운 제안이었다. 하지만 곧 나에게 이런 큰 전시를 할 만큼 의상이 충분히 있는지, 스토리가 있는지를 생각하니 불안했다. 지금까지 컬렉션을 통해 보여준 아카이브를 정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번 전시를 함께 준비한 장식미술박물관의 큐레이터, 파멜라 골빈과의 작업은 어떠했나?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와 함께 작업했다. 그녀는 이 전시의 목적을 완벽하게 이해했고 잘 정리해주었다. 가장 어려웠던 것 중 하나는 세계 곳곳에 흩어진 작품들을 어떻게 한데 모으느냐였는데 그 까다로운 일을 그녀가 해냈다.

머릿속을 채운 영감과 그것들을 통해 풀어낸 디자인의 여정을 나누고 싶었다고 말한 <WWD>인터뷰를 보았다. 전시 형식 자체가 당신이 옆에서 설명을 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이해하기 쉽게 구성되다. 언젠가 열릴 당신의 전시를 염두에 두고 미리 생각해둔 것인가?
미리 생각한 건 아니다. 전시 제목처럼 작업의 영감이 되는 것들의 집결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를 통해 내가 어떻게 작업하고, 컬렉션이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보여주는 것. 그 출발점이 되어준 영감들을 분류해 전시해보았다.

장식미술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스키아파렐리, 샤넬, 발렌시아가, 디올 등 유물에 가까운 룩도 대거 선보였다. 이것들을 선별한 기준은 무엇이었나?
전시는 내 작업의 영감을 따라 30개 정도의 테마로 구성되었다. ‘나비’를 주제로 한 테마를 보면 나는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과 스키아파렐리의 망사 드레스에서 동시에 영감을 받았다. 일부러 매치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묶인 거다. 2009년 런던에서 본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 역시 큰 영감을 주었다. 그가 사용한 색들은 충격적이고 인상 깊었으니까. 이런 다채로운 소스들이 모여 한데 어우러진 것이다.

전시를 감상하는 사람들은 당신이 기획한 구성의 흐름에 따라 감상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배치했나?
연관성을 느끼길 원했다. 전시는 1970년대, 문화 혁명의 시기이자 내가 앤트워프의 학생일 때에서 시작하는데 문화적으로 풍요로웠던 그 시절에 만든 의상은 각각의 테마에 정확하게 맞춰져 있다. 예를 들면 댄디즘을 나타낸 의상들은 데이비드 보위와 장 콕토, 비스콘티에서 출발한 것이고, 자연과 카무플라주 섹션의 의상들은 플라워 아티스트 아주마 마코토에게서 영감 받은 거다. 60년대 세르주 갱스부르와 푸케의 성모 마리아, 바사렐리의 작품들이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는데 그것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테마를 이루는 식이다.

5. 금빛 런웨이가 황홀했던 2006 F/W 컬렉션. 6. 오프닝 파티가 열리던 날 밤, 인산인해를 이룬 전시장. 7. 전시장 입구에는 이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그의 메시지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8. 2006 S/S 컬렉션에 영감을 준 화려한 자수 장식의 중국 전통 의상. 9. 쇼걸, 댄서들의 의상에서 영감을 받은 2013 F/W 컬렉션의 깃털 드레스

5. 금빛 런웨이가 황홀했던 2006 F/W 컬렉션. 6. 오프닝 파티가 열리던 날 밤, 인산인해를 이룬 전시장. 7. 전시장 입구에는 이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그의 메시지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8. 2006 S/S 컬렉션에 영감을 준 화려한 자수 장식의 중국 전통 의상. 9. 쇼걸, 댄서들의 의상에서 영감을 받은 2013 F/W 컬렉션의 깃털 드레스

펑크, 프랜시스 베이컨, 골드, 보위/콕토/비스콘티, 파피시, 아이콘 클라스트(그가 만든 카테고리의 주제들이다) 등 영감을 받는 대상이나 스타일이 매우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당신의 문화적 스펙트럼을 설명할 수 있다면 어디부터 어디까지일까?
난 평범한 교육(클래식한 방식)을 받은 사람이고, 그것 또한 영감의 이유가 된다. 70년대 본격적으로 공부를 할 때는 특히 펑크가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컨템퍼러리 아트 역시 좋아한다. 하나만 파고드는 스타일은 아니다.

당신이 영감의 아이콘으로 꼽은 브론치노(Bronzino), 이브 클랭, 빅토르 바사렐리, 프랜시스 베이컨, 데미언 허스트 등은 사람들이 영감을 끌어내기 충분한 아티스트들이다. 이들의 작품을 볼 때 본능적으로 감지되는 ‘무엇’이 존재하나? 혹은 습관처럼 하게 되는 생각이 있나?
작품을 볼 때 습관적으로 컬렉션에 대입시켜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몇 달, 혹은 몇 년 후 작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를 주제로 한 섹션의 의상들은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만큼 정적이면서도 격정적인 분위기가 담겼다.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 나비와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 태엽 오렌지>에서 영감을 얻은 ‘버터플라이’ 섹션에서도 마찬가지. 당신의 컬렉션은 분명 영감과 아주 관련이 깊어 보였지만, 그대로 가져온 듯한 느낌은 없었다. 충분히 자기의 감정으로 소화했다고 해야 할까? 우리가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영감이 곧이곧대로의 재현이나 재생산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나에게 영감이란 또다른 창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감정’을 북돋아주는 것이다.

전시 속에서 만난 당신의 영감들을 보면 매력적인 여자와 남자가 나타난다. 그렇다면 2014년 현재, 드리스 반 노튼이 지향하는 여성성, 남성성은 무엇일까?
나의 작업은 장르가 나눠지는 일이 거의 없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그렇지만 나 역시 장르의 혼합, 남성성과 여성성을 혼재시켜 표현하길 즐긴다. 최근 컬렉션에 영감을 준 인물은 루루 드 라 프레상주다.

자세하고 정확하게 나뉜 전시 구조와 형태를 볼 때, 편집증적이라고 볼 수도 있을 만큼 꼼꼼하고 세심할 것 같다. 맞나? 작업하는 스타일은 어떠한가?
맞다, 난 세심하고 꼼꼼하며, 완벽주의자다. 내가 받은 엄격한 교육의 영향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점이야말로 작업에 열정을 불어넣어준 원동력이다.

사실 영감을 어디서 얻느냐는 질문에 디자이너들이 가장 많이 답하는 것은 ‘주변의 모든 사물’이다. 당신은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호기심이야말로 창조의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주변의 것들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나는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인데 여행은 나에게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하며 영감을 받을 기회를 제공한다. 또 내가 가꾸고 있는 집의 정원도 쉼터이자 동시에 영감을 제공하는 곳이 되기도 한다.

당신에게 ‘아트’란 무엇인가?
정확히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점에서 굉장히 까다로운 질문이다. 음… 패션은 예술의 한 부분으로 취급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 옷을 말하는 건 아니고, 재단사의 작품이나 발렌시아가가 만든 코트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전시를 통해 당신의 후배인 앤트워프 왕립예술대학의 예비 디자이너들이나 패션을 공부하는 학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없다. 어차피 모든 디자이너는 각각의 역사와 이야기를 써나가는 존재다. 이 전시는 나의 스토리를 정리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이 전시가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어떤 사명을 전달하는 계기가 된다면 무척 기쁠 것 같다. 파리 통신원 | 이길배

에디터
패션 에디터 / 김한슬
포토그래퍼
박우정(Park Woo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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