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유럽의 격동기도 웨스 앤더슨의 손을 거치면 정교하고 화려한 모험극이 된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남다른 개성의 감독이 선보이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시도다.

“노부인(마담 D.)으로 분장할 때 틸다 스윈턴은 립스틱을 세 번에 끊어서 바릅니다. 윗입술을 두 번에 완성하고, 나머지 한 번은 아랫입술을 가로지르며 그려요. 자신의 할머니가 그렇게 화장을 하셨다는군요.”

“애드리안 브로디는 마담 D.의 아들인 드미트리로 등장합니다. 사진에는 없지만 윌럼 대포가 그의 심복인 조플링 역할을 맡았고요. 그리고 시얼샤 로넌은 영화의 내레이터에 해당하는 제로(토니 레볼로리)의 여자친구 아가사를 연기해요. 뺨에 흉터를 지닌 채로 태어난 아가씨입니다. ”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과 장소 안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때는 익숙했지만 이제는 찾기가 어려워진, 그리고 (기억이 종종 그렇듯) 실제와 상상이 뒤섞인 그런 시공간 말이다. 알려졌다시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는 유대계 오스트리아인으로서 나치에 의해 추방되기 전까지 가장 각광받는 작가였던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그 모험담은 더없이 ‘앤더슨스러운’ 각색을 거쳤다.

이야기의 배경은 알프스에 위치한 어느 호사스럽고 오래된 호텔인데 그 국적이 다소 모호하다.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 그리고 어쩌면 헝가리이기도 할 거예요.” 감독의 설명이다. 때는 1920~30년대, 즉 제2차 세계 대전이 호텔 지배인 M.구스타브 H.(랄프 파인즈)와 로비 보이 제로 무스타파(토니 레볼로리)의 삶을 극도의 혼란 속으로 내던지기 직전의 상황이다. 이러한 불길한 조짐과 상관없이 줄거리는 마담 D.(틸다 스윈턴)의 죽음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그녀는 악랄한 자식 대신 구스타브에게 값진 유산을 남기는 호텔의 단골
고객이자 백작 부인이다.

잦은 플래시백을 통해 앤더슨은 역사와 원작, 영화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려놓는다. “전 츠바이크의 특정 작품에 기반한 작품보다는 ‘그의 세계’에서 비롯된 듯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에른스트 루비치, 프리츠 랑, 빌리 와일더 등 할리우드에서 독창적인 비전을 일궈낸 유럽 작가들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심지어 그랜드 부다페스트의 화려한 내부 역시 어느 한 시기가 아니라 “19세기와 20세기에 있었던 온갖 종류의 호텔로부터” 힌트를 빌려와 디자인했다. “일종의 잡탕인 셈이죠.” 감독의 이야기다. 글 | FAN ZH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