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개의 비즈와 원석을 표면에 덮어버린 드레스라고 묘사하면 누구나 오트 쿠튀르에 등장할 법한 대작을 상상하겠지만 이 의상들은 이번 봄 레디투웨어에 등장한 기성복들이다. ‘프레타 쿠튀르’라는 신조어까지 낳게 한 이 옷들은 살 수도 없고, 입을 수도 없는 것이 대부분. 도대체 왜 이렇게 허무한 신기루 같은 컬렉션이 늘어나는 걸까?

“아프리카, 스포티즘, 현대미술과 길거리의 소녀들, 자유로운 드레이핑과 엄격한 패턴 사이를 넘나드는 거죠. 다양한 기술이 동원됐어요. 예를 들면 강렬한 원색들이 마치 실제 붓터치를 한 듯 쓰이는 이 톱과 코트를 비롯해서, 어떤 원색은 단순히 프린트가 아니라 실크와 실크를 덧대 열처리를 하고, 다시 그 바깥 아우트라인을 따라 가늘게 버닝, 즉 태우는 세공을 해서 마치 무늬와 같은 효과를 냈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설명이냐고? 무책임하고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아, 이건 안다. 이 말을 들은 게 2013년 10월 초, 셀린 쇼가 끝나고 며칠 후 쇼룸의 리시(Re-see, 컬렉션에 올랐던 옷을 실제로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마련한 사후 설명회)에서였다는 것 말이다. 잠잠했던 패션계에 다시 단순함의 미학을 불러일으킨 셀린의 피비 파일로는 이번 시즌 방향을 대폭 선회해 온갖 수공예적 기법은 물론이고 기하학적인 주얼리까지, 어느 하나 간결한 부분이라고는 없는 액세서리로 컬렉션을 채웠다. 그나마 셀린은 나은 편이다. 같은 날 오후에 진행된 지방시 리시 현장에서는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작품들이 줄줄이 걸려 있는 장관이 연출되었다. 고급 승용차들이 켜켜이 쌓여 희뿌연 연기를 내고 있는 무대 장치가 압권이었던 런웨이 무대에서는 색색의 크리스털 마스크(처음엔 가면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메이크업 아티스트 팻 맥그라스의 팀이 모델 1인당 세 명 이상이 달라붙어 10시간 가까이 크리스털을 얼굴에 배치하고 붙여 완성한 ‘메이크업’이다)가 워낙 시각적으로 눈을 공격하는 바람에 의상의 세부적인 부분까지는 잡아내지 못했는데, 밝은 낮에 가까이서 본 옷의 디테일은 실로 대단했다. 특히 아프리카 마사이족 복식에서 영감을 받은 드레스는 오트 쿠튀르의 플리츠 기법이 사용됐는데, 옷 전체가 색색의 비즈와 시퀸으로 덮인 가운데 주름 사이사이에 또 다른 색의 시퀸을 세로로 꿰어 넣어 마치 가느다란 뱀 수천 마리가 얽혀 있는 듯한 입체적인 효과를 냈다. 엄청난 재료가 들어간 만큼, 무게 또한 상당했다. 리카르도 티시는 “아프리카와 일본 문화 사이의 충돌에서 받은 영감에 최고급 오트 쿠튀르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밝혔다.

매년 봄과 가을에 선보이는 런웨이 컬렉션이 점점 더 노동 집약적이고 실험적이며, 고급 지향적에 소수를 위한 한정적이고 탐미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두어 시즌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이 경향은 2014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절정을 맞았다. 이른바 ‘프레타 쿠튀르(레디투웨어를 뜻하는 프레타 포르테와 고급 맞춤복을 의미하는 오트 쿠튀르의 합성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리조트를 포함한 프리 컬렉션 시장이 급성장하고 실제 고객들이 프리 컬렉션 위주로 구매하게 되면서, 보여주어야 하는 ‘쇼적’ 의미가 강한 레디투웨어는 점점 더 장식적이고 럭셔리한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 이번 봄만 해도 패션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하는 브랜드들은 거의 이런 방식의 런웨이를 표방했다. 주얼 장식을 앞세운 아티스틱한 초상화가 인상적인 프라다, 정교하게 만든 샤넬의 트위드 시리즈, 각종 엠브로이더리로 뒤덮은 빅토리아 걸들을 내세운 마크 제이콥스와 화려한 쇼걸의 위엄을 보여준 루이 비통, 메탈릭한 반짝임으로 빛을 소환한 랑방, 장엄한 피카소식 여전사들을 픽셀화된 컬러 블록을 통해 보여준 알렉산더 매퀸까지, 그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전문가들은 패션의 창조성보다는 장사의 논리에 초점을 맞춘 프리 컬렉션의 급성장이 레디투웨어 런웨이에 변화를 가져온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한다. 한편 창조의 선두에 선 디자이너들은 또 다른 이유를 들기도 했다. 바로 현대 패션의 ‘열쇠’라고 일컬어지는 소재의 발전에 기인한다는 것. 샤넬의 칼 라거펠트는 이번에 선보인 물감을 흩뿌린 듯한 무늬의 프린트를 예로 들며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옷감은 아예 쓸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150가지 이상의 색으로 프린트를 구현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12색 이상을 프린트에 넣는 기술 자체가 없었다. 보자르 박물관 소장품에서 쇼의 실마리를 풀어낸 드리스 반 노튼은 특히 주요 룩에 19세기에 생산된 자카드를 거의 그대로 재현한 소재로 장식성이 돋보이는 스포티즘 컬렉션을 완성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1800년대의 기계로 만들었던 옷감의 특징을 현대화된 요즘 기계들로는 도저히 따라잡지 못한다. 그 점이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소재뿐만이 아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실루엣, 커팅과 장식, 독특한 패턴을 통해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혁신적인 무언가를 뽑아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런 시도는 실제 브랜드의 매장에 가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쉽게 입을 수 있는 캐주얼한 옷을 만들어내는 것과는 전혀 별개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캘빈 클라인의 프랜시스코 코스타는 이번 시즌 옛 영화 포스터 몇 개를 겹쳐 프린트로 만드는 예술적인 시도를 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캘빈 클라인에서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복잡한 하이패션적인’ 방법이다. 코스타는 “요즘 하이패션이라는 건 완전히 달라졌다. 진짜 세련되고 절제된 정통 캘빈 클라인식의 미니멀리즘을 모사한다면, 최근 패션계에서는 절대 먹히지 않을 것이다. 요즘엔 너무나 많은 옷이 있으니까”라며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의미한’ 선에서 유지하는 노력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토로했다. 뉴욕 컬렉션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프로엔자 스쿨러의 잭 매컬로와 라자로 헤르난데스 듀오 역시 런웨이 쇼를 의도적으로 콘셉추얼한 방향으로 몰고 가려는 대표적인 디자이너다. “우리는 지금까지 전혀 존재하지 않던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는데, 런웨이 쇼는 그 목표를 실행하는 가장 훌륭한 플랫폼이다. 그대신 프리폴이나 리조트 컬렉션은 더 쉽게 만들고 더 살 만한 가격대로 책정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런웨이 룩을 팔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했다. 즉, 비슷비슷한 것을 오래 판매함으로써 얻는 이익도 있지만 창조적인 런웨이 룩을 제대로 만들면 이것이 브랜드 가치를 높여 결국 더 강력하고 거대한 판매량으로 돌아온다는 주장이다.

프로엔자 스쿨러의 영민한 두 디자이너가 지적한 점이 바로 쿠튀르를 닮아가는 레디투웨어의 풀어야 할 숙제일 것이다. 실제로 정식 런웨이 쇼에 선보인 의상들이 그대로 매장에 걸리는 경우는 점점 줄고 있다. 광고에 선보인 소수의 룩을 제외하고는 불필요한 장식을 대거 걷어내고, 비현실적으로 높은 굽을 낮추는 식으로 변형해 ‘팔릴 태세’를 갖춘 후 고객을 만나게 된다. 사실 상업적인 프리 컬렉션과 정식 런웨이 컬렉션 사이의 시간은 매우 짧은 편인데, 바이어들이 프리 컬렉션을 사는 데 이미 너무 많은 예산을 써버린 후라 런웨이 제품에는 그다지 많은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다. “우리는 그런 옷들이 그저 쇼 의상에 그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특별하게 만든 작품이 실제로 팔리고 입혀져서 사람의 인생 속에 녹아들어 가치를 발했으면 한다”라는 헤르난데스의 말은 패션계가 점점 극으로 치닫는 런웨이 쇼를 흑백논리로 인식하는 현상에 날카롭게 던지는 경계다. 결국 디자이너들은 물론이고 고객들 역시 현재 패션계가 시행하고 있는 ‘시즌’의 운영 방식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느끼고 그 대안을 찾게 될 것이다. 프리 컬렉션은 이미지 룩북으로, 정식 컬렉션은 런웨이 쇼나 프레젠테이션 위주로 양분되어 발표하는 방식 역시 변화가 생길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어쨌거나 지금은 그 변화의 시작점에 있고, 적어도 올해까지 ‘보여주기’ 위한 과시적 옷들은 더욱 맹위를 떨칠 것이다. 그러니 포기하고 즐기는 수밖에. 살 수 없고, 입을 수 없는 이 허무한 신기루 같은 패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