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플라이

W

기다린다. 어둠이 내린다. 빛을 밝힌다. 또 밝힌다. 나비가 날아오른다. 그리하여 생명이 깃든다. 지난한 시간을 견디며 자연 속에 꿈틀대는 생명의 기운을 빛으로 새기는 사진작가 이정록. 그의 손끝에서 시작된 빛이 살아 있는 것을 지나 살아 있지 않은 것에까지 가 닿았다.

‘생명 나무’는 겨울과 봄 어디쯤에서 만난 감나무에서 시작되었다. 혹독한 추위에 바짝 마른 나뭇가지 끝에서 언뜻 초록이 보였다. ‘그때 나는 정말 본 것일까?’ 내가 본 것이 무엇이든 간에 죽은 듯 말라버린 그 가지는 생명의 싹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겨울을 나는 모든 나무가 그러하듯이. 그 생명력은 보이지 않더라도 분명 존재하고 있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이 어디 이뿐이랴! 일종의 각성이 있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각성. 이것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와 서로 영항을 주고받는다. 상응한다. 나는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중략)
빛은 생명력을 표현하는 데 좋은 매체였다. 게다가 빛의 숭고함은 나무의 신령함만큼이나 인류의 보편적인 원형이기도 하다. ‘생명 나무’는 그 자체로 두 세계 간의 상응을 표징하는 셈이다. 근원적인 것을 잊게 만들 정도로 자극적인 현대 산업사회에서 자연의 생명력과 우리 안에 내재된 근원적인 세계가 맞닿는 지점을 표현하고 싶었다. 단순한 자연의 교감에 그치기보다 우리의 삶과 역사에 개입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파장을 환기하기 바란다. –작가 이정록

작가 노트에서 스스로 밝혔듯, <생명 나무> 연작은 자연 속에 움튼 생명을 향한 경외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움직일 줄 모르는 자연의 생명은 비록 존재한다 해도 눈에 보이지 않기에, 그 생명을 흔들어 깨우는 건 오롯이 작가의 몫으로 남았다. 자연의 밑바닥에 웅크린 생명의 신비를 길어 올려줄 매개체로 빛을 발견한 건, 그동안 땅과 물 그리고 나무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진지하게 대면해온 시간에 대한 보상이었다. 물론 방법을 알아챘다 하여 자연이 제 밑바닥을 순순히 드러낼 리 없으므로, 아날로그 필름 한 장에 열 단계 이상의 과정을 거치고 반복한 끝에야 겨우 하나의 작품을 손에 얻을 수 있는 고독을 기꺼이 감내했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를 빛으로 이었던 작가는 <W Korea>와의 협업을 위해, 자신의 작업에 패션이라는 또 하나의 매개체를 더했다. 밝을 때의 풍경을 찍고 어두워질 때까지 꼬박 기다린 후 산발적으로 플래시를 터뜨리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는 지난한 과정은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담양의 대나무 숲에서, 나주의 호수에서, 화순의 운주사와 자신의 스튜디오에서도, 매번 하루가 넘는 긴 시간 동안 제품과 마주한 끝에 드레스, 가방, 스카프, 우산에는 작가의 애정이 묻어나는 빛이 어렸다. 심지어 살아 있지 않은 물건에서조차 그 근원으로 파고들고자 하는 뜨겁고 진지한 눈빛은 나무로부터 생명을 이끌어내던 순간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Artist LEE JEONG LOK

나무와 조화를 이룬 두 개의 우산은 모두 Burberry Prorsum 제품.

나무와 조화를 이룬 두 개의 우산은 모두 Burberry Prorsum 제품.

더블유와의 협업을 위해 <Tree of Life in Island> 시리즈에서 발전시킨 작품.

대나무 숲 길에 놓인 캔버스 소재의 남성용 오뜨 와 끄로와 백은 Hermes 제품.

대나무 숲 길에 놓인 캔버스 소재의 남성용 오뜨 와 끄로와 백은 Hermes 제품.

나뭇가지에 걸린 페이턴트 소재의 롱부츠는 MiuMiu, 바닥에 놓인 큼직한 담요는 Hermes, 가운데 놓인 붉은색 웨지힐은 Fendi 제품.

나뭇가지에 걸린 페이턴트 소재의 롱부츠는 MiuMiu, 바닥에 놓인 큼직한 담요는 Hermes, 가운데 놓인 붉은색 웨지힐은 Fendi 제품.

대나무 사이에 걸려 있는 레이스 장식의 셔츠 드레스는 Jinteok 제품.

대나무 사이에 걸려 있는 레이스 장식의 셔츠 드레스는 Jinteok 제품.

불상에 맨 스카프는 왼쪽부터 순서대로 | 말이 그려진 실크 스카프는 Ralph Lauren Collection, 그래픽 프린트가 화려한 스카프는 Louis Vuitton, 레오퍼드 프린트의 캐시미어 스카프, 타이 형태의 핑크, 하늘색 스카프는 모두 Hermes 제품.

불상에 맨 스카프는 왼쪽부터 순서대로 | 말이 그려진 실크 스카프는 Ralph Lauren Collection, 그래픽 프린트가 화려한 스카프는 Louis Vuitton, 레오퍼드 프린트의 캐시미어 스카프, 타이 형태의 핑크, 하늘색 스카프는 모두 Hermes 제품.

<화보 메이킹 영상>
Artist / LEE JEONG LOK

에디터
패션 에디터 / 김한슬, 피처 에디터 / 김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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