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풀 월드

W

스티커 드로잉과 딩벳 회화로 박미나가 완성한 총천연색 패션과 아트의 만남.

PARK MEE NA

박미나의 작업에서는 수집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크릴 물감과 유화 물감, 볼펜, 색칠공부, 스티커, 딩벳 폰트 등을 카테고리별로 망라하는 드로잉과 회화는 집요함으로 이룬 아카이브이자 작가적 해석이 개입된 동시대의 기록이다. 얼핏 건조하게 들리지만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즐거움도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패션 사진에 스티커 드로잉과 딩벳 회화 등을 결합시킨 더블유와의 협업만 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크롭트 톱과 메탈릭한 주름 스커트는 Proenza Schouler, 금빛 헤드피스는 Jennifer Behr by Boon the Shop at My Boon 제품.

크롭트 톱과 메탈릭한 주름 스커트는 Proenza Schouler, 금빛 헤드피스는 Jennifer Behr by Boon the Shop at My Boon 제품.

기하학적인 메탈 장식이 돋보이는 톱과 스커트, 벨트와 조형적인 손잡이가 달린 가방과 뱅글은 모두 Celine 제품.

기하학적인 메탈 장식이 돋보이는 톱과 스커트, 벨트와 조형적인 손잡이가 달린 가방과 뱅글은 모두 Celine 제품.

페인팅이 돋보이는 붉은색 톱과 줄무늬 스커트는 Celine 제품.

페인팅이 돋보이는 붉은색 톱과 줄무늬 스커트는 Celine 제품.

더블유와의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어떤 작업인가?
박미나 색과 기하학적인 요소를 활용하고 드로잉과 딩벳 작업을 섞었다. 일단 네 장 중 두 장은 드로잉처럼 접근해서 사진에 어울리는 스티커로 장식했다. 가슴 부위가 구멍처럼 절개된 의상이 있는 컷에는 엇비슷한 모양을 더했고, 다른 한 장에는 별, 우주선 등이 그려진 스티커를 붙였다. 머리띠를 한 모델이 외계인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두 장의 경우, 인물의 포즈 등에서 연상된 딩벳과 그래픽으로 재구성을 해봤다.

평소에도 어떤 밑그림 위, 그리고 좁은 카테고리 안에서 가능한 무언가를 모색하는 작업을 자주 해왔다. 백지가 주어졌을 때보다 밑그림이 있을 때 오히려 아이디어가 더 많아지는 편인가?
그런 것 같다. 그 조건과 제한을 문제점이라기보다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숙제처럼 받아들인다. 그래서 있는 쪽이 더 재미있기는 하다.

비슷한 다른 예를 들기 어려울 만큼 독특한 작업을 한다. 나름의 문법을 찾았던 시기는 언제였나?
대학원 때다. 들어가자마자 학부 때부터 작업해온 걸 뒤집어엎었다. 마지막 학기에만 회화를 했고, 나머지 기간 동안에는 전부 종이 작업만 했다. 학생 신분은 이걸로 끝이니까 졸업 후 작품을 발표하기 전에 실험해보고 싶은 건 죄다 해볼 생각이었다.

당시의 작업을 더 설명해준다면?
다양한 기호를 활용한 드로잉들은 후에 딩벳 시리즈로 발전했다. 색칠 공부를 활용한 작업도 많았다. 1998년부터 시작했다.

수집 역시 박미나 작업의 키워드다. 일종의 미션처럼 물감, 볼펜 등 특정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것을 수집하고, 그 수집의 결과를 나름의 방식대로 보여주는 작업을 해왔다. 도구 수집에서부터 작업이 출발하는 건가? 아니면 작업을 미리 구상하고 그에 맞는 도구를 수집하는 건가?
작품이 먼저다. 볼펜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어떤 종류의 한계 안에서 드로잉의 도구를 선택해야 할까 생각한 뒤 수집하는 거라 그리 즐겁지는 않다. 아니, 처음에는 즐거울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가 지나면 견디면서 해야 한다. 오덕의 소질은 있지만 철저한 오덕은 못 된다. 이렇게 힘든데 왜 이런 걸 골랐을까, 후회하면서 꾹 참고 추진한다. 그 부분이 곧 작업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현재 유통되는 특정 물감이나 볼펜 등을 모아 스펙트럼을 구성하는 박미나의 작업은 동시대의 시각적 환경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예술로서의 기록은 신문 기사 같은 실용적인 기록과 어떻게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나?
최근에는 시트지 작업을 하고 있다. 하향 산업이다 보니 제품이 하나둘씩 단종되는 추세다. 비주얼의 재료로 쉽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 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들이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사라져버린다. 사진 등으로 기록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작가로서 이를 보다 전면적이고 비주얼적인 경험으로 남기려 한다. 시각 역사 그리고 지역적 특징과도 관계가 있는 문제다. 그래서 내게는 한국이라는 공간이 중요하다. 좋은 재료를 외국에서 개인적으로 구입해서 하는 작업은 의미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유통되는 물감이나 볼펜 등만 작품에 적용한다. 제작 시기도 예민하게 생각한다. 제목에 연도가 자주 기재되는 건 그런 이유다.

예술이란 창작자의 감성적, 감정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작가 자신을 좀처럼 노출시키지 않는 박미나의 작업과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다.
한국에서 학교를 나왔으면 작가가 못 됐을 거다. 반 농담이긴 했지만, 첫 전시 때는 그림에 감정이 하나도 없어서 자폐 같다는 말까지 들었다. 원래 미술도 감동을 주려면 <케이팝스타> 참가자들이 노래하듯 조였다 풀었다 하는 감정상의 기복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감정일 때가 많다. 물론 작정하고 하면 다른 것도 가능하고 실제로 그런 시도가 있었지만 그건 배워서 하는 거지 내게 자연스러운 작업이 아니다. 처음 개념미술을 접했을 때 작가가 될 수 있는 길을 찾은 기분이었다. 난 내게 쏟아지는 관심이 불편하고, 스스로가 별로 흥미롭지 않아서 자꾸 밖을 보게 되는 사람이다.

쉽고 재미있다는 평부터 어렵고 건조하다는 의견까지, 박미나의 작업에 대한 감상은 유독 다양한 것 같다.
그래서 좋다. 셰익스피어가 흥미로운 건 문외한과 어느 정도 공부를 한 사람, 그리고 전문가가 각각 다른 층위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나. 나도 가끔은 작업할 때 의도적으로 그런 계산을 넣곤 한다. 예를 들어 깊게 아는 사람만 읽을 수 있는 코드를 감춰두는 식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이들 역시 재미있게 보는 이미지였으면 한다. 학문이지만 비주얼적인 쾌감도 놓치고 싶지 않다.

Artist / Park Mee Na

에디터
패션 에디터 / 박연경(Park Youn Kyung)
포토그래퍼
유영규
스탭
헤어 / 이혜영, 메이크업 / 원조연, 세트 스타일리스트 / 김민선(Treviso), 네일 / 김수연, 김수정(Trend N), 디지털 리터칭 / 장원석(99 Digital), 어시스턴트 / 임아람, 한지혜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