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이 나가사키에서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즐거움은 아니다. 우리가 아직 몰랐던 일본, 나가사키에 가야 할 이유.

일본 여행이라면 일단 도쿄, 혹은 교토라고 여겼다. 아니면 아예 색다르게 오키나와 정도를 택하거나. 나가사키? 짬뽕을 2박 3일씩이나 먹고 와야 하나? 하지만 사흘에 걸쳐 나가사키 현을 둘러본 뒤로 생각이 좀 바뀌었다. 보통의 관광지에 비해 호젓하고 고요한 이 지역에는 짬뽕 말고도 시도해봄직한 즐거움이 많았다. 서울, 도쿄, 뉴욕처럼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면 도시들은 대략 엇비슷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몇 시간 거리 밖의 지방은 자신의 특색을 훨씬 고집스럽게 지킨다. 수백 년 전부터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과 교류를 시작한 나가사키 곳곳에는 아직까지도 당대 유럽의 영향이 고풍스럽게 묻어 있다. 그 침착하면서도 이국적인 풍경을 느리게 산책하는 건 도쿄처럼 빠르게 바뀌는 대도시에서는 누리기 힘든 여유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히로시마와 함께 원폭의 참화를 겪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일본에서 가장 청정한 지역으로 꼽히게 된 이곳을 다녀온 후,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들을 되짚어봤다.

1. 호텔 창 밖으로 보이는 히라도의 아침. 2. 나가사키 시의 야경. 3. 히라도의 명소, 에비스테이. 4. 유럽의 영향이 느껴지는 오우라 성당. 5. 강산성의 운젠 온천.

1. 호텔 창 밖으로 보이는 히라도의 아침. 2. 나가사키 시의 야경. 3. 히라도의 명소, 에비스테이. 4. 유럽의 영향이 느껴지는 오우라 성당. 5. 강산성의 운젠 온천.

카스텔라
일찌감치 외국과 교통한 나가사키는 일본 내에서 가장 먼저 설탕을 소비한 지역이다. 덕분에 전반적으로 음식에 단맛이 강하고, 디저트류가 특히 발달했다. 대표적인 예가 16세기 포르투갈 선교사가 소개한 간식을 일본식으로 응용해 만든 카스텔라다. 분메이도, 소오켄, 후쿠사야 이렇게 세 브랜드가 나가사키 3대 카스텔라 명가로 꼽히는데, 추천하고 싶은 건 반죽의 밀도가 높고 식감이 쫄깃한 후쿠사야의 제품이다. 나가사키 공항 내에도 분점이 있으니 귀국 직전, 남은 엔화를 여기서 탕진해도 좋겠다. 그럼 차이나타운의 짬뽕 가게는? 물론 다녀오긴 했다. 그런데 현지의 나가사키 짬뽕은 진한 육수가 다소 느끼해서 오히려 우리 입맛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오우라 성당과 그라바엔
나가사키 시의 독특한 역사를 되새 기게 해주는 이국적인 건축이다. 오우라 성당은 국가의 강력한 금교 정책으로 순교한 이 지역 성인들을 기리기 위해 프랑스선교사의 주도로 17세기에 지어졌다. 현재는 대표적인 가톨릭 성지이자 일본의 국보가 된 곳. 기본적으로 서양식이지만 내부 곳곳을 목조로 마감한 데서 당대 일본 전통 가옥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동양적인 고딕 혹은 바로크풍이라고 할까? 스코틀랜드 출신 상인으로 나가사키에 정착한 토마스 블레이크 글로버의 저택도 오우라 성당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그라바엔은 ‘글로버의 정원’이라는 뜻. 시내에 있던 서양 건물들까지 이축해 메이지 시대의 나가사키를 경험케 해줄 관광단지로 조성했다. 푸치니의 오페라로 각색된 <나비부인> 원작 소설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다.

데지마 와프
나가사키 항구와 접해 있는 일종의 쇼핑센터다. 대단한 구경거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카페 야외석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즐기는 커피는 꼭 권하고 싶다. 특히 카페 애틱은 메이지 유신의 영웅인 사카모토 료마와 같은 역사적 인물의 모습을 거품 위에 올린 라테 아트로 유명하다. 따뜻한 계절이 되면 밤에 찾아가 맥주를 마시는 것도 괜찮다.

운젠 온천
나가사키 시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운젠은 해발 700m 고지에 있는 관광지다. 유황 냄새가 코에 진하게 끼치는 강산성의 온천은 미끌거리는 감촉이 마치 비눗물 같다. 신경통과 미용에 효과가 있다는데 목욕 후 보습제를 바르지 않아도 피부가 땅기는 걸 느끼지 못할 정도다. 이곳의 대표적인 산책코스는 유황 연기와 뿌연 수증기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운젠 지옥’이다. 이름만 무시무시한 건 아니어서, 실제로 한때는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고문 및 사형이 자행된 장소라고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매점에서 파는 레모네이드와 삶은 계란을 먹다가 좀 목이 막히는 기분이다.

운젠 후쿠다야의 가이세키 요리
온천 관광지답게 운젠에는 나름의 역사와 개성을 지닌 고아한 호텔과 여관이 13채 정도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다. 이번 여행 중 묵은 운젠 후쿠다야는 현대식 시설에서 전통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안락한 숙소다. 대중탕, 노천온천, 그리고 예약을 통해 이용 가능한 가족 전세탕을 갖추고 있으며, 정갈하고 정성스러운 가이세키 요리를 제공한다. 온천욕을 마친 뒤 맛깔스러운 음식을 배불리 먹다 보면 밤이 기분 좋게 깊어진다.

쿠주쿠시마
히라도 시와 사세보 시 사이의 바다에 점점이 자리하고 있는 섬들의 총칭이다. 전체가 사이카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유람선을 타면 50분 정도에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 다른 나라의 돌섬 사이를 누비며 바닷바람을 맞는 경험이 괜찮기는 하지만 기타 일정이 빠듯하다면 생략해도 무방하다.

하우스텐보스의 3D 프로젝션 매핑 쇼
일본의 3대 테마파크 중 하나로 꼽히는 하우스텐보스는 17세기 네덜란드의 거리를 충실하게 재현한 거대 규모의 관광 리조트다. 벽돌 하나까지도 현지에서 공수해 조성했다고는 하는데, 어딘가 인위적인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오락 체험 시설 역시 도쿄 디즈니랜드나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비하면 아쉬운 편이다. 하지만 하우스텐보스의 진가는 어두워진 뒤에 드러난다. 색색의 불빛으로 조성되는 야경은 기억해둘 만한 장면이고 무엇보다 건물 벽에 직접 이미지를 영사해 짜릿한 착시를 유도하는 3D 프로젝션 매핑 쇼가 인상적이다. 한국 인력이 영상 제작을 담당했다고 한다.

히라도 올레 코스
지금이야 소박하고 한적한 바닷가 마을처럼 보이지만 네덜란드 상관이 데지마로 이동하기 전에는 히라도도 역동적인 해외무역항이었다. 규슈 관광추진기구는 제주 올레 측의 동의를 얻어 히라도를 비롯한 8개 지역에 올레 코스를 마련했다. 안내 표식을 따라 느릿느릿 3시간쯤 걷다 보면 일본 전통 사찰부터 성 프란시스코 사비에르 기념 교회 같은 유럽식 건축, 아기자기하고 단정한 주택가, 주변의 경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오름까지 죄다 훑고 돌아오게 된다. 작지만 품고 있는 역사는 깊은 곳이다.

에비스테이
히라도의 올레 코스는 에비스테이라는 식당 곁을 지나간다. 저녁에만 문을 여는데 가로등 하나 없는 산 중턱이라 택시를 타지 않으면 찾아가기가 어렵다. 예약은 필수고 메뉴는 당일의 재료로 구성한 코스 요리 하나뿐이다. 한 끼를 먹기 위해서 감수해야 할 번거로움이 크다는 뜻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럴 가치가 충분하다. 어느 하나 입에 안 맞는 게 없었지만 연근 사이에 새우살과 시소를 끼워 만든 튀김은 되새김질이라도 하고 싶은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