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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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풀하고 자유로운 여성의 상징으로 군림해온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의 아이콘인 랩 드레스. 랩 드레스의 탄생 40주년을 맞아 예술로 가득한 회고전과 헌정 컬렉션이 펼쳐지고 있다.

하우스의 아이콘인 랩 드레스를 떠다니는 유령으로 표현한 아티스트 더스틴 옐린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

하우스의 아이콘인 랩 드레스를 떠다니는 유령으로 표현한 아티스트 더스틴 옐린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

눈앞에서 사뿐한 자태로 너울거리는 호박빛 나비처럼, 드레스는 움직임 없이도 펄럭이듯이 느껴진다. 유리박스에 갇힌 이 드레스를 가까이서 살펴보면 얼핏 체인 링크처럼 보이는 프린트들이 실제론 스캔된 잡지나 신문에서 오려낸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날카로운 안목의 소유자라면이 모든 전시물이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를 향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아티스트 더스틴 옐린(Dustin Yellin)은 디자이너의 랩 드레스를 떠다니는 유령으로 표현했다. “이 유령은 꿈결 같은 상태를 물질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유리층 안에 콜라주를 넣는 데 익숙한 그는 마치 수족관 깊숙이 떠다니는 듯한 랩 드레스 조형물을 만들어냈다. 어느 누구도 입지 않은 텅 빈 상태지만 랩 드레스는 홀로 서 있다! 지난 40여 년간 셀 수 없이 많은 여성이 입어온 랩 드레스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드라마틱한 변화를 거쳐왔다. 여성들의 자기 진화와 발전을 상징하는 드레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옐린은 수년간 미디어에서 다뤄온 자료들을 수집해 떠다니는 랩 드레스를 완성한 것이다.

“2014년 랩 드레스는 탄생 40주년을 맞이해요.” 폰 퍼스텐버그가 옐린을 비롯한 예술가들이 이 시그너처 드레스에 관련된 작품을 전시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사실, 똑같은 디자인의 드레스가 여러 세대를 거쳐 살아남는다는 건 유례가 없는 일이에요. 여전히 젊은 여성들에게 어필하고 있기 때문에, 우린 이를 기념하고 싶었어요.” 다이앤 여사는 헌정 패션 컬렉션과 DVF 관련 아트워크로 구성된 전시회를 택했다. DVF만의 패션 헤리티지에 친구였던 앤디 워홀의 아이코노그래피가 녹아든 완벽한 기념 컬렉션으로, 전체적인 콘셉트는 그녀의 대표적인 패턴에 워홀의 유명한 엠블럼인 꽃과 달러 사인을 혼합하는 것이다. 그녀는 하이브리드 프린트와 워홀의 로고를 티셔츠와 프록 드레스에 사용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팝아트적 느낌이 강할 거예요.” 폰 퍼스텐버그가 말한다. “워홀의 천재성은 그가 많은 걸 예측했다는 데 있어요. 브랜드화와 ‘미래엔 누구나 15분간은 유명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말 그리고 리얼리티 쇼에 이르기까지, 그는 모든 걸 내다봤고 현실이 되었죠. ‘워홀이라면 과연 인스타그램으로 무엇을 했을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가슴이 뛰었어요.”

1. 줄리안 오피 가 재해석한 DVF의 랩드레스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 2. 랩 드레스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 공간 내부의 포토월. 3. LA의 윌셔 메이 컴퍼니 빌딩에서 열린 랩 드레스 40주년 전시를 장식한 DVF의 아카이브 피스들.

1. 줄리안 오피 가 재해석한 DVF의 랩드레스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 2. 랩 드레스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 공간 내부의 포토월. 3. LA의 윌셔 메이 컴퍼니 빌딩에서 열린 랩 드레스 40주년 전시를 장식한 DVF의 아카이브 피스들.

단연코 워홀 프로젝트는 이미 고인이 된 아티스트에게도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앤디도 근사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피츠버그 앤디 워홀 박물관의 디렉터 에릭 시너(Eric Shiner)의 말이다. “그는 다이앤을 아꼈고 패션을 사랑했어요.” 시너는 1950년대 워홀의 초창기 커리어가 패션 일러스트레이터였고, 그가 할스톤과 스테판 스프라우스와도 협업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워홀 프로젝트 자체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지만, 전시 계획은 좀 더 우회적인 경로를 따랐다. 폰 퍼스텐버그는 자신과 지나치게 연관성이 깊은 뉴욕에선 쇼를 열기를 원치 않았다. 그녀가 가장 먼저 고려한 곳은 수도이자 관광객이 많은 워싱턴 D.C, 하지만 결국엔 로스앤젤레스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팝문화가 강한 빛의 도시이기 때문이에요.” 도시를 선정한 후 그녀가 운 좋게 발견한 이상적인 전시 공간은 윌셔 블러버드의 메이 백화점이 있던 곳인데, 렌조 피아노(Renzo Piano)가 개축한 이 공간은 지금은 영화 아카데미 뮤지엄(Academy Museum of Motion Pictures)이 되었다.

1. 랩 드레스 4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를 홍보하기 위해  제작된 DVF의 프린트로 뒤덮인 차량. 2. 랩 드레스의 빈티지 패턴을 유리 조각으로 매달아놓은 듯한 작품을 제작한 아티스트 더스틴 옐린. 3. 앤디 워홀이 제작한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의 추상화.

1. 랩 드레스 4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를 홍보하기 위해 제작된 DVF의 프린트로 뒤덮인 차량. 2. 랩 드레스의 빈티지 패턴을 유리 조각으로 매달아놓은 듯한 작품을 제작한 아티스트 더스틴 옐린. 3. 앤디 워홀이 제작한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의 추상화.

이 뮤지엄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의 끝자락과도 맞닿아 있어서, 파인아트와 리테일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상징적 의미도 클 뿐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꿈의 전시 공간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연대기적 측면에서 모든 테마가 그러하듯이, 랩 드레스 역시 상승과 하강이라는 굴곡을 거쳐왔다. 굳이 여성적인 섹시함을 희생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랩 드레스는, <뉴스위크> 커버를 장식하면서 파워풀하고 자유로운 여성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너무 인기를 끌면서 도처에 흔해져버린 탓일까. 몇 년 후엔 생산이 중단되면서, 그저 그렇게 역사 속에 큰 획을 그은 채 사라져버리는 듯했다.

그렇지만 1997년, 젊은 여성들이 벼룩시장이나 어머니의 옷장 속에서 이 오리지널 드레스를 꺼내기 시작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고, 또다시 이슈로 떠올랐다. “이 드레스는 지불할 만한 가치가 충분해요. 프랑스에선 ‘로브 포르트푀유(Robe Portefeuille)’라 부르는데, 포르트푀유는 지갑을 의미하기 때문에 굉장히 잘 들어맞는 표현이에요. 여러모로 나를 풍요롭게 만들어주었거든요.” 그녀가 미소를 띠며 말을 이어갔다. “내 이름은 늘 이 드레스와 연관되었기 때문에 많이 고민스러웠어요. ‘내가 만들어낸 건 이것뿐만이 아닌데!’라는 생각도 들었죠. 그렇지만 이제는 ‘정말 경이로운 축복!’이라는 생각이에요. 여러 세대를 초월하는 드레스가 탄생한 것이니까요.”

1. 전시회 오프닝에 참석한 모델 에린 왓슨. 2. LA 거리 곳곳에 설치된  전시 포스터. 3. DVF.com과 매장에서 독점적으로 판매될 앤디 워홀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제작된 리미티드 에디션.

1. 전시회 오프닝에 참석한 모델 에린 왓슨. 2. LA 거리 곳곳에 설치된 전시 포스터. 3. DVF.com과 매장에서 독점적으로 판매될 앤디 워홀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제작된 리미티드 에디션.

드레스가 재탄생한 이후 다이앤은 모스크바, 상파울루, 베이징 등지에서 세 차례의 작은 전시회를 열었다. 그녀의 전시회는 대부분 예술계의 유명한 기획자 빌 카츠(Bill Katz)가 총괄 했으며, 이번 최대 규모의 전시회 역시 그가 맡고 있다(빌 카츠는 폰 퍼스텐버그뿐만 아니라 재스퍼 존스, 사이 톰블리, 안젤름 키퍼, 프란체스코 클레멘테 등의 전시회도 기획했다). 카츠가 마음속으로 그려낸 전시 풍경은 갤러리 공간 중앙에 거대한 살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주변으로는 전시공간이 펼쳐지되, 둘러진 벽면에는 다이앤의 ‘당신이 원하는 여성이 되라(Be the woman you want to be)!’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또 안쪽에는 역사적인 맥락과 여성적인 관점에서 해석한 드레스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연대기표가 전시되어 있다. 카츠에 따르면 대규모 전시 홀의 핵심은 ‘정확히 다이앤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그녀를 닮은 마네킹들’이다. 특히 중앙 그룹은 블랙 앤 화이트 랩 드레스를 입고 있으며, 그 측면의 좀 더 작은 버전의 마네킹들은 컬러풀한 테마로 이루어져 있다.

“중국 진시황의 호위병사인 토용들처럼 늘어선 군대를 상상했어요.” 다이앤이 말한다. “랩 드레스는 여성의 파워로부터파생되는 수많은 것과 연관되어 있으니까요.” 그녀는 겸손함을 잃지 않은 채 랩 드레스의 파생 효과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조명해주길 원했다. DVF 전시 사무실에는 오리지널 패턴의 드레스 사진도 장식되어 있다. “내가 직접 이런 말을 하긴 쑥스럽지만, 오랜 세월을 버텨온 아이콘적인 프린트예요. 34년이 지난 후 미셸 오바마가 백악관 크리스마스 연회장에서 입은 드레스이기도 하고요.” 전시 공간에 배치된 사진 속의 미셸 오바마는 블랙&화이트의 체크링크(옐린이 전시 작품에 사용한 것과 동일한) 패턴의 랩 드레스를 입고 있고, 그옆엔 애견 보(Bo)가 자릴 잡고 있다. 또 전시회장의 별도로 분리된 룸에는 워홀을 비롯해 척 클로스와 장 환 등의 아티스트가 만들어낸 폰 퍼스텐버그의 빈티지 초상화가 진열되어있다. 여성스러운 섹시함과 비즈니스적인 단호함을 동시에 지닌 랩 드레스는 여성적인 열정과 파워를 모두 혼합하고 있다. 이 아이템에는 지난 수십 년간 다이앤이 추구해온 디자인 미학이 구체화되어 있다. 40여 년의 역사상 오랜 휴지기도 있었기에, 드레스가 지니는 상징적 의미는 그녀 삶의 한 단면과도 닮아 있다. 두 번째 남편이자 미디어 거물인 베리 딜러(Barry Diller)와는 1975년에 만나 5년간 연애를 했지만, 서로 다른 열정 때문에 헤어졌다. 그 후 90년대 후반 두 사람은 다시 재결합했고 2001년에 결혼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이들의 기념일은 어떨까? 다이앤은 랩 드레스 때와 마찬가지로 이미 딜러에 관련된 대답도 준비해놓고 있었다. “기념일이라기보다는 ‘연속성’에 관련된 것이에요. 과거에 관한 어떤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 중인 모든 것에 관련된 것이죠.”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자리를 일어서면서 그녀는 확신에 넘치는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도 이 열정과 여정은 쭉 계속될 거예요! 글|아서 루보(Arthur Lubow)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정진아
포토그래퍼
HECK ERIK MADIGAN
기타
COURTESY OF DV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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