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에서 영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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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술사 이은결은 자신의 마술이 한순간의 짜릿함으로 끝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은결은 이름 앞에 마술사가 아닌 ‘환상술사’라는 수식이 붙길 바란다고 거듭 이야기했다. 재빠르고 화려한 기교를 순간에 보여주는 마술을 넘어 사람들에게 환상을 보여주며 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그렇기에 자신을 ‘환상술사’라 불러달라는 얘기였다. 그의 바람을 반 정도는 이해했지만 절반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과연 그가 마술을 통해 무엇을 추구하는지 말이다. 지난해 10월 이은결이 손목에 생긴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섬세한 손놀림을 요하는 핑거 발레, 섀도 매직 등의 마술 테크닉을 주로 구사하는 그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었다. 결과를 물어보기 조심스러웠지만, 카메라 앞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그의 손이 대신 대답해주었다.

<The Illusion>이라는 공연을 매년 하고 있다.
2007년, 라스베이거스에서 마술쇼를 관람하던 도중 답답함을 느꼈다. 마술쇼의 짜여진 ‘패러다임’ 이 다 보이더라. 마술사인 내 미래와 한계를 본 것 같아 걱정이 밀려온 동시에 쾌감을 느꼈다. 그것과는 다른, 나만의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 일을 계기로 마술과 마술사에 대해 달라진 내 생각을 담은 쇼가 바로 <The Illusion>이다. 나 같은 사람들에게 ‘즉흥성’이란 상당히 위험한 요소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된 대로 마술이 진행되어야 하는데 <The Illusion>에는 즉흥성을 더했다. 기존 마술에서 옳다고 여겨진 것을 비틀어봤다. 올해는 3월 성남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를 할 예정이다. <The Illusion> 역시 상업 공연이다 보니 관객들이 기대하는 ‘버라이어티’ 한 부분을 뺄 수는 없지만 이 공연의 주목적은 마술에 대한 내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다. 마술이 그저 놀라운 경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키워 그들의 또 다른 원동력이 되길 바란다.

젊은 사람 중에는 마술 공연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도 많다.
마술은 어르신들의 젊은 시절 향수를 자극하고 아이들에게는 경이의 대상이다. 그러나 다 커버린 20대에겐 마술이 크게 신기하지 않다. 딱히 추억과 맞닿아 있지도 않다. 흥미를 가지려면 먼저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20대에게 마술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나는 이 숙제를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었던 일, 평범한 경험을 특별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풀려고 한다. <The Illusion>의 주요 포인트를 ‘순수함’으로 잡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누구나 순수했던 유년 시절은 있지 않나. 그때의 기억을 건드리며 쇼를 진행한다.

‘마술 같은 일’이라 여겨진 일이 기술의 힘을 빌려 실제가 되고 있다. 마술을 대체할 오락거리도 무척 늘어났고. 이런 상황에서 마술만의 강점은 어떤 것일까.
기술의 발전 정도와 관계없이 사람은 공상을하는 존재다. 사람의 상상을 실제로 구현해내는 장르가 바로 마술이고. 그렇기에 마술은 오랫동안 사랑받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술을 보고 ‘별거 아니네’, ‘짜고 하는 거지?’ 라는 투의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종종 있다.
그건 마술사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아예 마술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어쩔 수 없지만 마술사라면 차가운 반응을 보이는 사람 역시 즐겁게 만들어야 한다. 분명 그들도 즐거워하는 부분이 있다. 그 지점을 찾아내야 한다.

이은결, 최현우 이후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일명 ‘스타급’ 마술사가 나오지 않고 있다.
마술사들의 ‘경험 부족’ 때문 아닐까. 테크닉적 부분이 아니라 관객과의 소통이 부족한 마술사가 많다. 마술에서 기술적인 면보다 더 중요한 건 ‘관객을 즐겁게 해줄수 있는가’다.

마술로 다른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데 그렇다면 이은결 자신은 마술을 통해 무엇을 얻나.
사람마다 자신을 찾는 수단과 방법이 다르다. 누군가는 일을 통해서, 취미를 통해서, 사람을 만나면서 ‘나’를 찾는다. 내게는 마술이 수단이다. 마술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놀라운 건,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지 않다는 거다(웃음).

에디터
디지털 에디터 / 강혜은(Kang Hye Eun)
포토그래퍼
EOM SAM CHEOL
스탭
메이크업 / 김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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