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의 메달 색깔은 중요치 않다. 그녀는 품위 있는 퇴장을 통해 진짜 스포츠 정신을 보여주었으니까.

WHY – 김연아의 은메달이 금메달보다 빛난 이유는?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은 ‘선수’ 김연아의 마지막 무대였다. 모든 팬들이 완벽한 마무리를 바랐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래라도 씹은 듯 입안이 껄끄러워지는 엔딩이었다.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을 획득해서가 아니라 심판 판정이 영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올림픽은 폐막을 했지만 여자 피겨 스케이팅 결과에 관한 의혹은 쉽게 잦아들 분위기가 아니다. 미국의 스포츠 칼럼니스트 제시 헬름스는 러시아가 김연아의 금메달을 훔쳐갔다며 직설적인 비난을 했다. CNN 역시 올해 올림픽에서 벌어진 사건 15가지 중 하나로 피겨 스캔들을 언급했다.

국내에서는 ISU에 재심사를 청원하는 서명 운동이 뜨겁게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김연아는 시종일관 의연한 모습이다. 점수가 발표되고 메달의 색이 결정됐을 때도 담담한 표정이었고,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했기 때문에 만족스럽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괜한 변명이나 핑계가 없는 대답은 담백하고 터프해서 더 근사했다. 과정에 후회가 없기 때문에 결과에도 연연하지 않는다는 스물 세 살의 태도는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 무엇인지를 되새기게 한다. 물론 누구나 인정할 만한 공정한 판정이 이루어졌다면, 그래서 모든 선수가 응당한 성적을 가져갔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만약 이번 올림픽마저 김연아가 석권했다면 우리는 이 선수의 가장 멋진 모습을 끝내 못 보지 않았을까? 소치의 김연아는 벤쿠버의 김연아 보다 더 빛나 보였다. 정상이 아닐 때도 최고일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승자인 법이다.

PS. 김연아가 공식적으로 은퇴를 하면서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아사다 마오와의 경쟁 역시 마침표를 찍게 됐다. 둘은 “서로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며 그간의 애틋한 애증을 털어놓았다. 언제고 두 선수의 이야기가 영화로 옮겨진다면 <러시 : 더 라이벌>의 피겨 스케이팅 버전이 되지 않을까 싶다.